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30일 토요일

'제이슨 본', 볼 만한 영화를 미친 듯 몸부림치는 카메라가 망쳤다

제이슨 본(Jason Bourne)이 돌아왔다. 2007년 공개된 '본 얼티메이텀(The Bourne Ultimatum)'을 끝으로 영화 시리즈를 떠났던 제이슨 본이 주연 배우 맷 데이먼(Matt Damon), 영화감독 폴 그린그래스(Paul Greengrass)와 함께 새로운 제이슨 본 영화로 돌아왔다.

다섯 번째 제이슨 본 영화가 나오기까지 제작진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가 제이슨 본 시리즈를 떠나자 제작진은 제레미 레너(Jeremy Renner)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영화 '본 레거시(The Bourne Legacy)'를 2012년 선보였으나 반응이 좋지 않았다.

제이슨 본 시리즈 네 번째 영화였던 '본 레거시'가 실망스러운 반응을 얻는 데 그치자 제작진은 제레미 레너 주연의 스핀오프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맷 데이먼의 제이슨 본 캐릭터를 다시 불러와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맷 데이먼은 폴 그린그래스가 연출을 맡는다는 전제 조건 하에 본 시리즈로 복귀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으므로, 데이먼을 다시 불러들이려면 그린그래스도 함께 데려와야만 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맷 데이먼/폴 그린그래스의 리턴 가능성에 대해선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으면서 제레미 레너 주연의 스핀오프 시리즈 속편이 제작될 것이란 이야기만 흘렸다.

2014년 6월, 프로듀셔 프랭크 마샬(Frank Marshall)은 제이슨 본 시리즈 5탄이 제레미 레너 주연의 애런 크로스 시리즈 두 번째 영화라고 밝혔으며, 개봉 스케쥴이 2015년에서 2016년으로 지연된 것도 맷 데이먼과 전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제이슨 본 시리즈 5탄에 맷 데이먼이 출연하지 않으며, 데이먼 때문에 개봉 스케쥴이 늦춰진 것도 아니라고 해명한 것이다. 프랭크 마샬은 2014년 6월 당시 알려졌던 대로 제레미 레너가 애런 크로스 역으로 돌아오고 연출은 저스틴 린(Justin Lin), 스크린플레이는 앤드류 발드윈(Andrew Baldwin)이 맡는다고 재확인했다. 모든 제이슨 본 시리즈 제작에 참여했던 토니 길로이(Tony Gilroy)의 이름이 제이슨 본 시리즈 5탄 프로젝트에서 사라진 것이 눈에 띄었지만, 어찌됐든 다섯 번째 제이슨 본 영화는 제레미 레너의 영화가 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 2014년 9월이 되자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가 제이슨 본 시리즈로 돌아온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유니버설의 공식발표로 이어지면서 제이슨 본 시리즈 5탄은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다시 뭉친 영화로 굳어졌다.

제이슨 본 시리즈 5탄의 공식 제목은 '제이슨 본(Jason Bourne)', 앞서 공개된 네 편의 제이슨 본 시리즈는 제목이 모두 'The Bourne'으로 시작했으나, 이번 5탄에선 전통을 깨고 '제이슨 본'으로 제목을 바꿨다.

'제이슨 본'엔 맷 데이먼과 함께 줄리아 스타일스(Julia Stiles), 토미 리 존스(Tommy Lee Jones), 앨리씨아 비캔더(Alicia Vikander), 빈센트 카셀(Vincent Cassel) 등이 출연했다. 제이슨 본 트릴로지에 출연했던 줄리아 스타일스는 니키 파슨 역으로 돌아왔으며, 토미 리 존스는 CIA 국장, 앨리씨아 비캔더는 CIA 오피서 헤더 리, 빈센트 카셀은 "애셋"이라 불리는 어쌔신 역으로 각각 출연했다.

