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7일 월요일

'Disctrict 9', 낯익은 이름들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20년전 외계인들이 지구를 찾았다. 남아프리카의 조하네스버그 상공에 거대한 우주선이 나타난 것!

그러나 이들은 지구를 침공할, 아니 지구를 방문할 의사 자체가 없었다.

그럼 왜 온 거냐고?

연료가 떨어지는 바람에 얼떨결에 지구에 온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것이 더욱 큰 문제가 됐다.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외계인들이 졸지에 'ILLEGAL ALIEN'이 되었기 때문이다.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것.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하나 생긴다:

과연 인간들이 외계인들과 함께 살 수 있을까?

같은 인간들끼리도 피부색이 다르다, 민족이 다르다는 등의 이유로 서로 차별하고 인종학살까지 하는 판에 완전히 다른 인종인 외계인과 함께 사는 게 가능할까? '스타워즈(Star Wars)'와 같은 SF영화에서는 가능해 보이지만 실제로도 그러할까? 외국인과도 같이 살기 껄그러워 하는 판국에 외계인과 함께 살 수 있을까?

혼혈인, 타민족, 외국인 등과 함께 사는 것도 불쾌한데 혐오스러운 외모의 외계인과 함께 생활하는 건 어렵지 않겠냐고?

그렇다면 결과는 뻔하다. 남아프리카의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했던 것처럼 '외계인 구역'을 별도로 만들어 격리시키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흑인 거주구역으로 악명높았던 남아프리카에 이번엔 외계인 거주구역이 또 등장하게 됐다.

영화제목, 'District 9'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외계인 거주구역을 의미한다.



외계인 거주구역은 사실상 빈민굴에 가깝다. 주위의 인간들이 불청객 취급을 하는 바람에 외계인들은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비록 외모가 지구인과 다르긴 해도 외계인 역시 같은 인간인 만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옳겠지만 외모가 새우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Prawn'이라고 경멸조로 불릴 뿐이다. 이처럼 인간과 외계인의 갈등이 깊어가면서 외계인 거주구역은 매우 위험한 우범지역이 돼버렸다.

그러나 지구인들의 관심사는 외계인들의 무기에 쏠려있다. 외계인 거주구역을 관할하는 기관도 MNU라는 무기개발 기업이다. 문제는 외계인 무기는 외계인들만 사용가능할 뿐 지구인에게는 무용지물이라는 것. MNU는 외계인들의 무기를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비밀리에 외계인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까지 한다.

이쯤 되었으면 외계인들의 지구생활이 얼마만큼 비참한지 대충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서 사고가 터진다. MNU의 직원 위커스(샬토 코플리)가 외계인들에게 새로운 거주지역으로 이동할 것을 강요하기 위해 'District 9'을 돌던 중 외계인이 만든 정체불명의 검정색 액체에 노출된 것.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정체불명의 검정색 외계 액체에 노출되었던 위커스가 외계인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욱 고약한 문제가 생겼다. MNU가 위커스를 치료해주기는 커녕 그를 실험용으로 사용하려는 것! 외계인들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 탄생하자 바로 연구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의 골칫거리는 외계인이 아니라 지구인이다.



이쯤 되었으면 이 영화가 흑인차별이 심했던 남아프리카, 나치 시절의 유대인 수용소, 불법이민 문제 등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플롯도 약간 억지스러운 감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외계인들이 만든 검정색 액체에 인간이 닿으면 외계인으로 변한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무슨 이유에서 인간을 외계인으로 변신하도록 했는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지만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따져보면 플롯에 허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 위커스를 연기한 샬토 코플리(Sharlto Copley)도 신경에 거슬렸다. 'District 9'은 다큐멘타리 스타일로 만든 영화라서 주인공 위커스가 외계인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TV 리포터처럼 카메라를 향해 말하는 장면이 나오곤 했는데, 영락없이 '보랏(Borat)'을 보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District 9'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큐멘타리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반부 부터는 한숨 돌릴 수 있었고, 그의 연기와 목소리에 차차 익숙해질 수 있었지만 초반에는 살짝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도 참 재미있게 봤다. 여러 허점들이 눈에 띄었는데도 흥미진진했다. 영화 도중에 지루하거나 더이상 도저히 못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토리를 보다 깔끔하게 다듬었더라면 더욱 멋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외계인들이 지구인들에게 학대받는 신세라는 설정, 이미 벌어졌거나 현재진행형인 지구인들의 사회문제에 외계인들을 끼워넣은 것 등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이 때문일까? 뭔가 부족한 게 있다는 것이 눈에 분명하게 보이는 데도 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외계인과 인간의 대결을 그린 평범한 SF 액션영화를 기대한 사람들은 실망할 것이다. 오랫만에 R등급을 받은 화끈한 SF영화를 기대한 사람들도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District 9'은 그런 액션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1/3은 액션으로 채워졌고, 외계인 무기 한 방에 인간들이 산산조각으로 터져버리는 씬도 나온다. 그러나, 'District 9'은 SF액션과 화려한 특수효과에 기대를 걸 만한 영화는 절대 아니다. 'District 9'의 최대 매력포인트는, 비록 허점이 자주 눈에 띄긴 해도, 색다른 아이디어의 스토리지 치고 박고 터지는 액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엔 낯익은 이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맞다. 연출을 맡은 남아프리카 출생의 닐 블롬캠프(Neill Blomkamp) 감독도 매우 생소한 이름이다. 다른 헐리우드 SF 블록버스터처럼 거대자본을 들여 제작한 영화도 아니다. 사실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트릴로지로 유명한 피터 잭슨(Perter jackson)의 이름이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지나쳤더라면 후회할 뻔 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영화는 절대 아니며, '트랜스포머스 2(Transformers: Revenge of the Fallen)'와 같은 메이저 SF 블록버스터와 비교하면 초라해 보이기도 하지만 금년에 본 영화 중에서 맘에 드는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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