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8일 토요일

"그린 랜턴! 이젠 수퍼히어로가 지겹다니까!"

매년마다 여름철이 되면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다. 바로 코믹북 수퍼히어로들이다. 금년 여름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토르(Thor)', '엑스맨(X-Men: First Class)'이 개봉했고, 앞으로도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 The First Avenger)', '카우보이 앤 에일리언(Cowboys & Aliens)' 등 코믹북을 기초로 한 수퍼히어로 SF 영화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까지는 2011년 여름철 시즌에 개봉한, 또는 개봉할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들이다. 그런데 수퍼히어로 영화가 여름철에만 개봉하는 게 아니다. 다른 시즌에도 개봉한다. 그러므로 다른 철에 개봉한 영화들까지 모두 합해 토탈을 뽑아보면 헐리우드가 1년 동안 내놓는 코믹북을 기초로 한 영화의 수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약 코믹북이 없었다면 헐리우드는 10년전에 모두 부도가 났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번 주말에 개봉한 워너 브러더스의 '그린 랜턴(Green Lantern)'도 또 하나의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다. 미국의 2대 코믹북 회사로 꼽히는 DC 코믹스를 소유한 워너 브러더스가 '수퍼맨(Superman)', '배트맨(Batman)'만으로 양이 차지 않았는지, 아니면 코믹북으로 아주 끝장을 보기로 작정했는지 이번엔 '그린 랜턴'이라는 새로운 수퍼히어로 영화를 내놨다.



'그린 랜턴'?

코믹북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수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처럼 아주 친숙한 시리즈가 아닌 것만은 사실이다. 가끔식 금년 초 개봉했던 소니 픽쳐스의 '그린 호넷(Green Hornet)'과 살짝 헷갈기리도 했다. 둘 다 제목에 '그린'이 들어가는 비슷한 쟝르의 영화이기 때문인 듯 하다.

그래도 '그린 랜턴'만의 뭔가 특별한 게 따로 있지 않겠냐고?

없었다. '그린 랜턴'은 '평범하던 지구의 청년이 우연한 기회에 외계인으로부터 수퍼파워를 얻어 지구를 지키는 수퍼히어로가 된다'는 지극히도 평범하고 진부한 줄거리가 전부였다. 또한, 주인공 할(라이언 레이놀즈)이 지구와 외계를 오락가락하는 모습, 외계 몬스터가 지구를 공격한다는 설정, 핸썸한 프리티-헝크 주인공과 이지적인 분위기의 여자 캐릭터 등 '토르'와 겹쳐지는 부분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새로 개봉한 완전히 다른 수퍼히어로 영화를 보면서 한달 반 전에 본 또다른 수퍼히어로 영화가 생각났던 것이다.

그 결과? 영화가 시작한지 30분쯤 지나자 흥미가 줄기 시작했다. 비슷비슷한 수퍼히어로가 옷만 갈아입고 나온 게 전부인 영화라는 게 바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가 중반을 지날 즈음 되었을 때엔 이미 지루함이 밀려온 이후였고, 영화를 다 본 이후에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영화에 흥미를 잃고 영화관을 빠져나간 이후의 계획을 짜는 데 바빴다는 것이다. 집중해서 볼 것도 없었다. 뻔할 뻔자 얘기였으니까.

그렇다. '그린 랜턴'도 지극히도 평범한 또 하나의 흔해빠진 수퍼히어로 영화였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 유명한 마틴 캠벨(Martin Campbell) 감독의 영화라길래 속는 셈 치고 봤는데, 역시 속았다. 혹시 뭔가 특별한 게 있을까 기대했었지만, '그린 랜턴' 역시 전형적인 수퍼히어로 영화 포뮬라를 그대로 따라한 매력없는 붕어빵 수퍼히어로 어드벤쳐였을 뿐이었다.

