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6일 월요일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마이클 패스벤더는 미래의 제임스 본드?

새로운 '엑스맨(X-Men)' 영화가 개봉했다. 전편 '엑스맨 오리진스: 울버린(X-Men Origins: Wolverine)'이 울버린의 탄생 과정을 그린 프리퀄이었다면, 이번에 개봉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X-Men: First Class)'는 프로페서 엑스와 매그니토의 과거 이야기를 그린 또다른 프리퀄이다. 인기가 시들해진 '엑스맨' 시리즈를 되살리기 위해 연거푸 프리퀄을 시도한 듯 하다.

하지만 '엑스맨' 시리즈의 세계에 대해 아는 게 거진 없는 관계로 그리 흥미가 끌리는 영화는 아니었다.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와 호주 배우 휴 잭맨(Hugh Jackman)이 '엑스맨' 영화 시리즈에서 울버린을 연기했다는 정도를 아는 게 전부였으니까.

(휴 잭맨은 이번 영화에도 카메오로 출연해 욕 한마디 하고 사라진다...)

그런데도 영화는 그럭저럭 볼 만 했다.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워낙 많이 쏟아지는 바람에 이젠 완전히 식상한 상태라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만족스러웠다. 프리퀄인 만큼 '누가 어떻게 하다가 아무개가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지만, 지루하거나 너무 한심스럽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대로 흥미진진했다. '엑스맨' 유니버스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 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본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에릭/매그니토 역으로 출연한 마이클 패스벤더(Michael Fassbender)를 보기 위해서였다.

왜냐? 그가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패스벤더는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물러나면 그 뒤를 이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으며,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연출한 영국 영화감독 매튜 반(Matthew Vaughn) 역시 그를 제임스 본드 후보감으로 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영화 자체 부터 007 시리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다른 영국의 젊은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매튜 반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티가 났다. 영화의 시대 배경까지 60년대이다 보니 숀 코네리(Sean Connery) 주연의 60년대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 여러 편과 겹치는 부분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대표로 예를 하나 들자면, 냉전 시대의 미국과 소련이 전쟁발발 일보직전까지 가는 파트는 1967년 제임스 본드 영화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와 겹쳐졌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숀 코네리/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은 것은 누구일까?

바로 마이클 패스벤더다.

우선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의 마이클 패스벤더의 이미지를 몇 장 보고 넘어가자.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보면 매튜 반과 마이클 패스벤더 모두 제임스 본드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게 분명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007 시리즈 연출을 맡길 희망하는 영국 영화감독과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로 거론될 만한 영화배우가 만났으니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영화감독 매튜 반은 '레이어 케이크(Layer Cake)'에서 현재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작업한 바 있다. '레이어 케이크'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오디션 영화'로 불리기도 한다. 크레이그는 '레이어 케이크' 개봉 직후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의 뒤를 이을 차기 제임스 본드로 발탁되었다.

그러므로 크레이그가 제 6대 제임스 본드로 발탁되는 데 매튜 반도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엔 마이클 패스벤더의 차례?

사실 패스벤더가 제임스 본드 시늉(?)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2009년 전쟁영화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Inglorious Basterds)'에서도 패스벤더는 제임스 본드를 연상케 하는 영국군 장교 역할을 맡은 바 있다. 타란티노 감독이 007 시리즈 팬이고 007 시리즈 연출을 희망했던 영화 감독 중 하나라는 점을 상기하면, 패스벤더가 타란티노 감독이 선택한 제임스 본드였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듯 싶다.

패스밴더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어둡고 심각한 모습만을 보여줬는데,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에서의 모습과 곁들여 생각해 보면 하드함과 소프트함을 모두 갖춘 데다 군인/장교 역할에도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터프가이 킬러의 모습 뿐만 아니라 소프트하고 젠틀한 이미지도 갖고 있으며, 군복과도 잘 어울리는 게 군인/장교 역으로 적합해 보인다.

