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9일 일요일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 시원찮은 줄거리와 함께 어둠 속으로...

지난 2009년 J.J 에이브람스(J.J. Abrams)의 클래식 TV 시리즈를 기초로 한 SF 영화 '스타 트렉(Star Trek)'이 개봉했다. 에이브람스가 '스타 트렉'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왠지 썩 믿음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볼 만했던 영화였다.

4년 뒤인 2013년, 속편이 개봉했다. 제목은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Star Trek: Into Darkness)'.

젊은 캡틴 커크, 크리스 파인(Chris Pine), 젊은 스파크, 재커리 퀸토(Zachary Quinto) 등 2009년 영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데뷔한 신세대 엔터프라이즈호 멤버들도 모두 2013년 속편으로 돌아왔다. J.J 에이브람스, 데이먼 린델로프(Damon Lindelof), 마이클 지아키노(Michael Giacchino) 등 '스타 트렉' 1탄 제작진들도 돌아왔다.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의 스토리는 미스테리한 테러리스트 존 해리슨(베네딕트 컴버배치)을 중심으로 한다. 동료인 줄 알았던 해리슨이 테러리스트로 돌변해 지구를 공격한 뒤 다른 행성으로 도주하자 캡틴 커크와 스파크 일행은 엔터프라이즈호에 해리슨 제거에 사용할 미사일을 싣고 그의 뒤를 쫓는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드론 공격으로 테러리스트를 제거하는 것과 비슷한 성격의 미션을 띄고 출동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해리슨의 정체를 알게 된 캡틴 커크 일행은 해리슨과 적과 동지의 선을 넘나드는 관계로 발전해간다...

과연 속편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도 전편 만큼 만족스러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NO"다.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는 전편 만 못했다.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의 가장 큰 문제는 스토리에 있었다. 영화의 줄거리에 재미를 붙일 수 없었다. 제작진이 어떤 스타일의 스토리를 만들려 했는지는 알 수 있었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스토리를 나름  드라마틱하게 꾸미는 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이야기의 앞뒤가 맞아 떨어지도록 억지로 짜맞춘 티가 눈에 띄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런 문제는 재미가 없는 스토리를 어떻게든 흥미롭고 그럴듯 하게 꾸미려고 오버한 경우에 자주 눈에 띈다.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의 스토리가 딱 그랬다.

해리슨(베네딕트 컴버배치)을 미사일로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은 뒤 "그냥 죽여도 되느냐 아니면 법정에 세워야 하느냐"며 도덕적인 옳고 그름을 놓고 갈등하는 모습, '테러리스트 탄생엔 우리의 책임도 있다'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 등등 '스타 트렉'의 세계와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를 교차시킨 것까지는 귀엽게 봐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 있어 보이는 묵직한 스토리인 듯한 느낌 대신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잔재주를 부린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억지로 짜맞춰 놓은 줄거리도 신경에 거슬렸다.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를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영화는 '스카이폴(Skyfall)'이었다. 폼은 있는대로 잡으면서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설득력이 없는 억지스러운 줄거리가 너무나도 비슷해 보였다. '스카이폴'에서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실바(하비에르 바뎀)의 섬에서 총격전을 벌인 뒤 간단하게 실바를 체포 → 실바의 탈옥 → 런던 공격 순으로 이어지는 상황 연결이 억지스럽고 설득력이 떨어져 보였던 것처럼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도 만만치 않았다. 앞뒤 상황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며 조리 있게 줄거리를 풀어가는 솜씨가 있는 스토리텔러의 작품으로 보이지 않았다.

또한 캐릭터들도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캡틴 커크, 스파크 등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들이 잔뜩 등장하는 영화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억지로 설정한 듯한 드라마틱한 상황에 맞춰 법석을 떠는 게 전부로 보였을 뿐 캐릭터들이 돋보이지 않았다. 영국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h)가 맡은 악당 해리슨은 나쁘진 않았으나 관객들이 증오심을 가질 만큼 차갑고 비열한 캐릭터로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캡틴 커크의 역의 크리스 파인과 스파크 역의 자카리 핀토는 각자의 역할에 변함없이 잘 어울려 보였지만, 이번 영화에선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다. 두 캐릭터의 관계가 전편보다 이번 영화에서 더욱 드라마틱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엔터프라이즈호 승무원들의 드라마는 싱거운 농담 따먹기와  쥐어짜기식 감동주기가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감동적인 씬이 있었다.

캐릭터는 흐리멍텅했어도 속옷의 감동이...


그렇다고 문제만 눈에 띈 건 아니다. 일명 '트레키(Trekkie)'로 불리는 '스타 트렉' 열성팬들을 염두에 둔 클래식 '스타 트렉' 하미지(Homage) 서비스는 나쁘지 않았다. 전편은 캡틴 커크, 스파크 등 낯익은 엔터프라이즈호 승무원들이 사실상 전부였으나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에선 악당과 플롯에서도 클래식 '스타 트렉'의 흔적이 보였다. 윌리엄 섀트너(William Shatner), 레오나드 니모이(Leonard Nimoy) 주연의 60년대 오리지날 '스타 트렉' TV 시리즈와 7080년대에 제작된 영화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에서 낯익은 캐릭터와 친숙한 스토리를 놓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는 여러모로 실망이 더 큰 영화였다. 물론 못 봐줄 정도로 아주 한심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기대했던 만큼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었다. 지난 2009년 첫 번째 영화에서 느껴졌던 희망찬 출발과 익사이팅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유머, 슬픔, 분노, 메시지 등 구색을 갖춘 근사해 보이는 스토리를 억지로 만들려다 영화의 부제처럼 어둠으로 빠진 케이스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들과 거대한 우주선 등을 이미 갖추고 있는 만큼 간단하면서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만 준비하면 익사이팅하고 볼거리가 풍부한 SF 어드벤쳐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스타 트렉'도 '다크 나이트 현상'에 은근히 당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J.J. 에이브람스가 연출한 영화 중에서 맘에 든 영화가 2009년작 '스타 트렉' 하나가 전부인 듯 하다. 에이브람스가 프로듀싱을 맡은 영화까지 범위를 넓히면 2011년작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Mission Impossible: Ghost Protocol)'까지 끼워서 두 편으로 늘어난다. 프로듀서 겸 스크린라이터로 참여한 데이먼 린델로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영화 중에 현재까지 맘에 드는 영화는 2009년작 '스타 트렉' 하나가 전부다. '카우보이 앤 에일리언(Cowboys & Aliens)',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에 이어 이번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도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는 2013년 여름철 영화 중 은근히 기대했던 영화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개봉한 2013년 여름철 영화들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과 달리 '스타 트렉: 인투 다트니스'가 '볼 만한 2013년 여름철 영화 1호'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 영화도 아니었다.

아직도 '1호'를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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