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7일 수요일

추억의 비디오게임 - 스퀘어소프트의 '바운서'

내가 비디오게임에 지출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가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이다. 요새는 비디오게임을 거의 또는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에 게임을 좀 많이 했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기에도 쉽게 믿기지 않지만, 한 때는 나도 비디오게임 시스템이 나오자마자 구입하기 위해 바가지 가격도 불사하거나 매장 앞에서 밤을 새는 정신 나간 짓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사서 모은 비디오게임들이 이젠 짐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선 한 번 산 것을 중고로 다시 팔지 않는 버릇이 있어서 인지 아니면 어릴 적부터 쓸데 없는 것들을 주섬주섬 쓸어모으던 수집 버릇 때문인지 비디오게임도 계속해서 차곡차곡 쌓여만 갔고, 결국은 버리기엔 아깝고 팔아봤자 돈이 안 되는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그렇다. 내가 '디스크'라고만 하면 거진 발작 증세를 보이는 데엔 음반과 영화 뿐만 아니라 비디오게임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예전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디스크였는데, 이젠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얼마 전에 골칫거리가 된 비디오게임들을 박스에 집어넣는 작업을 했다. 게임 카탈로그, 프레스 킷 등의 게임관련 자료들은 일단 제외하고 게임 디스크와 게임 가이드북을 우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치웠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클래식 게임이 하나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2 초기에 발매되었던 일본 게임회사 스퀘어소프트(지금의 스퀘어에닉스)가 만든 액션게임 '바운서(The Bouncer)'였다.

스퀘어소프트의 PS2 액션게임 '바운서' 일본판(왼쪽)과 북미판(오른쪽)
스퀘어소프트의 '바운서' 일본판
스퀘어소프트의 '바운서' 북미판

사실 게임 자체는 그리 볼 게 많지 않다. 캡콤(Capcom)의 클래식 액션게임 '파이널 파이트(Final Fight)'처럼 무작정 치고 받고 때려부수며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Beat'em Up' 스타일의 단순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파이널 판타지(Final Fantasy)' 팬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는 노무라 테츠야(Nomura Tetsuya)가 디자인한 캐릭터들과 멋진 그래픽 등은 기억할 만하지만, 비쥬얼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다지 기억할 만한 게 없다. 플레이스테이션2가 발매된 직후에 나온 게임인 만큼 게임 자체보다 높은 퀄리티의 그래픽으로 게이머들을 감탄시키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므로 많은 것을 기대할 게 없는 게임이다.

하지만 스퀘어가 당시 제작중이었던 플레이스테이션2용 '파이널 판타지 X(Final Fantasy X)'이 대충 어느 정도일 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는 데서 만족할 수 있었다. 당시 많은 게이머들은 플레이스테이션2로 나오는 첫 번째 '파이널 판타지' 게임인 '파이널 판타지 X'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는데, 먼저 발매된 '바운서'가 '파이널 판타지 X' 프리뷰 역할을 했다. 게임은 무척 짧았고 싱거웠지만, 멋진 그래픽와 화려한 CG 동영상을 보면서 곧 발매될 '파이널 판타지 X'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바운서'도 게임으로써는 그다지 잘 된 작품은 아니지만, 플레이스테이션2 초창기에 스퀘어가 선보인 게임들 중에선 그나마 제일 나은 타이틀이다. 콘트롤 때문에 짜증나서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치솟게 만들던 스퀘어의 첫 번째 플레이스테이션2 게임 '드라이빙 이모션 타입-S(Driving Emotion Type-S)'에 비하면 '바운서'는 대단히 양호한 게임 축에 속한다. 일본에서 2001년 여름에 발매됐던 '파이널 판타지 X' 이전에 나온 스퀘어의 플레이스테이션2 초창기 게임 중엔 할 만한 타이틀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스퀘어소프트의 '바운서' 북미판 가이드북
스퀘어소프트의 '바운서' 북미판 가이드북
자, 그렇다면 '바운서' 관련 콜렉티블로는 무엇이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관련 콜렉티블을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인 게임이 아니었으므로 그쪽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캐릭터들은 그런대로 쿨한 편이었으나, 노무라 테츠야의 '파이널 판타지 VII(Final Fantasy VII)', '파이널 판타지 VIII(Final Fantasy VIII)'을 해본 게이머의 눈엔 크게 색다른 개성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인지 액션 피겨 등 캐릭터 상품 쪽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음악은?

