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8일 월요일

금년엔 어느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까?

2013년 아카데미 어워즈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비스트 오브 더 서던 와일드(BEAST OF THE SOUTHERN WILD)',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SILVER LININGS PLAYBOOK)',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 '링컨(LINCOLN)',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아머(AMOUR)', '장고 언체인드(DJANGO UNCHAINED)', '아르고(ARGO)' 등 모두 아홉 편이다.

과연 이 중에서 누가 작품상을 받을까?

아홉 편의 영화 중에서 내가 본 것은 '아머'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 편. '아머'가 얼마나 잘 된 영화인지는 아직 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일단 외국어 영화상은 맡아놓은 듯 하다.

문제는 나머지 여덟 편이다. 이번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 중엔 뚜렷하게 눈에 띄는 프론트 러너가 없어 보여서다.

일단 가장 주목받는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CIA 영화 '제로 다크 서티'와 '아르고'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사살 작전을 소재로 한 스파이 스릴러 '제로 다크 서티'가 가장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 보였다. 그러나 고문 문제 등 뜻밖의 논란에 휘말리며 밀려나기 시작했고, 영화감독 캐더린 비글로(Kathryn Bigelow)는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도 못했다. 영화 자체는 대단히 만족스러웠으나 제작 당시부터 워낙 말이 많았던 데다 새로운 고문 씬 문제까지 터지면서 미끄러지고 있다.


'제로 다크 서티'가 주춤하는 사이 '아르고'가 급부상했다. '아르고'는 골든 글로브(Golden Globe)에서 '제로 다크 서티'를 제치고 작품상을 받더니, 프로듀서 길드 어워즈(PGA Awards), 영국 아카데미(BAFTA) 등에서 연속으로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아르고' 연출을 맡은 벤 애플렉(Ben Affleck)도 비글로와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감독상 부문엔 노미네이트되지 않았으나 골든 글로브, 디렉터 길드 어워즈(DGA Awards), 영국 아카데미(BAFTA) 등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어제 열린 라이터 길드 어워즈(WGA Awards)에서도 '아르고'가 각색상을 받았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링컨'은 다소 따분한 폴리티컬 드라마이고, 로맨틱 코메디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 스파게티 웨스턴 '장고 언체인드', 뮤지컬 '레 미제라블', 판타지 드라마 목큐멘타리(Mockumentary) '비스트 오브 더 서던 와일드' 등은 웰 메이드이긴 해도 헤비급까진 아니다.

여기에 다양한 영화제 결과까지 참고해 보면, 이번 아카데미 작품상은 '아르고'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문제는 '아르고'가 작품상을 받을 만한가 다.

'아르고'가 볼 만한 영화라는 데 이견을 보이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만 한가"라는 문제에선 의견이 갈린다. 실제 벌어졌던 사건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영화도 흥미진진했지만, 영화가 특별하게 아주 잘 됐다는 생각은 강하게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이란 탈출 씬을 실제와 다르게 지나치게 극적으로 묘사했다는 점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제 있었던 이란 대사관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으므로 '아르고'를 보러 가면서 마지막 탈출 씬을 지나치게 드라마틱하게 꾸몄는지 아니면 사실 그대로 옮겼는지 여부가 궁금했었는데, 추격 씬까지 보태며 탈출 씬을 헐리우드 스릴러 스타일로 과장한 것을 보면서 속으로 '역시나'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실화를 기초로 했다고 100% 사실 그대로 영화로 옮겨야 하는 법은 없다. 하지만 '아르고'의 이란 탈출 씬은 너무 진부해 보였다.

그러나 '아르고'는 어제 열린 WGA 어워즈에서 각색상을 받았다. 스크립트가 '아르고'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르고' 쪽으로 대세가 기우는 추세인 만큼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다. 잘 나가다 마지막에 가서 흔해 빠진 헐리우드 스릴러로 둔갑시킨 게 맘에 들지 않더라도, 전체적인 퀄리티가 우수하다고 본 듯 하다.


이렇게 해서 '아르고'가 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는다면 작년 '아티스트(The Artist)'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헐리우드의 역사와 관련 있는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게 된다.

또, 2006년 이후 처음으로 작품상과 감독상이 각기 다른 영화에 돌아가게 된다. 벤 애플렉이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으므로 '아르고'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가져갈 수 없게 돼있기 때문이다.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작품상은 '크래쉬(Crash)'가 받았으나 감독상은 '브록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의 리안(Ang Lee)에게 돌아갔다. 

만약 작품상과 감독상이 같은 영화에 돌아가게 하려면 [링컨 - 스티븐 스필버그],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 - 데이빗 오웬 러셀(David O. Russell)], [비스트 오브 더 서던 와일드 - 벤 자이틀린(Benh Zeitlin)], [아머 - 마이클 해니키(Michael Haneke)], [라이프 오브 파이 - 리안]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이 중에서 [링컨 - 스티븐 스필버그],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 - 데이빗 오웬 러셀], [라이프 오브 파이 - 리안]은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노려볼 만하다.

하지만 왠지 이번엔 작품상과 감독상이 각기 다른 영화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리안은 캐더린 비글로, 벤 애플렉이 후보에 들지 못하면서 유력한 감독상 후보로 꼽히고 있지만, 작품상은 '다른 영화'에게 돌아갈 듯 하다.

