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7일 일요일

'다이 하드 5', 이번에도 이름값 못했다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 주연의 액션 시리즈 '다이 하드(Die Hard)'가 25주년을 맞았다. 형사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이 그의 첫 번째 영화에서 L.A의 고층건물을 오르내리며 홀로 인질범 소탕작전을 벌인 지 벌써 25년이나 흘렀다.

'다이 하드' 시리즈 25주년이 되는 2013년, 존 맥클레인이 다섯 번째 영화로 돌아왔다. 그의 아들과 함께...

'다이 하드' 5탄의 제목은 'A Good Day to Die Hard'...

이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농담인 줄 알았다. 유머 감각이 풍부한 '다이 하드' 팬들이 장난스럽게 만든 가짜 제목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오피셜이더라...

'다이 하드' 시리즈가 '다이 하드 2: Die Harder', 'Die Hard with a Vengeance' 등 제목으로 장난을 쳐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4탄 'Live Free or Die Hard'부터 조금 너무하는 것 같더니 5탄에선 거의 코메디 수준이 되고 말았다. 물론 '다이 하드' 시리즈가 진지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제목까지 바보스러워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A Good Day to Die Hard'가 뭐냐...

한국과 일본 제목도 웃기긴 마찬가지다. 한국 제목은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이고 일본 제목은 '다이하드: 라스트 데이(ダイ・ハード-ラスト・デイ)다. 일본 제목보다 더 코믹한 건 아무래도 한국 제목인 듯 하다. 그냥 '굿 데이 투 다이 하드'라고 해도 될 것을 '다이 하드: 굿 데이 투 다이'로 바꾸는 바람에 '다이 하드: 죽기 좋은 날'이란 엉뚱한 제목이 돼버렸다. 1997년 제임스 본드 영화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의 한국 제목이 '투모로'를 뺀 '네버 다이'가 전부란 사실을 알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굿 데이 투 다이'도 만만치 않은 듯 하다.

자 그럼 스토리를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지난 '다이 하드 4'엔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의 딸이 등장했다면 이번 '다이 하드 5'엔 아들 잭 맥클레인(제이 코트니)가 나온다. 그러나 잭 맥클레인은 평범한 아들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활동중인 CIA 에이전트이기 때문이다. 존 맥클레인은 아들 잭이 러시아에서 체포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돕기 위해 러시아로 향한다. 러시아에 도착한 존은 잭이 법원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지만 곧이어 법원은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는다. 그 틈을 타 잭은 러시아 정치범과 함께 탈출에 성공하고, 존은 그제서야 그의 아들이 CIA 에이전트임을 알게 된다. 오랫 동안 연락을 하지 않을 정도로 잭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관계로 아들이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존은 얼떨결에 러시아에서 그의 CIA 아들과 함께 테러리스트 추적에 나서게 된다.


존 맥클레인이 러시아에?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은 CIA?

그렇다. 이번 '다이 하드 5'는 이전 시리즈와 달리 범죄 영화가 아니다. 지난 4탄부터 스파이 픽션 쪽으로 기우는 듯 하더니 이번 5탄에선 완전히 그쪽으로 넘어갔다. '다이 하드 4'에 등장했던 싸이버 테러 플롯은 007 시리즈 23탄 '스카이폴(Skyfall)'이 빌려가더니 '다이 하드 5'는 TV 시리즈 '24'처럼 돼버렸다.

플롯이 우스꽝스러운 것은 어느 정도 용서할 수 있었다. 이런 영화에 대단한 스토리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 형사 존 맥클레인이 러시아에 가서 그의 CIA 아들과 함께 무기급 우라늄을 탈취하려는 테러리스트를 추적한다는 건 '다이 하드' 영화의 줄거리로 보이지 않았다. '터프가이 부자가 힘을 모은다'는 설정까지는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러시아', 'CIA', '우라늄' 등은 '다이 하드' 시리즈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물론 '다이 하드' 시리즈에 항상 스케일이 큰 범죄 플롯이 등장했으므로 크게 새로울 것은 없을 수도 있지만 , 이번엔 왠지 좀 너무 나간 것 같았다. 지난 4탄부터 이상해지는 듯 하더니 이번 5탄은 '다이 하드' 영화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엔 R 레이팅을 받지 않았냐고?

