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10시(미국 동부시간)에 방송을 탄 '배니티 페어: 헐리우드 스캔달(Vanity Fair: Hollywood Scandal)'이라는 제목의 CBS 프로그램은 나탈리 우드 사망 사건을 포함한 헐리우드 스타가 연루된 미스테리 사건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것 때문에 일부에선 "이 모든 것이 배니티 페어 매거진과 CBS가 나탈리 우드 사망 30주년으로 재미를 보려고 준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어찌되었든 간에 시기가 시기인 만큼 그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끈 건 나탈리 우드 편이었다.
이 사건의 미스테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나탈리 우드가 요트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날 배에 있었던 로버트 와그너와 또다른 영화배우 크리스토퍼 워큰(Christopher Walken)은 "두 남자가 말다툼을 하는 사이 나탈리 우드 혼자서 방으로 들어갔고 그 이후 사라졌다"고 주장했으나, 배의 선장 데니스 데이번(Dennis Davern)은 "거기까지는 맞지만 와그너가 나탈리 우드를 따라 방으로 들어간 뒤 그녀와도 다투기 시작했고 방안에서 싸우던 이들이 배의 뒷부분으로 이동해 고함을 치며 계속 싸우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고 주장했다.
당시 와그너의 요트 '스플렌더(Splendour)'의 선장이었던 데이번은 "나탈리 우드가 물에 빠지는 순간까지 와그너가 그녀와 함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로버트 와그너가 나탈리 우드를 물에 빠뜨렸거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드를 구해주지 않고 익사하도록 그대로 놔뒀다는 얘기가 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와그너가 우드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스틀렌더 호 선장이었던 데니스 데이번 |
요트에서 사라진 지 6시간만에 발견된 나탈리 우드의 시체를 검사한 응급구조원에 의하면, 발견 당시 나탈리 우드의 손가락이 유연한 등 사후 강직 현상이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다. 물에 빠지자 마자 바로 사망한 게 아니라 적어도 3시간 이상 생존해 있다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나탈리 우드는 요트에 묶여있던 소형 구명정을 타려다가 물에 빠진 것으로 보이는데, 응급구조원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우드는 요트에 묶었던 줄이 풀어지면서 떠내려가는 구명정을 붙잡고 한동안 살아있다가 끝내 익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구조작업을 일찍 시작했더라면 나탈리 우드를 살릴 수도 있었다는 얘기가 되므로 구조작업에 늑장을 부렸던 것으로 알려진 로버트 와그너에 책임이 있다는 의미도 된다.
▲사고가 난 로버트 와그너의 요트 '스플렌더' |
▲나탈리 우드가 타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진 소형 구명정 |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장의 주장일 뿐 로버트 와그너와 크리스토퍼 워큰의 스토리는 "둘이 말다툼하는 사이에 나탈리 우드 혼자서 사라졌다"는 데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선장 역시 사고 당시엔 와그너, 워큰과 함께 똑같은 주장을 했으나, 지금은 "그 때 거짓말을 한 것이고 지금 하는 말이 진실"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렇다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일단 와그너가 거짓 증언을 한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와그너는 사고 당시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와인병이 깨진 이유에 대해 "바다가 거칠어서 깨진 것"이라고 해명했는데 몇 해 전 출간한 회고록에선 "워큰과 다투다가 와인병을 내리쳐 깨뜨렸다"로 내용을 바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대단한 거짓말일까?
배에 함께 타고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물에 빠져 죽어서 경찰이 요트를 조사하는데 와인병이 깨진 이유에 대한 질문을 경찰로부터 받고 "술먹고 싸우다가 깼다"고 대답할 사람이 상식적으로 어디에 있겠나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거짓말이었다고 해야할 듯 하다. 이 정도로는 와그너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하기엔 부족하다. 사고 당시 배를 조사했던 수사관 역시 CBS 프로그램에 출연해 와그너가 말을 바꿨다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사실상 와그너가 우드를 죽였다는 선장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나탈리 우드 사건을 수사했던 드웨인 레이슈어(Duane Rasure)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데이번 선장이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면서, 이 모든 것이 책을 팔아 돈을 벌려는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살인사건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와그너가 사실을 말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와그너와 워큰은 왜 다툰 것일까?
와그너의 책에 의하면 연기에 의한 의견차로 서로 언쟁을 벌인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CBS 프로그램에 출연한 데이번 선장은 두 영화배우가 다툰 이유는 와그너가 워큰을 질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데이번에 의하면, 워큰과 우드가 다정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본 와그너가 갑자기 와인병을 깨뜨리며 워큰에게 "What are you trying to do? Fuck my wife?"라고 말했다고 한다. 와그너와 워큰이 다툰 이유가 다름아닌 나탈리 우드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이 부분은 와그너와 워큰이 사실을 밝혀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와그너와 워큰이 나탈리 우드 문제로 다투기 시작하자 이에 열받은 우드가 혼자서 요트를 떠날 생각을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데이번 선장은 와그너가 사실상 나탈리 우드를 죽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와그너는 어떻게 하다가 나탈리 우드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무도 모른다"는 게 정답이다.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나탈리 우드가 요트에 느슨하게 묶여 자꾸 부딛치는 소리를 내던 소형 구명정을 똑바로 매려고 혼자 나갔다가 미끄러지면서 물에 빠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술에 취했고 밤이라서 어두웠던 데다 비까지 와서 미끄러웠던 만큼 나탈리 우드가 실수로 미끄러져 물에 빠졌을 개연성이 큰 것은 맞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크리스토퍼 워큰도 지난 90년대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이 씨나리오를 사용한 바 있다고 한다.
그러나 데이번 선장은 CBS 프로그램에 출연해 "100% 사실이 아니다"고 딱 잘라 말했다. 나탈리 우드 혼자서 구명정 근처에 갔다가 실수로 물에 빠져 죽었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데이번 선장은 방에서 말다툼을 하던 와그너와 우드가 구명정 근처까지 나와서 계속 다투다가 우드가 물에 빠진 것으로 믿고 있었다.
와그너와 우드가 요트에서 그렇게 격하게 다퉜다면 워큰이 아무 것도 못 들었을까? 데이번 선장의 주장에 의하면 와그너와 우드가 대단히 시끄럽게 다툰 모양인데, 작은 요트에 함께 탔던 워큰이 아무 것도 듣지 못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 워큰이 밝혀야 할 점으로 보인다. 워큰은 L.A 셰리프가 나탈리 우드 사고를 재수사하기로 결정하자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L.A 셰리프가 재수사를 시작했다면 로버트 와그너가 용의자인 것일까?
L.A 셰리프 측은 이 질문을 받자 바로 "아니다"라고 답했다. L.A 셰리프 측은 최근에 확실해 보이는 관련정보를 입수해서 재수사를 하기로 결정했으나 로버트 와그너가 용의자는 아니며, 나탈리 우드의 사인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사고로 인한 익사라는 데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크리스토퍼 워큰이 용의자인 것일까?
헐리우드 리포터에 의하면 워큰 역시 용의자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와그너, 워큰 모두 용의자가 아닌 것이다.
L.A 타임즈에 의하면 수사관들이 하와이로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사고가 발생했던 와그너의 요트가 지금은 다른 주인에게 팔려 현재 하와이에 있다는 것. 사건이 발생한 지 30년이 지난 요트도 다시 조사할 계획인 듯 하다.
과연 이번엔 모든 비밀이 밝혀질까?
별로 기대가 되진 않지만 어떤 수사결과가 나오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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