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9일 일요일

45주년을 맞은 '007 두 번 산다'를 극장에서 보다!

1962년 1탄 '닥터 노(Dr. No)'가 기대 이상의 흥행 성공을 거두자 007 제작진은 매해마다 한 편씩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를 선보였다. 1963년작 '위기일발/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 1964년작 '골드핑거(Goldfinger)', 1965년작 '썬더볼(Thunderball)' 모두 흥행에 성공했으며, 비용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난 제작진은 007 시리즈를 갈수록 스케일이 크고 화려한 액션 블록버스터 쪽으로 만들어갔다. 애초부터 사실적인 정통 스파이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비용 걱정이 사라지자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매년마다 쉴새 없이 제임스 본드 영화에만 출연하다시피 했던 주연배우 숀 코네리(Sean Connery)도 007 시리즈에 싫증이 났다. 007 시리즈 덕분에 세계적인 수퍼 스타가 되면서 부와 명예를 얻었으나 제임스 본드로 이미지가 굳어버리는 것을 비롯한 여러 가지 걱정과 불만이 쌓이면서 007 제작진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코네리는 007 시리즈 5탄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촬영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극성맞은 일본 기자가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오는 바람에 크게 화를 내기도 했다. 60년대 중반 일본에서 제임스 본드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하지만 당시 코네리는 007 시리즈 인기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코네리는 그의 다섯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두 번 산다' 촬영을 마친 뒤 007 시리즈를 떠나겠다고 발표한다.

1967년작 '두 번 산다'는 코네리의 마지막 6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이다.

또한 007 제작진이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제작비용으로 영화의 스케일을 부풀리는 데만 열중하는 바람에 007 시리즈가 본 궤도에서 눈에 띄게 벗어나기 시작한 첫 번째 영화로 꼽힌다.

영화 '두 번 산다'는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 소설과 제목만 같을 뿐 줄거리 내용이 전혀 다르다. 1탄 '닥터 노'부터 4탄 '썬더볼'까지는 플레밍의 원작에 비교적 충실한 편이었으나 5탄 '두 번 산다'는 로케이션(일본)과 몇 몇 등장 캐릭터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원작소설과 큰 차이가 났다. 원작소설의 줄거리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빠져있던 제임스 본드가 일본에서 새로운 임무를 수행 중 그의 아내를 죽인 범인(블로펠드)과 마주치면서 복수를 한다'는 것인 반면 영화의 줄거리는 '일본 화산 지하에 비밀 기지를 건설한 블로펠드와 그의 범죄조직 스펙터(SPECTRE)가 소련과 미국의 우주선을 납치하면서 양국을 이간시켜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이므로  한마디로 천지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뒤쫓는 복수극이던 원작 소설이 우주선이 우주선을 납치하는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옴 직한 이야기로 바뀐 것이다.

이렇듯 영화 버전 '두 번 산다'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읽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만큼 천지차이가 나는 파격적인 영화였다.

물론 원작 소설과 영화의 줄거리가 100%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얘기다. 소설을 영화로 옮기면서 여러 군데 크고 작은 변화를 준 사례를 흔히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 산다'의 경우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크고 작은 변화를 준 정도가 아니라 제목과 몇몇 등장 캐릭터 등을 제외하곤 원작의 줄거리를 거의 완전히 무시하고 전혀 새로운 내용으로 바꿔치기했기 때문이다.

영화 '두 번 산다'는 제목을 비롯한 기본적인 부분만 원작을 참고했을 뿐 줄거리를 비롯한 나머지는 완전히 새롭게 만든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로 꼽힌다. 007 시리즈의 '소설 vs 영화' 논란도 이 때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스케일이 커지고 보다 화려해진 것은 좋지만 원작 소설과 천지차이로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플롯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변질되면서 제임스 본드 캐릭터도 코믹북 수퍼히어로 쪽에 가까워진 것이 불만인 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

'두 번 산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일본의 아름다운 경치다. 영화 '두 번 산다'는 아시아에서 촬영한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다.

