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6일 목요일

정치적 계산 하에 테러 문제를 다른 사회 문제로 둔갑시켜선 안 된다

미국에서 또 총기를 사용한 대량 살상 사건이 터졌다. 이번엔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 위치한 게이 나잇클럽, 펄스(Pulse)에 아프간계 미국인 오마 마틴(Omar Mateen)이 난입해 클러버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사건으로 49명이 사망하고 5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범인 오마 마틴은 인질극을 벌이는 도중 911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ISIS를 지지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마틴은 경찰과의 교전 중 사망했다. 이번 사건은 제한된 실내 공간에 밀집한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을 겨냥해 총기를 난사했다는 점에서 지난 해 프랑스에서 ISIS에 의해 자행됐던 콘서트 공연장 테러 사건을 연상케 한다.

범인이 게이 나잇클럽을 타겟으로 삼았다는 점을 봤을 때 극단적인 동성애 혐오에서 빚어진 게 아니냔 추측을 쉽게 해볼 수 있다. 극단적인 호모포빅 조직 중 하나는 ISIS다. ISIS가 동성애자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ISIS가 시리아, 이라크 등지에서 게이들을 공개 처형했다는 보도가 종종 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ISIS 지지 성향의 범인이 게이 나잇클럽을 타겟으로 삼았다는 건 크게 놀라운 얘기가 아니다. 오마 마틴은 몇 해 전 이슬람 극단주의 추종 의혹으로 FBI의 조사를 두 차례 받은 바 있으며, 범인의 아버지, 세디크 마틴(Seddique Mateen)은 탈레반 지지 성향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테러 사건을 다른 사회 문제로 둔갑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테러 사건을 터러 사건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총기를 사용한 단순 범죄 사건이라고 하거나, 범인이 ISIS 지지 성향이었다는 의혹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동성애자에 반대하는 극단적인 호모포빅이 벌인 단순 증오범죄 쪽으로 몰아가려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테러"를 뒤로 밀어내고 "총기"와 "게이"를 맨 앞에 놓으려 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좌파-리버럴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이들이 자꾸 테러 문제를 다른 사회 문제로 바꾸려는 이유는 민주당과 좌파-리버럴 진영이 "총기 규제"와 "동성애 이슈"를 간판으로 내걸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좌파-리버럴 진영은 이런 사건이 터지면 테러와 안보 이슈에 집중하기 보다 총기, 동성애 등 미국내 사회 이슈를 갖다 붙이는 걸 더 좋아한다. 이렇다 보니 리버럴 진영은 테러리스트가 총기 난사 사건을 저지르면 "테러 사건"보다 "총기 규제" 압박용 등 미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는 데 더 관심이 많은 게 아니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서 총기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만큼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총기 규제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가장 쉽게 공격할 수 있는 타겟이 미국의 총기 문화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총기 사건이 발생하면 정치권에선 해결책을 열심히 찾는 생색을 내기 위한 방법으로 총기 규제 이슈를 항상 이용하며 법석을 떤다. 이런 걸로 한 번 주목받아보려는 한심한 정치인들도 미국에 수두룩하다. 하지만 미국의 총기 문제는 금지나 규제로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총기 판매와 구입에 이미 익숙해진 미국인들은 합법적인 총기 구입이 불편해지면 불법 경로를 통해 구입하는 차선책을 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총기 규제는 합법적인 경로의 매매에만 적용되므로 새로 추가된 까다롭고 성가신 총기 구입 절차가 귀찮으면 그냥 불법 총기를 구입하는 쪽을 택하겠다고 말하는 미국인들을 흔히 만나볼 수 있다. 주마다 총기 관련법이 각각 다르지만, 총기를 구입하기 전에 먼저 지문을 찍으러 갔다와야 하고 총기 사용 기초교육까지 받아야 하는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할 뿐 아니라 추가 비용까지 드는 경우도 있다. 이런 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총 한자루 사려고 그짓까지 해야 하냐"고 불만스러워 한다. 백그라운드 체크도 중요하고 총기 안전 사용법도 중요하다지만 지문과 교육을 위해 돈과 시간을 써가며 오락가락해야 한다는 걸 귀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올랜도 테러 사건 범인이 테러리스트 연루 의혹으로 FBI 인터뷰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백그라운드 체크까지 통과하고 합법적으로 총기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나자 여러 새로운 절차가 성가시기만 할 뿐 실효성이 있는가에 의문을 보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총기 관련 문제는 미국내에서 발생한 총기관련 범죄사건에만 해당된다. 테러리스트가 미국에서 합법적인 경로로 총기 구입을 못한다고 해서 테러 계획을 접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내에서 자생한 아마츄어 테러리스트라면 합법적인 총기 구입이 어려워지면 테러 계획을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를 제외하곤 미국서 총기를 구하지 못해서 테러 계획을 접는 테러리스트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합법적으로 구입하지 못하면 불법으로 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국에선 불법 총기 구입이 어렵지 않다. 일각에선 범죄자들이나 불법 총기 구입 경로를 알고 있지 일반인들은 모른다고 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불법 총기다. 따라서 테러 사건을 총기 규제 이슈와 결부시켜봤자 똑같은 논쟁만 반복될 뿐 별다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테러 워치리스트에 포함된 인물의 총기 구입을 불허한다는 정도는 도움이 될 듯 하지만 그 이외로는 테러리스트 앞에선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반자동 라이플 AR-15의 민간 판매를 불허하자는 주장을 또 펴고 있으나, 그래봤자 구할 놈은 다 구한다. 미국서 반자동 라이플이 합법적으로 판매된지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이제 와서 금지시켜봤자 불법 거래만 부추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총기 사건이 터지고 총기 규제 논쟁이 뜨거워지면 가장 기뻐하는 게 총포점이다. 총기 사건 여파로 총기 규제가 강화될 것을 우려한 소비자들이 너도나도 총기를 구입하는 바람에  총기 사건 직후 총기 판매량이 급격히 치솟곤 하기 때문이다. 총기 규제를 우려한 소비자들이 사재기(?)를 한 바람에 총이 없어서 못 판다는 총포점들이 미국 뉴스에 소개된 적도 있다. 따라서 만약 AR-15 판매 금지 논쟁이 뜨거워진다면 동네 총포점에서 AR-15을 구경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도 총기 문제 제기까지는 싫든 좋든 이해하고 넘어간다고 치자. 그러나 낙태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여성 건강 기구, 미국 가족 계획 연맹(Planned Parenthood)의 흑인 커뮤니티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미국 가족 계획 연맹 흑인 커뮤니티는 그들의 트위터에 "#Islam doesn’t foment the violence alleged gunman Omar Mateen enacted, toxic masculinity & a global culture of imperialist homophobia does"라는 황당한 글을 남겼다.

