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5일 목요일

'컨테이전', 리얼함과 긴장감이 수준급인 재앙영화

조류독감, 돼지독감 등의 새로운 전염병으로 전세계가 술렁였던 게 얼마 전 일이다. 한동안 독감이 어쩌구, 백신이 저쩌구 하면서 들끓었기 때문인지 요샌 '괴질', '전염병' 등의 단어가 그리 생소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자 헐리우드가 이를 소재로 한 영화를 선보였다. 워너 브러더스의 '컨테이전(Contagion)'이 바로 그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컨테이전'은 전염되는 괴질로 인한 전세계적 재앙을 그린 영화다.

'컨테이전'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출연진이다. '컨테이전'의 연출을 맡은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 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는 맷 데이먼(Matt Damon)을 비롯해 로렌스 피시번(Laurence Fishburne), 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 주드 로(Jude Law), 기네스 펠트로(Gwyneth Paltrow), 매리언 코티아르(Marion Cotilard)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전염병 버전 '오션스(Ocean's)' 시리즈 같다고 할까?

그럼 우선 줄거리를 살짝 훑고 넘어가기로 하자.

홍콩에 출장갔다 미국으로 돌아온 베스(기네스 팰트로)가 갑자기 심한 독감 증세를 보인다. 문제는 베스가 걸린 독감이 단순한 독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독감에 걸린 베스는 홍콩에 이어 미국에 와서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에게 괴질을 전염시킨다. 감염자 수가 계속 늘어나고 사망자까지 발생하자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와 WHO(World Health Organization) 등이 조사에 착수하지만 대기로 전염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라는 사실만 알아낼 뿐 치료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



사실 괴질로 인한 재앙을 그린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더스틴 호프맨(Dustin Hoffman) 주연의 90년대 영화 '아웃브레이크(Outbreak)'도 그 중 하나다. 스토리도 뻔했다. 사건이 발생한 첫날 부터 시간의 흐름을 카운트하는 것도 이러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었으며, 결국 어떻게 결말을 맺을 지도 훤히 보였다. 이런 영화의 줄거리가 대부분 뻔한 패턴을 따르기 때문이다. '컨테이전'도 예외일 리 없었다. 불과 얼마 전에 조류독감, 돼지독감이 번졌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 덕분에 영화의 줄거리가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 효과는 있었지만 사실상 그게 전부였을 뿐 크게 새로울 것은 없는 줄거리였다.

그런데 '남의 얘기 같지 않은 리얼함'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종말론적인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재앙영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했을 수도 있지만, '컨테이전'의 매력은 리얼리즘에 있었다. 전염성 괴질이 번지면서 시민이 패닉에 빠지고 도시가 마비되고 정부와 보건당국은 해결책을 찾으려 하면서도 우왕좌왕하고 인터넷에선 온갖 음모론과 헛소문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실제처럼 느껴졌다. 얼마 전 조류독감, 돼지독감으로 소동이 벌어졌었는데 만약 '컨테이전'에 나온 것과 비슷한 전염률, 치사률이 높은 괴질이 퍼진다면 영화에서처럼 될 개연성이 커 보였다. 물론 영화에 등장한 바이러스부터 모든 것이 픽션일 뿐이라지만 치유 방법을 모르는 새로운 질병들이 계속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므로 영화에서와 비슷한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는 것은 아니다. 이래저래 언젠가는 죽게 돼 있으므로 괴질에 걸려 죽더라도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메인 캐릭터 중 하나인 미치(맷 데이먼), CDC에서 근무하는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슬렛) 등이 보고 겪은 패닉과 혼란은 그리 유쾌할 것 같지 않았다. 병에 걸려서 일찍 죽은 사람보다 생존자들의 고통이 더 커 보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크게 과장되지 않은 리얼한 상황 묘사 하나가 전부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저런 일이 생기면 저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시작부터 끝까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리얼리즘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선 지극히 평범하거나 약간 신경에 거슬리는 데도 있었다.

