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9일 일요일

출연진만 빵빵한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 벤 애플렉(Ben Affleck), 헬렌 미렌(Helen Mirren)... 여기까지만 해도 오스카 트로피가 벌써 3개다.

이런 배우들이 나오는 폴리티컬 스릴러라니까 한 번쯤 힐끗 쳐다볼 가치는 있겠지?

일단 줄거리를 한번 살짝 훑어보기로 합시다.

젊은 하원의원, 콜린스(벤 애플렉)와 함께 일하던 여직원이 자살/사고로 위장되어 살해당한다. 콜린스는 사망한 여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스캔달에 휘말리게 되지만 그의 대학친구이자 신문기자인 매카프리(러셀 크로우)를 찾아가 그녀의 죽음이 절대 자살일 리 없다며 의혹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살한 것일까? 단순사고일까? 아니면 살해당한 것일까? 만약 살해당했다면 누가 왜 죽였을까? 비슷한 시점에 발생한 살인사건과도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러셀 크로우와 벤 애플렉이 거진 10살 차이가 나는데 대학친구로 나온다는 것부터 살짝 이상하긴 했어도 얼핏보기엔 그런대로 그럴싸해 보였다. 하지만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State of Play)'도 음모를 소재로 한 또하나의 영화일 뿐이었다. 블랙워터(Blackwater)를 연상케 하는 용병업체와 뒤얽힌 음모와 첩보전 등 겉으로 보기엔 거창해 보였지만 전형적인 '음모영화' 포뮬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살인사건 뒤에 음모가 숨어있다는 것까지는 좋은데 느닷없이 '더블 에이전트' 타령을 하면서 첩보영화 분위기를 내는 바람에 실소하게 만들더니 음모를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래는 그렇게 하려던 게 아니었다'는 식의 반전으로 마무리하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것은 러셀 크로우 덕분이다. 덥수룩한 수염의 신문기자라는, 솔직히 말해 약간 유치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그마저 없었다면 '스테이트 오브 이머전시(State of Emergency)'로 제목을 바꿔야 했을 것이다. 극성맞은 에디터, 카메론을 연기한 헬렌 미렌과 경험없는 가십 블로거 기자, 델라로 나온 레이첼 맥애덤스(Rachel McAdams)의 신문사 이야기도 OK였다.

문제가 있다면, 신문사 이야기가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의 메인 줄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차라리 매카프리가 신문기자가 아니라 형사였다면 그런대로 익사이팅한 액션 스릴러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작진은 그럴싸한 폴리티컬 스릴러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는 덥수룩한 수염의 신문기자가 보다 잘 어울린다고 판단한 듯 하다. '형사, 병원, 법원 나오는 드라마는 이젠 지겹다'는 시청자들이 많은 만큼 TV를 장악한 형사 미스테리물처럼 만들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록 보진 못했지만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영국 BBC TV의 미니시리즈 제작진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나름 추리극처럼 꾸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음모영화의 미스테리 수준은 맛보여주기 정도가 전부기 때문에 클래식 추리소설처럼 살인사건 미스테리를 퍼즐맞추듯 풀어가는 재미를 기대하기 힘들다. 게다가 음모영화의 특성상 '언제 어떻게 되든 간에 결국은 뒤집힌다'는 것이 빤히 보이기 때문에 반전이라는 것도 말 그대로 시간문제일 뿐 쇼킹할 게 없다. 영화가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은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결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놀랄 일이 있겠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이젠 이런 류의 음모놀이 하는 영화에 식상했다. 정치인이 어쩌구, 언론인이 저쩌구 하면서 거창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놓은 게 전부일 뿐 음모와 얽힌 미스테리도 볼 게 없고, 더블 에이전트까지 들먹여도 제대로 된 첩보영화로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등장 캐릭터들의 파악을 마치자마자 결말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다시 말하자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싱겁기만 한 영화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아닌 얘기를 거창하게 부풀리는 것도 재주인 만큼 스크린라이터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이젠 손바닥이 아플 지경이다.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는 화려한 출연진을 제외하곤 볼 게 많지 않은 영화였다. 애초부터 많은 걸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실망할 건 없었지만 얼핏보기에 그럴싸하게 보이는 게 전부인 그저 그렇고 그런 내용의 흔해빠진 음모영화에 불과했다. 거창하게 폼만 잡으며 지긋지긋한 음모, 배신 타령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아주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음모-배신-반전이 거의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어설픈 미스테리 드라마를 흥미진진하게 보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은 나도 음모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이런 음모 말고 PUBIC 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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