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4일 일요일

'캡틴 아메리카', 올드스쿨 블록버스터의 향수가 매력적인 시대물

매년마다 여름이 되면 무더기로 몰려오는 친구들이 있다. 이 친구들은 이상한 짓을 할 나이가 살짝 지난 듯 한 데도 상당히 묘한 패션을 즐긴다.

이게 누구냐 하면, 바로 코믹북 수퍼히어로들이다.

여름철에 개봉한 코믹북 수퍼 히어로 영화들은 매년마다 박스오피스 히트작이 되곤 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배트맨 시리즈, 아이언맨 시리즈 등 여러 '맨' 시리즈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2011년엔 사정이 조금 다르다. 2011년 여름에도 변함없이 여러 편의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개봉했으나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2억 달러를 돌파한 영화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2011년 개봉한 수퍼히어로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영화는 파라마운트의 '토르(Thor)'인데, 지금까지 1억 7900만 달러를 버는 데 그쳤다.

2011년에 수퍼히어로 영화가 죽을 쑤는 이유는 아마도 여러 가지가 되겠지만, 금년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주로 개봉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많은 영화관객들이 옷만 갈아입은 게 전부인 듯한 반복되는 기분이 드는 수퍼히어로 영화에 식상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돈을 더 주고 3D로 보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2011년은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 흉년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가 개봉했다. 파라마운트의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Captain America: The First Avenger)'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이번엔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의 차례였다.



그런데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수퍼히어로 영화라는 게 약간 신경쓰였다. '캡틴 아메리카' 코믹북 시리즈가 2차대전이 한창이던 40년대에 시작되었던 만큼 할 수 없는 부분으로 보였지만, 시대물 수퍼히어로 영화라는 게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물론 '캡틴 아메리카'도 매우 유명한 메이저 코믹북 수퍼히어로 캐릭터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영화는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오판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는 2011년 개봉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 중 단연 최고다. '캡틴 아메리카' 이전까지는 '토르'가 베스트였는데, 이젠 순위가 바뀌었다.

스토리는 기승전결이 뚜렷했으며, 군더더기가 없어 도중에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았다. 쓸 데 없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들로 도중에 산만하게 만들지 않았으며, 왜소한 체격 때문에 입대를 하고 싶어도 매번 퇴짜를 맞던 청년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가 '캡틴 아메리카'로 불리는 수퍼히어로가 되어가는 과정을 풍부한 유머와 액션, 드라마와 함께 강물이 흐르 듯 술술 풀어나갔다.

무엇보다도 걱정되었던 점 중 하나는 크리스 에반스(Chris Evans)가 수퍼히어로 역에 썩 잘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수퍼히어로라고 하면 대개의 경우 핸썸하면서도 마초 스타일이 강한 배우를 연상하게 되는데, 크리스 에반스는 전형적인 '히어로-타잎'으로 보이지 않았다. "걸리면 다 죽는다"는 듯한 'BAD-ASS' 이미지도 없었다.

그러나 스티브 로저스는 왜소한 체격 때문에 자원 입대도 못하고 왕따 당하던 청년이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수퍼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로 탄생하는 인생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었으므로 마초, 'BAD-ASS' 캐릭터 쪽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는 어느 한쪽 스타일로만 심하게 기운 캐릭터가 아니라 얼굴과 마음은 선하고 순수한 청년의 것이지만 몸과 능력은 수퍼히어로인 캐릭터였던 것이다. 영화배우 크리스 에반스는 바로 이러한 특징을 가진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 역에 생각보다 아주 잘 어울렸다.

크리스 에반스 뿐만 아니라 토미 리 존스(Tommy Lee Jones), 스탠리 투치(Stanley Tucci), 그리고 매력 만점의 영국 여배우 헤일리 앳웰(Hayley Atwell) 등 서포팅 롤을 맡은 배우들도 빛났다. 특히 헤일리 앳웰은 007 시리즈의 본드걸을 맡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매력적이었다.



