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4일 목요일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로 누가 있을까? - 루퍼트 프렌드

본드팬들의 공통된 습관 중 하나는 틈이 나는 대로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감을 찾는 일이다. 때가 되면 새로운 영화배우로 제임스 본드가 교체되기 때문에 다음 번 제임스 본드 후보로 어떤 배우들이 있는지 미리 미리 점검해보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Sean Connery)부터 지금의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에 이르기까지 제임스 본드 역은 스코틀랜드, 호주, 잉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잉글랜드 출신의 배우들이 맡았다. 따라서 브리튼 제도(British Isles)와 호주 출신 배우들이 새로운 제임스 본드 후보감으로 항상 오르내리곤 한다.

영화배우의 출생지역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는 것은 키, 체격, 머리색 등이다. 제임스 본드를 창조한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제임스 본드의 키, 체격, 머리색, 눈동자색 등을 소설에서 자세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본드팬들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을 영화배우를 물색할 때 이언 플레밍이 소설에서 묘사한 제임스 본드 캐릭터와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언 플레밍이 1957년 출간된 제임스 본드 소설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에서 밝힌 제임스 본드 관련 주요 사항은 다음과 같다:

Height: 183 cm
Weight: 76 kg; Slim build
Eyes: Blue
Hair: Black
Scar down right cheek & on left shoulder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가 미국 뮤지션 호기 카마이클(Hoagy Carmichael)을 연상케 하는 미남이라고 소개했다.

◀호기 카마이클

따라서 제임스 본드는 키 183 cm에 몸무게 76 kg의 마른 체형이며, 눈은 파란색이고 머리는 검정색인 깔끔한 미남형 사나이다. 오른쪽 뺨에 흉터가 있는 것으로 돼있지만 이건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원작소설에서 제임스 본드가 저렇게 묘사되었기 때문에 갈색이나 검정색 머리에 키가 6피트 이상인 마른 체형의 깔끔한 미남형 얼굴의 영화배우들이 007 영화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아왔다. 숀 코네리부터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2000년대 중반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를 제 6대 제임스 본드로 발표하자 일부 본드팬들이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언론과 인터넷 등지에서 소동이 벌어졌었는데, 그 이유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머리색이 갈색이나 검정색이 아닌 금발/블론드였으며 키도 6피트가 채 되지 않는 5피트 10인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블론드 머리에 키가 6피트가 채 되지 않는 영화배우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건 다니엘 크레이그가 처음이었다.


외모 조건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는 건 나이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을 참고하면, 제임스 본드의 나이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정도가 알맞다.

문제는 007 시리즈가 매년마다 새로운 영화가 나오는 시리즈가 아니라는 데 있다. 60년대 초창기엔 매년마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개봉했지만 그 이후부터 2년마다로 바뀌었으며, 요새는 3년 간격도 흔해졌다. 특히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공개되는 주기가 더욱 불규칙해졌다. 007 시리즈 23탄 '스카이폴(Skyfall)'은 007 시리즈 22탄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가 개봉한지 4년 뒤에 개봉했으며, 007 시리즈 24탄 '스펙터(SPECTRE)'는 '스카이폴'이 개봉한지 3년이 지난 2015년 11월 개봉했다. 2006년 제임스 본드가 된 다니엘 크레이그가 2015년 현재 4개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출연하는 데 그친 이유는 새로운 영화가 공개되는 주기가 길어지고 불규칙해졌기 때문이다. 만약 새로운 007 시리즈가 2년마다 꼬박꼬박 공개되었다면 다니엘 크레이그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출연한 제임스 본드 영화 수는 모두 5개가 됐을 것이다.

일부 본드팬들은 "양보다 질"을 강조한다. 일리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새로운 영화가 공개되는 주기가 길어지거나 불규칙해지면 제임스 본드 역을 맡게 될 영화배우의 나이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칫하면 50대를 쑥 넘긴 제임스 본드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본드팬들은 '50대 제임스 본드'의 탄생을 반기지 않는다. 50대 후반까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로저 무어(Roger Moore) 시대의 학습효과 덕분이다. 50대를 넘긴 영화배우는 제임스 본드를 맡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게 중론이다. 50대 초까지는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로저 무어의 8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를 기억하는 본드팬들 중엔 '50'이라는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본드팬들도 많다.

현재는 50대를 넘겨서까지 제임스 본드로 출연한 배우는 로저 무어 하나가 유일하다. 피어스 브로스난은 40대 후반에 007 시리즈를 떠났고, 다니엘 크레이그는 현재 47세이다.

(참고: 숀 코네리가 출연한 1983년 제임스 본드 영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Never Say Never Again)'은 EON 프로덕션이 제작하는 '오피셜' 007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는 영화이므로 50대 제임스 본드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본드25'까지 계약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007 시리즈 프로듀서는 2015년 초 가진 인터뷰에서 'OPEN-ENDED CONTRACT'라고 밝혔다.

만약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오고 '본드25'가 앞으로 3년 뒤인 2018년 개봉한다고 가정하면, 크레이그가 만으로 50세가 되는 해에 '본드25'가 개봉하는 게 된다. 이렇게 되면 로저 무어에 이어 두 번째로 50대 제임스 본드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2018년 개봉 예정(추정)인 '본드25'에 출연하기 적당한 나이의 새로운 영화배우를 찾아나서야 한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3년마다 개봉한다는 점까지 계산해서 50대를 쑥 넘기기 전에 최소한 3~4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나이의 배우를 골라야 한다. '본드28'이 개봉할 2027년에 나이가 50대를 넘기지 않을 배우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할 필요는 물론 없다. 또한, '본드25'가 2018년이 아닌 2017년에 개봉하고 그 이후부터는 2년마다 꼬박꼬박 새로운 영화를 공개하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등 여러 가지 변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따져봐야 가장 이상적인 후보를 고를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의 조건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대충 마무리 짓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다니엘 크레이그의 뒤를 이를 제임스 본드 후보로 누가 있을까?

