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6일 월요일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 전편을 뛰어넘는 만족감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없었던 것 중 하나가 코믹북이다. 코믹북을 읽는 것보다 그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렇다고 거들떠 보지도 않을 정도로 싫어했던 것은 아니지만 탐독하는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만화책 중에서도 가장 흥미가 끌리지 않았던 쟝르가 수퍼히어로 코믹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상과학과 판타지물에 별 관심이 없었고 그 대신 추리소설과 제임스 본드 소설에 푹 빠져있었으므로 수퍼히어로 코믹북이 입맛에 잘 맞을 리 없었다. 물론 수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다양한 수퍼히어로 '맨' 시리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코믹북 몇 권과 영화, TV 애니메이션, 그리고 요샌 찾아보기 힘든 뷰 매스터 릴(View Master Reel) 등으로 수퍼히어로물을 본 기억이 있긴 있다. 하지만 수퍼히어로 시리즈에 특별하게 매료되었던 기억은 없다.

성인이 된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공상과학과 판타지물은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쟝르가 아니지만 그래도 SF-판타지 영화를 종종 재밌게 볼 때가 있다. 하지만 수퍼히어로 영화엔 여전히 적응이 잘 안 된다. 가벼운 오락영화로 즐기려 해도 전반적으로 입맛에 맞지 않다 보니 즐기기도 힘들 때가 많다. 이런 걸 한창 좋아할 만한 또래에도 재미를 붙이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바뀔 리 없다.  그렇다고 서점에 가면 코믹북, SF-판타지 섹션에 항상 모여 있는 코믹북, 공상과학, 판타지물에 심취한 골수 팬보이들과 어울리며 뒤처진 '진도'를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필요성도 못느낀다.

하지만 요샌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가 헐리우드를 먹여살리다 시피 할 정도로 쏟아져나오는 덕분에 수퍼히어로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원해서라기 보다 그런 영화들이 워낙 자주 많이 개봉되기 때문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특히 여름철 시즌이 되면 수퍼히어로 영화 또는 촌수가 그쪽에 가까운 영화들이 쏟아져나오므로 무덤덤하게 그려려니 하면서 보게 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적이 거의 없었지만, 요샌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휴 잭맨(Hugh Jackman) 주연의 '엑스맨(X-Men)' 시리즈도 2000년대 후반에 개봉한 영화들만 영화관에서 본 게 전부다. 엑스맨, 울버린 시리즈도 유명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시리즈 중 하나이지만 영화 시리즈는 보고픈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영화배우 휴 잭맨까진 괜찮았는데 '엑스맨' 영화엔 전혀 끌리지 않았다. 그래서 '엑스맨 트릴로지'는 홈 비디오로 때웠고,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본 휴 잭맨 주연의 '엑스맨' 영화는 2009년작 '엑스맨 오리진스: 울버린(X-Men Origins: Wolverine)'이었다. 그러나 지금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으므로 재미가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2011년작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X-Men: First Class)'는 의외로 볼 만했다. 이 영화는 휴 잭맨 주연이 아니라 제임스 매커보이(James McAvoy)와 마이클 패스벤더(Michael Fassbender) 주연의 프리퀄이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볼 만했다. 엑스맨 유니버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고 관심도 많지 않았지만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2014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후속편 격인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X-Man: Days of Future Past)'가 개봉했다.

작년에 개봉했던 '엑스맨 오리진스: 울버린'의 후속편 격인 '울버린(The Wolverines)'은 건너뛰었지만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후속편인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는 영화관에 가서 볼 만할 것 같았다.

전편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번엔 휴 잭맨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이다. 휴 잭맨의 로갠/울버린 캐릭터는 '엑스맨 오리진스: 울버린'에선 욕 한마디 하는 씬이 전부였지만 이번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에선 비참한 미래가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과거 70년대로 시간여행을 해서 역사를 바꿔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띤 메인 캐릭터로 등장했다.

과연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는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YES"다.

줄거리는 사실 크게 특별할 것이 없었다.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몸 전체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만 시간 여행을 한다는 점은 흥미로웠지만 특별히 신선하다고 할 만한 부분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영화와 비슷한 부분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7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해 과거의 몸에서 의식을 차린 로갠이 일어서는 씬은 대표적인 시간 여행 영화 중 하나인 1984년작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를 연상시켰다. 이어지는 갱스터들과의 격투 씬도 1984년 영화 '터미네이터'의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왈츠네거)와 펑크족들의 격투 씬과 겹쳐졌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여성 캐릭터를 찾아 역사를 바꿔야 한다'는 설정 또한 1984년작 '터미네이터'와의 공통점 중 하나다. 1984년작 '터미네이터'에선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 터미네이터가 사라 코너(린다 해밀튼)를 찾기 위해 고생을 했다면 2014년작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에선 7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한 로갠(휴 잭맨)이 레이븐(제니퍼 로렌스)을 찾아 헤맨다.

또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의 줄거리가 뮤턴트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 센티넬(Sentinel)의 개발을 막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터미네이터'와 흡사한 데가 있다.

