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5일 월요일

'브레이브', 결혼 문제 겪는 모녀가 함께 봐야할 여성용 애니메이션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후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이 내놓는 애니메이션은 아주 만족스럽거나 '역시 픽사'라는 생각이 들거나 둘 중 하나인 작품이 (거의) 전부이지 기대에 크게 못 미치거나 아주 실망스러운 작품은 (거의) 없다.

이렇게 품질보증 애니메이션만을 선보이는 디즈니/픽사가 2012년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내놨다. 바로 '브레이브(Brave)'다.

'브레이브'의 주인공은 메리다(켈리 맥도널드)라는 빨강머리 공주.

어렸을 때 아버지인 킹 퍼거스(빌리 커널리)로부터 활을 생일선물로 받은 이후부터 메리다는 '양궁 선수'가 된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인 퀸 엘리너(엠마 톰슨)는 톰보이가 되어가는 메리다를 못마땅해 하며 공주다운 생활습관을 가르치면서 시집을 보낼 준비를 한다. 하지만 메리다는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완강히 반대하면서 퀸 엘리너와 충돌한다. 화가 난 메리다는 말을 타고 성 주변의 숲속으로 나가버리는데, 거기에서 우연히 마녀가 사는 오두막을 발견하게 된다. 메리다는 마녀에게 퀸 엘리너의 마음을 돌려놓으면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도록 해주는 마법을 요구한다.

문제는 마녀로부터 얻은 마법이 순수한 것이 아니라 저주였다는 사실!

사태가 이상하게 꼬여가자 메리다는 문제의 저주를 푸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브레이브'의 스토리는 여기까지가 전부다.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스케일이 갈수록 커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마지막까지 별 것 없었다. 엄격한 여왕과 톰보이 공주 모녀가 옥신각신하다가 저주에 걸리고 마지막에 가서 이를 풀면서 끝나는 게 전부였다. 물론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에서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냐는 생각도 들지만, 스토리의 스케일이 예상했던 것보다 작았다. 무언가 더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짧고 간단한 동화 스토리 수준이 전부였다.

시작부터 스토리가 흥미롭지 않았다. 걸작으로 꼽히는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시작부터 줄거리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는 것인데, '브레이브'는 메리다가 마녀를 만나는 데서부터 스토리가 흥미로와질 뿐 그 이전엔 특별할 게 없었다.

그렇다고 흥미로운 부분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결혼 문제로 모녀간에 갈등이 생기는 플롯은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실감 나는 부분이었다. 동화, 판타지 이야기 등에 자주 나오는 흔해 빠진 이야기이므로 아주 새로울 건 없었지만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메리다와 딸에게 "네가 좋은대로 하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엄한 퀸 엘리너가 결혼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마치 실제로 옆에서 벌어지는 사건처럼 느껴졌다.

다른 것은 다 접어두더라로 결혼 문제에 대해선 부모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끼어드는 사례를 실제로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사실 결혼이라는 것은 '짝짓기'에 불과하며 당사자들이 가정을 꾸리고 싶을 때 각자 알아서 해결하면 그만인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때가 되면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해결할 문제이지 주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령기'에 들면 반드시 결혼을 해야만 한다는 틀에 박힌 꽉 막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브레이브'의 메리다와 퀸 엘리너는 공주와 여왕이니까 할 수 없이 따질 건 따져야 하는 처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왕자와 공주가 아닌 사람들이 현실에서 한술 더 뜨는 경우도 자주 목격된다. 자녀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인지 의심스러운 부모들도 많이 눈에 띄며, 결혼에 관심이 없는 자녀들을 들들 볶는 사람들도 많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편하게 살겠다는데 "남이 볼 때 이상하다"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라는 사람들도 있고, 책임과 의무에 구속되기 싫어서 결혼을 하지 않는 데도 "결혼을 해야 책임감과 의무감이 생긴다"고 타이르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도 '브레이브'는 이런 상황을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는 모녀들이 함께 봐야할 영화인 듯 하다.


그렇다면 '브레이브'는 여성용 애니메이션?

아무래도 남성보다 여성의 취향에 보다 잘 맞는 애니메이션인 것은 사실이다. 사내녀석들이 좋아하는 웅장한 스케일의 배틀 씬 등이 나오지 않는 대신 두 모녀가 마법을 풀기 위해 애를 쓰는 소녀들이 즐겨 읽는 동화책과 같은 스토리가 사실상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찬 여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세웠을 뿐만 아니라 여성이 스토리와 연출 등을 맡는 등 여성의 손길이 많이 간 애니메이션이므로 크게 놀랄 만한 결과는 아니다.

다만 줄거리의 스케일이 보다 더 크고 흥미진진했더라면 더욱 재미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브레이브'의 줄거리는 너무 단조로웠고 참신하거나 독특하지도 않았으며 특별한 구석이 없었다. 물론 픽사의 3D 기술은 대단히 특별했지만, 스토리 면에선 실망스러웠다. 유머는 비교적 풍부한 편이었으나 워낙 뻔한 줄거리 덕분에 자칫하면 금세 지루해질 뻔 했다. '브레이브'가 픽사의 다른 걸작 애니메이션에 비해 부족해 보인 이유도 '참신', '독특'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신함과 독특함의 부족은 단지 스토리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브레이브'는 2편의 드림웍스(Dreamworks) 애니메이션을 한데 합쳐놓은 것처럼 보였다. 중세를 배경으로 삼은 점 등은 '드래곤 길들이기(How to Train Your Dragon)'와 비슷했고, 온갖 말썽과 사고를 치고 다니는 메리다의 세 쌍둥이 남동생들은 '마다가스카(Madagascar)'의 펭귄들을 바로 연상시켰다.



그렇다. '브레이브'는 기대했던 만큼 대단한 애니메이션은 아니었다. '라타투이 (Ratatouille)', '월-E(Wall-E)', '업(Up)' 등 픽사의 이전 걸작 수준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볼 만한 애니메이션인 것은 사실이지만 걸작 반열에 오를 만한 작품은 아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어린이들은 웃고 박수치며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성인 관객들은 어느 정도의 아쉬움과 실망감을 준비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 문제로 인해 부모와 트러블을 겪은 적이 있거나 현재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재미있을 수도...

댓글 2개 :

  1. 어제 딸래미랑 3D 영화로 봤는데 바로 리뷰포스팅 보니 너무 반갑네요 ^^. 저 빨간머리 녀석들때문에 많이 웃었네요. 한국은 9월 개봉예정이라는 데 제목이 '메리다와 마법의 숲' 뭔가 영화 내용과 상관이 없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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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하하하 이거 보셨군요...^^
    전 그 마녀와 까마귀가 좀 더 많이 나왔더라면 더 재밌었을 것 같았습니다.

    오, 한국 제목은 다르군요.
    아무래도 좀 더 아동틱한 제목을 고르려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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