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1일 수요일

'박스', 이렇게밖에 만들 수 없었나

만약 누군가가 박스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1백만불을 준다고 하면?

아마도 주저없이 누를 것이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버튼을 누르면 1백만불을 받을 수 있는 대신 모르는 사람 하나가 죽는다. 모르는 사람의 생명과 1백만불을 맞바꾸는 셈이다.

그래도 누를 거냐고?

물론이다. 1백만불을 줄테니 직접 가서 죽이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수락할 텐데 이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노마(카메론 디아즈)와 아더(제임스 마스덴) 부부는 어떤 선택을 할까?

영화 '박스(The Box)'는 한쪽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미스테리한 사나이, 스튜어드(프랭크 랜젤라)가 버튼이 달린 박스를 들고 노마와 아더 부부를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스튜어드는 노마에게 박스의 버튼을 누르면 1백만불을 받을 수 있는 대신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 죽게된다고 설명하면서 버튼을 누를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하라고 한다.



스튜워드는 1백만불이 들어있는 가방을 보여주면서 절대로 사기가 아니라고 한다. 버튼을 누르면 이 가방에 들어있는 1백만불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스튜어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100불을 놓고 간다. 노마와 아더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상관없이 100불을 보너스로 주고 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 버튼을 눌러야 하는 걸까, 아니면 말아야 하는 걸까?



그러나 문제는 버튼이 아니었다. 영화가 딱 여기까지만 볼 만했기 때문이다.

버튼을 누르면 1백만불을 받을 수 있는 대신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죽는다면서 버튼을 누를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라는 데 까지는 제법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토리가 뒤죽박죽이 되어갔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소설가, 리처드 매터슨(Richard Matheson)의 매우 짧은 숏스토리 '버튼, 버튼(Button, Button)'을 기초로 영화를 제작하려다 보니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붙이는 확장공사가 필요했는데, 바로 여기서 사고가 단단히 난 것이다. 이 바람에 NASA와 NSA가 어쩌구, 마인드콘트롤이 저쩌구 하면서 호러와 SF영화를 오락가락하는 도대체 정리가 안 되는 개판 5분전 스토리가 탄생하고 말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그 이유도 간단하다. 스크린라이터가 SF, 호러, 정부의 비밀실험 등 그럴싸해 보인다 싶은 것을 긁어모아 한데 묶어보려고 하다가 제대로 말아먹은 것이다. 목표는 야무졌지만 덕지덕지 기워놓은 누더기를 만들어 놓았을 뿐 생각했던 것처럼 멋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한가지 재미있는 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는 점이다. 70년대, 심리테스트, 필름 릴과 영사기, 이상한 행동을 하던 캐릭터들이 코피를 쏟는 부분 등 다른 데 봤던 것 같았다.

어디서 였을까?


그렇다. ABC의 TV 시리즈 '로스트(Lost)'다.

하필 '로스트'를 어설프게 흉내내려 한 이유도 간단하다. '로스트'가 SF, 호러, 미스테리 등이 혼합된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잠깐! '로스트'가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시리즈인데, 스티븐 킹이 리처드 매티슨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이므로 영화 '박스'와 TV 시리즈 '로스트'가 비슷하게 보여도 크게 이상할 건 없지 않냐고?

분위기가 서로 비슷한 건 물론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한눈에 티가 날 정도로 '로스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이면 좀 곤란하지 않겠수?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얼굴 한쪽에 심한 화상을 입은 스튜어드는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의 2페이스를 연상케 했다. 원작에는 스튜어드가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는 설명이 나오지 않으므로 이것 역시 스크린라이터가 만들어넣은 것 중 하나다. 그렇다면 이것 또한 어딘가에서 빌려온 것이 분명할 테지? '얼굴 한쪽에 큰 화상'을 어디선가 분명히 본 것 같다 싶었는데 조금 생각해 봤더니 그게 어디서 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영화 '박스'는 아주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캐스트도 훌륭한 편이었고, 영화의 베이스로 삼은 리처드 매터슨의 숏스토리도 흥미진진했는데 이렇게밖에 만들 수 없었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러한 재료를 가지고 이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냔 생각도 들었다.

굳이 호러와 SF에 목을 맬 이유가 있었는 지도 알 수 없었다. 차라리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은 우화같은 판타지 드라마로 만드는 게 연말 홀리데이 시즌과도 어울리는 등 여러모로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 '박스'는 스토리는 난장판이고, 쟝르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마추어의 작품처럼 완성도가 상당히 낮은 한심한 영화일 뿐이었다.

영화가 이 모양인데 버튼이 뭐가 어쩌고 저째?

영화관 좌석에 앉아서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내 머릿속에 떠오른 버튼이 하나 있었다.



영화관에는 왜 Ejector Seat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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