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OHMSS', Happy 40th Birthday!

1969년 12월18일 여섯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가 북미지역에서 개봉했다.

그렇다. '여왕폐하의 007'은 단 한 편의 영화를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난 조지 래젠비(George Lazenby)의 바로 그 영화다.

1962년 '닥터노(Dr. No)'부터 1967년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까지 다섯 편의 007 시리즈에 제임스 본드로 출연했던 숀 코네리(Sean Connery)가 007 시리즈를 떠나자 007 제작진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를 물색했다. 여러 경쟁자를 제치고 제임스 본드 역을 차지한 건 배우경력이 없는 호주태생의 조지 래젠비.

많은 사람들은 그를 '실패한 제임스 본드'로 부른다. 단 한 편을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났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래젠비가 제임스 본드 역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데엔 동의하지 않는다. 숀 코네리가 제임스 본드로써 영화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조지 래젠비를 007로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래젠비가 제임스 본드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외모만으로는 지금까지 제임스 본드를 맡았던 여섯 명의 배우 중에서 이언 플레밍 원작의 캐릭터와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래젠비다. 그렇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원작의 제임스 본드와 매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배우들에 비해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욱 많이 눈에 띈다.


그러므로 만약 그가 제임스 본드로 계속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는 얘기다. 영화관객들이 조지 래젠비의 제임스 본드에 계속해서 적응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연기에 자신감이 생긴 래젠비가 멋진 제임스 본드로 성장했을 수도 있다. 래젠비의 약점은 배우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연기력이 부족했다는 것이었지만, 한 두편 더 하면서 점차 나아질 수 있었다. '여왕폐하의 007'을 촬영할 당시 래젠비의 나이가 만 29세였으므로 나이에 쫓기는 것도 아니었다.

007 제작진이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도 아니다. EON 프로덕션은 래젠비와 7편의 007 시리즈에 출연한다는 계약을 체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래젠비는 이를 거절했다. 히피가 판을 치는 세상에 턱시도를 입고 마티니를 마시는 구닥다리 스파이 얘기가 언제까지 통하겠냐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 래젠비의 에이전트도 제임스 본드는 한 물 간 시리즈라서 미래가 밝지 않다며 레젠비에게 계약을 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결국 래젠비는 '여왕폐하의 007' 한 편을 마지막으로 007 시리즈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007 시리즈는 래젠비가 007 시리즈를 떠난지 40년이 지난 2009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래젠비도 당시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래젠비 본인도 시인했듯이 그가 007 시리즈를 떠난 건 실수였다.

그렇다면 래젠비의 유일한 제임스 본드 영화, '여왕폐하의 007'은 어떤 영화일까? 걸작일까? 아니면 범작일까?


제임스 본드의 얼굴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007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신출귀몰한 가젯들까지 나오지 않는 '여왕폐하의 007'을 영화관객들이 좋아했을 리 없다. '골드핑거(Goldfinger)', '썬더볼(Thunderball)'과 같은 코네리 시절의 화려한 제임스 본드 영화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진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와 함께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으로 되돌아가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려 했지만, 많은 영화관객들은 이러한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가장 007영화답지 않은 영화를 하나 뽑아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여왕폐하의 007'을 선택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왕폐하의 007'은 새로운 007 시리즈 DVD 세트가 출시되어도 비인기 타이틀이라서 싱글로 발매되지 않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한마디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영화에 문제가 있기 때문 아니겠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여왕폐하의 007'은 전체 007 시리즈 중에서 몇 안되는 완성도 높은 영화 중 하나다. 제임스 본드의 얼굴이 바뀌고, 판타지 액션에서 플레밍의 원작으로 돌아간 것에 적응을 못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이 전부이지 영화에 큰 하자가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래젠비의 연기가 옥의 티였던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여왕폐하의 007'의 음악을 맡았던 작곡가 존 배리(John Barry)마저도 래젠비의 형편없는 연기를 가리기 위해 음악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됐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래젠비가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로 돌아왔었다면 보다 연기력이 나아진 그를 볼 수 있었지 않았겠냐고?

물론이다. 만약 그가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로 돌아왔었다면 보다 나아진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래젠비는 '여왕폐하의 007' 한 편을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났고, 그 결과 역대 제임스 본드 배우 중 연기력이 가장 떨어지는 배우로 기록되게 되었다.


주연배우의 연기력이 위태롭게 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영국 여배우 다이애나 리그(Diana Rigg)가 연기한 리딩 본드걸, 트레이시는 베스트 본드걸 중 하나로 꼽힌다. 트레이시는 범죄조직 보스, 드라코의 딸 테레사 드라코(Teresa Draco)다.

트레이시는 매우 특별한 본드걸이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제임스 본드의 아내가 되기 때문이다. 그녀가 바로 트레이비 본드(Tracy Bond)인 것.

1967년작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에서처럼 위장결혼을 한 것 아니냐고?

이번엔 아니다. 제임스 본드가 진지하게 청혼하고, 실제로 결혼식까지 올린다. 플레밍의 소설 뿐만 아니라 영화에도 제임스 본드와 테레사 드라코의 결혼식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 '여왕폐하의 007'은 전체 007 시리즈 중에서 가장 로맨틱한 영화다. 미국 재즈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Lois Armstrong)이 부른 주제곡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 역시 '러브테마'라 불러도 될 정도로 로맨틱한 곡이다.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는 영화제목과 다르다. 영화제목은 '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지만 주제곡 제목은 이와 다른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라는 것이다. 영화와 주제곡의 제목을 동일하게 만들던 전통에서 벗어난 것. 'Wa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는 영화제목과 다른 제목을 사용한 첫 번째 007 시리즈 주제곡이다.

