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죽이기 힘든 캐릭터가 바로 제임스 본드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임스 본드를 죽일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를 죽이기 위해 몸부림쳤던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다.
지금까지 다들 실패했다는 게 문제이지만...
보스급 악당들도 제임스 본드를 죽이는 데 번번히 실패했고, 보스의 사주를 받고 미스터 본드를 없애기 위해 쫓아다니던 헨치맨들도 마찬가지 였다.
보스급 악당들은 지난 포스팅에서 둘러봤으니 이번엔 지금까지 나온 22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왔던 헨치맨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베스트 11을 뽑아봤다.
11. 죠스(Jaws) -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 & '문레이커(Moonraker)'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캐릭터는 죠스(Jaws)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강철이빨을 한 어마어마한 덩치의 사나이지만 제임스 본드와의 대결에선 이상하게도 맥을 못추는 코믹한 악당이다. 악당같지 않은 악당이라고 할까?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선 시작부터 끝까지 제임스 본드와 사이가 안 좋지만 '문레이커'에선 편을 바꿔 본드를 도와주기도 한다.
죠스가 가장 유명한 007 시리즈 캐릭터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지만 007 시리즈에 나와서는 아니되었던 캐릭터라는 것이 문제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어울리는 악당이 아니라 코믹북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기 때문이다.
미국배우 리처드 킬(Richard Kiel)이 연기한 죠스는 1977년작 '나를 사랑한 스파이', 1979년작 '문레이커'에 등장했다.
10. 미스터 윈트(Mr. Wint) & 미스터 키드(Mr. Kidd) -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미스터 윈트와 미스터 키드는 1971년작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에서 블로펠드의 헨치맨으로 등장했다. 이들이 독특한 이유는 게이커플 분위기를 풍기는 악당들이기 때문. 깔끔하게 면도하고 시간날 때마다 향수를 뿌려대는 미스터 윈트와 덥수룩한 수염의 미스터 키드가 동성애자인 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넘어가지만 게이커플임을 암시하는 대사와 장면들이 나온다.
미스터 윈트 역은 미국배우 브루스 글로버(Bruce Glover), 미스터 키드 역은 역시 미국배우이자 뮤지션인 퍼터 스미스(Putter Smith)가 맡았다.
브루스 글로버의 아들, 크리스핀(Crispin)은 마이클 J. 폭스 주연의 SF영화 '백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에 마티(마이클 J. 폭스)의 아버지 조지 역으로 출연했다.
9. 티히(Tee Hee) -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
티히(Tee Hee)는 1973년작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d Die)에 등장했던 집게손을 가진 사나이다. 젠틀하고 유머감각도 풍부하지만 제임스 본드를 끝까지 쫓아와 괴롭히는 집요하면서도 아주 위험한 사나이다.
집게손이 가짜라는 게 한눈에 티가 났음에도 티히 역을 맡았던 미국배우 줄리어스 해리스(Julius Harris)의 호연기 덕분에 우습게 보이지 않았다.
8. 메이 데이(May Day) - '뷰투어킬(A View to A Kill)'
메이 데이는 맥스 조린(크리스포터 워큰)의 심복이자 애인이다. 조린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제임스 본드를 위험에 빠뜨리지만 조린에게 배신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부터는 제임스 본드를 돕는다.
건장한 남성을 번쩍 들어올릴 정도의 괴력을 가진 무시무시한(?) 메이 데이는 자메이카 출신 여배우, 그레이스 존스(Grace Jones)가 맡았다.
7. 이마일 로크(Emile Lockqe) -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
007 시리즈에선 대사 한 마디 없이도 헨치맨으로 성공할 수 있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 '문레이커'의 죠스가 여기에 해당한다(죠스는 '문레이커' 마지막 부분에서 한마디 한 게 대사의 전부다). 1981년 영화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의 헨치맨 로크도 마찬가지다. 로크와 그의 갱들은 본드를 없애기 위해 스키장, 바닷가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본드의 동료들을 죽이고 다닌다.
영국배우 마이클 갓하드(Michael Gothard)가 연기한 로크는 비록 대사는 없어도 제임스 본드를 위험에 몰아넣은 몇 안되는 '제대로 된' 헨치맨 중 하나이다. 또, 제임스 본드에게 복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 캐릭터이기도 하다. 복수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던 제임스 본드가 복수다운 복수를 제대로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캐릭터다.
6. 제니아 오너탑(Xenia Onatopp) - '골든아이(Goldeneye)'
007 시리즈에 헨치우먼(Henchwoman)이 등장한 적은 여러 번 있다. 하지만, 상대를 넙적다리로 졸라 죽이고, 총을 쏴 사람들을 죽이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변태(?) 헨치우먼은 제니아 오너탑이 처음이다. 제니아 오너탑은 전 소련군 파일럿 출신이지만 조종실력보다 그녀의 'Definition of Safe Sex'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재미있는 친구다.
