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스카이폴' - 게이가 본드걸 대신하는 날 올까?

다니엘 크레이그는 게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영화배우다. "크레이그를 게이 바에서 목격했다", "크레이그가 게이 파트너와 프렌치 키스를 나누는 걸 봤다"는 등 게이 루머에도 여러 차례 휘말린 바 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로 발탁되었을 당시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본드팬들은 "크레이그가 너무 게이 스타일"이라는 점을 문제로 지목하기도 했으며, 여성 프로듀서인 바바라 브로콜리(Barbara Broccoli)가 여성과 게이들이 좋아할 만한 '블론드 섹시보이'를 골랐다는 비판도 있었다. 일부에선 다니엘 크레이그를 거칠고 남자다운 '액션맨'으로 평가하는 반면 다른 쪽에선 '게이', '섹시 헝크'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크레이그가 지난 2006년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로 제임스 본드가 된 직후부터 "게이 본드걸" 조크가 나돌았다.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가 되니 본드걸로 게이가 곧 나올 것 같다"는 농담이었다. 크레이그는 영화에서 젊고 거친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으며, 주제곡도 이러한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는 남성스러운 락뮤직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게이 조크'를 피해가진 못했다.

실제로, 크레이그는 몇몇 기자들로부터 "게이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자 크레이그는 게이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생각이 없으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제임스 본드를 그만두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007 시리즈 23탄 '스카이폴(Skyfall)'에서도 또다시 게이 논란이 불거졌다. 하비에르 바뎀(Javier Bardem)이 연기한 악당 라울 실바가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에게 다소 짖궂은 장난을 치는 씬이 나오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씬을 '게이 씬'으로 받아들였던 것.

물론 문제의 씬 자체는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아무 것도 아닌 씬이다. 일종의 코믹한 씬이지 진지하게 받아들일 게이 씬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카이폴'이 개봉하기 무섭게 "실바는 게이인가?", "제임스 본드는 바이인가?"라는 다소 엉뚱한 논쟁이 벌어졌다. 본드의 몸을 슬쩍 더듬는 실바에게 본드가 "What makes you think this is the first time?"이라고 쏘아붙인 별 것 아닌 대사의 의미 해석에 매달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무래도 유머 감각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봐야할 듯 하다.


이 소식에 게이 커뮤니티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미국의 게이 연예 사이트 페레즈 힐튼(Perez Hilton)은 "Does James Bond Come Out of the Closet in Skyfall?"이라는 제목으로 다니엘 크레이그와 하비에르 바뎀의 '문제의 씬'을 전했다.

제임스 본드가 커밍아웃을???

페레즈 힐튼은 '문제의 씬'을 "erotically-charged scene"으로 표현하면서, 본드에 성(性)적 흥분을 느낀 실바가 본드의 가슴을 만지는 씬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물론 페레즈 힐튼은 본드의 대사 "What makes you think this is the first time?" 역시 빼놓지 않고 소개했다.


물론 이렇게 해서 게이 관객들을 더욱 극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씬을 통해 007 제작진이 노린 것은 바로 그것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볼 게 하나 있다 - 도대체 이런 씬이 제임스 본드 영화에 필요한가?

씬 자체를 떠나서 이런 논란이 필요한지도 궁금하다.

제임스 본드는 '레이디 킬러'다. 제임스 본드를 탄생시킨 영국 소설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부터 여자를 무척 좋아했으며, 플레밍의 분신 격이라 할 수 있는 제임스 본드 역시 여자를 좋아한다. 원작의 제임스 본드는 로저 무어(Roger Moore)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처럼 능글맞은 플레이보이까지는 아니지만 여성 편력이 심한 캐릭터인 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모든 제임스 본드 소설에 섹시한 미녀 본드걸들이 등장하며, 007 영화 시리즈에도 본드걸이 빠짐없이 나오는 이유도 제임스 본드의 여성 편력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몇몇 제임스 본드 팬 사이트들은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가 '쓰러뜨린' 본드걸의 수를 세기도 한다. 조금 우스꽝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제임스 본드의 '레이디 킬러' 이미지를 우습게 볼 수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런데 007 시리즈에 제임스 본드가 게이(또는 바이)로 오해받을 만한 씬이 나온다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특히 리딩 본드걸이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본드걸의 존재감이 007 시리즈 역대 최저였던 '스카이폴'에 이런 씬이 나온 바람에 더욱 신경쓰인다. 섹시하고 우아한 본드걸에 쏠려야 할 시선과 관심이 엉뚱한 게이 씬으로 간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해야 하나?

그렇다고 게이에 거부감이나 적대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위에 게이 천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게이 커플들이 흔하게 눈에 띈다. 또한 미국에선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주도 늘고 있으며, 미국의 메이저 사회 이슈 중 하나가 된 동성결혼을 반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현실 세계의 얘기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의 세계로 이동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제임스 본드는 동성애자, 양성애자와 전혀 거리가 먼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니엘 크레이그는 이번 '스카이폴' 게이 논란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당연하겠지만, 크레이그는 제임스 본드가 게이가 아니므로 영화에서 게이 제임스 본드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의 데일리 메일에 의하면, '스카이폴'에서 새로운 머니페니 역을 맡은 영국 여배우 나오미 해리스(Naomie Harris)는 "모든 게 열려있다"면서 게이 제임스 본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한다. 게이 제임스 본드가 나와도 문제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I think everything is open. Everything is open. Who knows?!" - Naomie Harris