폭력을 조장한 게 이슬람이 아니라 유독성의 남성성과 호모포비아 제국주의자의 글로벌 컬쳐? ISIS 추종자로 보이는 범인이 저지른 테러 사건에서 "Masculinity"가 왜 비판의 대상이 됐을까? "Imperialist Homophobia"라는 표현도 참 인상적(?)이다. ISIS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게이를 공개 처형하면서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를 숨기지 않았는데, 이게 전부 "Toxic Masculinity"와 "Imperialist Homophobia" 때문이란 말인가? 아마도 이들은 2014년 브루나이 국왕이 소유한 베벌리 힐즈 호텔 해프닝도 잊은 모양이다. 이슬람 국가인 브루나이가 안티-게이 이슬람 형법(샤리아)을 시행한다고 하자 베벌리 힐즈 호텔을 애용하던 헐리우드 스타들이 보이콧 운동을 벌인 바 있다. 이런 판에 무슬림이 게이 클럽에서 총기난사 사건을 벌였다면 동성애 이슈에 완고한 무슬림에게도 부분적이나마 책임을 묻는 게 정상이 아닌가? 그러나 이번 올랜도 테러 사건 이후 동성애에 비판적인 미국내 크리스챤들에 대한 비판은 나왔어도 동성애에 비판적인 미국내 무슬림들에 대한 비판은 잘 들리지 않는다. 무슬림이 테러를 저질렀으나 욕은 미국 크리스챤들이 먹은 셈이 됐다.


