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0일 일요일

'한나', 진지하게 보기엔 너무 아동틱한...

Saoirse Ronan이 출연한 영화를 볼 때 마다 고민이 하나 생긴다 - 그녀 이름을 도대체 어떻게 써야 옳으냐다. Ronan까지는 알겠는데, 문제는 Saoirse다. 지난 번엔 '시어샤'라고 했는데, 이번엔 '써샤'로 바꾸기로 했다. Saoirse가 어떻게 '써샤'로 발음되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더 정확한 것 같아서다.

아무튼 바로 그녀, 써샤 로난의 새 영화가 개봉했다.

'어톤먼트(Atonement)'에서 함께 했던 영국 영화감독 존 라이트(John Wright)와 다시 뭉친 써샤 로난의 새 영화는 '한나(Hanna)'. 'Hanna'도 실제론 '해나'로 발음되지만 한글로 쓸 땐 '한나'가 보다 알맞은 것 같아서 그렇게 쓰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번 영화는 이름으로 스트레스를 좀 주는 영화인 듯...

이번 영화에서 써샤 로난이 맡은 주인공 한나는 평범한 틴에이저 소녀가 아니다. 숲속의 오두막에서 아버지 에릭(에릭 바나)과 단둘이 살면서 학교도 가지 않고 특수 훈련을 받은 킬러다. 한나는 학교 교육을 받지 않는 대신 아버지와 함께 백과사전을 읽으며 홈 스쿨링을 한다.

잠깐!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다고?

아마도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제임스 본드 소설 '닥터 노(Dr. No)'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 허니차일 라이더(Honeychile Rider)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일 것이다. 허니 라이더는 눈이 내리는 북극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나처럼 특수훈련을 받은 킬러도 아니다. 하지만 블론드의 틴에이저 소녀라는 점, 인간 사회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야생녀'처럼 성장했다는 점, 백과사전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홈 스쿨링'을 했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다. 한나가 TV 리모콘, 선풍기 등 전자제품들을 다루지 못해 쩔절매는 장면도 '닥터 노'에서 허니 라이더가 현대식 욕조를 사용할 줄 몰라 난감해 하던 장면과 겹쳐졌다. 본드걸과의 공통점이 이처럼 여럿 눈에 띈 이유는 아마도 영화감독을 비롯해서 여러 명의 영국 영화인들이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한나는 왜 숲속에서 프로페셔널 킬러 훈련을 받으며 성장한 것일까?

한나의 미션은 미국 에이전트 마리사(케이트 블랜칫)를 찾아가 복수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리사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그녀 역시 한나와 에릭(에릭 바나)이 자신을 없애기 위한 작전을 개시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킬러들을 동원해 에릭과 한나 부녀를 추적한다.

그렇다. '한나'도 스파이 스릴러에 속하는 영화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 전에 한가지 혼란스러운 점이 있었다. 어린이용 영화인지 성인관객들을 겨냥한 영화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1994년생의 어린 여배우가 주인공인 만큼 아무래도 틴에이저를 겨냥한 영화가 아니겠나 싶었지만, 에릭 바나(Eric Bana), 케이트 블랜칫(Cate Blanchett), 톰 홀랜더(Tom Hollander) 등 굵직한 배우들이 여럿 출연한다는 점을 보면 유치찬란한 아이들용 영화는 아닐 것 같았다.

그러나 '한나'는 역시 어린이용 영화일 뿐이었다.

시작은 좋았다. 그러나 미군들이 한나를 사막 한복판에 있는 미국 에이전시의 비밀 시설로 데려가면서부터 수상해지기 시작했다. 시설 밖으로 빠져나온 한나가 어린 남매와 함께 캐러밴(Caravan)을 타고 여행을 하는 관광객 가족을 만나게 되는데, 한나 이외의 또다른 어린이/틴에이저 캐릭터의 등장은 영화가 어린이용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신호와 같았다.

그래도 여기까진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이해가 가지 않는 설정에 어리둥절해졌다. 히피들처럼 캐러밴을 타고 여행을 하는 관광객 가족이 등장했길래 장소가 미국에 있는 어느 한 사막이겠지 했는데, 알고 봤더니 미국이 아니라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였다. 물론 온가족이 함께 허름한 캐러밴을 직접 운전하면서 모로코 사막 관광을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보였고, 여기서부터 서서히 정리가 잘 안 되기 시작했다.

제작진이 모로코를 고집한 이유는 아마도 유럽을 무대로 한 스파이 스릴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곳 중 하나가 모로코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밖에 또 다른 나라를 꼽으라면 독일이 있다. 독일도 유럽을 배경으로 한 스파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나라 중 하나다.

모로코를 떠난 한나가 향한 목적지도 독일이었다.