나오미 해리스는 여성 제임스 본드, 흑인 제임스 본드 가능성도 제기한 바 있으니 게이 제임스 본드라고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물론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뭐 어떠냐"고 할 사람들이 수두룩하리라 본다. 여성 제임스 본드, 흑인 제임스 본드, 게이 제임스 본드 등이 왠지 '앞서 나가는' 느낌이 드는 게 쿨하게 들리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최신 트렌드를 따라하기 좋아하는 007 제작진이 다음 번 영화에선 어떠한 변화를 줘야 할지 답이 나온 듯 하다. '본드24'에선 게이 제임스 본드, '본드25'에선 여성 제임스 본드, '본드26'에선 흑인 제임스 본드, '본드27'에선 흑인 게이 제임스 본드 등등으로 바꿔가면 될 듯 하다. 지금처럼 바꾸고 뜯어고치기 좋아하는 007 제작진에겐 이 모든 게 가능해보일지도 모른다.

당장 '본드24'에선 가능성이 특히 크다. 게이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인 데다 여성 프로듀서 바바라 브로콜리(Barbara Broccoli)는 터프한 본드걸을 좋아하는 만큼 제임스 본드를 게이로 만들고 본드걸 대신 게이를 본드의 'Love Interest'로 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 보인다. 액션은 터프한 본드걸들이 맡으면 되는 것이고, 미스터 본드와 그의 게이 파트너는 침대에서 샴페인이나 홀짝이면 된다.

까짓 거,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싹 다 뜯어고쳐보자.

댓글 10개 :

  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그래도 절대 그럴일은 없지 않을까요?
    저도 게이에 대한 편견이나 호불호는 없지만, 007이 게이인것은 아무래도 괴리감이 엄청나네요.

    혹시나 가능성이 있다면, 온갖 여성들을 후리고(?) 다니던 007이니까 이제 여성을 넘어, 남성까지 반하게 만든다는 설정이라던가...ㅋㅋㅋㅋㅋㅋ

    카지노 로열에서 차에서 나누던 에바 그린과 다니엘 크레이그의 대화가 떠올라요. 내 타입 아니라고 걱정말라던 007한테
    'Smart?'
    하니까
    'Single' 했었던.

    이제 게이 007이 나온다면 이렇게 바뀌는 건가요?
    'Smart?'
    'Fem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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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 생각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더이상 못할 게 없어 보이거든요...^^
    까놓고 본드를 게이(또는 바이)로 묘사하진 않더라도, 스카이폴처럼 악당이 먼저 행동할 수 있죠.
    좀 더 나아가서 강제로 키스를 시도한다거나 하는 것 말이죠.
    크레이그 주연의 인듀어링 러브(Enduring Love)에 그런 씬이 나온 적 있습니다.
    그 영화에서 스토커 역을 맡았던 리스 이반스가 스카이폴 악역을 맡는다는 루머도 나온 적이 있었죠.
    굳이 이런 씬이 본드 영화에 나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덴 변함없습니다만,
    본드 흡입을 너무 많이 한 듯한 사람들이 영화를 또 만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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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개인적인 생각에는 전혀 쓸데 없는 장면이라는데 한표입니다.
    하비에르 바뎀에 싸이코적인 성격을 가진 캐릭터를 부각시키려고 하는 설정였던 것 같은데...
    제가 영화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아 그런지 너무 어설펐습니다.
    이번 007에서 하비에르 바뎀의 연기에 상당히 실망입니다.
    절박함과 냉정함, 잔인함 그런 것은 보이지 않고 꼭 코미디언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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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말씀하신대로 코미디언 같았던 점은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스카라망가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실바와 스카라망가가 비슷한 데가 좀 많은 것 같거든요.
    실바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부터 황금총과 비슷한 데 많구요.
    스카라망가의 최대 단점이 너무 소프트한 나이스 가이 같았다는 점이죠. 싱글벙글하면서 말입니다...^^
    실바도 그걸 좀 따라한 것 같았습니다. 별로 위협적이거나 진지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다 보니 배트맨 시리즈의 괴짜 악당 조커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듯 합니다.
    제 생각엔 바뎀보다 캐릭터에 문제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바뎀은 스카이폴의 이상한 실바보다 썬더볼의 라고 같은 역을 맡겼어야 멋졌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전 위의 '만지는' 씬에서 바뎀이 크레이그의 무릎 위에 올라타지 않은 것만으로 땡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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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너무해요 그렇게 "전통 이상"의 변화는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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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너무 큰 변화는 없겠지만 새로운 걸 시도하려다 쓸데없는 것까지 할 것 같은 불안함이 좀 있는 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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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바바라브로콜리, 007아이덴티티를 망가트린 주범임.
    007에 여성인권 운운 나온순간부터 이미 007은 망한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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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바라 브로콜리가 본격적으로 제작을 맡은 90년대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한 건 사실이죠...^^
      지나친 Political Correctness 앞에 남성 중심의 남성 판타지 영화가 무릎을 꿇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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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과 머니페이에게 007이 까이던 순간부터 이미 망하기 시작함. 수습하려고 노력할수록 007은 정체성을 더더욱 잃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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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 총들고 뛰어다니는 여전사형 본드걸들이 더 보기 싫었습니다...^^
      머지 않아 여자 MMA 선수가 본드걸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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