리버럴과 민주당이 테러 사건을 자꾸 다른 사회 문제와 얽으려는 또다른 이유는 오바마와 민주당이 이슬람 테러 문제를 과소평가하거나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기 때문이다. 무슬림에 대한 혐오를 우려한 오바마와 민주당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벌인 테러 사건에서도 "이슬람", "무슬림"을 직접 거론하지 않아온 게 화근이다. 2009년 텍사스 육군 부대 포트 후드(Fort Hood) 테러 사건이 좋은 예 중 하나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니달 하산(Nidal Hasan)이 부대 내에서 "Alahu Akbar!"를 외치며 미군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미국 정부는 이를 테러 공격이 아닌 "직장에서 발생한 폭력(Workplace Violence)"라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극단적 이슬람주의에 물든 니달 하산이 미군을 공격한 사건이 터졌는데 이게 테러 사건이 아니면 무엇이냐는 비판이 일었다. 당시 현장에서 부상당한 미군들도 "직장 폭력"이라는 표현에 강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 때부터 이슬람 테러리스트가 벌인 테러 사건이 터지면 미국 정부가 "테러"라고 발표하는가, "Radical Islamist"라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등에 주목하게 됐다.

2015년 테네시 주에서 발생한 미군 시설 총격 테러 사건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테네시 주 채타누가 총격사건은 쿠웨이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무슬림 아메리칸, 무하마드 요세프 압둘라지스(Muhammad Youssef Abdulazeez)가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들면서 테네시 주 미군 시설에 총격 테러를 저지른 사건이다. 이 테러 공격으로 미군 5명이 사망했고 범인도 사살됐다. 보도에 따르면, 범인의 아버지도 테러 조직 연루 의혹으로 조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고 했다. 사건 수사를 맡은 FBI도 테러 공격으로 판단하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바마는 이 때에도 "테러"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리버럴 성향인 워싱턴 포스트도 "Obama's Disturbing Pattern of Playing Down Islamic Terror"라는 제목의 2015년 사설에서 오바마가 테러 사건을 테러 사건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ISIS를 2군 팀(JV: Junior Varsity)이라고 과소평가한 점 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러나 지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권에선 올란도 테러사건이 터진 직후 "Radical Islamist"라는 표현 사용을 놓고 또 공방이 벌어졌다.

ISIS 지지를 밝힌 오마 마틴이 100여명의 사상자를 낸 테러 사건을 일으키자 미국 언론은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의 입에 주목했다. 과연 이번엔 "테러공격", "Radical Islamist"라는 표현을 시원스럽게 하는가 지켜본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민주당 쪽에선 "Radical Islamist"라는 표현이 시원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진 이후에야 힐러리 클린턴은 마지 못해서 "Radical Islamism"이라는 표현을 썼다. 오바마가 맹공에 나선 트럼프를 반격했으나 이번 대결은 트럼프의 승리였다. 테러공격을 테러공격이라고 하지 않고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이슬람 테러리스트라고 하지 않아온 오바마와 민주당에 1차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테러를 테러라고 하고 이슬람 극단주의도 있는 그대로 이슬람 극단주의라고 하면 될 것을 이리 저리 돌리기만 하다가 쓸데 없이 중동 테러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인상만 심어놓은 꼴이 됐다.


물론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때문에 무슬림 전체가 혐오 대상이 되는 건 올바르지 않다. 테러리스트를 선량한 무슬림들과 분리시키고자 하는 것까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에 의한 테러 공격이 계속 발생하는 게 분명한 사실인데도 "Radical Islamist"라는 표현 사용을 주저하는 것을 어디까지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역시도 생각해봐야 한다.

일각에선 테러리스트들이 이슬람을 잘못 믿고 있으므로 그들은 무슬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무슨 뜻인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테러리스트 본인들이 자신을 무슬림이라고 칭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이슬람 극단주의가 미국과 유럽의 무슬림 커뮤니티에 침투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슬람을 잘못 믿든 똑바로 믿든 간에 무슬림의 문제라는 점을 무조건 비켜갈 수는 없다. 짚고 넘어갈 때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지 지나친 'Political Correctness'에 휘둘려 당연한 말도 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Radical Islamist"라는 표현이 이슬람 혐오와 무슬림 차별을 부추긴다는 주장은 너무 오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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