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씬시내티 뱅갈스, 역시 안 풀리는 팀은 지는 방법을 안다

씬씨내티 뱅갈스(Cincinnati Bengals)가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팀 이름은 '뱅갈스'인데 '동네 야옹이'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뱅갈스는 인디아나폴리스 콜츠(Indianapolis Colts)와의 원정경기에서 23대17로 패하며 2승7패로 떨어졌다. 수퍼보울 콘텐더로 꼽혔던 팀이 디비젼 꼴찌로 떨어진 것이다.

왠지 '누구'와 비슷해 보인다고?

그렇다. 달라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다. 실력 면에선 만만치 않은 팀이면서도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지는 방법을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만들어 낸다는 점이 두 팀의 공통점이다.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New England Patriots)와 인디아나폴리스 콜츠(Indianapolis Colts) 등이 "They know how to win the game"이라는 평을 듣는 팀이라면 카우보이스와 뱅갈스는 "They know how to lose the game" 그룹에 속한다.

인디아나폴리스 콜츠를 한 번 보자. 콜츠는 한마디로 부상자로 가득한 팀이다. 타잇엔드, 와이드리씨버, 러닝백, 세이프티 등등 공-수를 가리지 않고 속출한 주요 선수들의 부상으로 곤경에 빠진 팀이다. 그러므로 NFL에서 강팀이라고 불리는 팀이라면 전력이 약해진 지금의 인디아나폴리스 콜츠를 꺾을 수 있어야 한다. 여전히 페이튼 매닝(Peyton Manning)이 버티고 있다지만, 타잇엔드, 와이드리씨버, 러닝백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드러누운 상태에선 그 혼자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콜츠가 부상에 시달리지 않는다면 이기기 매우 힘든 상대로 분류해야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콜츠 오펜스는 부상으로 빠진 주요 선수들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부쩍 늘어난 인컴플릿 패스와 드롭 패스 등으로 공격이 원활하게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필라델피아 이글스(Philadelphia Ealges)와의 경기에선 꽤 큰 점수차로 패할 뻔 했다.

그러나 씬시내티 뱅갈스는 '인디아나폴리스 부상자들'을 상대로 맥을 추지 못했다. 경기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17대0으로 뒤처졌다. 뱅갈스 쿼터백 카슨 팔머(Carson Palmer)는 콜츠 수비에 인터셉션 리턴 터치다운까지 내줬다. 팔머는 90년대를 풍미했던 달라스 카우보이스 쿼터백 트로이 에익맨(Troy Aikman)과 비견되기도 하는 솔리드한 쿼터백이지만, 콜츠와의 경기에선 3개의 인터셉션을 기록하며 흔들렸다.

그러나 지난 주 피츠버그 스틸러스(Pittsburgh Steelers)와의 경기에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던 와이드리씨버 채드 존슨 오초싱코(Chad Johnson Ochocinco)는 달랐다. 오초싱코는 몇몇 멋진 캐치를 선보이며 뱅갈스가 17대10, 7점차로 따라붙는 데 일조했다.




후반 들어 페이튼 매닝의 콜츠 오펜스까지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뱅갈스는 경기 종료를 3분여 남겨두고 6점차까지 따라붙었다. 계속 이어진 어이없는 턴오버 때문에 득점 기회를 번번히 놓치곤 했지만, 마지막 터치다운을 성공시키면 1점차로 역전승을 거둘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타임아웃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 뱅갈스에겐 온사이드킥을 시도하는 방법밖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온사이드킥을 성공시킬 확률이 낮긴 해도 그 상황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뱅갈스가 온사이드킥을 성공시켰다! 콜츠에 공격권을 넘겨주지 않고 계속 공격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비록 타임아웃은 없었으나 2분35초 가량이 남아있었으므로 역전 터치다운을 할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그 힘든 온사이드킥까지 성공시키면서 막판에 경기의 흐름을 뱅갈스 쪽으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뱅갈스는 이렇게 힘겹게 얻은 절호의 기회를 또 턴오버로 날려버렸다. 루키 타잇엔드 저메인 그리섐(Jermaine Gresham)이 펌블을 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펌블의 원인은 그리섐의 미련스러운 플레이 때문이었다.

