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8일 수요일

내게 지금 필요한 건 투명 자동차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주연의 2002년 제임스 본드 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 아주 재미있는 자동차가 하나 등장했다.

그렇다. 투명 자동차다.

영화에 나온 아스톤 바틴 뱅퀴시(Aston Martin Vanquish)는 자동차 바디 전체에 소형 카페라와 디스플레이가 부착되어있어서, 한쪽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반대편 디스플레이를 통해 보여주는 식으로 투명 위장이 가능한 기능을 갖춘 자동차였다. 오른쪽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왼쪽 바디 디스플레이에 보여주고, 왼쪽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오른쪽 바디 디스플레이에 보여주는 식으로 투명 위장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저게 말이 되는 얘기냐고?

지난 2000년대 초 일본의 도쿄 대학교에서 실험한 것을 보면 'Adaptive Camouflage'라는 게 완전히 말이 안 되는 건 아닌 듯 하다. 영화에서처럼 자동차를 바디에서 타이어까지 통째로 감쪽같이 사라지게 하는 건 지금 당장은 불가능한 기술인 지 몰라도 투명 망토, 투명 자동차 같은 게 완전히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닌 듯 하다.


여기서 잠깐!

아니 무슨 짓을 하고 싶길래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리를 하냐고?

내게 필요한 건 투명 인간이 아니라 투명 자동차다.

아마 투명 인간이나 투명 망토는 도미닉 스트라우스-칸(Dominique Straus-Kahn)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장비일 것이다. 생각해 보라. 만약 스트라우스-칸이 투명 망토를 입고 성기만 꺼내놓은 상태였다면 호텔 여직원이 그를 알아볼 수 있었겠수? 다른 신체 부위는 안 보이고 성기만 덜렁거릴 뿐인 광경을 상상해보면 그리 유쾌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것만 있었더라면 IMF 총재에서 I AM FUCKED 총재로 떨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아직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여기까지만 놀리고 넘어갑시다.

그런데 나는 왜 투명 자동차가 필요하냐고?

그 빌어먹을 과속 단속 카메라에 또 당했다. 그것도 유니버설의 '패스트 파이브(Fast Five)'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말이다. 걸린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 보니 딱 그 날이었다.

아니다. 빈 디젤(Vin Diesel) 주연의 자동차 액션영화를 보고 괜히 흥분해서 과속하다 걸린 건 아니다. 어렸을 적엔 여운이 오래 가곤 했지만 요샌 영화관 좌석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영화의 세계에서 바로 벗어나기 때문에 그런 멍청한 실수를 하지 않는다. 이 나이에 '패스트 파이브' 같은 웃기지도 않는 영화를 보고 흥분해서 길거리에서 방방거리고 밟을 일이 있겠수? 내가 원래 나이를 먹었는지 좀 의심스러운 놈이란 소리를 듣는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무엇이었을까?

그 코스가 밟기 딱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자주 지나는 길이었는데 그곳을 지날 때 마다 이상하게 항상 속도를 내게 되곤 했다. 35마일 존이었지만 '만약 내가 경찰이라면 항상 여기서 스피드건을 들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차들도 다들 빨리 달렸다.

하지만 이렇게 밟기 좋은 코스에선 항상 본능적으로 경찰을 경계하게 된다. 이곳이 과속 적발하는 데 명당 자리라는 것을 경찰도 알고있을 테므로 스피드 건을 들고 수시로 진을 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이전에 살았던 주에선 경찰이 과속 적발을 위해 수풀 속에 엎드려 스피드 건을 쏘며 길목을 지키기도 했다. 무슨 네이비 실스 스나이퍼도 아니고, 교통 경찰이 도로 옆 수풀에 엎드려서 스피드 건을 쏘고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경찰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과속을 단속하는 것이냐, 아니면 티켓을 주기 위해 하는 것이냐"며 항의를 했다. 내 기억에 의하면, 결국 경찰이 사과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고 끝났던 것 같다.

그러므로 이 동네 경찰들도 그렇게 하지 말란 법이 없어 보였다. 수풀에 숨어 스피드 건을 쏘는 오버는 하지 않더라도 이와 같은 명당 자리를 경찰이 외면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몇 년 동안 그 길에서 과속 단속을 하는 경찰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경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은 있어도 스피드 건을 들고 과속 단속을 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더니 집으로 스피딩 티켓이 날아왔다. 우편물 봉투에 적힌 주소를 본 순간 '아, 또 찍혔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35마일 존에서 47마일로 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에서 찍힌 것인지 궁금했다. 카메라가 있는 곳을 대충 알고 있기 때문에 그곳을 지날 땐 기어서 지나가곤 하는데 어디서 '기습'을 당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어디에서 잡힌 것인지 위치를 확인해봤다.

그랬더니, 바로 거기였다. 밟기에 좋다던 바로 그 길 말이다. 경찰이 과속 단속하기에 딱 좋은 명당 자리로 보이는데도 경찰이 보이지 않아 방심했던 바로 그 길에 카메라를 설치했던 것이다.

거기에 카메라를 설치할 줄 누가 알았겠수?ㅠㅠ

사실 카메라가 경찰 단속에 걸리는 것보다 더 거지 같다. 왜냐, '디스카운트'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에게 걸렸을 때엔 "15마일 오버했지만 10마일 오버한 걸로 해주겠다"며 '디스카운트'를 받은 적이 많았는데, 카메라라는 빌어먹을 기계에는 이러한 인간미를 기대할 수 없다. 그저 찍힌 대로 처리해서 보낼 뿐이다. 그래서 카메라에 걸리는 걸 가장 싫어하는데 이번에 또 카메라에 찍히고 말았다.

이렇다 보니 내게 가장 필요한 게 다름아닌 투명 자동차가 됐다. 카메라에 안 잡히려면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젠 그만 좀 찍어라...ㅠㅠ



댓글 4개 :

  1. 과속카메라에 걸리셨네욤~ 범칙금으로 나라에 돈 받치는 건 싫더라고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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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카메라 정말 골치아픕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예전엔 과속 카메라가 있다는 표지판이 먼저 눈에 띄었는데 요샌 이것도 치운 것 같더라구요.
    투명 자동차가 유일한 희망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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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투명 자동차 모두가 갖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ㅎㅎㅎ
    투명차가 발명되기는 할런지... ㅋㅋㅋ
    쌩쌩~~~ 씽씽~~~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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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투명 자동차가 진짜로 나오면... 운전 못하죠...^^
    보이는 게 없으니...
    하지만 군사용으로는 나옴직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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