플레이스테이션1용으로 발매됐던 '파이널 판타지 VIII'부터 보컬이 들어간 주제곡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스퀘어가 '바운서'에서도 보컬 주제곡을 선보였다. 하지만 사운드트랙 앨범을 구입하고 싶은 생각도 그리 들지 않았다. 귀에 착 달라붙는 곡도 없었던 만큼 '바운서' 사운드트랙은 스퀘어가 프로모 용으로 제작한 샘플러 디스크로 충분했다. 프로모 샘플러 디스크 수록곡은 달랑 네 곡이 전부였는데, 그 마저도 풀버전이 아니라 중간에서 끊어지는 샘플 곡이었다. 하지만 디자인이 쿨해서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일본 여가수 노다 레이코(野田瓏子)가 부른 주제곡 'Forevermore(緒わらないもの)'는 나쁘지 않았다. 90년대부터 R&B를 기초로 한 아시안 팝뮤직이 워낙 많이 쏟아져나온 바람에 이쪽 쟝르 음악에 이미 질린 상태였으므로 (이 즈음부터 K-POP, J-POP 모두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아주 맘에 들진 않았지만, '바운서' 주제곡으로는 나름 잘 어울렸다.

'바운서' 주제곡은 DVD로 구입했다. 2000년대 초엔 DVD가 유행이었으니 싱글 앨범 대신 DVD 뮤직 비디오 앨범을 골랐다.


'The Bouncer Music Clip - Forevermore'라는 타이틀의 DVD 뮤직 비디오 앨범엔 노다 레이코가 부른 'Forevermore' 뮤직 비디오, '바운서' 비디오게임 오프닝 동영상, 그리고 BGM 리믹스 등 세 개의 트랙이 수록됐다.

트랙1 - 뮤직비디오
트랙1 - 뮤직비디오
트랙1 - 뮤직비디오
트랙2 - 오프닝 동영상
트랙3 - BGM 리믹스

자, 그럼 노다 레이코의 'Forevermore'를 들어보자. 유투브에 올라온 곡은 싱글 버전이 아니라 오리지날 사운드트랙 버전이라서 시작 부분이 좀 길다. 불필요한 부분은 건너뛰고 메인 곡으로 바로 넘어가려면 1분57초로 점프!



잠깐! 그런데 섀니스 윌슨(Shanice Wilson)이 부른 영어버전은 어디로 갔냐고?

여기 있네...^^


그렇다. 섀니스 윌슨은 90년대 초 'I Love Your Smile'이라는 곡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R&B 여가수다. 90년대 초에 한 곡을 히트시킨 뒤 사라졌던 그녀가 2000년대 초 일본의 비디오게임 주제곡을 부르면서 컴백한 것이다.

그.러.나...

섀니스가 영어로 부른 영어버전 '바운서' 주제곡 'Love is the Gift'는 싱글로만 발매되었을 뿐 '바운서' 사운드트랙엔 수록되지 않았다. '바운서'의 북미지역 발매 전후로 미국의 도쿄팝(Tokyopop)이 '바운서' 사운드트랙을 북미지역에서 발매했었는데, 이들의 북미버전 사운드트랙에도 미국 여가수 섀니스가 부른 영어버전 'Love is the Gift'는 포함되지 않았다.

도쿄팝이 발매한 북미버전 '바운서' 사운드트랙 앨범
북미버전 사운드트랙에도 노다 레이코의 일본버전 주제곡만 실렸을 뿐 섀니스 버전은 없다
자, 그럼 섀니스 윌슨이 부른 영어버전 주제곡 'Love is the Gift'를 들어보자.


내가 아는 한 이 곡은 섀니스 윌슨의 새 앨범에도 수록되지 않았다. 일본 비디오게임 음악과 여러 콜렉티블 아이템들이 미국으로 많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가수 새니스 윌슨이 영어로 부른 곡이 미국에서 발매되지도 않고 사라져버린 것은 조금 뜻밖이었다. 하지만 '바운서'보다 높은 관심을 끌었던 '파이널 판타지 X-2(Final Fantasy X-2)'의 영어버전 주제곡도 북미지역에선 아예 나오지 않아 그녀의 앨범을 별도로 구입해야만 했으니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자 이제 볼일을 다 본 것 같지?

스퀘어소프트의 플레이스테이션2용 액션게임 '바운서'는 사진촬영을 마친 뒤 박스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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