007 시리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를 보면서 생각난 영화 중 하나가 바로 007 시리즈였다. '캡틴 아메리카'는 007 시리즈와는 여러모로 거리가 있는 쟝르의 영화였는데도, 007 시리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하이드라(HYDRA)'라는 테러조직이 놀라울 정도로 007 시리즈의 스펙터(SPECTRE)와 겹친다는 점이었다.

우선 문어를 연상케 하는 로고부터 비슷하다. 아래 이미지의 왼쪽이 '캡틴 아메리카'의 하이드라 로고이며, 오른쪽이 007 시리즈의 스펙터 로고다.



50년대 중반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제임스 본드 소설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영화 제작을 준비하던 제작진이 스펙터라는 테러조직을 별도로 준비한 이유는 냉전을 직접적인 소재로 삼지 않고 현실과는 살짝 거리를 둔 테러조직을 제임스 본드의 적으로 세우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캡틴 아메리카'에 나오는 하이드라라는 조직도 이런 면에서 스펙터와 비슷한 데가 있었다. 조직의 리더, 레드 스컬(휴고 위빙)이 나치 출신인 것을 제외하곤 나치와는 직접적인 별다른 관계가 없어 보이는 테러조직이었으며, 대도시들을 파괴한다는 테러 계획을 꾸민다는 점 또한 스펙터와 비슷한 부분 중 하나였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모터싸이클 체이스 씬 또한 007 시리즈 오마쥬 중 하나로 분류할 만 하다. 여러 가지 무기들이 장착된 모터싸이클로 추격해오는 적들을 공격하는 씬은 007 시리즈의 '본드카 액션 씬'을 빌려온 게 분명해 보였다.



007 시리즈와 함께 생각난 또다른 영화는 '스타 워즈(Star Wars)' 시리즈였다. 연출을 맡은 조 존슨(Joe Johnson)이 '스타 워즈' 시리즈 베테랑이기 때문이기 때문이었는지 곳곳에서 '스타 워즈'의 흔적이 눈에 띄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는 건 하이드라 병사들이다. 유니폼 디자인과 색깔이 다르긴 했지만 영락없는 '스타 워즈' 시리즈의 스톰트루퍼(Stomtroopers)처럼 보였다.

뿐만 아니라 하이드라 병사들이 도열한 씬에선 '스타 워즈' 시리즈의 너무나도 유명한 곡 'The Imperial March'를 연상케 하는 배경음악까지 흘러나왔다.

혹시 음악도 존 윌리암스(John Williams)가 맡았냐고?

그건 아니다. 하지만 80년대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작곡가가 음악을 맡았다. '백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의 작곡가 앨런 실베스트리(Alan Silvestri)가 바로 그다.



그렇다.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는 영화에서부터 음악에 이르기까지 이상할 정도로 친숙함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코믹북을 즐겨 읽지 않는 관계로 '캡틴 아메리카'의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는 데도 전혀 낯설어 보이지 않았고,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영화 전체가 친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사운드트랙도 요새 액션-스릴러-SF-수퍼히어로 영화 음악과는 달리 영화의 씬과 매치가 아주 잘 되는 듯 했으며, 거의 모든 곡들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캡틴 아메리카'가 올드스쿨 블록버스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어드벤쳐 영화였기 때문이다. '캡틴 아메리카'는 이렇게 보면 007 시리즈, 저렇게 보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또 다르게 보면 '스타 워즈' 시리즈, 여기에 음악은 '백 투 더 퓨쳐'인, 한마디로 눈과 귀에 모두 친숙한 영화였다. '캡틴 아메리카'가 시대물인 이유는 2차대전 당시를 시대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 추억 속의 블록버스터의 향수를 되살린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다른 수퍼히어로 영화들과 느낌도 많이 달랐다. 출연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훌륭했고, 유머도 풍부했으며, 이모션 코드도 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무척이나 오랜만에 나온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영화이기도 했다. 워낙 오랫동안 애국심과 정 반대되는 영화들만 나왔기 때문에 미국 영화관객들이 '캡틴 아메리카'에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궁금했었는데, 포로로 잡혔던 미군들이 탈출에 성공해 미군 부대로 복귀하는 씬에서 박수가 터져나오는 것을 보고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캡틴 아메리카: 퍼트스 어벤저'는 'Pleasant Surprise'였다. 아주 유명한 클래식 코믹북 수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한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수퍼히어로 영화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괜찮은 영화였다. '캡틴 아메리카'는 전체적으로 흠잡을 데가 많지 않은 영화였으며,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와 J.J 에이브람스(Abrams)의 '수퍼 에이트(Super 8)'와는 달리 올드스쿨 블록버스터의 매력과 스타일을 제대로 살려내는 데 성공한 영화이기도 했다.

