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배우들이 아닌 만큼 연기에 문제가 있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네이비 실스를 가장 사실적으로 연기하는 데는 현역 네이비 실스가 왔다인 것만은 사실이다.
물론 대단히 비밀스러운 미국의 엘리트 특공대가 영화에 직접 출연할 리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영화가 실제로 개봉했다. 현역 네이비 실스들이 각각 주연과 조연을 맡은 액션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했다. 직업 배우보다 직업 군인들이 더 많이 나오는 영화가 실제로 미국 전역에서 개봉한 것이다.
'액트 오브 밸러(Act of Valor)'가 바로 그것이다.
스토리는 사실 볼 게 없다. 코스타 리카에서 마약 밀수업자를 모니터링하던 여성 CIA 에이전트가 납치당하자 캘리포니아의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네이비 실즈가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출동한다. 그러나 이들의 미션은 단순 구출작전으로 끝나지 않고 자폭테러를 계획하는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이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침투하려는 것을 저지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된다...
스토리라인이 너무 평범하고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직업 배우가 아닌 실제 현역 네이비 실스가 주연을 맡은 만큼 연기나 스토리보다 액션에 중점을 둔 영화라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스토리가 형편없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해군 홍보/리쿠르트용 비디오에서 출발한 영화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 그래도 여전히 '이것보다는 나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지만, 직업 배우가 아닌 현역 네이비 실스가 직접 주연을 맡은 저예산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고 넘어갈 만하다.
그렇다면 연기는?
솔직히 말하자. 직업 배우가 주연을 맡지 않은 영화를 보러 가면서 대단한 연기를 기대한 사람들이 있을까? 굳이 영화를 보지 않고서도 연기 수업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네이비 실스 친구들의 연기 실력이 어느 정도일 지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이들은 연기는 고사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 자체를 대단히 꺼려하는 비밀스러운 친구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연기가 어색했다는 건 절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의 부족한 연기력을 새삼스럽게 걸고 넘어질 필요를 못 느낀다. '연기에 서툰 실제 네이비 실스가 주연을 맡는 바람에 영화의 재미가 반감되었다'는 것으로 글짓기를 하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를 반복, 재반복하는 찐빵놀이엔 영 관심이 없어서 사양하겠다.
여기서 또 한가지 솔직하게 말할 게 있다. 네이비 실스 친구들의 연기가 서툴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솔직히 생각했던 것보다는 나았다. 이 친구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연기 부분은 완전히 꽝일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생각했던 만큼 험악하진 않았다. 감정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서툰 대화 씬 연기도 썰렁해 보인 것이 아니라 항상 건조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실제 군인들의 모습으로 보이는 등 그들의 서툰 연기가 오히려 리얼함을 살리는 플러스 효과를 냈다. 그렇다고 '명연기'였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리얼리티 쇼나 다큐멘타리를 보는 듯한 리얼함이 느껴졌다. '액트 오브 밸러'는 리얼리티 쇼나 다큐멘타리가 아닌 극장용 액션영화이므로 영화를 보면서 이런 느낌이 들었다면 조금 문제가 있다고 해야겠지만, 액션영화와 다큐멘타리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게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물론 직업 배우들에게 역할을 맡겼더라면 온갖 표정, 감정연기를 동원하며 보다 부드럽고 드라마틱한 대화 씬을 연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격한 훈련을 받은 터프가이 군인들이 너무 풍부한 감정을 드러내면 그리 리얼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군인들도 가족들과 함께 할 때엔 평범한 사나이로 돌아가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만의 스타일이 묻어난다. 직업 배우들은 연기는 잘 할지 몰라도 이러한 군인 특유의 스타일까지 제대로 살려내는 배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인지 연기에 서툰 네이비 실스 친구들의 딱딱한 연기가 오히려 더 그럴 듯해 보였다.
만약 연기에 서툰 현역 네이비 실스가 전혀 다른 액션 히어로 역으로 출연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다름아닌 네이비 실스 역을 연기했다. 그들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 앞에서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네이비 실스 캐릭터를 애써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항상 하던 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되었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에서 그들의 어색한 연기마저도 다큐멘타리처럼 보였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전투 씬은 얼마나 리얼했을까?
아무래도 네이비 실스가 직접 주연을 맡은 데다 미군이 영화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만큼 전투 씬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 영화 자체가 액션-스파이-스릴러 틀을 기초로 삼은 만큼 스토리 면에선 헐리우드 냄새가 적잖이 풍겼으나, 전투 씬에선 다소 어색하고 과장된 헐리우드 액션 씬을 집어넣지 않고 네이비 실스가 작전을 펼치는 실제 모습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영화로 옮기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연기에 서툰 네이비 실스의 연기 부담을 최대한 덜어주면서 사실적인 전투 씬으로 관객들을 만족시켜 보겠다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였던 만큼 전투 씬 만큼은 실망스럽지 않았다.
네이비 실스 친구들은 다른 씬은 몰라도 작전을 펼치는 씬에선 물만난 고기처럼 자신에 넘쳤다. 전투 씬에선 연기인지 실제 상황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명연기'를 선보였다. 직업 배우들이 네이비 실스 연기를 하려면 총을 잡는 법부터 시작해서 사격 자세, 행동 등 모든 것을 배워서 흉내내야만 하지만 이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바로 네이비 실스인데 누굴 흉내낼 필요가 있겠수?
