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10일 토요일

'스피드 레이서' - 옛생각이 나다가 마네

클래식 일본 애니메이션 '스피드 레이서(Speed Racer)'가 첫 방송을 탄 게 언제였더라?

한가지 분명한 건 꽤 오래 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스피드 레이서' 애니메이션을 오래 전에 봤다는 것까지가 전부일 뿐 기억이 아주 듬성듬성이다.

사촌형들과 함께 '번개호' 어쩌구 하는 주제가를 목청 터지게 불렀던 기억이 나긴 하는데 거기까지가 전부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자동차를 좋아해서 '스피드 레이서' 애니메이션을 무지 좋아했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는데 어찌된 게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하나도 없고 몇몇 장면들만 슬라이드쇼처럼 어렴풋이 지나가는 정도다.

그런데도 극장에서 주제곡이 울려퍼지니까 찌릿찌릿하더라.



하지만, 반가움은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옮긴 건지 아니면 비디오게임을 옮긴 건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아리송한 영화가 돼 갔기 때문이다. 테마파크의 롤러코스터 레일을 연상시키는 판타지 레이싱 트랙을 달리면서 서로 치고 박고 싸우며 레이스를 펼치는 게 마치 닌텐도의 레이싱 게임 '마리오 카트(Mario Kart)'를 곧바로 영화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였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마리오 카트'일 뿐이지 이런 스타일의 레이싱 게임은 사실 쌔고 쌨다. 스퀘어의 '쵸코보 레이싱(Chocobo Racing)', 소니CEA의 '크래쉬 팀 레이싱(Crash Team Racing)', 루카스아츠의 '스타워즈: 수퍼 봄바드 레이싱(Star Wars: Super Bombad Racing)'처럼 아동틱한 캐릭터들이 나오는 판타지 레이싱 게임 뿐만 아니라 아케이드 레이서 쪽에도 수두룩하다. EA Sports BIG의 스노우보드 게임 'SSX' 시리즈, 스노우모빌 레이싱 게임 'Sled Storm' 등도 비슷한 계열의 아케이드 레이서다. 지금은 사라진 미국 게임회사 Acclaim의 'Extreme G Racing'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쵸코보 레이싱(PS1)


▲스타워즈: 수퍼 봄바드 레이싱(PS2)

오래된 애니메이션을 기초로 한 영화에서 '그랜 터리스모(Gran Turismo)', '수도고 배틀(首都高バトル)' 스타일을 기대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비디오게임과 애니메이션까진 오케이지만 영화로 튀어나오면 'Fast and the Furious'와 같은 웃기지도 않는 흉칙한 틴에이져 영화가 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일단 '스피드 레이서'를 억지로 PG-13 틴에이져 영화로 만들지 않은 것엔 '땡큐'다. 하지만, '스피드 레이서'는 비디오게임을 연상시키는 정신없는 레이스씬을 제외하면 볼 게 없는 영화였다. 아이들용 영화인 데다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옮겼다 보니 비주얼에 많은 신경을 쓴 것 같지만 그다지 새로울 게 없었다. '퀄리티' 수준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20여년동안 비디오게임에서 보아 온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래도 아이들용 SF 판타지 영화인데 그려려니 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냐고?

아이들용 영화?

'아담스 패밀리(The Adams Family)'의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생긴 것(?) 때문일까? 주인공, 스피드역의 에밀 허시(Emile Hirsch)는 잘 모르겠어도 여주인공, 트릭시로 나온 크리스티나 리치(Christina Ricci)는 이런 영화에 잘 어울려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건 레이서 X로 나온 매튜 폭스(Matthew Fox)다.

그렇다. ABC의 인기 TV 시리즈 '로스트(Lost)'에서 잭 섀퍼드로 출연중인 바로 그 배우다.

최근들어 빅스크린에서 자주 눈에 띈다 싶었는데 마스크를 쓴 '수퍼히어로 워너비'처럼 보이는 캐릭터까지 맡을 줄이야!

매튜 폭스 때문일까? 아니면 '로스트'의 인기가 높기 때문일까? 토고칸(비)과 레이서 X(매튜 폭스)의 대화씬에서 토고칸이 "Don't tell me what I can't do."라고 하는 데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왜 웃겼냐고?

"Don't tell me what I can't do."는 '로스트' 캐릭터 존 로크(테리 오퀸)가 자주 했던 말로 유명하며, 잭 섀퍼드(매튜 폭스)도 적어도 한번은 똑같은 말을 한 적 있다. 그러니, 비가 '로스트'의 주인공인 매튜 폭스 앞에서 "Don't tell me what I can't do."라고 한 게 우연일 리 없다.



영화가 그런대로 재미있었던 모양이라고?

아니다. 아주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 영화가 너무 길다는 것.

90분 정도 지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영화가 끝날 생각을 않는 것이다! 그러더니 2시간을 훌쩍 넘어갔다. 나중에 런타임을 확인해 봤더니 2시간15분이었다.

이런 영화로 2시간을 넘길 생각을 했다니!

줄거리래 봤자 있으나 마나 한 내용인데 레이스에 레이스를 반복하며 비슷비슷한 레이스씬만 계속 나오다보니 도중에 지쳐버렸다.

레이스씬이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박진감 넘쳤더라면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맨 마지막 레이스를 빼버리고 바로 이전 이벤트에서 마무리 지었다면 적어도 '지루했다', '질질 끌렸다'는 소리까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스피드 레이서'는 볼거리도 별로 많지 않은데 별 흥미가 끌리지 않는 뻔한 내용의 줄거리를 꾸역꾸역 진행시키기만 했다.

그 결과?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확인하자마자 마하5 스피드로 극장을 빠져나갔다.



난 '매트릭스' 시리즈를 포함해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양반들 손을 거친 만큼 그런대로 볼만한 어린이용 영화가 나올 줄 알았다. '매트릭스' 트릴로지의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 영화라니까 거창하게 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오리지날 애니메이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보기엔 너무 아동틱하고, 볼거리도 많지 않은 데다, 쓸데 없이 길기만 한 별 볼일 없는 밋밋한 어린이용 영화가 전부였다. 역시 '추억' 하나만으로는 재미있게 보기 힘든 영화였다.

비록 이번엔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지 않고 튀어나갔지만 무슨 노래가 나왔는지는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그 노래나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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