'캡틴 아메리카' 영화가 다 끝나고 마지막에 내년에 개봉할 '어벤저(The Avengers)' 예고편이 나왔는데,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많은 코믹북 팬들이 "Yay!" 하면서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코믹북 수퍼히어로 시리즈엔 아는 게 많지 않지만 까짓 거 내년에 나오면 봐주마...

그나저나 '캡틴 아메리카'가 2011년 미국 박스오피스 챠트에서 '토르'를 제치고 금년의 넘버1 수퍼히어로 영화가 되는 지도 지켜봐야겠다.

댓글 6개 :

  1. 이번 영화평은 끝내주네요~
    그렇게 재밌었나요? ㅎㅎㅎ
    보고 싶네요.
    영화 소개에도 나오던데.. 시큰둥했었는데,
    이렇게 소개하면 무쟈게 땡기잖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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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솔직히 별 기대 안 했던 영화였는데 의외로 볼만하더라구요.
    전 나름 재밌게 봤습니다.
    제가 이젠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
    이건 맘에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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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동안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가 괜찮은 건 정말 괜찮고, 이상한 작품은 정말 이상했었는데, 이거 괜찮다니 吳공본드님 말씀 믿고 한번 봐야겠네요.^^
    지난주 이번주 티비에서 계속 본드걸 별세 소식이 나오네요.
    메인 본드걸은 아니었지만, 안젤라 스콜라는 세제로 수어사이드 한 것 같고, TV판 카지노 로얄에 나왔던 린다 크리스티안은 캔서로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본드 걸 사망이라고 해서 우슐라 안드레아스 얘기인 줄 알았는데 다른 분들 이었군요.
    사실 잘 모르는 분들 이었습니다.
    그리고, QoS 주제곡을 부를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군요.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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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캡틴 아메리카, 뭐 대한할 건 없어도 그럭저럭 볼만 한 것 같습니다.
    수퍼히어로도 유행이라 아주 잘 된 것 몇 개 빼곤 대부분 웃겼는데요,
    캡틴 아메리카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안젤라 스콜라는 참 귀엽고 발랄한 본드걸로 기억되는데 그렇게 됐더라구요.
    자살한 지는 조금 지났는데 얼마 전에 자세한 기사가 다시 뜨더군요.
    그런데 이런 건 워낙 사적인 부분이라...
    린다 크리스챤은 오피셜 시리즈 본드걸이 아니라서 빼놓게 됩니다.
    67년 카지노 로얄과 83년 NSNA도 그렇구요.
    오피셜 시리즈만 해도 22편이나 되니 언오피셜은 좀 힘에 부치는...^^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그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멋진 본드 주제곡을 부를 만한 친구였는데 뭐 할 수 없죠.
    와인하우스의 상태가 어떤지 봐가면서 본드23 후보에 다시 올려야 하나 고민했었는데요,
    전혀 나아진 게 없었고, 결국 저렇게 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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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 예고편 보면서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재밌나 보군요..!!
    저도 한번 기회되면 극장으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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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큰 기대 안 하고 봤는데 제법 재밌더라구요.
    그럼 기회가 되시면 극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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