전투 씬에서 이들이 뿜어내는 포스는 직업 배우들이 절대 흉내낼 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다. 혹독한 훈련과 실전 경험으로 다져진 베테랑 군인의 모습은 일반 배우들이 흉내내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 네이비 실스를 뺀 영화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액트 오브 밸러'는 대단히 한심한 영화다. 연기에 서툰 네이비 실스의 연기력을 직업 배우들과 비교한다는 자체가 불공평해 보이지만, 출연진의 연기는 대부분 어색했고 스토리도 특별할 게 없었으니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졌다고 하긴 매우 어려운 영화다.
물론 직업 배우들이 네이비 실스 역을 맡았더라면 이것보다는 더 볼 만한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현역 네이비 실스를 뺀 '액트 오브 밸러'는 상상하기 힘들다. 만약 직업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그들의 연기력에 맞춰 스크립트를 썼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 해도 이 영화에 높은 완성도를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저 뻔한 저예산 밀리터리 영화 중 하나에 그쳤을 것이다. 출연진부터 스크립트에 이르기까지 아주 엄청난 변화와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다면 혹시 모를 일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까놓고 솔직하게 말하자. '액트 오브 밸러'를 기다린 이유는 현역 네이비 실스가 직접 출연한다는 사실 하나 때문이 아니었나? 이 영화가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유도 현역 네이비 실스 때문이 아니었나?
그렇다. 볼 것이 별로 없는 영화를 볼 만하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현역 네이비 실스다. 현역 네이비 실스가 직접 출연하지 않았더라면 '액트 오브 밸러'는 지금과 같은 관심을 끌기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현역 네이비 실스가 별 볼 일 없는 액션영화를 살린 것이다. 바로 이것이 네이비 실스의 서툰 연기를 무조건 비판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큰 이유 중 하나다. 만약 현역 네이비 실스가 아닌 직업 배우들이 출연했더라면 지금 이것보다도 더욱 한심한 영화가 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역 네이비 실스가 '액트 오브 밸러'의 DVD 판매까지 책임질 듯 하다. 영화 자체는 그다지 깔끔하고 세련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DVD 구입가치가 높은 이유는 '비하인드 스토리' 파트가 볼 만할 것 같아서다. 물론 보너스 콘텐츠가 얼마나 알차냐에 따라 사정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두고볼 문제이긴 하지만, 본 영화는 둘 째 치고 보너스 콘텐츠만을 위해서라도 DVD를 구입할 만한 보기 드문 타이틀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찌되었든 간에 한가지 분명한 점은, 작년 빈 라덴 사살작전 성공 덕에 네이비 실스를 다룬 영화들이 앞으로 제법 많이 제작될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부시 행정부 시절 쏟아져 나왔던 삐딱한 반전영화 유행에서 벗어난 곧바른 전쟁영화들이 많이 나올 것이란 얘기가 된다. 네이비 실스의 활약을 그린 영화가 지지리 궁상형의 반전영화가 되지 않을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 시절엔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헐리우드 영화들이 꽤 많이 제작되었다. 대부분의 미국인 관객들은 이런 영화들이 당파적인 영화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라크 전쟁에 비판적인 영화와 PTSD에 시달리는 미군들에 대한 영화는 꾸준히 제작되었다. 그러나 오바마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부턴 이런 영화의 수가 크게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밀리터리-프렌들리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부시에서 오바마로 정권이 교체되기 무섭게 나왔던 밀리터리-프렌들리 영화 '헛 라커(The Hurt Locker)'가 좋은 예다. '헛 라커'는 계속되는 안티-밀리터리 영화에 열이 받아있던 미군을 달래는 영화였다.
그리고 작년엔 네이비 실스가 오사마 빈 라덴을 성공적으로 제거하면서 밀리터리-프렌들리 영화의 유행을 예고하고 있다. 빅 스크린 영화부터 TV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네이비 실스를 소재로 한 프로젝트들이 여러 개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헛 라커'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캐서린 비글로(Kathryn Bigelo) 감독이 곧 선보일 오사마 빈 라덴 암살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도 그 중 하나다.
사실 비글로의 신작은 여러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오바마의 최대업적으로 꼽히는 빈 라덴 사살을 소재로 한 영화를 미국 대선 한달 전인 2012년 10월12일 개봉하려 했다는 점, 오바마 행정부가 영화 제작진 측에 기밀까지 넘겨줬다는 의혹이 불거져 펜타곤이 수사에 나선 점 등이 문제가 됐다. '액트 오브 밸러'도 미국의 프레지던트 데이(2월20일) 연휴 주말을 끼고 2월17일 개봉할 예정이었다가 개봉일을 1주일 늦추기도 했다. 과거엔 반전영화가 오바마 진영에 도움이 되었으나 빈 라덴 사살 이후부턴 밀리터리-프렌들리 영화가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밀리터리-프렌들리 영화들은 해외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해외시장에선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인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액트 오브 밸러'도 해외시장 영화관객들의 지갑을 털기에 적합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해외에선 어떤 성격의 영화가 잘 통하는지 헐리우드가 아주 잘 알고 있는 만큼 해외시장 입맛 맞추기는 그들이 알아서 잘 할 것으로 믿는다...
실제 그 인물이 연기하는게 확실히 배우들 하는 것보다 더 큰 느낌을 전해줄수 있다고 봅니다.^^
답글삭제이 영화는 미국판 배달의 기수 로군요
ㅎㅎㅎ
요샌 액션영화에 어울리는 남자배우도 찾아보기 힘들죠.
답글삭제그래서 이 친구들이 더욱 돋보였던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과장된 마초형 터프가이도 아니고 억지로 흉내내는 어색한 액션맨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