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9일 토요일

'아바타', 3D 빼곤 없었다

요샌 '3D 영화'라고 하면 3D 애니메이션을 뜻하는지, 아니면 안경을 쓰고 보는 입체영화를 뜻하는지 살짝 헷갈리곤 한다.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의 신작 '아바타(Avatar)'는 더욱 헷갈린다. 실사영화, 3D 애니메이션, 3D영화 모두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아바타'는 인간들이 등장하는 부분은 실사영화이지만 푸른색 몸을 한 외계인, 나비(Na'vi)들이 등장하는 부분은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으며, 안경을 쓰고 3D로도 볼 수 있다.

게다가 런타임은 2시간 반이 넘는다.

뿐만 아니라, 엔드 타이틀곡은 영국의 R&B 가수 리오나 루이스(Leona Lewis)가 불렀다.

왠지 거창해 보인다고?

그렇다. 거창한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런타임 2시간 반이 길게 느껴졌으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기는 힘들 듯 하다.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돈을 처바른 빅버젯 영화라면 볼 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쥬얼 하나만 따진다면 볼 만 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으로는 역시 부족했다. CG 퀄리티는 매우 높았다지만, 영화를 보기위해 영화관을 찾았지 컴퓨터 그래픽 쇼를 보러 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바타'는 화려한 비쥬얼을 제외하면 건질 게 얼마 없는 어린이용 영화/애니메이션에 불과했다. 그래도 무언가 더 있겠지 기대했지만, 모든 돈과 정성을 3D 한쪽에만 쏟은 어린이용 영화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토리도 건질 게 없었냐고?

'아바타'의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다. 부상으로 하반신 마비가 된 전직 미군 해병 제이크(샘 위딩턴)가 외계인과 인간의 DNA를 조합해 만든 외계인, '아바타'를 조종해 자원을 탐내는 지구인들을 침입자로 간주하며 적대시하는 외계인들의 세계에 침투한다는 게 전부다.



'아바타'를 이용한다는 독특한 방법을 통해 외계인들에게 접근한다는 것까지는 괜찮아 보이지만,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아바타'를 조종해 외계인의 세계에 침투한 제이크가 그들과 친해지면서 지구인과 외계인의 중간에서 갈등하게 될 것이 훤히 보인다.

그렇다. '아바타'의 줄거리는 트레일러만 봐도 전부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유럽인/백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던 것처럼 지구인들이 외계인들이 사는 자원이 풍부한 행성을 '발견'해 침략, 약탈을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은 그럴 듯 했다. '아바타'를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영화들이 크리스토퍼 콜롬버스(Christopher Columbus)에 대한 영화 몇 편과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 주연의 80년대 영화 '미션(The Mission)'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외계인의 별을 침략한 지구인과 이들에 맞서 싸우는 외계인의 사이에 낀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영화 제작진이 이런 데서 아이디어를 빌려올 것이라는 점은 영화를 보지않은 상태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나 비디오게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테마이지만, 'NEVER FUCK WITH THE NATURE'라는 자연보호 메시지만으로는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메꿔주면서 무언가 있어보이도록 해주는 효과까지 있으니 일석이조였으리라. 게다가 'White Guilt' 등을 보여주면 양심있다는 평까지 받을 수 있으니 효과만점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비디오게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파란색, 초록색, 보라색이 감도는 판도라 숲의 경치는 '파이널 판타지 X(Final Fantasy X)'의 마칼라니아 숲(Macalania Woods)이라는 곳과 너무나 비슷했다. '파이널 판타지 X'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유나(Yuna)와 티더스(Tidus)가 호수에서 키스를 한 장소를 기억할 것이다. 바로 그 곳이 마칼라니아 숲이다. '파이널 판타지 X'과 '파이널 판타지 X-2'를 플레이하면서 마칼라니아 숲을 뛰어다닌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아바타'를 보면서 '파이널 판타지 X'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헐리우드가 3D 판타지 영화를 만들 때 마다 일본산 판타지 RPG들을 많이 참고하는 모양이다.


▲'아바타'의 판도라 숲


▲'파이널 판타지 X'의 마칼라니아 숲

하지만 '아바타'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수준에 불과한 영화인 만큼 이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이해가 잘 안 가는 게 있다. 바로 주제곡이다.

영국 R&B 가수 리오나 루이스에게 주제곡을 맡긴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아바타' 주제곡 'I See You'는 셀린 디온(Celine Dion)이 불렀던 '타이타닉(Titanic)'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과 너무 비슷했다. '타이타닉'도 제임스 카메론 영화이고, 음악을 맡은 작곡가도 똑같다지만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타이타닉' 영화와 주제곡 모두를 좋아하지 않아서 인지, '아바타' 영화가 끝나고 엔드 타이틀 롤이 올라가면서 'I See You'가 흘러나올 때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풍의 노래가 판타지 SF영화 주제곡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고상한 것을 좋아하는 척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노래라서 약간 매치가 잘 안 되는 듯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삘리리~ 삘리리~"하는 이런 풍의 노래가 판타지 SF물 주제곡으로 사용된 게 '아바타'가 처음은 아니다. 일본의 게임메이커, 남코의 판타지 SF RPG, '제노사가(Xenosaga)'의 주제곡도 딱 이런 풍이었으니까.

조앤 호그(Joanne Hogg)가 부른 'Pain'을 한 번 들어봅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아바타'에는 이런 노래가 딱이 아닐까? 어디서 본 듯한 흔한 스토리에 캐릭터들도 특별하지 않은, 한마디로 3D 빼면 없는 영화의 주제곡으로는 이렇게 궁뎅이가 들썩이는 노래가 보다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수?


그렇다고 영화가 아주 재미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워낙 뻔한 스토리다 보니 CG에 감탄하는 것도 잠깐이었을 뿐 금새 따분해졌고, 클라이맥스를 앞두고 긴장감이 돌기 시작할 때까지 너무 오래 걸린 것 같았지만, 그런대로 볼 만할 정도는 됐다.다만 엄청난 것을 기대할 만한 영화는 못된다는 게 전부다. 애니메이션, 비디오게임 수준의 평범한 어린이/청소년용 판타지 SF영화로써는 평균이상은 했지만, 완성도가 뛰어난 매우 대단한 영화는 절대 아니었다.

혹시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를 싫어하는 건 아니냐고?

그런 건 아니다. '타이타닉'이 나오기 전까지는 카메론의 영화를 아주 좋아했으니까. 그렇다. '타이타닉'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타이타닉'이라고 하면 극장에서 영화를 다 본 다음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이 영화를 보러가자고 추천했던 녀석을 향한 살인의 충동을 삭히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밖에는 없다. 그래도 DVD로 가지고 있는 이유는, 젊었을 적 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이 가슴 내미는 걸 다시 보려고. 다른 파트는 다 넘어가고 그 장면으로 바로 점프! DVD 챕터메뉴를 발명한 사람에게 뽀뽀를 해주고 싶다니까!

'타이타닉'의 충격(?) 때문인지, 사실 '아바타'에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득찬 영화인 만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간지러운 영화가 되진 않으리라는 믿음은 생겼지만, 3D 이상을 기대하기는 힘들어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기술력에는 찬사를 보내게 되겠지만, 이것을 빼고는 기억에 남는 게 많지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 '아바타'는 딱 예상했던 수준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혹시 3D로 보면 생각이 달라지려나 싶어서 몇 푼 더 주고 3D로 봤지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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