제니아 오너탑을 연기한 네덜란드 여배우 팜키 얀슨(Famke Janssen)은 영화의 레이팅(PG-13)을 의식하며 신음소리, 오르가즘 연기를 했다고 회고했다. R 레이팅이었다면 까놓고(?) 할 수 있었겠지만 007 시리즈는 패밀리 영화이다보니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얀슨은 "남편이 '골든아이'를 보고 도망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진짜로 그렇게 조인다면 도망가야겠지? 남자들이 'TIGHT'한 걸 원래 좋아하지만 그런 식으로 'TIGHT'한 건 별로 안 좋아할 걸?
5. 피오나 볼페(Fiona Volpe)
피오나 볼페는 범죄조직 스펙터(SPECTRE)의 넘버2맨 에밀리오 라고(아돌포 첼리)의 심복이다. 섹시하면서도 차갑고, 부드럽다가도 한순간 거칠어지는 아주 매력적인 헨치우먼이다. 지금까지 나온 007 시리즈 중에서 최고의 헨치우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5년작 '썬더볼(Thunderball)'의 악당 보스(아돌포 첼리)와 헨치우먼은 모두 이탈리아 배우의 몫이었다. 피오나 볼페 역은 이탈리아 여배우 루씨아나 팔루지(Luciana Paluzzi)가 맡았다.
4. 오드잡(Oddjob) - '골드핑거(Goldfinger)'
지금까지 나온 007 시리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는 1964년작 '골드핑거(Goldfinger)'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007 시리즈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 '007 포뮬라'라는 것이 '골드핑거'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골드핑거'에 아스톤 마틴 DB5가 나오지 않았다면 '본드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골드핑거'에 검정색 중절모를 집어던지는 단단해 보이는 체구의 한국인 킬러 오드잡(Oddjob)이 없었더라면 죠스(Jaws)와 같은 헨치맨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골드핑거'부터 007 시리즈가 가젯위주의 판타지 어드벤쳐 시리즈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이 '골드핑거'는 007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다. 그러므로 검정색 모자를 집어던지던 헨치맨 오드잡이 왜 유명한 지 이해가 될 것이다.
오드잡도 대사가 없는 헨치맨 중 하나다. 그러나 골프공을 손으로 부스러뜨릴 정도로 힘이 셀 뿐 아니라 맷집도 좋아 맞아도 꿈쩍하지 않는데 대사가 무슨 필요가 있으랴!
둘 째라면 모자를 집어던질 만큼 007 시리즈 인기 캐릭터인 오드잡은 전직 프로레슬러였던 하와이 태생 일본인 해롤드 사카다(Harold Sakada)가 연기했다.
3. 다리오(Dario) -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
제임스 본드가 '유어 아이스 온리'에서 복수다운 복수를 처음 했다면 1989년작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은 전적으로 복수에 대한 영화다. 미스터 본드가 살인면허까지 집어던진 채 복수에 올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라이센스 투 킬'은 이전 작품들과 조금 다른 007 영화다. '골드핑거'에서 완성된 '007 포뮬라'를 따르지 않고 이언 플레밍의 원작으로 되돌아간 까닭이다. 언오피셜 '죽느냐 사느냐'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는 '라이센스 투 킬'은 영화 시리즈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던 어둡고 매우 위험한 제임스 본드를 선보였다. 조크나 하면서 미끌거리며 여자 꽁무니나 쫓던 영화판 제임스 본드의 모습에서 벗어나 플레밍 원작의 '제대로 된'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보여준 것이다.
제임스 본드가 원작에서의 제모습을 되찾자 악당들도 리얼하면서도 냉혹하고 잔인해졌다. 살인을 할 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지만 로열티를 매우 중요시 하고, 충성하는 부하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산체스(로버트 다비)만 보더라도 이전 007 시리즈의 보스급 악당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의 부하들도 마찬가지다. 다리오는 산체스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할 태세다. 눈빛부터 예사롭지 않은 데다 성격도 매우 포악하지만 산체스 앞에서는 귀염둥이일 뿐. 그러나 제임스 본드 입장에서는 매우 위협적인 캐릭터다. 그래봤자 일개 깡패에 불과하지 않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강철이빨을 한 말도 안되는 죠스와 제임스 본드를 차갑게 쏘아보며 총구를 겨누는 다리오를 한 번 비교해 보자. 둘 중에서 누가 더 위협적인 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제임스 본드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은 몇 안되는 '제대로 된' 헨치맨 중 하나인 다리오는 푸에리토 리코 배우 베니치오 델 토로(Benicio del Toro)가 연기했다. 영화 '트래픽(Traffic)'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그 배우다. 머지않아 남우주연상도 거머쥘 것으로 기대되는 배우다.