1인치라도 더 전진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하는 게 옳긴 하지만, 현명한 선수들은 언제 포기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다. 마지막까지 계속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팀 수비수들이 펌블을 노리는 상황에선 야드보다 안전을 택하는 게 현명할 때가 많다. 몇 야드 덜 가더라도 펌블로 턴오버를 당하는 것 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섐은 생각이 달랐다. 결국 그는 콜츠 디펜스가 펌블을 노리고 있었던 상황에 미련스럽게 밀어부치다가 공을 흘리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뱅갈스는 경기 다섯 번째 턴오버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 콜츠가 또 펀트를 하면서 뱅갈스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뱅갈스 오펜스가 경기를 계속할 의욕을 상실한 이후였다는 점이다. 그리섐의 펌블로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고 완전히 김이 빠져버린 뱅갈스 오펜스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해보려는 시도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두 번 내리 연속으로 쌕을 내준 뒤 맥없는 인컴플릿 패스로 경기를 마쳤다.

파이널 스코어는 콜츠 23, 뱅갈스 17.

달라스 카우보이스 팬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얘기겠지만, 역시 안 풀리는 팀은 지는 방법을 아주 잘 찾는다. 제발등을 찍는 재주도 좋을 뿐만 아니라,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카우보이스는 시즌 첫 경기에서부터 그 실력을 뽐냈다. 카우보이스는 워싱턴 레드스킨스(Washington Redskins)와의 시즌 오프너에서 닐 다운(Kneel Down)으로 전반을 마치면 되었을 상황에 무리한 플레이를 시도하다가 되레 펌블 리턴 터치다운을 내주며 무너졌다.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로 카우보이스는 매 경기 마다 희한한 방법으로 득점기회를 놓치거나 실점하는 비범한 능력을 과시했다.

씬시내티 뱅갈스도 카우보이스와 닮은꼴이다. 곧잘 할 것 같은 팀이면서도 매번 삽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달라스 카우보이스 출신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일까?

와이드리씨버 터렐 오웬스(Terrell Owens), 세이프티 로이 윌리암스(Roy Williams) 등을 비롯해 카우보이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선수들이 제법 많은 팀이 바로 뱅갈스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코치도 마찬가지다. 수비를 책임지는 디펜시브 코디네이터 마이크 지머(Mike Zimmer)는 전 달라스 카우보이스 디펜시브 코디네이터 출신이다. 카우보이스 출신들이 이렇게 많다 보니 뱅갈스는 '카우보이스 노스(North)'로 불리기도 했다.

역시 뱅갈스의 불운도 카우보이스 때문인 걸까?

FOX가 2010년 가을 시즌에 야심차게 선보였던 새 TV 시리즈 '론 스타(Lone Star)'가 시리즈 프리미어부터 죽을 쑤며 조기종영된 것도 카우보이스 때문이 아닐까 싶다. '론 스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달라스 카우보이스니까.

어찌되었든 간에, 씬시내티 뱅갈스의 2010년 시즌도 카우보이스와 마찬가지로 끝난 듯 하다. 강호 피츠버그 스틸러스(Pittsburgh Steelers)와 발티모어 레이븐스(Baltimore Ravens), 그리고 예상밖의 선전을 펼치고 있는 클리블랜드 브라운스(Cleveland Browns)와 같은 AFC 북부에 속한 뱅갈스가 2승7패를 극복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은 거진 제로에 가깝다.

뱅갈스 헤드코치 마빈 루이스(Marvin Lewis)도 내년엔 다른 팀 모자를 쓰고 있지 않을까...




댓글 2개 :

  1. ㅎㅎㅎ
    역설적으로 이기는 법이 아니라 지는 법이군요? 후후
    역시 오공님은 글을 너무 잘 쓰는 것 같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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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상대 팀이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혼자서 질 줄 아는 능력...
    이거 참 대단한 거 같습니다...^^
    안 풀리는 팀은 상대 팀이 선수를 모두 빼고 치어리더를 내보내도 질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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