영국 배우 루퍼트 프렌드(Rupert Friend)가 있다.





루퍼트 프렌드는 '오만과 편견(Pride & Prejudice)',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The Boy in Stripped Pyjamas)', '힛맨: 에이전트 47(Hitman: Agent 47)' 등의 영화 미국 프리미엄 채널 쇼타임의 인기 스파이 스릴러 TV  시리즈 '홈랜드(Homeland)' 등에 출연한 영국 배우다.

  • 출생지: 영국
  • 생년월일: 1981년 10월1일
  • 키: 6피트 1인치
  • 머리: 옅은 갈색
  • 눈동자: 파랑

1981년생, 키 6피트 1인치, 갈색 머리에 파란 눈 등이라면 일단 기본적인 조건엔 충족된다.

루퍼트 프렌드는 진지하고 사실적인 제임스 본드에 잘 어울려 보인다. 마티니를 마시며 본드걸들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타잎과는 거리가 있는 보다 리얼한 필드형 제임스 본드를 기대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가 스타트는 좋았으나 갈수록 코믹북 수퍼히어로 캐릭터가 되어갔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만약 루퍼트 프렌드가 제임스 본드가 된다면 실제 MI6 오피서를 떠올리게 하는 리얼한 제임스 본드를 보여줄 수 있을 듯 하다. 지금까지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배우 중 실제 MI6 오피서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사실적인 스파이의 모습을 보여준 배우가 없었다. 제임스 본드가 실제 MI6 오피서를 연상케 하는 리얼한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007 제작진은 리얼한 스파이 캐릭터를 진지하게 시도해본 적이 없다. 만약 프렌드가 제임스 본드가 되면 리얼해 보이는 MI6 필드 오피서로 제대로 변신한 제임스 본드를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홈랜드'에서 프렌드가 연기한 CIA 캐릭터, 피터 퀸처럼 제임스 본드를 실제로 MI6에서 근무하는 리얼한 인텔리전스 오피서처럼 변신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를 리얼한 MI6 오피서로 묘사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제임스 본드는 쿨한 수퍼스파이 캐릭터일 뿐 사실적인 인텔리전스 오피서 캐릭터가 아니라서 진지하고 사실적인 스파이로의 변신이 말처럼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듯한 스토리가 받쳐준다면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겉으로만 진지하고 리얼해 보일 뿐인 '수박 겉핥기 캐릭터'에 그칠 공산이 크다. 다니엘 크레이그도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진지하고 사실적인 톤으로 분위기를 바꾸려면 거기에 어울리는 스토리를 준비해야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만,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엔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따라서 만약 루퍼트 프렌드가 제임스 본드가 되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했던 실수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

만약 루퍼트  프렌드가 제임스 본드가 되면 유머 부재 문제도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유머가 너무 매말랐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는데, 루퍼트 프렌드가 크레이그 뒤를 이어 제임스 본드가 되면 별다른 변화가 생기지 않을 듯 하다. 만약 루퍼트 프렌드가 제임스 본드가 된다면 다니엘 크레이그 못지 않게 유머에 인색한 무뚜뚝한 제임스 본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차기 제임스 본드가 어느 정도 유머가 있는 캐릭터가 되기를 희망하는 본드팬들에겐 루퍼트 프렌드는 약간 의심스러운 초이스일 듯 하다.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와의 차별성도 크지 않을 것 같다. 루퍼트 프렌드 버전 제임스 본드도 젊고 어둡고 진지한 타잎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이미 보여준 캐릭터라서 얼굴만 바뀐 게 전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제이슨 본(Jason Bourne),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트릴로지 등 어두운 톤의 액션 영화가 유행인 요즘엔 루퍼트 프렌드가 차기 제임스 본드로 나쁘지 않은 초이스다. '힛맨', '홈랜드' 등에 출연했으므로 액션물에 낯선 배우가 아니며, 신체 조건이 제임스 본드에 알맞은 데다 개성도 있는 배우이므로 잘만 한다면 아주 괜찮은 제임스 본드가 탄생할 수도 있다. 여러모로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로 무난한 후보 중 하나다.

그러나 루퍼트 프렌드와 함께 진지하고 사실적인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도전할 것이라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온다. 앞서 말했듯, 그럴 듯해 보이는 배우만 데려와 놓고 나머지에서 죽을 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진지하고 사실적인 스파이 스릴러 영화를 제대로 만든다면 루퍼트 프렌드의 제임스 본드도 성공할 수 있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분위기만 삭막한 게 전부인 액션 영화에 그칠 수 있다. 

댓글 2개 :

  1. 오공님이 포스팅하신 본드 후보들 중에서 가장 밀어주고 싶어요! 루퍼트 다음의 2순위로 에이던 터너를 고려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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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퍼트 프렌드가 제임스 본드로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다만 너무 진지한 이미지가 강해서 유머가 또 파묻힐 가능성이 크다는 게 걸립니다.
      반면, 에이든 터너는 보다 전형적인 본드 캐릭터에 잘 어울릴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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