이렇듯 금년엔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 유력 후보가 누군지 살짝 불확실하다. 작품상은 '아르고', 감독상은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현재로썬 가장 커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일방적인 선두가 없는 레이스인 만큼 예상밖의 이변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거의 매년마다 누가 어떤 상을 받을 지 예측이 쉽게 가능했던 것과 달리 금년엔 노미네이션에서부터 다소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 혹시 이변을 예고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금년엔 작품상, 감독상 뿐만 아니라 여우주연, 남우조연, 각본 등 수상자를 예측하기 어려운 부문이 많다.

여우주연은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의 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가 골든 글로브, 스크린 액터스 길드 어워드(SAG Awards)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가장 근접해 있으며, '제로 다크 서티'의 제시카 채스테인(Jessica Chastain),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아머'의 이매뉴엘 리바(Emmanuelle Riva)도 얕볼 수 없는 경쟁 상대다.

만약 이번 여우주연상이 제니퍼 로렌스 vs 제시카 채스테인이 된다면 '미친년 vs 빈 라덴 은신처를 찾아낸 Motherfucker'의 대결이 된다.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의 제니퍼 로렌스(왼쪽)

'제로 다크 서티'의 제시카 채스테인
남우조연상 레이스 역시 막상막하다. '링컨'의 토미 리 존스(Tommy Lee Jones),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의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 '장고 언체인드'의 크리스토프 발츠(Christoph Waltz) 등 만만치 않은 배우들이 버티고 있어서다.

토미 리 존스는 스크린 액터스 길드 어워즈(SAG Awards)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러나 '장고 언체인드'의 크리스토프 발츠는 골든 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은 토미 리 존스에게 갈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이지만, 로버트 드 니로나 크리스토프 발츠에 돌아가더라도 놀랄 일은 아닐 듯.

각본상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각본상 후보로는 '플라이트(Flight)', '제로 다크 서티', '장고 언체인드', '문라이즈 킹덤(Moonrise Kingdom)', '아머' 등 다섯 편이 올랐는데, 이 중에서 '제로 다크 서티'와 '장고 언체인드'가 유력한 수상 후보로 보인다. '제로 다크 서티'는 어제 열린 라이터스 길드 어워즈(WGA Awards)에서 각본상을 받았으나 '장고 언체인드'는 골든 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재미있는 건, '제로 다크 서티'가 각본상을 받은 WGA 어워즈엔 '장고 언체인드'가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WGA 어워즈 각본 부문 후보작은 '플라이트', '루퍼(Looper)', '매스터(The Master)', '문라이즈 킹덤', '제로 다크 서티' 등 다섯 편이었고, 이 중에서 '제로 다크 서티'가 상을받았다.

그러므로 '장고 언체인드'가 후보에 오르지 못한 WGA 어워즈에선 '제로 다크 서티'가 상을 받았으나, '장고 언체인드'와 함께 후보에 오른 다른 영화제에선 '장고 언체인드'가 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아카데미에서도 '장고 언체인드'가 '제로 다크 서티'를 또 꺾고 각본상을 받는 것일까? 아니면 WGA 어워즈에서 수상한 '제로 다크 서티'가 '장고 언체인드'를 꺾고 각본상을 가져갈까?


그렇다고 모든 부문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남우주연(대니얼 데이-루이스), 여우조연(앤 해더웨이), 주제곡(스카이폴), 시각효과(라이프 오브 파이) 등은 이변이 없는 한 수상이 확정적이다.

'어린이용 영화', '비쥬얼만으로 승부하는 판타지 영화' 등으로 잘못 알려진 면이 다소 있는 리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시각효과상은 맡아놓은 듯 하며, 촬영상도 수상 가능성이 높다. 작품상은 조금 어려워 보여도 리안 감독이 감독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음악상(스코어) 유력 후보이기도 하다.


자 그럼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가지를 생각해 보자 - 누가 작품상을 받는 게 가장 재미있을까?

현재로썬 '아르고'가 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하지만 '제로 다크 서티'가 작품상을 받는다면 상당히 재미있어질 듯 하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논란거리 투성이였던 '제로 다크 서티'에 비해 '아르고'는 안전한 클린 무비인 것은 사실이지만, 예상을 뒤엎고 '제로 다크 서티'에게 작품상 트로피를 안긴다면 재미있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제로 다크 서티'도 작품상을 충분히 받을 만한 퀄리티의 영화다. 개인적으로, 작품상 후보에 오른 아홉 편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영화가 '제로 다크 서티'이기도 하다. 여러 논란거리들로 어지럽긴 했어도 영화 자체는 훌륭했다.

'제로 다크 서티'가 아니면 작품상 수상 가능성이 다소 희박해 보이던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이나 '라이프 오브 파이' 둘 중 하나에 작품상과 감독상을 몰아 주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작품상은 '아르고', 감독상은 스티븐 스필버그에 갈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이나 '라이프 오브 파이'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쓸면 재미있는 반응이 나올 듯 하다.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과 '라이프 오브 파이' 모두 작품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되는 영화들이기도 하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전과 달리 수상작을 예측하기 약간 어렵다는 재미가 보태진 만큼 이변이 발생하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2월24일 오후 7시(미국 동부시간)/오후 4시(미국 서부시간) 헐리우드의 돌비 시어터(Dolby Theater)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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