영화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제이슨 본'의 연출을 맡았으며, '본 얼티메이텀'으로 아카데미 편집상을 받은 에디터 크리스토퍼 라우스(Christopher Rouse)와 함께 스크린플레이도 맡았다. 제작은 본 시리즈 베테랑 프로듀서 프랭크 마샬, 제프리 위너(Jeffrey Weiner), 폴 그린그래스, 맷 데이먼, 그레그 굿맨(Gregg Goodman), 벤 스미스(Ben Smith)가 맡았다.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가 제이슨 본 시리즈 5탄으로 복귀한 건 빅뉴스였다. 그러나 모두가 이 소식을 반긴 것은 아니다. 일부 팬들은 '본 얼티메이텀'으로 스토리가 완결되었으면 트릴로지로 마무리 짓고 속편을 더이상 만들지 말기를 원했다. 트릴로지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제이슨 본 시리즈가 쓸데 없는 속편들로 얼룩지는 걸 원치 않았던 것이다. 모두가 속편의 유혹을 느꼈지만 속편 욕심을 부리다가 지금까지 쌓아놓은 좋은 이미지까지 다 날리는 게 아니냔 우려도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제이슨 본은 항상 쫓기고 CIA는 항상 제이슨 본을 뒤쫓는 틀에 박힌 제이슨 본 포뮬라로는 계속해서 시리즈를 이어나가는 데 한계가 있어 보였다. 매번 똑같은 패턴을 되풀이할 순 없기 때문이다. 본이 다시 CIA로 복귀한다면 또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본은 항상 '도망자'이고 CIA는 항상 '추격자'인 설정이 계속 반복되면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제이슨 본'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스토리를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본 시리즈 다섯 번째 영화 '제이슨 본'은 니키 파슨(줄리아 스타일스)이 CIA를 해킹해 블랙 오퍼레이션 관련 자료를 훔치고 제이슨 본(맷 데이먼)에게 연락하면서 시작한다. 첩보세계를 떠나있던 본을 찾아온 니키는 CIA 해킹을 통해 제이슨 본/데이빗 웹의 아버지가 본이 속해 있던 CIA 블랙 옵스 프로그램, '트레드스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전한다. 잃어버렸던 기억을 모두 되찾은 본은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에 자원한 이후 벌어진 사건들에 대해선 모두 알고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본이 '트레드스톤'에 자원하는 과정에 얽힌 전혀 모르고 있었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게 된다. 한편, CIA 오피서 헤더 리(앨리씨아 비캔더)는 CIA 해커를 추적해 니키와 본이 해킹 사건과 연루됐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CIA 국장(토미 리 존스)은 해킹으로 CIA가 준비 중인 새로운 블랙 옵스 프로그램까지 유출된 사실을 확인하고  "애셋"이라 불리는 어쌔신(빈센트 카셀)에게 연락해 본의 제거를 명령한다...


그렇다. 스토리는 별 것 없었다.

속편과 리부트의 중간을 택하면서 연결성보다 새로운 시작 쪽에 포커스를 맞춘 건 맘에 들었다. 그러나 제이슨 본 시리즈에서 기대할 수 있는 매우 낯익고 친숙한 플롯의 반복이 전부였다. 제이슨 본은 또다시 '도망자'였고, 또다른 블랙 옵스 프로그램으로 곤경에 처한 CIA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추격자'였다.

또한, 여러 스파이-액션 스릴러물의 영향을 받은 흔적도 눈에 띄었다. 해커로 변신한 니키(줄리아 스타일스)는 FOX의 TV 시리즈 '24: 리브 어나더 데이(Live Another Day)'에서 해커로 변신했던 클로이 오브라이언(매리 린 라이스커브)과 겹쳐졌고, 감시 시스템 관련 파트는 '007 스펙터(SPECTRE)'와 겹쳐졌다. 제목을 '제이슨 본'으로 정한 것도 파라마운트의 '잭 라이언(Jack Ryan)', '잭 리처(Jack Reacher)'를 떠올리게 했다.

한마디로, '제이슨 본'은 낯익은 스타일, 친숙한 포뮬라, 그리고 신선도 낮은 줄거리의 영화였다.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가 오랜만에 본 시리즈로 돌아왔다는 점을 제외하곤 특별히 눈에 띄는 게 없었다. 본 시리즈도 007 시리즈처럼 틀에 박힌 포뮬라에 맞춰 비슷비슷한 줄거리를 반복하는 시리즈 쪽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여기까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본은 항상 도망자이고 CIA는 항상 추격자인 설정까지 매번 반복되는 식으로는 앞으로 시리즈가 오랫동안 계속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이번 영화 하나만 놓고 따지면 과히 나쁘지 않았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시리즈를 이어나갈 생각이라면 제이슨 본의 '도망자' 신분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할 듯 하다. 그렇다고 본이 다시 CIA로 돌아와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도망자' 신분이 계속 반복되면 "제이슨 본은 또 도망다니고 CIA는 또 쫓아다니는 뻔한 영화"로 받아들여지면서 흥미가 떨어지게 만들 수 있다. 본을 다시 CIA로 복귀시키는 게 여러모로 곤란하다면 '잭 리처'나 '이퀄라이저(The Equalizer)'처럼 홀로 사건을 해결하는 캐릭터 쪽으로 방향을 트는 등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도망자' 태그를 떼어내야 시리즈의 미래가 보다 밝아질 것이다.

한편, 오랜만에 본 시리즈로 돌아온 맷 데이먼은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프레피(Preppy) 액션 스타', 맷 데이먼에 대한 어색함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도서관 책벌레도 흥분하면 무서워질 수 있다"는 걸 열심히 보여줬다. 맷 데이먼과 제이슨 본은 이젠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오랜만에 제이슨 본으로 돌아온 맷 데이먼이 친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거구의 사나이를 한방에 쓰러뜨리는 "원펀치맨"은 약간 심한 게 아닌가 싶었다. 맷 데이먼이 이런 류의 액션 영화보다 '마션(The Martian)'과 같은 영화에 보다 잘 어울린다는 생각엔 여전히 변화가 없다. 스파이 영화를 하려면 존 르 카레(John Le Carre) 스타일의 영화에 보다 잘 어울리지 제이슨 "원펀치맨" 본은 글쎄 좀 약간 별로...