마치 일본 관광홍보 영상처럼 만들어졌다는 비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네온싸인이 번쩍이는 60년대 중반 도쿄의 화려한 밤거리부터 시작해 토요타 자동차, 유명한 히메지 성, 가고시마의 아름다운 해안, 닌자와 사무라이 등 일본 전통의 자객과 무사 소개, 일본 전통 결혼식, 그리고 큐슈에 위치한 화산 신모에 봉 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 중에서 하이라이트는 '제임스 본드 화산'으로도 불리는 신모에 봉이다. 우주선 발사대까지 갖춘 스펙터의 비밀 지하기지로 둔갑한 곳이 바로 이 산이다.

영화 '두 번 산다'에 등장한 스펙터의 화산 지하기지는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음과 동시에 007 시리즈 역대 최고의 비밀기지로 꼽히고 있다. 화산 분화구에 물이 고인 호수처럼 위장한 게이트를 설치한 스펙터의 지하 비밀기지를 디자인한 007 베테랑 프로덕션 디자이너 켄 애덤(Ken Adam)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바로 이 영화가 미국 워싱턴 D.C 근교의 메릴랜드 주 실버 스프링에 위치한 AFI Silver에서 상영됐다. 지난 7월부터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으로 클래식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재상영 중인 AFI Silver가 이번 주말에 '두 번 산다'를 상영한 것.

그러고 보니 '두 번 산다'도 금년에 45주년을 맞았다.

사실 '두 번 산다'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는 제임스 본드 영화가 아니다. 숀 코네리 주연의 제임스 본드 영화 중에선 최악으로 꼽고 있으며, 전체 007 시리즈 중에서도 최하위권으로 꼽는 영화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제임스 본드 영화치고 너무 지나쳐 보였기 때문이다. 귀여운 일본인 본드걸들과 멋진 일본 로케이션, 그리고 007 베테랑 작곡가 존 배리(John Barry)의 멋진 선율과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딸 낸시 시나트라가 부른 메인 타이틀 'You Only Live Twice' 등 '두 번 산다'도 수준급 매력을 갖춘 제임스 본드 영화인 것은 사실이지만 돈만 많이 들어갔을 뿐 크고 작은 어처구니 없는 실수들이 여러 곳에서 눈에 띄는 매우 엉성한 영화라는 인식이 박혀버렸다. 숀 코네리도 제임스 본드 연기에 별 흥미가 없어 보였고, 줄거리마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로 이상해졌으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그.러.나...

6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칠 순 없겠지?

그래서 오늘도 또 AFI Silver로 출동...!


이렇게 해서 어지간 해선 극장에서 볼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숀 코네리 주연의 60년대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를 벌써 다섯 편이나 봤다. 그것도 지긋지긋할 정도로 평범하고 어두침침한 일반 멀티플렉스가 아닌 고급스럽고 스타일리쉬한 AFI Silver에서 말이다.

지난 '골드핑거'에서부터 AFI Silver가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들을 가장 규모가 큰 1관에서 상영해줘서 기분이 더 좋다. 극장에서 수백명의 사람들과 함께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남다른데 AFI Silver 상영관 3개 중에서 가장 넓고 쾌적한 곳에서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앞으로 남은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들도 되도록이면 1관에서 계속 상영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친 김에 나머지 7~80년대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들도 마저 상영해줬으면....

그래도 AFI Silver 덕분에 007 시리즈 50주년을 나름 의미있게 보내게 됐다...

마지막은 낸시 시나트라가 부른 메인 타이틀 'You Only Live Twice'로 하자. (낸시 시나트라를 지난 90년대 중반에 헐리우드 선셋 스트립 타워 레코드에서 만났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서 플레이보이 매거진 싸인회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플레이보이 좋잖수??)


댓글 2개 :

  1. 이 작품부터 루이스 길버트표 망작의 역사가 시작되었죠.
    그래도 아무리 최악의 본드무비 감독의 영화라도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볼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즐거움이겠죠.
    정말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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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도 루이스 길버트의 영화 세 편을 제일 아니 좋아합니다...^^
    그런데도 말이죠,
    막상 90년대 이후에 나온 영화들보단 길버트의 클래식이 차라리 더 나은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길버트의 영화들이 맘에 안 드는 건 여전하지만 브로스난-크레이그 영화엔 별로 정이 안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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