제임스 본드는 해군 중령이며, 영화에서도 몇 차례 해군 정복을 입고 등장한 바 있다. 그러므로 장교 역에 잘 어울려 보이는 배우가 제임스 본드 역으로도 잘 어울려 보이는 게 사실이다. 제임스 본드라고 하면 대개의 경우 보드카 마티니를 마시며 여자들을 주무르는 핸썸한 플레이보이 스파이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 이전에 그가 장교라는 사실을 잊어선 절대 안 된다.

만약 나더러 제임스 본드 오디션 심사를 맡으라고 하면 군복 심사를 절대로 빼놓지 않을 것이다.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마이클 패스벤더는 제임스 본드 후보로 적합한 면이 많아 보인다.






그렇다면 조금 더 상세한 사항을 둘러보기로 하자.

일단 나이는 적합하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1977년생으로, 만약 다니엘 크레이그가 2012년 개봉하는 '본드23'를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난다면 그의 뒤를 잇기에 적당한 나이다. MGM이 밝힌대로 2년마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를 개봉한다고 치면 2014년에 '본드24'가 개봉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 때 패스벤더가 36~37세가 되므로 제임스 본드 역을 맡기에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가 된다. 만약 크레이그가 '본드24'까지 출연한다면 1977년생인 패스벤더에게는 약간 빠듯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흔을 넘긴 것은 아니므로 2016년을 계속해서 노려볼 수 있다.

왜 30대이어야 하냐고?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소설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가 30대 중-후반이라는 점이다.

둘 째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매년마다 새로운 영화가 나오는 시리즈가 아니라서 이미 마흔 줄에 든 배우를 선택하면 몇 편 찍지도 못하고 금세 또 다른 배우로 교체해야만 한다는 문제가 있어서다. 2년마다 한 편씩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꼬박꼬박 나온다고 해도 40대 배우가 제임스 본드를 맡으면 그가 50대가 되기 전까지 4편을 채우기도 힘들다.

물론 지난 80년대엔 로저 무어(Roger Moore)가 50대 후반에 접어들 때 까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바 있다. 하지만 '50대 배우는 제임스 본드 역을 맡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게 중론이며, 007 제작진도 '50대 제임스 본드'를 피하려는 눈치다. 1953년생인 피어스 브로스난이 2002년작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를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난 것만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브로스난이 '다이 어나더 데이'를 촬영할 당시에 40대 후반이었으므로 그가 만약 한 편을 더 찍었더라면 로저 무어에 이어 '50대 제임스 본드'가 또 탄생할 뻔 했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브로스난을 내보내고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다니엘 크레이그로 교체했다.

사실 브로스난의 나이를 계산하고 있었던 본드팬들은 그가 '다이 어나더 데이'를 끝으로 007 시리즈를 떠날 것으로 다들 예상하고 있었다. 브로스난이 007 시리즈를 떠날 때가 온 것이었을 뿐 뉴스 거리도 아니었단 얘기다.

그러나 현재로썬 크레이그가 언제까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을 지 알 수 없다. 못해도 '본드24'까지는 찍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모든 게 계획대로 된다면 '본드25'까지도 욕심낼 수 있다. 그러나 내년 말에 개봉하는 '본드23'가 시원찮은 반응을 얻는다면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사가(Saga)는 트릴로지로 막을 내릴 수도 있다. 결국 문제는 '언제냐'인데, 1977년생인 패스벤더는 그 때가 언제가 되든 간에 크레이그의 뒤를 잇기에 적당한 나이다.

키?

키는 6피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제임스 본드 배우들에 비하면 작은 축에 들지만, 현재 제임스 본드인 다니엘 크레이그보다는 약간 큰 편이므로 크게 문제될 건 없어 보인다.

국적?

이게 약간 애매할 수 있다. 왜냐면 패스벤더가 독일 태생이기 때문이다. 패스밴더는 독일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아일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렸을 적에 아일랜드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으며, 그의 제 1 언어는 영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만약 패스벤더가 제임스 본드가 되면 이전+현재 영국 연방에 속하지 않은 국가에서 태어난 첫 번째 007이 된다. 지금까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여섯 명의 배우 중 네 명은 U.K(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태생이고, 조지 레젠비(George Lazenby)는 호주, 피어스 브로스난은 영 연방에 속했던 아일랜드 태생이다. 물론 패스벤더도 아일랜드 커넥션이 있는 만큼 완전한 '외부인'은 아니지만, 그가 독일 태생이라는 게 '제임스 본드 캐스팅 룰'에 어긋날 수 있다.

