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4일 일요일

'언스토퍼블', 흥미진진했지만 특별하진 않았다

토니 스캇(Tony Scott)과 댄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이 또 뭉쳤다. 이들 두 유명이 함께한 영화가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다. 2009년엔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스릴러 영화 '펠햄 123(The Taking of Pelham 123)'에서 함께 하더니 1년만에 또다른 열차영화로 돌아왔다.

그렇다. 이번에도 또 열차에 관한 영화다.

토니 스캇과 댄젤 워싱턴의 2010년작 '언스토퍼블(Unstoppable)'은 매우 위험한 화학물질을 싣고 기관사 없이 혼자서 폭주하는 화물열차에 대한 영화다. 기관사의 부주의로 인해 혼자 달리게 된 화물열차가 위험물질을 가득 실은 채 인구 밀집지역으로 돌진하는 긴박한 순간을 그린 스릴러다.

문제는 맹렬한 스피드로 혼자 달리는 정신나간 열차를 어떻게 멈추냐는 것.

다른 화물열차의 기관사, 프랭크(댄젤 워싱턴)와 윌(크리스 파인)이 '미사일 열차 세우기' 작전에 자원한다. 문제의 열차가 인구 밀집지역에 진입하기 직전에 있는 급커브에서 탈선해 대참사를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폭주 열차 추격에 나선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간단하다. 폭주열차가 문제의 급커브에 도달하기 전에 세우거나 탈선하지 않도록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폭주 화물열차 사건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

2001년 오하이오 주에서 발생한 화물열차 폭주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언스토퍼블'의 플롯이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실제로, '언스토퍼블'은 2001년 발생한 'Crazy Eights' 8888호 폭주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다. 사건 발생장소를 오하이오 주에서 펜실배니아 주로 옮겼으며,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모두 바꿨을 뿐만 아니라 사고규모도 실제보다 크게 부풀렸으므로 '실화'라고 하긴 힘들지만, 실제 발생했던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것만은 사실이다.

실제로 있었던 그대로 영화로 옮기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별다른 사건 없이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폭주열차를 세우기 위해 비상이 걸렸고, 위험한 추격전까지 벌어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에서처럼 드라마틱한 액션은 없었다.

그렇다면 실제 있었던 사건에 픽션을 보태는 작업을 깔끔하게 했을까?

2001년 오하이오 주 8888호 사고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것 까지는 그다지 나쁜 아이디어는 아닌 듯 했다. '폭주열차를 사고가 나기 전에 세우기 위해 추격한다'는 데 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정차해 있는 기관차만 봐도 그 사이즈에 압도되는데, 맹렬한 속력으로 달리는 거대한 쇳덩어리를 세운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 지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열차가 기관사 없이 혼자서 달린다니까 약간 코믹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위험물질을 가득 싣고 미친 듯이 달리는 열차를 세우는 일은 그리 코믹하지 않다는 것도 제대로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과의 싸움', '회사밖에 모르는 경영진' 등 클리셰가 기차놀이를 하면서 부터 김이 새기 시작했다. 시간에 쫓기는 영화, 부정적인 이미지의 회사 간부들이 나오는 영화들이 얼마나 많은 지 생각해 보면 무슨 얘기인 지 이해가 갈 것이다. 처음 보는 영화였는데도 이전에 이미 여러 번 본 것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폭주열차에 기계 결함이 있는 게 아니라 실수에 의해 혼자서 달리게 된 것이었으므로, 누군가가 문제의 기관차에 오르는 순간 모든 게 해결된다는 점이 빤히 보였다는 것이다. 이건 스포일러조차 될 수 없다. 2001년에 발생했던 실제 사건도 이렇게 끝났고, 영화도 결국엔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다는 건 상식적인 문제였다. '위험물질을 실은 화물열차가 폭주한다'는 설정까지는 제법 근사하게 들렸으나 '기관차에 타서 세우면 그만'이라는 답이 이미 나와있었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기 위해 이 과정을 크게 부풀려 과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스릴이 부족했다. 어떻게 전개될 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거대한 화물열차를 세우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두 캐릭터의 이야기는 그런대로 흥미진진했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서 영화를 스릴넘치게 만들고자 하는 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다. '언스토퍼블'도 결국엔 그렇고 그런 스릴러에 불과했다. 요새 본 토니 스캇 감독의 영화들이 거의 모두 80년대 영화처럼 보였는데, '언스토퍼블'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당한 배우인 댄젤 워싱턴이 주인공을 맡았고, '스타 트렉(Star Trek)'에서 캡틴 커크 역을 맡았던 크리스 파인(Chris Pine)이 공동 주연을 맡았다는 점 등은 괜찮았지만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게 없었다. '토니 스캇과 댄젤 워싱턴이 함께 한 또하나의 열차영화'라는 점만 자꾸 맴돌 뿐이었다. 아마도 2년 연속으로 열차영화를 함께 만들었기 때문인 듯 하다.

그러고 보니 토니 스캇이 탈것(Vehicle)과 관련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듯 하다. '탑 건(Top Gun)'은 전투기였고, '데이즈 오브 썬더(Days of Thunder)'는 자동차,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는 잠수함, 그리고 '펠햄 123'와 '언스토퍼블'은 열차영화다. '스타 트렉'의 엔터프라이즈 호 캡틴까지 데려온 걸 보니 다음 번엔 우주선 영화를 만들려는 것일까?

예전엔 토니 스캇의 영화를 재미있게 봤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달라지고 있다. 물론, 이번 '언스토퍼블'은 작년의 '펠햄 123'보다는 맘에 들었다. 아주 맘에 들진 않았어도 작년 영화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거대한 기관차의 크기에 압도되었던 것을 제외하곤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왜 자꾸 '사이즈' 타령을 하냐고?

얼마 전에 내가 친구에게 "덩치가 큰 SUV를 한 번 사볼까?" 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녀석이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왜냐고 묻자 "네가 SUV 끌면 그 차는 무조건 키트(Kitt)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큰 차는 덩치가 큰 사람이 끌어야지 작은 사람이 끌면 차가 혼자 가는 줄 안다"고 하더라. 주위 사람들이 "저 차 혼자 간다!"며 발칵 뒤집어지는 걸 보고싶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MINI 같은 거나 끌어라 이거지?

여기서 한가지 자백할 게 있다.

댄젤 워싱턴과 크리스 파인이 세우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폭주 화물열차 기관차에 아무도 없었던 게 아니다. 사실은 내가 타고 있었다...

댓글 2개 :

  1. 영화 관점은 다 주관적이니깐요... ㅎㅎㅎ
    마지막 한줄에 뿜었습니다. ^^
    오공님 지금 아시안 게임이 한창인데, 멀리서나마 우리나라 응원 열심히 해주세요~~~
    거긴 아직 14일 새벽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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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진짜로 안 보였나봅니다. 심각하게 따라오더라구요...ㅋㅋ

    아시안 게임은 볼 수가 없는 게 흠입니다.
    그래도 응원은 합니다...ㅋㅋ
    여긴 14일 아침 해 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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