2016년 6월 12일 일요일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로 누가 있을까? - 트래비스 피멜

본드팬들의 공통된 습관 중 하나는 틈이 나는 대로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감을 찾는 일이다. 때가 되면 새로운 영화배우로 제임스 본드가 교체되기 때문에 다음 번 제임스 본드 후보로 어떤 배우들이 있는지 미리 미리 점검해보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Sean Connery)부터 지금의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에 이르기까지 제임스 본드 역은 스코틀랜드, 호주, 잉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잉글랜드 출신의 배우들이 맡았다. 따라서 브리튼 제도(British Isles)와 호주 출신 배우들이 새로운 제임스 본드 후보감으로 항상 오르내리곤 한다.

영화배우의 출생지역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는 것은 키, 체격, 머리색 등이다. 제임스 본드를 창조한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제임스 본드의 키, 체격, 머리색, 눈동자색 등을 소설에서 자세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본드팬들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을 영화배우를 물색할 때 이언 플레밍이 소설에서 묘사한 제임스 본드 캐릭터와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언 플레밍이 1957년 출간된 제임스 본드 소설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에서 밝힌 제임스 본드 관련 주요 사항은 다음과 같다:

Height: 183 cm
Weight: 76 kg; Slim build
Eyes: Blue
Hair: Black
Scar down right cheek & on left shoulder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가 미국 뮤지션 호기 카마이클(Hoagy Carmichael)을 연상케 하는 미남이라고 소개했다.

◀호기 카마이클

따라서 제임스 본드는 키 183 cm에 몸무게 76 kg의 마른 체형이며, 눈은 파란색이고 머리는 검정색인 깔끔한 미남형 사나이다. 오른쪽 뺨에 흉터가 있는 것으로 돼있지만 이건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원작소설에서 제임스 본드가 저렇게 묘사되었기 때문에 갈색이나 검정색 머리에 키가 6피트 이상인 마른 체형의 깔끔한 미남형 얼굴의 영화배우들이 007 영화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아왔다. 숀 코네리부터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2000년대 중반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를 제 6대 제임스 본드로 발표하자 일부 본드팬들이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언론과 인터넷 등지에서 소동이 벌어졌었는데, 그 이유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머리색이 갈색이나 검정색이 아닌 금발/블론드였으며 키도 6피트가 채 되지 않는 5피트 10인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블론드 머리에 키가 6피트가 채 되지 않는 영화배우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건 다니엘 크레이그가 처음이었다.


외모 조건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는 건 나이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을 참고하면, 제임스 본드의 나이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정도가 알맞다.

문제는 007 시리즈가 매년마다 새로운 영화가 나오는 시리즈가 아니라는 데 있다. 60년대 초창기엔 매년마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개봉했지만 그 이후부터 2년마다로 바뀌었으며, 요새는 3년 간격도 흔해졌다. 특히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공개되는 주기가 더욱 불규칙해졌다. 007 시리즈 23탄 '스카이폴(Skyfall)'은 007 시리즈 22탄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가 개봉한지 4년 뒤에 개봉했으며, 007 시리즈 24탄 '스펙터(SPECTRE)'는 '스카이폴'이 개봉한지 3년이 지난 2015년 11월 개봉했다. 2006년 제임스 본드가 된 다니엘 크레이그가 2015년 현재 4개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출연하는 데 그친 이유는 새로운 영화가 공개되는 주기가 길어지고 불규칙해졌기 때문이다. 만약 새로운 007 시리즈가 2년마다 꼬박꼬박 공개되었다면 다니엘 크레이그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출연한 제임스 본드 영화 수는 모두 5개가 됐을 것이다.