그렇다. '한나'는 스파이 스릴러 포뮬라를 어설프게 흉내낸 어린이용 영화였다. 출연배우들의 연기는 좋았고 나름 스릴감도 느껴질 때가 있었지만, 이미 식상한 스파이 영화 탬플릿을 사용하는 것에만 신경을 쏟았을 뿐 스토리를 비롯한 나머지 부분을 소홀하게 다룬 영화였다. 제작진은 청소년과 성인 관객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를 목표로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돈도, 여권도, 보호자도 없는 틴에이저 소녀가 제임스 본드처럼 세계 여러 곳을 홀로 여행한다는 설정에 억지로 맞추려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만약 모로코, 독일 타령을 접어두고 미국 안으로 스케일을 줄였더라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북극에서 모로코를 거쳐 독일로 간다는 세계여행 코스 대신 알래스카에서 네바다를 거쳐 뉴욕으로 가는 코스를 택했더라면 스토리에 조금 더 믿음이 갔을지도 모른다. 한나가 사막에서 캐러밴 여행 가족을 만나 이들과 함께 이동한다는 설정도 만약 장소가 미국이었더라면 보다 자연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해외여행을 고집했다. 무늬만이라도 요새 유행하는 스파이 스릴러처럼 보이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She-본드, She-본, 또는 Teen-키타(틴에이저 니키타) 같은 영화처럼 보이도록 만들 수 없었다. 오히려 방해가 됐다. 너무 억지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역효과만 냈을 뿐이니까.

이 바람에 '한나'는 성인들이 보는 영화에 틴에이저가 주인공을 맡은 영화가 아니라 성인이 진지하게 보기엔 너무 아동틱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모든 게 맘에 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한나'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뭐니뭐니 해도 영국의 일렉트로니카 그룹 The Chemical Brothers의 사운드트랙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디즈니의 '트론(Tron Legacy)' 사운드트랙은 프렌치 하우스 그룹 Daft Punk가 맡더니 '한나'는 영국의 The Chemical Brothers가 맡았다.

요새는 일반 영화음악 작곡가가 아닌 댄스/일렉트로니카 전문 뮤지션에게 영화음악을 맡기는 것이 유행인 것일까?

유행이든 아니든 간에 The Chemical Brothers의 '한나' 사운드트랙은 아주 맘에 들었다. 마치 음악의 분위기에 맞추려고 한 듯 영화의 화면을 뮤직비디오처럼 빙빙 돌리는 오버를 한 부분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음악은 들을 만 했다. 영화 사운드트랙을 일렉트로 사운드의 곡으로 확실하게 채우고 싶다면 그쪽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게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반 작곡가들이 흔한 샘플과 사운드로 지극히도 평범한 곡을 만들고 있을 때 전문가들은 귀에 착 달라붙는 곡을 만들 테니 말이다.

사운드트랙 얘기가 나온 김에 그 중에서 베스트라 할 수 있는 곡 'Container Park'을 한 번 들어보자.


그럼 사운드트랙을 빼곤 전부 꽝?

그런 건 아니다. 영화에서도 가능성이 엿보였다. 문제점들이 눈에 더 많이 띈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주 잘못된 영화는 아니었으며, 조금만 더 다듬으면 틴에이저 여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나름 흥미로운 액션 시리즈가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도 함께 보였다. 틴에이저 소녀 수퍼스파이 또는 비디오게임 '힛맨(Hitman)'과 같은 프로페셔널 킬러 시리즈로 이어지면 괜찮을 것 같았다. 촉망받는 미국의 틴에이저 배우 써샤 로난은 차가운 킬러 한나 역에 아주 잘 어울려 보였고, 유머도 적절했으며, 비록 약간 빗나가긴 했어도 스릴러 영화 분위기도 어느 정도 풍기는 것이 그런대로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과연 '한나'가 시리즈로 이어질 수 있을까?

Why not? 속편이 나온다면 또 보고 싶다. 비록 이번 영화는 썩 맘에 들진 않았지만, 만약 속편이 나온다면 넌센스 파트와 지나치게 아동틱한 파트를 조금만 줄이면 제법 볼 만한 영화가 될 것 같다. 지금까지는 틴에이저 소년들의 하이스쿨 스파이 영화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런 영화보다 진지하고 인텐스한 틴에이저 시스터의 KICK-ASS-MOVIE가 또 나온다면 마다할 이유가 있겠수?

댓글 6개 :

  1. 나름 혹평과는 다르게, 음악은 스릴있네요. ㅎㅎㅎ
    만족, 불만족이 오갔던 영화인 듯 싶네요.
    억지설정은 좀 자제해야 할 듯?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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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다른 건 제쳐놓더라도 음악은 참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격투, 체이스씬 배경음악으로 아주 잘 어울리더라구요.
    아마도 듣는 이를 흥분시키는 방법을 잘 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히 클럽뮤직을 하는 사람들은 그쪽 전문가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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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음악은 정말 좋군요~
    역시 케미컬 브라더스의 빅비트 스타일이 참 좋네요.
    영화도 꼭 봐야겠슴다.

    그나저나 스필버그 옹이 에르제의 땡땡(Tin Tin)을 영화로 만들고 계시다는 소문이 있던데 빨리 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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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번주에 개봉했다고 들었는데 꼭 한번 보러 가봐야 겠습니다.
    스토리에 대해서는...음....
    우선 보고 나서 평가해봐야 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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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사실 전 브레이크비트 스타일은 즐겨 듣지 않는데요,
    영화, 비디오게임, TV광고 BGM으로 잘 어울리는 곡들이 좀 있는 것 같더라구요.
    요새 케미컬 브러더스의 곡이 영화에 자주 나오는 것 같습니다.

    틴틴은... 겨울인가요?
    전 캐리비언4, 트랜스포머3, 카우보이 앤 에일리언 등 여름철 영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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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이번 주에 개봉했는데요,
    그럼 우선 먼저 영화를 보시고 소감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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