지난 4탄처럼 중학생 레이팅인 PG-13이 아니라 이번 5탄은 R 레이팅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마디로 '총알 한 발' 차이로 R 레이팅을 받은 게 전부였을 뿐 여전히 맹탕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난 4탄처럼 간지러울 정도로 틴무비 티가 나진 않았지만 이번 5탄에서도 R 레이팅 액션영화에 기대했던 만큼의 화끈한 액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5탄도 한 두군데 정도 손질하면 PG-13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마일드한 액션 영화였다. 줄거리가 뻔하고 그리 흥미롭지도 않았는데 액션 씬마저도 흔해 빠진 PG-13 액션 스릴러에서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봐온 평범한 수준의 슈팅, 점핑, 카체이스 씬의 반복이 전부였다. 그래도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 액션영화인 만큼 슈팅 씬은 풍부했지만 코믹북에나 나옴 직한 비현실적이고 터무니 없는 액션 씬 덕분에 스릴과 서스펜스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쏘고 때려부수는 게 전부인 R 레이팅 액션영화라면 높은 폭력수위의 화끈한 액션 씬이라도 풍부했어야 했지만, '다이 하드 5'는 R 레이팅 영화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R 레이팅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이번 5탄도 PG-13을 노렸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테러리스트를 소탕한다'는 설정 자체부터 PG-13 액션 영화에 보다 적합해 보였는데 액션마저도 기대보다 미지근했기 때문이다.

한가지 수확이 있다면, 잭 맥클레인 역을 맡은 호주 배우 제이 코트니(Jai Courtney)가 터프가이 역에 제법 잘 어울려 보인다는 것이다. 코트니는 전직 특수부대 출신 SOG 요원과 같은 역할에 아주 잘 어울릴 듯 하다. 물론 그가 브루스 윌리스로부터 '다이 하드' 시리즈를 물려받을 가능성을 점치긴 일러 보이지만, 액션-밀리터리 영화의 리딩맨으로 잘 어울릴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미 코트니가 브루스 윌리스를 대신해 '다이 하드'의 얼굴이 돼가고 있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른다. 폭스 디지털 엔터테인먼트가 '다이 하드 5' 개봉에 맞춰 선보인 모바일 게임 '다이 하드'에서 제이 코트니의 캐릭터 잭 맥클레인이 주인공을 맡았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브루스 윌리스 없는 '다이 하드'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농반진반으로 잭 맥클레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세운 새로운 액션 시리즈 정도는 기대해 봄 직하다. '다이 하드'라는 타이틀은 브루스 윌리스와 떼기 어려운 만큼 잭 맥클레인의 새로운 시리즈엔 '맥클레인' 등 새로우면서도 낯익은 제목을 달아줄 수도 있을 듯.


'영원한 존 맥클레인', 브루스 윌리스도 역시 이름값을 했다. 과거에 비해 터프가이 포스가 많이 약해진 게 아쉽긴 했지만, 액션영화에 무척 잘 어울리는 몇 안 되는 헐리우드 배우 중 하나인 것만은 여전했다. 만약 '다이 하드 5'에 브루스 윌리스마저 없었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영화가 비교적 짧은 데다 액션 씬이 자주 나오는 만큼 이래저래 지루할 틈은 없었겠지만, 그나마 윌리스가 버티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 없었더라면 문제가 훨씬 심각해졌을 듯 하다. 영화가 다소 헬렐레했지만 낯익은 액션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버텨주면서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고 본다.

그러나 영화는 '다이 하드' 시리즈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2007년에 개봉했던 지난 4탄도 실망스러웠는데 이번 5탄은 그보다 더 실망스러웠다. '다이 하드' 영화는 '다이 하드'다워야 하는데, 갈수록 엉뚱한 영화 시리즈로 변질되고 있었다. 존 맥클레인이 운이 없게도 항상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으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는 '다이 하드' 시리즈의 다소 코믹한 설정도 갈수록 흐릿해졌으며, 제한된 공간 안에서 범죄자들과 쫓고 쫓기며 싸우는 'ME-AGAINST-ARMY' 스타일의 익사이팅한 액션 씬도 사라지는 등 최근에 나온 '다이 하드' 시리즈는 '다이 하드' 영화 답지 않아 보였다.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2005년작 액션 스릴러 '하스티지(Hostage)'가 오히려 '다이 하드' 영화처럼 보였던 반면 최근에 나온 '다이 하드' 4탄, 5탄은 '다이 하드' 영화처럼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번 5탄은 FOX의 인기 TV 시리즈 '24'와 지나치게 뒤범벅이 되면서 더욱 알아보기 어려운 영화가 됐다. '24' 영화 프로젝트가 도중에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다고 '다이 하드' 시리즈를 '24'와 뒤죽박죽 되도록 만든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 듯 하다. '24'는 '24'이고 '다이 하드'는 '다이 하드'다. 그러므로 성격이 다른 두 시리즈를 엉거주춤하게 하나로 합치려는 시도는 더이상 하지 않는 게 좋을 듯 하다.

'다이 하드' 제작진은 어떻게 하면 보다 '다이 하드'다운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해야지 자꾸 샛길로 빠지려 하면 안 된다. '다이 하드' 시리즈와 존 맥클레인을 앞으로도 계속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다이 하드' 답지 않게 계속 변질시킬 것이라면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6탄이 나온다면 아무래도 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겠지만, 다음 번엔 좀 더 '다이 하드'다운 영화가 되길 기대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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