일부 본드팬들은 "양보다 질"을 강조한다. 일리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새로운 영화가 공개되는 주기가 길어지거나 불규칙해지면 제임스 본드 역을 맡게 될 영화배우의 나이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칫하면 50대를 쑥 넘긴 제임스 본드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본드팬들은 '50대 제임스 본드'의 탄생을 반기지 않는다. 50대 후반까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로저 무어(Roger Moore) 시대의 학습효과 덕분이다. 50대를 넘긴 영화배우는 제임스 본드를 맡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게 중론이다. 50대 초까지는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로저 무어의 8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를 기억하는 본드팬들 중엔 '50'이라는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본드팬들도 많다.

현재는 50대를 넘겨서까지 제임스 본드로 출연한 배우는 로저 무어 하나가 유일하다. 피어스 브로스난은 40대 후반에 007 시리즈를 떠났고, 다니엘 크레이그는 현재 47세이다.

(참고: 숀 코네리가 출연한 1983년 제임스 본드 영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Never Say Never Again)'은 EON 프로덕션이 제작하는 '오피셜' 007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는 영화이므로 50대 제임스 본드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본드25'까지 계약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007 시리즈 프로듀서는 2015년 초 가진 인터뷰에서 'OPEN-ENDED CONTRACT'라고 밝혔다.

만약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오고 '본드25'가 앞으로 3년 뒤인 2018년 개봉한다고 가정하면, 크레이그가 만으로 50세가 되는 해에 '본드25'가 개봉하는 게 된다. 이렇게 되면 로저 무어에 이어 두 번째로 50대 제임스 본드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2018년 개봉 예정(추정)인 '본드25'에 출연하기 적당한 나이의 새로운 영화배우를 찾아나서야 한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3년마다 개봉한다는 점까지 계산해서 50대를 쑥 넘기기 전에 최소한 3~4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나이의 배우를 골라야 한다. '본드28'이 개봉할 2027년에 나이가 50대를 넘기지 않을 배우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할 필요는 물론 없다. 또한, '본드25'가 2018년이 아닌 2017년에 개봉하고 그 이후부터는 2년마다 꼬박꼬박 새로운 영화를 공개하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등 여러 가지 변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따져봐야 가장 이상적인 후보를 고를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의 조건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대충 마무리 짓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다니엘 크레이그의 뒤를 이를 제임스 본드 후보로 누가 있을까?

호주 배우 트래비스 피멜(Travis Fimmel)이 있다.




트래비스 피멜은 미국 히스토리 채널의 드라마 '바이킹(The Viking)', 유니버설 픽쳐스의 판타지 영화 '워크래프트(Warcraft)' 등에 출연한 배우다.

  • 출생지: 호주
  • 생년월일: 1979년 7월15일
  • 키: 6피트
  • 머리: 블론드
  • 눈동자: 파랑

1979년생에 키가 6피트라면 일단 기본적인 조건엔 충족된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는 머리가 블론드라는 점. 블론드인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바 있으므로 '블론드 본드'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재발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재발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원작을 중요시 여기는 본드팬들은 블론드 배우가 제임스 본드가 되면 또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이 열려있다. 원작을 중요시 하는 본드팬들은 제임스 본드를 창조한 소설가, 이언 플레밍이 원작소설에서 본드의 머리색을 '검정색'으로 묘사한 만큼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배우도 머리색이 갈색 또는 검정색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영화팬들은 머리색을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원작소설을 중요시 여기는 다수의 하드코어 본드팬은 생각이 다르다. 지난 2005년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로 발탁됐을 때 난리가 났던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되도록이면 키와 머리색 등이 원작소설의 캐릭터와 일치하는 배우를 고르는 게 가장 현명하다.

그러나 상당수의 본드팬들은 피멜을 제임스 본드 후보감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피멜은 금방 산에서 내려온 사람처럼 덮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커다란 검을 휘두르는 워리어 타잎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히스토리 채널의 '바이킹' 시리즈 덕분이다. 이 때문에 피멜이 깔끔하고 세련된 제임스 본드 역에 어울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 본드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캐릭터이지 수염을 기르고 검을 휘두르는 거친 워리어 타잎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피멜이 산사람(?)이 되기 이전으로 잠시 시간여행을 할 필요가 있다. 수염을 기르지 않은 피멜의 모습을 보려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과거에 피멜은 켈빈 클라인(Calvin Klein) 모델로 활동했으며, 미국 배우 패트릭 스웨이지(Patrick Swayze)와 함께 미국의 2009년 범죄 TV 시리즈 '비스트(The Beast)'에 출연한 바 있다.


