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21일 월요일

'콴텀 오브 솔래스'의 007 장치는 무엇?

지금까지 나온 21편의 007 시리즈 중에서 가장 007영화처럼 보이지 않았던 영화는 어떤 것일까?

아무래도 '라이센스 투 킬'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라이센스 투 킬'의 제임스 본드, 티모시 달튼

티모시 달튼이 '라이센스 투 킬(1989)'에서 보여준 제임스 본드가 이언 플레밍 원작의 제임스 본드에 가장 근접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형적인 007 영화 패턴에서 가장 심하게 이탈한 영화인 것도 사실이다. 제임스 본드가 MI6로부터 받은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M의 복귀명령을 거부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는 설정은 이전의 007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본드팬들이 '라이센스 투 킬'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임스 본드가 그의 '다크 사이드(Dark Side)'를 처음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미녀를 거느리고 비싼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턱시도맨'에서 친구의 복수를 위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드는 '킬러'로 둔갑한 제임스 본드를 보면서 '이것이 진정한 제임스 본드'라고 생각한 것.

하지만, 007 제작팀은 영화의 성격이 달라지긴 했지만 변함없는 007 영화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한 장치도 잊지 않았다 - 바로, Q의 등장이다.


▲'라이센스 투 킬'에서의 데스몬드 류웰린(Q)

'라이센스 투 킬'은 Q의 비중이 가장 컸던 007 영화로 꼽힌다. '라이센스 투 킬'에선 제임스 본드가 '예전의 제임스 본드'가 아닌 만큼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못지않게 유명한 캐릭터인 Q를 이용해 '예전의 007 영화인 것에 변함없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항상 제임스 본드에게 가젯을 제공하던 Q가 '라이센스 투 킬'에선 007 영화라는 것을 잊지않도록 만드는 '장치' 역할까지 한 것.

어떻게 보면 Q의 등장이 영화의 분위기를 깬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매우 진지하고 과격한 영화였는데 느닷없이 Q가 나오면서 영화 분위기와 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마저 없었다면 일반 영화관객들은 '극장에 들어갈 땐 분명히 007 영화였는데 나올 땐 엉뚱한 액션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더욱 심했을 것이다.

거의 20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를 끄집어낸 이유는 2008년 11월 개봉하는 '콴텀 오브 솔래스' 때문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를 정리해 보면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2008)'는 '라이센스 투 킬' 리메이크라 해도 될 정도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 2명의 본드걸, 복수, 본드가 M과 MI6에게 쫓긴다는 점, 라틴 아메리카 로케이션, 터프한 본드와 거친 액션씬 등 찬찬히 비교해 보면 비슷한 부분이 꽤 여러 군데 된다. '콴텀 오브 솔래스'도 본드가 M으로부터 받은 미션을 수행한다는 전형적인 007 시리즈 패턴을 따른 영화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트레일러에 M과 본드가 함께 있는 장면이 더러 나오는 만큼 시작부터 본드가 M의 명령을 거스르는 건 아닌 듯 하지만 결국은 M의 입에서 'Stop Bond!'라는 소리가 나오게 될 만큼 막 나가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콴텀 오브 솔래스'의 한 장면

그렇다면 '콴텀 오브 솔래스'도 '007 장치'가 필요할 정도로 낯설어 보이는 007 영화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만약 그렇다면 '콴텀 오브 솔래스'엔 어떠한 '007 장치'가 있을까?

건배럴씬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겠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해 보인다.

Q, 머니페니와 같은 반가운 캐릭터도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Q와 머니페니가 나온다 해도 데스몬드 류웰린, 로이스 맥스웰과 같은 '반가운 얼굴'이 아니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을지 모른다. 펠릭스 라이터, 빌 태너와 같은 캐릭터들은 나와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투명 자동차가 나오던 판타지 007 시절로 돌아갈 때가 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로저 무어의 흉내를 내야 할 때가 됐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암울한 분위기와 무거운 줄거리, 그리고 불꽃튀는 액션만으로는 007 영화로써 부족한 데가 있어 보인다.

댓글 2개 :

  1. 아시다시피 저는 [살인면허]에서 Q의 배역이 더 줄었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퀀텀 오브 솔러스]에선 007 장치를 위해 삼천포로 빠지는 브로스넌 계열의 007 영화가 되기 보단 007 장치를 배제한 원작 풍의 영화를 더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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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도 판타지보단 원작쪽을 좋아하는데요,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원작 또는 판타지 등의 '스타일' 문제를 떠나 아예 007영화처럼 보이지 않는 액션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암울하고 사실적이라고 무조건 원작쪽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조건 중 일부일 뿐이지 전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가 얼마나 플레밍적이냐' 같은 걸 빼고 갈 수 없죠.

    때문에 전 '콴텀 오브 솔래스'가 어떠한 방법으로 플레밍 원작의 맛을 풍기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와 가젯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몇 가지 조건만으론 부족하다고 보거든요.

    이것을 다 긋고나면 액션밖에 안 남는데요. 이렇게 되면 얼마만큼 007영화로 보이겠나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다른 흔한 액션 스릴러 영화들과 무엇으로 어떻게 차별화할 것이냐는 거죠.

    때문에 어느 정도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반드시 Q와 가젯이 나오면서 판타지쪽으로 가야한다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007시리즈다' 하는 것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장치는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소설에서 가져오든 영화시리즈에서 가져오든 필요하다고 봅니다.

    007시리즈가 '문레이커'로 너무 싱거워지니까 '유어 아이스 온리'에서 본드가 트레이시의 묘를 찾으면서 시리즈를 원작으로 되돌려놓았고, 너무 딱딱해진 '라이센스 투 킬'에선 Q씬으로 comic relief 효과를 주면서 여전히 007영화라는 걸 상기시켜줬는데요, '콴텀 오브 솔래스'도 이런 걸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2분짜리 트레일러를 본 게 전부니까 영화를 보면 생각이 바뀔수도 있겠죠. 그런 장치들이 있는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이런 데 신경쓰지 않으면 크레이그 본드영화에 쉽게 질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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