유머가 제 역할을 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워낙 리얼하고 무거운 긴장감이 흐르는 영화였던 만큼 약간의 유머가 감초 역할을 할 수 있을 듯 했는데, 곳곳에 건조한 유머를 심어놓은 것이 눈에 띄긴 했지만 대부분 그다지 웃기지 않거나 썰렁한 유머가 전부였다.

하지만 전혀 뜻하지 않았던 데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로 웃은 적이 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영화관에서 관람객 하나가 마른 기침을 하자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 "We're all gonna get sick!". 순간 영화관 안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물론 의도된 인터액션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웃기는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 이 정도면 볼 만한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스토리는 특별할 게 없었고 인류멸망의 스케일 큰 대재앙을 그린 SF/판타지 영화도 아니므로 어떻게 보면 흔하고 평범하고 시시해 보일 수도 있지만, '컨테이전'은 리얼함과 영화 내내 흐르는 긴장감이 수준급인 볼 만한 재앙영화였다.

물론 취향에 따라 재앙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이 개고생하는 걸 지켜보는 게 뭐가 그리 재미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맞는 말이다. 우스꽝스러운 재앙영화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컨테이전'은 그런 재앙영화가 아니다. 재앙영화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굳이 점수를 주자면 A- 정도?

댓글 10개 :

  1. 역시 기대작 중에서 최고입니다. +_+

    장문의 리플을 썼는데, 포스트 코멘트를 클릭하니,
    어떤 오류가 발생하는 바람에 다 날아갔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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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지막까지 지루한 줄 모르고 봤습니다...^^

    아, 저도 그 에러에 몇 번 걸린 적이 있습니다.
    글자 수 제한 같은 게 있는 것 같더라구요.
    정확하게 몇 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자수를 초과하면 에러가 뜨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엔 글자수 뿐만 아니라 줄이 길어져도 에러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암튼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여기가 아직 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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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멧데이먼이 와이프가 죽엇다는 소리를 듣고 what are you talking about? 이라고 했던 장면이 예고편 중에 기억나는데요. 아웃브레이크 영화가 다 그렇지라는 생각때문인지 아니면 짧 예고편 내내 출연진이 빵빵하다는 거만 보여주려고 해서인지 광고 보고는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봐야할 만한 영화가 생겼군요.ㅎㅎ
    그나저나 기네스 펠트로 아주머님께서는 영화 시작하자마자 작고 하시는 건가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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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저도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아웃브레이크 영화 같은 덴 별 흥미가 없었거든요.
    유명한 배우들 불러 놓고 또 뻔한 소리 하는구나 싶었죠.
    근데 생각보다 볼 만 하더라구요.
    펠트로는 플래시백, CCTV 재생 씬 등에 종종 나옵니다.
    근데...
    여배우가 꿈에 나오면 좋은 꿈이라고 해야할텐데,
    컨테이전에서 발작을 하는 펠트로의 모습을 본 순간 꿈에 나올까 섬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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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간단한 영화의 소개만 읽었는데도 영화가 정말 궁금해지네요^^ 실제로 원인불명의 바이러스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더 공감하면서 감상할 수 있을 거 같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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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터무니 없이 과장된 얘기가 아니라 충분히 저렇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게 다 실제로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 번 보시고 소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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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이미지에 케이트 윈슬렛이나 맷 데이먼, 기네스 펠트로등을 기대했는데, 왠.. ㅎㅎㅎ
    영화줄거리보다는 이미지에 빵 터졌슴둥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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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주드 로를 무시하시다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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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워낙에 출연진이 빵빵해서 예고편에 눈을 땔수가 없더라고요..
    은근히 혹성탈출의 엔딩장면이 갑자기 생각나는...^^;;
    평도 좋고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도 많이 나와서 꼭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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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출연진이 좀 요란하긴 하죠...^^
    이번에 새로 나온 혹성탈출 말씀이신가요?
    뭐 전염병 얘기가 다 비슷비슷하다보니...^^
    하지만 그 몽키 비즈니스와 컨테이전은 느낌부터가 다릅니다.
    볼 만 하니까 한 번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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