물론 영화 캐릭터가 영국인이라고 배우까지 영국인이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미국 배우를 주연으로 세운 라라 크로프트(Lara Croft),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영화가 어떻게 되었나를 보면 '제임스 본드 = 영국 배우'를 왜 고집하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아무리 그놈이 그놈이라고 해도 지켜줄 건 지켜줘야 한다.

그렇다면 다 좋은데 독일 태생이란 이유로 제임스 본드 후보에서 아웃이냐고?

꼭 그런 건 아니다. 왜냐?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도 스코틀랜드 아버지와 스위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독일인 아버지와 아일랜드인 어머니를 둔 패스벤더와 비슷한 데가 있다.

그럼 도대체 결론이 뭐냐고?

결론은 마이클 패스벤더를 'Legitimate' 제임스 본드 후보로 볼 만 하다는 것이다. 제임스 본드 역으로 모든 면에서 완벽한 배우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이므로 패스벤더 정도라면 후보 리스트에 넣어둘 만 하다. 007 제작진이 다음 차례 배우도 크레이그와 비슷한 이미지로 갈 지, 아니면 수트빨에 빛나는 007 모델로 돌아갈 지 알 수 없는 만큼 그가 차기 제임스 본드가 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예측하기 힘들지만, 제임스 본드가 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나마 있어 보이는 현실적인 007 후보 중 하나로 충분히 꼽을 만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패스벤더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계속 관심있게 지켜보기로 하자.

댓글 8개 :

  1. 패스벤더가 77년생이면 저와 동갑인데,
    오~ 역시 상당히 늙어 보이네요.
    전 엄청 동안인 듯... ㅎㅎㅎ (아직도 20대 후반으로 본답니다.
    나이와 태생과 군복등이 잘 어울리는데요.
    특히 군복이 잘 어울리네요.
    본드 시켜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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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얼굴만 봐선 나이가 짐작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
    40대처럼 보이는 고등학생 녀석들도 여럿 본 적 있는걸요.
    그래서 인지 미국인들도 아시아인 나이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심각할 땐 10년 훨씬 이상씩 차이가 날 때도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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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호~ 이 친구라면 충분히 크레이그 뒤를 이을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 보입니다. 정말 군복이 잘 어울릴 것 같고, 장교 스타일 이면서 옷발도 좋아보이고 적당히 플레이보이 기질도 있어보이네요. 실제 액션연기를 못봤는데 영화보고 액션 연기는 어느 정도인지 봐야겠네요.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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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괜찮아 보이나요?
    이 친구 300에서 칼도 휘둘렀었죠...^^
    제임스 본드에 어울리게 머리 스타일도 바꾸고 좀 손질을 하면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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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정확하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캠브릿지 스파이라는 영국의 미니시리즈에서도 스파이역을 맡았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매튜본도 007을 겨냥해서 영화만들었다고 인터뷰한바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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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 거기에도 나왔었군요.
    무엇에 대한 얘기인지는 아는데 시리즈를 아직 안 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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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패스벤더 본인이 아이리쉬이고...

    북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다룬 헝거 출연한것 이런것 보면...
    (영국이 북아일랜드 포로들을 어떻게 학대했는지 잘 나오죠.)

    본인 정체성 때문이라도 007역은 안맡지 않을까 싶어요.

    이미지는 007에 딱 맞지만.^^ 영국내에서도 헝거 때문이라도 그리 반기지는 않을듯 싶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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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피어스 브로스난도 아이리쉬입니다.
    스코틀랜드 독립을 지지하는 숀 코네리는 스코틀랜드 자선재단에 007 출연료를 기부하기도 했었죠.
    때문에 그런 것이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저도 패스벤더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목소리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본드 역에 안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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