그렇다면 주제곡의 제목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정답은 아주 간단하다: 바로 이언 플레밍의 동명소설에서다.


그렇다면 007 시리즈 주제곡 베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 루이 암스트롱의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를 한 번 들어봅시다.


그렇다고 '여왕폐하의 007'이 로맨스 영화인 건 아니다. 영화의 쟝르는 변함없이 '제임스 본드'이기 때문이다.

물론 'LOGIC'이라는 것까지 내팽개치고 스타일리쉬안 액션만을 보여주는 데 전념했던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와 같은 007 시리즈와 비교한다면 '여왕폐하의 007'은 액션이 빈약한 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억지로 짜맞춘 듯한 어색한 논스톱 액션씬은 '여왕폐하의 007'에서 찾아볼 수 없다. 반드시 필요할 때만 액션씬이 나오기 때문이다. 덕분에 바보스러울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액션씬으로 망가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온 22개의 007 영화 중 이것 때문에 망가진 영화가 상당히 많지만, '여왕폐하의 007'은 예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액션씬은 스위스의 멋진 설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키 체이스씬이다. 007 시리즈에 스키 체이스씬이 등장한 건 '여왕폐하의 007'이 처음.

그렇다. '여왕폐하의 007'은 007 시리즈와 스키 체이스씬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든 영화다. '여왕폐하의 007'의 스키 체이스씬은 아직도 007 시리즈 최고로 꼽힌다.


악역 블로펠드(Blofeld)를 맡았던 미국배우 텔리 사발라스(Telly Savalas)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텔리 사발라스는 007 시리즈에서 블로펠드 역을 맡았던 배우 중 최고로 꼽힌다. 텔리 사발라스의 블로펠드는 코믹북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 하지 않았으며, '한다면 한다'는 매우 위협적인 캐릭터였다.


그런데 웬 "Merry Christmas, 007"이냐고?

'여왕폐하의 007'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한 영화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바로 앞두고 개봉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도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작곡가 존 배리는 영화를 위해 'Do You Know How Christmas Trees are Grown'이라는 크리스마스 노래까지 만들었다. 덴마크 여가수 니나(Nina)가 부른 이 노래는 루이 암스트롱의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크리스마스 캐롤이라고 할 만한 곡이 007 시리즈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다. '여왕폐하의 007'은 스위스의 아름다운 설경과 크리스마스 분위기, 제임스 본드와 트레이시의 로맨스, 그리고 훌륭한 사운드트랙 등 흡잡을 데가 많지 않은 영화다.

정말 흠잡을 데가 많지 않을까?

2006년작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이 나오기 이전까지 007 시리즈 중에서 런타임이 가장 긴 영화가 바로 '여왕폐하의 007'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결점이 아니다.

물론 '골드핑거(Goldfinger)', '썬더볼', '두 번 산다' 등 이전의 007 영화와 많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지나친 과장과 논스톱 액션을 배제하고 플레밍의 원작에 충실히 영화화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결점이라고 할 수 없다. 변화가 취향에 맞지 않을 수는 있어도, 원작에 충실하게 만든 것을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결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연기가 불안했던 조지 래젠비 하나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크게 방해되지 않는다. 새로운 얼굴에 적응하기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래젠비의 불안한 연기 때문에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멋진 로케이션과 본드걸, 음악, 스턴트 등으로 래젠비의 어색함이 많이 가려진 덕분이다.

그래도 '만약 래젠비의 연기력이 조금 더 나았더라면...', '래젠비보다 연기력이 좋은 배우가 제임스 본드였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007 제작진이 래젠비를 제임스 본드로 캐스티한 것이 실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왕폐하의 007' 한 편만 놓고 따지면 아쉬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왕폐하의 007'이 007 시리즈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숀 코네리의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도 좋았지만, '여왕폐하의 007'처럼 다양한 매력과 볼거리를 갖춘 영화는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나온 22편의 오피셜 제임스 본드 시리즈 중 내가 가장 많이/자주 본 영화가 '여왕폐하의 007'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X9년에 개봉했던 007 시리즈 네 편을 모두 둘러봤다.

1979년 6월 - '문레이커(Moonraker)'
1989년 7월 - '라이센스 투 킬 (Licence To Kill)'
1999년 11월 - '언리미티드 (The World is not Enough)'

그리고, 마지막으로 1969년 12월 - '여왕폐하의 007'

아, 그렇다면 이전에 했던대로 '여왕폐하의 007'도 콜렉티블 몇 개를 소개하면서 끝내야겠지?






JAMES BOND WILL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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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

  1. 저도 역시 OHMSS가 좋습니다.
    아울러 저의 best는 casino royale, OHMSS, FRWL 이 정도 입니다.
    골드핑거는 아무래도 그 다음이 될 것 같구요.
    거기에 for your eyes only도 좋았습니다.
    전 아무래도 가젯 위주의 영화보다는 스토리 위주가 더 좋더군요.
    포스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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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전에 베스트 본드무비 순위를 뽑았던 적이 있는데요. 저는 'OHMSS'가 1위, 'FRWL', 'Casino Royale', 'For Your Eyes Only' 순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어 아이스 온리'는 이언 플레밍 원작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모두 좋아하게 되어있죠...^^

    저도 가젯위주의 영화는 이해는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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