2. 어마 번트(Irma Bunt) -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여왕폐하의 007'은 제임스 본드가 결혼을 하게 되는 영화다. 하지만,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본드의 아내 트레이시(다이아나 리그)가 총에 맞아 사망한다.
트레이시를 죽인 건 블로펠드(텔리 사발라스)의 헨치우먼, 어마 번트다. 원작소설에서는 번트가 트레이시를 죽이지 않았지만 영화에서는 그녀가 총을 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007 영화 시리즈에서는 본드가 트레이시의 죽음을 복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007 시리즈가 줄거리가 이어지는 시리얼 형식의 시리즈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카지노 로얄(2006)'과 '콴텀 오브 솔래스(2008)'는 예외) '여왕폐하의 007'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처음으로 맡았던 죠지 래젠비(George Lazenby)가 한 편을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나는 등 여러모로 일이 꼬인 것도 이유 중 하나로 꼽아야 할 듯 하다.
만약 죠지 래젠비가 제임스 본드 역으로 계속 남아있었더라면 '여왕폐하의 007' 다음 작품이었던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는 복수극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영화에서는 방아쇠를 당긴 장본인이 어마 번트였으므로 블로펠드는 내버려두고 번트만 죽이는 것으로 트레이시의 복수를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스펙터와 블로펠드는 007 시리즈에 계속 남겨두면서 번트만 제거하는 것으로 복수를 끝낼 수 있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래젠비가 '여왕폐하의 007' 한 편을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렇다고 모든 게 불쌍한(?) 래젠비 탓이라는 건 아니다. 만약 래젠비가 그의 두 번째 007 영화를 찍었고, 그 영화가 살해당한 아내의 복수에 대한 줄거리였다고 해도 어마 번트는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마 번트를 연기했던 독일 여배우 일서 스테팟(Ilse Steppat)이 '여왕폐하의 007'이 개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 것.
그렇다면 제임스 본드는 살해당한 아내의 복수를 영원히 할 수 없는 것일까?
플레밍의 원작소설에서는 복수를 했다. 문제는 영화 시리즈다. 그러나 '스펙터', '블로펠드' 등을 영화에 사용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복수는 고사하고 이들을 다시 007 시리즈에 출연시키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여왕폐하의 007'이 40년전(1969년)에 개봉한 영화기 때문에 스펙터와 블로펠드를 다시 영화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바로 복수극으로 넘어가기 힘들다. 다시 말하자면, '여왕폐하의 007'부터 다시 만들지 않는 이상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마 번트는 제임스 본드의 아내를 죽이고도 아직까지 살아남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제임스 본드에게 이처럼 큰 상처를 입히고도 살아남은 악당은 없다. RESPECT HER!
1. 레드 그랜트(Red Grant) -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그의 임무는 제임스 본드를 함정에 빠뜨려 살해하고, 그의 죽음을 최대한 치욕적으로 꾸미는 것이다. 범죄조직 스펙터(원작소설에선 소련의 SMERSH)의 헨치맨 도널드 '레드' 그랜트(Donald 'Red' Grant)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열차에서 벌어지는 제임스 본드와 레드 그랜트의 격투씬은 지금도 007 시리즈 최고의 격투씬으로 꼽힌다.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주연의 최근 영화에선 툭하면 피범벅이 된 제임스 본드를 볼 수 있지만 1963년작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에서와 같은 격렬한 격투씬은 찾아볼 수 없다. 근육을 열심히 키우고, 얼굴에 힘을 주고 다니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도 아직까지는 '얼굴분장'이 전부다. 피를 흘린다고 무조건 격렬한 격투씬이 되는 게 아닌데 007 제작진은 그렇게 생각하는 듯 하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가 아직까지 레드 그랜트와 같은 매우 위협적인 헨치맨을 상대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영화에서는 일명 '007가방'이 제임스 본드의 목숨을 살렸다. 그러나 플레밍의 원작에서는 사정이 약간 다르다. 레드 그랜트가 만약 다른 곳을 쏘았더라면 제임스 본드를 죽이는 데 성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임스본드는 꼼짝없이 앉아서 그랜트의 총에 맞아 죽을 처지였고, 그랜트는 제임스 본드를 죽이는 데 거진 성공할 뻔 했었다. 제임스 본드는 위기를 빠져나갈 틈새가 전혀 없었으므로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열차에서 그랜트의 총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레드 그랜트가 007 시리즈 베스트 헨치맨인 이유다.
낚시줄이 달린 시계를 차고 다니는 블론드 킬러, 레드 그랜트는 영국배우 로버트 쇼(Robert Shaw)가 연기했다.
대부분의 악역들이 만화 같은 느낌을 주는데 반해 레드 그랜트는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인물. 특히 명배우 로버트 쇼가 특유의 차갑고 매서운 인상으로 제대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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