한가지 맘에 드는 게 있다면, 속편 티저를 보기 위해 엔드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는 정도?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편을 기다리겠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주 착하게도 티저가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는 도중에 나오더라. 실망한 관객들이 영화가 끝나자 마자 무섭게 영화관을 빠져나갈 것을 계산해 일찍 나오게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점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영화가 너무 자주 나온다는 데 있다. 불과 한달 반 사이에 상당히 비슷해 보이는 수퍼히어로 영화가 두 편씩이나 개봉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건 단지 금년 여름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이 눈에 띄는 비슷비슷한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너무 자주 나오고 있다. 코믹북 팬들은 새로운 수퍼히어로 영화가 나올 때 마다 신날지 모르지만 일반 영화관객들은 워낙 많이 쏟아져 나오는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어느 게 어느 건지 구별 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 깊은 유명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몇몇이야 다들 알아보지만 사돈의 팔촌에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은 다들 비슷해 보이기만 할 뿐이다.

똑같은 틀에 맞춰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비슷비슷한 영화가 수퍼히어로 시리즈 하나 뿐인 건 물론 아니다. 그러나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워낙 촘촘하게 개봉하다 보니 이젠 수퍼히어로 쟝르 자체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가 적당히 나올 때엔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한마디로 말해 지긋지긋하다. '코믹북'의 '코'자도 이젠 듣기 싫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비쥬얼 중심의 SF-판타지물 소잿감으로 코믹북이 왔다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현재의 헐리우드는 코믹북에 정신이상 수준으로 집착하는 것으로 보일 뿐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코믹북 수퍼히어로 캐릭터들 만큼 친숙한 캐릭터들이 어디에 있나'는 생각에 이러한 광적인 페노미넌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했으나, 이젠 이것도 한계에 이른 듯 하다.

이렇게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는 턱걸이 평균 수준 정도의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멀쩡한 수퍼히어로 영화를 죽이는 수퍼악당이 될 수도 있다. 박스오피스 기록을 세웠던 워너 브러더스의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가 아무리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지만, 오만가지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촘촘하게 개봉하면서 관객들이 쟝르 자체에 싫증을 느껴 후속편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 못하게 떨어질 수도 있다. 관객들이 계속해서 속편을 기다리도록 만들어야 시리즈가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는데, 비슷비슷한 오만가지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그 사이에 끼어들면서 기다림이 지겨움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는 "배트맨 시리즈는 다르다",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는 다르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수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피로함이 거기로 가지 말란 법은 없다. 그래봤자 배트맨도 코믹북에서 튀어나온 커스튬 수퍼히어로 중 하나인 건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예전엔 여름철 영화 중에 재미있는 영화들이 많았는데, 요샌 갈수록 이상해지는 것 같다.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를 제외하면 남는 게 없는 정도가 되었으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메이저 헐리우드 영화사들이 코믹북 수퍼히어로 라이브러리를 박박 뒤질 생각인지 모르겠다. 돈벌이가 되는 한 계속될 것 같지만, 좀 적당히 했으면 좋겠다. 이젠 진짜로 수퍼히어로가 지겹다니까!

댓글 4개 :

  1. 예전에 8-90년대에 여름에 줄지어 나오던 참신한 블록 박스터들이 그립습니다.
    마틴 캠벨 옹 께선 역시 본드를 떠나면 안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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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0년대 여름철 영화 키워드는 수퍼히어로, CGI, 3D, 아이맥스가 전부죠.
    퀄리티와 재미는 빠진 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DVD/블루레이도 요새 영화보단 8~90년대 영화에 더 끌리더라구요.
    캠벨 아저씨도 글쎄 이상하게 본드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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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로딩이 이리 오래 걸리다뇨..
    몇번을 다시 닫았다 열었다 했는지... ㅎㅎㅎ
    맨 위 광고창만 뜨고, 한참 기다렸네요.. ㅋㅋㅋ
    얏바리 뻔할 뻔자 히어로였군요...
    흠.. 날도 익어가는데 짜증 지대로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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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으하하~ 전 저만 느린 줄 알았는데 궁금증을 풀어주셔서 땡큐~!ㅋㅋㅋ
    어제 오늘 인터넷 속도가 꽝이었거든요.
    제일 중요한 게 광고다 보니까 거기만 딱...ㅋㅋㅋ
    그린 랜턴... 재미 없더라구요.
    뭐 그럴 줄 알고 봤지만 실망시키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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