'제이슨 본' 출연진 중에서 의외로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앨리씨아 비캔더였다. 그녀의 캐릭터는 TV 시리즈 '24'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고, 본드걸을 '제이슨 본' 영화에 끼워넣은 것 같았다. 제법 비중이 큰 캐릭터였으나 어딘가 어색했고 영화와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비캔더가 요즘 뜨는 여배우라는 점은 잘 알고있으나 제이슨 본 시리즈의 CIA 애널리스트 역으론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007 시리즈에 본드걸이 빠지지 않고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시리즈에도 여성 캐릭터가 꼭 나오는 만큼 '제이슨 본'에도 비중 있는 젊은 여자 캐릭터를 넣으며 구색을 갖추려 한 것 같았다. 아이디어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영화와 배역에 잘 어울리는 여배우를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다 괜찮았다. 영화 '제이슨 본'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렇다. '제이슨 본'을 보면서 가장 짜증났던 건 바로 그 빌어먹을 '카메라 떨기'다.

흔들리고 회전하고 포커스가 맞지 않는 등 정신없는 씬들을 빠르게 편집해놓으니 도저히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본 시리즈가 원래 빠른 편집과 흔들리는 카메라로 유명하다는 건 알고있지만, "지난 영화들도 이 정도였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엔 유난스러워 보였다. 지난 영화들도 전반적인 스타일은 비슷했지만 이번 영화처럼 크게 신경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영화 '제이슨 본'에선 영화 내내 카메라가 잠시도 쉬지 않고 미친 듯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영화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만약 액션 씬에서만 그랬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라스베가스에서 펼쳐지는 카 체이스 씬은 볼 만했다. 그러나 '제이슨 본'은 액션 씬, 대화 씬 가리지 않고 끊임 없이 카메라가 흔들리고 회전하고 난리가 났다.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카메라가 흔들리고 좌우로 회전하고 포커스가 맞지 않는 씬들이 빠른 편집으로 팝-팝-팝-팝 전환되는 게 끊이지 않았다. 캐릭터들이 얌전히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씬에서도 카메라는 미친듯이 몸부림쳤으며, 스마트폰의 문자 메시지를 읽는 씬에서도 카메라가 쓸데없이 흔들리는 바람에 문자 메시지 내용을 읽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건 "STYLISH"가 아니라 "ABSOLUTE MADNESS"였다. 본 시리즈의 빠른 편집과 흔들리는 카메라가 "쿨하다", "박진감 있다"는 좋은 평을 받자 이번 영화에선 제작진이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이전 본 시리즈도 흔들리는 카메라 때문에 액션 씬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제이슨 본'은 액션 씬 뿐 아니라 영화 전체가 술에 취한 것 같았다.

아무리 스타일리쉬한 기법이라도 정도껏 해야 멋이 나지만, '제이슨 본'에선 영화를 보는 도중에 짜증이 날 정도로 '스타일'이 너무 지나쳤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정신없이 촐랑거리는 강아지와 씨름하는 기분이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스크린을 향해 "얌전하게 가만히 좀 있어라"라고 고함치고픈 충동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 카메라 회전, 흔들림 등이 불필요한 씬에서도 카메라를 미친듯이 흔들어댄 건 제작진의 실수였다고 본다. 스타일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보는 데 방해가 될 정도로 스타일에만 올인하는 건 문제가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정도껏 적당히 해야지, 뭐든지 지나치면 탈이 나게 돼있다.

사실 '제이슨 본'은 제법 볼 만한 영화였다. 비슷비슷한 얘기를 반복하는 신선도 낮은 줄거리의 영화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럭저럭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그러나 미친 듯 몸부림치는 카메라가 영화를 망쳤다. '제이슨 본' 제작진의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으나 골치가 아플 정도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카메라를 흔들고 돌리며 제정신이 아닌 듯 난리를 칠 줄은 몰랐다. 촬영, 편집 기법이 멋져 보인 게 아니라 "저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 사납고 엉뚱해 보였다.

제작진이 이렇게 오버만 하지 않았더라도 '제이슨 본'을 보다 재밌게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엔 미친 듯 날뛰는 카메라에 지쳐서 스크린이 아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됐다.

본 시리즈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는 현재로썬 예측하기 어렵다. 이번 영화 '제이슨 본'이 리부트 성격도 띤 영화였던 만큼 줄거리가 연결되는 속편이 제작될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 번 제이슨 본 영화가 어느 쪽으로 가든 간에 끊임없이 카메라를 흔들어대는 버릇 만큼은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이다. 카메라 흔들림이 제이슨 본 시리즈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영화 내내 미친 듯이 카메라를 떨어야만 긴장감 가득한 제대로 된 제이슨 본 영화가 나오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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