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장고 언체인드', 맘에 쏙 들진 않았지만 여전히 볼 만했다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마이너리티 복수극'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번엔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Inglorious Basterds)'에서 유대계 미국인들로 구성된 미군이 나치에 총알을 날리더니 이번엔 흑인 노예의 차례였다.

19세기 중반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제이미 폭스(Jaime Foxx), 크리스토프 왈츠(Christoph Waltz) 주연의 스파게티 웨스턴, '장고 언체인드(Django Unchained)'가 바로 그것이다.

'장고 언체인드'? 왠지 제목부터 어딘가 친숙하다. 프랭코 네로(Franco Nero) 주연의 60년대 클래식 스파게티 웨스턴 '장고(Django)'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클래식 '장고' 주제곡도 영화에 사용되었다.

타란티노 감독이 지난 6~70년대에 유행했던 스파게티 웨스턴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이전 영화들 중에도 스파게티 웨스턴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영화들이 있다. 그러더니 이번엔 독일계 바운티 헌터(크리스토프 왈츠)와 그에 의해 노예에서 해방된 장고(제이미 폭스)를 주인공으로 세운 스파게티 웨스턴을 내놨다.

줄거리는 단순한 편이다. 추적하던 범인을 잡는데 도움이 필요했던 슐츠(크리스토프 왈츠)가 노예였던 장고(제이미 폭스)와 함께 팀을 이뤄 바운티 헌터 생활을 하던 중 아내가 다른 데로 팔려가 생이별을 했다는 장고의 사연을 듣고 함께 그녀를 찾아나선다는 이야기다.


남북전쟁 발발 직전의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장고 언체인드'는 노예에서 해방되어 총잡이가 된 장고가 벌이는 판타지 복수극이 스타일리쉬하게 펼쳐짐과 동시에 당시 흑인 노예들이 겪었던 고통과 수난, 인종차별, 흑인 노예끼리의 갈등과 배신 등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장고는 백인들에게 복수의 총구를 겨누고 있었지만 그의 베스트 프렌드는 다름아닌 백인이었으며,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장고와 슐츠를 위험에 빠뜨리는 적들 중엔 단지 백인 뿐만이 아니라 흑인도 있었다. 노예에서 풀려난 흑인 총잡이 장고가 악마처럼 묘사된 백인들을 일방적으로 쏴죽이는 영화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항상 그런 식인 것은 아니었다.

폭력수위는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지나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타란티노 영화라서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인지, 피가 사방으로 튀는 씬이 나와도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름 화끈한 액션 씬이 자주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유쾌하고 스타일리쉬해 보였을 뿐 높은 폭력수위는 신경에 쓰이지 않았다.

'장고 언체인드'는 R 레이팅 영화였으므로 폭력수위가 좀 높다고 해서 특별하게 문제될 것도 없어 보였다. 패밀리 영화 레이팅인 PG-13을 받은 영화들 중에 폭력수위가 지나칠 정도로 높은 영화들이 많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지 R 레이팅 액션영화의 폭력수위는 둘 째 문제다.

유머도 풍부했다. 유머는 영화 전반에 걸쳐 풍부한 편이었지만, 특히 바운티 헌터 슐츠가 돋보였다. 타란티노의 2009년 영화 '글로리어스 배스터즈'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였던 크리스토프 왈츠는 '장고 언체인드'에서도 유머가 풍부한 바운티 헌터를 아주 멋지게 연기했다. '장고 언체인드'의 주인공은 물론 장고 프리맨(제이미 폭스)이지만,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바운티 헌터 슐츠가 빠진 '장고 언체인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장고는 빠져도 괜찮지만 슐츠는 빠져선 절대 안 되는 캐릭터처럼 보였다. 차라리 장고가 아니라 슐츠가 주인공이었더라면 더욱 멋질 뻔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슐츠와 장고가 다른 농장으로 팔려간 장고의 아내, 브룸힐다(케리 워싱턴)를 찾아나서는 파트로 넘어가면서부터 영화가 약간 늘어지기 시작했다. 슐츠와 장고가 바운티 헌터로 활약하던 파트와 달리 브룸힐다의 새로운 주인 캘빈(레오나도 디카프리오)과의 노예 매매 이야기로 바뀌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파트에서 악당 캘빈 역의 레오나도 디카프리오(Leonardo DeCaprio), 노예 스티븐 역의 샘 잭슨(Samuel L. Jackson) 등 멋진 배우들이 조연으로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굉장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디카프리오가 앞으로 있을 영화제에서 조연상을 수상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하지만 왠지 영화의 흐름이 끊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브룸힐다 구출작전이 슐츠와 장고의 바운티 헌터 미션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브룸힐다를 구출하기 위해 슐츠와 장고가 준비한 계략도 나름 흥미롭긴 했지만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 전개되다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뻔히 보이는 얘기를 긴 대화 씬으로 약간 지루하게 끈 느낌이 들었다. '장고 언체인드'의 스토리가 런타임 2시간 반을 넘길 정도가 될 것 같지 않았는데, 역시 도중에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타란티노의 이전 영화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는 이렇지 않았다. 역사적 사실까지 뒤집어 엎어버린 엉뚱한 전쟁영화라서 스토리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도중에 늘어지는 느낌이 든 적은 없었다. 런타임도 '장고 언체인드'보다 짧았다.

그러나 '장고 언체인드'는 영화를 너무 길게 만든 것 같았다. 최소한 30분 정도 짧게 했더라도 보여주고자 한 것을 모두 다 보여줄 수 있었다고 본다. 바운티 헌팅과 브룸힐다 구출작전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면서 조금 짧게 만들었더라면 더욱 멋질 뻔 했다.

하지만 그래도 영화는 전반적으로 볼 만했다. 스파게티 웨스턴을 좋아하지 않으며, 타란티노의 영화를 특별하게 좋아하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제이미 폭스 주연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 맘에 들지 않을 만한 조건을 충실하게 모두 갖춘, 여러모로 맘에 쏙 들 수 없는 영화였지만 돈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전히 비현실적인 판타지 복수극이었으나 지나치게 바보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았으며, 6~70년대 클래식 스파게티 웨스턴의 향수, 액션과 드라마, 유머와 메시지가 적당하게 균형을 이룬 'NOT-TOO-BAD' 영화였다.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B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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