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31일 토요일

'썬 오브 램보우' -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파!

1980년대 영국.

윌은 Plymouth Brethren이라는 매우 엄격한 교회에 다니는 크리스챤 가정에서 태어난 순진한 꼬마다. 윌은 '종교' 때문에 영화나 TV를 보지 못하며, 학교에서 다큐멘타리 비디오를 틀면 그동안 교실 밖에 나가있어야 하는 신세다.

반면, 또다른 꼬마 리 카터는 극장안에서 담배를 피워가며 영화를 캠코터로 열심히 촬영하는 녀석이다. 윌과는 달리 불량끼가 농후한 녀석이다.

리 카터는 거의 아는 체 하지도 않는 형과 함께 살면서 말썽만 부리고 다닌다.

학교에서도 트러블 메이커인 건 마찬가지. 윌은 '종교' 때문에 다큐멘타리 시청시간에 복도에 나와있는 반면 리 카터는 말썽을 피워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신세다.

이렇게 해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녀석이 학교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리 카터는 순진한 윌에게 자신이 만드는 영화에 출연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수락한 윌은 리가 시키는 대로 상당히 위험한 스턴트까지 감수해 가며 영화촬영에 재미를 붙인다. 윌의 교회사람들이 이를 눈치채지만 윌은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리 카터와 어울려 다니며 자유를 만끽한다. 윌과 리 카터는 영화제작 파트너(?) 관계를 넘어 베스트 프렌드가 된 것.



그런데 왜 영화제목이 '썬 오브 램보우(Son of Rambow)'냐고?

리 카터가 극장에서 촬영한 캠코더 버전 '람보(First Blood)'를 우연히 본 윌이 자신을 '람보의 아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윌과 리 카터는 '람보의 아들이 납치당한 아버지(람보)를 구출한다'는 줄거리의 액션영화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실베스터 스탤론의 영화는 'RAMBO'가 맞지 않냐고?

스펠링을 따진다면 'RAMBO'가 맞다. 하지만, 이유가 있으니까 'W'를 추가해 'RAMBOW'로 바꾼 게 아니겠수?



처음엔 꼬마녀석들이 영화를 만든다고 법석을 떤다는 내용의 어린이용 영화로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왜?

영화감독 가스 제닝스(Garth Jennings)의 어렸을 적 추억을 기초로 한 영화라서?

왠지 모르게 80년대 세팅이 낯익어서?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80년대 액션영화 주인공 이름을 대며 '나는 아무개다!'를 외치면서 뛰어다녔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다면 문제가 좀 있겠지만...ㅡㅡ;


▲"나는 람보의 아들이다!"

초등학생 또래의 아역배우들이 잔뜩 출연하는 영화인 데도 왜 영화 레이팅이 PG-13일까 궁금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 또래의 아역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치곤 약간 '거칠다' 싶었는데 그 이유도 차차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 '썬 오브 램보우'는 아이들용 영화가 아니다.

주인공이 모두 어린이인 데다 어린이용 코메디 영화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지만 '썬 오브 램보우'는 어렸을 적 추억을 약간 거칠게 그린 성인용 영화에 가깝다. 영화감독과 같은 또래의 성인층을 타겟으로 만든 영화인 것.

그래서일까?

아역배우들을 볼 때마다 어릴 적 시절이 떠올랐다.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영화를 찍는다고 설친 기억은 없지만 '나도 어렸을 때 저랬다'는 추억에 젖게 되더라.

나도 저 당시에 윌과 리 카터와 비슷한 또래였다는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다만, '람보2'를 본 이후에 '람보1(First Blood)'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액셔어어언~!"

엄격한 크리스챤들의 이야기도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영화에 나온 Plymouth Brethren이라는 크리스챤 단체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TV, 영화, 음악, 비디오게임 등 대중 인터테인멘트 일체를 즐기지 못하게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않고 홈스쿨로 집에서 교육시키는 개신교도들을 직접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척하면 다들 알만큼 평범한 개신교의 한 파( )다. 이들이 다니는 교회에선 대중문화를 멀리 해야만 한다고 대놓고 가르치진 않는다. 하지만, 극도로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일부 크리스챤들이 대중문화를 '사탄'으로 간주하고 멀리하려는 것은 영화에 나온 Plymouth Brethren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경건하고 엄숙한 삶을 살겠다는 데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 지나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크리스챤들이 종종 눈에 띈다. Plymouth Brethren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들을 일반 교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썬 오브 램보우'도 반-기독교적인 영화일 지도...



이런 것을 다 떼어놓고 어린이용 코메디 영화로써만 따지면 아무래도 부족한 데가 더러 눈에 띈다고 해야 옳을 지도 모른다. 볼따구를 꽈악 꼬집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꼬마녀석들이 영화 촬영한다고 호들갑 떠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한 줄 모르지만 결말이 빤히 보이는 스토리의 한계를 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영화를 찾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영화가 없을 것이다.

여지껏 여러 편의 어린이 영화를 봤지만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제대로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나와 별 상관없는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특별한 느낌이 든 어린이용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썬 오브 램보우'는 예외였다. 글장난에 능숙한 사람들만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썬 오브 램보우'를 통해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게 어떤 건지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으니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동심의 세계를 떠나 구역질 나는 성인의 세계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도 영화를 하나 만들어 보고 싶은데...

'썬 오브 뽄드'로 제목까지 정해 놨는데...

이 물귀신 같은 구역질 나는 성인의 세계가 놔주질 않는구만...

그러니 다 집어치우고 엔딩 타이틀로 사용된 영국 그룹 The Cure의 'Close To Me' 뮤직비디오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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