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시리즈 프로듀서 마이클 G. 윌슨과 바바라 브로콜리의 EON 프로덕션이 새로운 스파이 영화를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원작이 '영국산'인 것엔 변함이 없다.
워너 브러더스도 영국산 스파이 소설을 기초로 한 영화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다. 워너 브러더스는 영국작가, 존 스톡(Jon Stock)의 스파이 소설, 'Dead Spy Running'을 영화로 옮길 계획이며, 스크립트는 Stephen Gaghan, 연출은 McG가 맡은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첩보소설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존 르 카레(John Le Carre)의 '나잇 매니저(The Night Manager)'도 브래드 핏의 프로덕션에 의해 영화화 된다.
60년대에 제작된 영국의 스파이 영화 시리즈에 메인 캐릭터, 해리 팔머(Harry Palmer)로 출연했던 영국배우, 마이클 케인(Michael Caine)은 해리 팔머 시리즈를 되살리는데 지금이 가장 적합한 시기라면서, 주드 로(Jude Law)에게 해리 팔머 역을 맡겼으면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해리 팔머 시리즈 역시 영국 소설가, 렌 다이튼(Len Deighton)의 첩보소설을 기초로 한 첩보영화 시리즈다.
영국산 첩보소설을 기초로 한 영화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아마도 영국이 미국보다 정보부의 역사가 훨씬 깊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 정보부(SIS 또는 MI6)는 1909년 창설되어 1차대전, 2차대전, 냉전을 모두 경험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미국 CIA의 탄생에 기여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다. 플레밍이 영국 해군정보부 장교로 근무하던 시절인 1941년 절친한 사이로 지내던 미국 OSS 최고 사령관 윌리엄 도노반 장군이 '정보부를 신설하고 싶다'며 조언을 구하자, 플레밍은 72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를 작성해 전달했다. 이에 대한 사례로 도노반 장군은 'FOR SPECIAL SERVICES'라는 문구가 새겨진 38구경 콜트 리볼버를 플레밍에게 선물했다. 이후 플레밍은 도노반 장군에게 건넨 문서가 1947년 미국의 CIA 창설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 문서는 현재 영국 런던에 위치한 Imperial War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첩보소설을 인기쟝르로 만든 장본인이 영국작가라는 것을 잊어서도 안된다. 세계적으로 첩보물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탄생시킨 이언 플레밍이라는 건 상식에 해당한다. 이언 플레밍 이전에도 첩보소설이 있었지만 이를 인기쟝르로 탈바꿈시킨 것은 바로 플레밍이다. 플레밍과 친분이 있었던 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제임스 본드 소설 'From Russia With Love'를 그가 읽은 역대 최고 서적 중 하나로 꼽았던 것도 유명한 이야기다. 레오나도 디카프리오의 프로덕션은 이언 플레밍의 생애를 그린 전기영화를 제작중에 있다.
전직 MI6 에이전트이자 '존 르 카레'라는 필명으로 여러 편의 첩보소설을 발표한 데이빗 존 무어 콘웰(David John Moore Cornwell)도 영국 첩보소설 작가다. 첩보소설 팬이 이언 플레밍과 존 르 카레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추리소설 팬이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를 못 들어봤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 첩보쟝르는 영국작가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절대로 지금처럼 성장할 수 없었다. 제임스 본드가 숀 코네리(Sean Connery)의 영화 시리즈를 통해 세계적인 아이콘이 되어 배트맨에 버금가는 '수퍼히어로 에이전트'가 되지 않았다면 '미션 임파시블(Mission Impossible)' 등과 같은 미국 첩보 TV 시리즈도 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이후에 나온 첩보소설들은 이언 플레밍과 존 르 카레 스타일을 결합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언 플레밍의 글래머러스한 제임스 본드 어드벤쳐와 존 르 카레의 암울하고 사실적인 첩보전을 한데 합쳐놓은, 두 스타일의 좋은 점들만 골라서 모아놓은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부 소설은 스타일만 참고한 게 전부가 아니라 제임스 본드 소설과 영화의 한 부분을 거진 그대로 옮겨놓기도 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모방한 흔적이 발견되는 첩보소설들도 생각보다 많다. 개중엔 나름 잘 알려진 작가가 쓴 소설들도 있다. 미국산 첩보소설 중에도 이런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
그렇다고 미국산 첩보소설이 전부 볼 게 없는 건 아니다. 중동문제를 다룬 소설은 미국산이 리얼하다. 최근 미국 작가들은 알카에다 등 중동 테러리스트를 뒤쫓는 내용의 첩보물을 잇다라 발표하고 있다. 대니얼 실바(Daniel Silva)의 게이브리얼 앨런(Gabriel Allon) 시리즈, 작년 말 개봉한 레오나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바디 오브 라이스(Body of Lies)'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대니얼 실바의 게이브 앨런 시리즈는 CIA, MI6도 아닌 이스라엘 모사드 에이전트들을 주인공으로 한 본격적인(?) 중동 첩보소설이라는 특징도 있다. 하지만, 조직 대 조직, 스파이 대 스파이의 클래식 첩보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약간 밋밋한 감이 있다는 게 흠.
이렇게 약간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메꾸기에 가장 좋은 게 '영국인 카드'다. '영국인 작가가 썼다', '영국인 에이전트가 주인공이다'라고 하면 왠지 클래식 첩보소설 분위기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이쯤 되었으면 영국작가가 쓴 첩보소설이 더 그럴싸해 보이고, 스파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영국인이 잘 어울려 보이는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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