따라서 피멜이 면도를 깔끔하게 하고 제임스 본드에 어울리는 점잖은 헤어스타일로 바꾸면 생각보다 제임스 본드에 잘 어울려 보일 수 있다. '바이킹' 시리즈 등 덕분에 피멜의 단정한 모습을 볼 기회가 없어 현재로썬 상상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듯 하지만, '산사람'에서 '도시인''으로 스타일을 바꾸면 제임스 본드 역에 잘 어울릴 수도 있다. 아마도 피멜은 젊고 건장하고 혈기왕성한 제임스 본드에 잘 어울릴 듯 하다.

그런데 '젊고 건장하고 혈기왕성한 제임스 본드'가 친숙하게 들린다고?

현재 제임스 본드인 다니엘 크레이그가 바로 그러한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크레이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서 그는 갓 00 에이전트가 된 젊고 설익은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다.

이밖에도 다니엘 크레이그와의 비슷한 점이 여럿 눈에 띈다. 블론드에 파란 눈이란 점부터 시작해서 '장교'보다 '사병'에 어울리는 타잎이고 '화이트컬러'보다 '블루컬러' 스타일이란 점도 비슷하다. 따라서 만약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 스타일 007 시리즈를 다시 한 번 시도하고자 한다면 크래비스 피멜이 좋은 초이스가 될 수 있다. 트래비스 피멜 버전 제임스 본드는 도덕적인 문제 등 여러 가지로 머리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상부의 명령을 따라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젊은 초보 00 에이전트 역에 잘 어울릴 듯 하다.

그러나 만약 트래비스 피멜이 제임스 본드가 된다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계속해서 지적받았던 '유머 부족' 문제가 해결되긴 어려워 보인다. 피멜도 유머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며, 다니엘 크레이그와 마찬가지로 항상 굳은 표정의 'DEAD SERIOUS' 타잎 제임스 본드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거칠 땐 거칠고 진지할 땐 진지하더라도 농담을 주고받을 줄 아는 유머 감각도 갖춰야 균형 잡힌 제임스 본드가 탄생할 수 있지만, 트래비스 피멜에겐 이러한 제임스 본드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또한, 트래비스 피멜 버전 제임스 본드에 노련하고 냉정한 베테랑 제임스 본드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와 마찬가지로 트래비스 피멜 버전 제임스 본드도 카리스마 넘치는 노련한 수퍼스파이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본드는 원래 '모든 것을 다 소유한 사나이'이지만 트래비스 피멜 버전 제임스 본드는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나이'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만약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했던 것처럼 제임스 본드의 어두운 부문만을 계속해서 들춰낼 생각이라면 트래비스 피멜이 잘 어울릴 듯 하지만 옛 007 시리즈의 재미, 유머와 낭만을 그리워 하는 본드팬들을 만족시키긴 어려워 보인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 007 시리즈의 정체성이 불확실해졌다는 비판이 일었던 만큼 차기 제임스 본드는 007 시리즈에서만 접할 수 있는 007 시리즈만의 특징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배우에게 돌아가길 바라는 본드팬들이 많다. 그러나 트래비스 피멜이 제임스 본드가 되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와 별 차이가 나지 않을 듯 하다. 트래비스 피멜 버전 제임스 본드는 '다니엘 크레이그 2.0'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하자면, 트래비스 피멜이 제임스 본드가 되면 그럭저럭 즐길 만한 낯익은 헐리우드 액션 스릴러 시리즈 정도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007 시리즈다운 007 시리즈를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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