이처럼 '엑스멘: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는 대단히 참신한 내용의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클래식이 된 '터미네이터'를 다시 기억하게 하는 오마쥬는 나쁘지 않아 보였으며, 줄거리 역시도 대단히 새로울 것은 없었어도 시간 여행 설정 때문인지 다른 수퍼히어로 영화들과 분위기가 약간 달랐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뭐니뭐니 해도 화려한 출연진이다. 로갠 역의 휴 잭맨 뿐만 아니라 과거의 젊은 프로페서 X 역의 제임스 매커보이, 미래의 늙은 프로페서 X 역싀 패트릭 스튜어트(Patric Stewart), 과거의 젊은 매그니토 역의 마이클 패스벤더, 미래의 늙은 매그니토 역의 이언 맥켈런(Ian Mckellen), 과거의 레이븐 역의 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 과거의 비스트 역의 니콜라스 홀트(Nicolas Hoult), 미래의 스톰 역의 할리 베리(Halle Berry), 미래의 섀도우캣 역의 엘렌 페이지(Elen Page), 미래의 아이스맨 역의 션 애쉬모어(Shawn Ashmore), 미래의 블링크 역의 판 빙빙(Fan Bingbing) 등 출연진은 디즈니의 '어벤져스(The Avengers)' 저리가라 할 정도로 화려했다. 유명한 배우들이 여럿 출연한 데다 다양한 기술과 능력을 지닌 수퍼히어로 캐릭터도 여럿 등장해서 인지 디즈니의 '어벤져스' 시리즈와 비슷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출연한다고 무조건 볼 만한 영화가 나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유명한 배우들이 너무 많이 출연하면 '유명 영화배우 얼굴값으로 장사하려는 영화 아닌가' 하는 의심을 되레 살 수도 있다. 지난 '어벤져스' 때에도 '유명한 마블 코믹스 수퍼히어로 캐릭터가 무더기로 나오는 것이 혹시 단순한 올스타쇼에 그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어벤져스'는 다들 이름값을 했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의 거의 대부분이 70년대 과거 배경이었기 때문에 미래의 엑스맨 캐릭터 중엔 일부를 제외하곤 비중이 작았으며, 강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도 많지 않았다. 중국 여배우 판빙빙이 맡은 텔레포트 전문 캐릭터 블링크는 눈에 띄는 미래의 엑스맨 캐릭터 중 하나였지만, 왠지 판타지 비디오게임에서 튀어나온 듯 한 것이 텔레포트 번지수가 약간 잘못된 것 같았다.

반면 70년대 과거의 엑스맨 캐릭터들은 로갠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지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이었으며, 미래의 캐릭터들보다 비중이 큰 메인 캐릭터 역할을 맡았다. 이번 영화로 울버린 역만 벌써 일곱 번째인 베테랑 수퍼히어로 휴 잭맨을 비롯해서 거진 폐인이 된 프로페서 X 역의 제임스 매커보이, 카리스마틱한 매그니토 역의 마이클 패스벤더, 비참한 미래를 막을 열쇠를 쥔 레이븐 역의 제니퍼 로렌스 등 출연진 모두 제 몫을 다 했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볼 때마다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와는 별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크게 어색하진 않았으며, 70년대로 돌아가 머슬카를 몰고 다니는 휴 잭맨의 모습은 제 철을 만난 듯 보였다.

액션은 충분한 편이었다. 논스탑 액션과 화려한 비쥬얼 효과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액션 씬이 풍부하진 않았으며, 뚜렷한 악당이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의 화끈한 클라이맥스 배틀도 없었다. 화려한 비쥬얼 효과의 볼거리용 액션 씬은 센티넬과 전투를 벌이는 미래의 엑스맨들의 몫이었으며 70년대 엑스맨들은 액션보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게 주임무였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일부 관객들에겐 액션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시끄러운 액션과 눈만 피곤해지는 비쥬얼 효과로 범벅된 요즘 빅버젯 영화에 점점 식상해가는 관객들에겐 적당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도 분위기가 칙칙한 또 하나의 수퍼히어로 영화였을까?

진지한 '수퍼히어로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억지로 분위기를 잡는 수퍼히어로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되레 너무 오버한다거나 유치하다는 느낌만 들 뿐이었으므로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성인 관객까지 수퍼히어로 영화를 진지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면 수퍼히어로 영화다운 수퍼히어로 영화를 어색하거나 유치하게 보이지 않게 잘 만들면 된다. 이런 수퍼히어로 영화를 비교적 잘 만들고 있는 건 마블(Marvel) 진영이다. 매번 잭팟인 것은 아니지만 '어벤져스'에 이어 이번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도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겁지 않게 균형이 잘 잡힌 영화였다.

뿐만 아니라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는 긴 제목 만큼 유머도 풍부했다. 전편 영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볼 만하긴 했어도 유머가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는데, 이번 영화에선 그런 문제가 없었다. 웃음에 인색한 관객들도 피식 웃을 만한 코믹한 대사와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면서 영화가 너무 딱딱해지는 것을 막았다. 특히 70년대의 젊은 프로페서 X(제임스 매커보이)가 로갠(휴 잭맨)에게 마약 애씨드를 사용하냐고 농담하는 씬과 이번 영화에 새로 등장한 캐릭터 퀵실버를 맡은 에반 피터스(Evan Peters)가 눈썹날리는 빠른 스피드로 돌아다니던 씬에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가장 신경에 거슬렸던 것은 실존했던 과거의 미국 대통령(들)이 나오는 파트다. 한마디로 너무 바보스럽게 보였다. 시간 여행 설정까지는 좋았는데 굳이 과거의 실존 미국 대통령들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었다. 물론 거창하고 그럴 듯 하게 보이도록 꾸미기 위해 실존 미국 대통령들까지 들먹인 것으로 보이지만, 아무리 코믹북 영화라 해도 너무 뚱딴지 같은 소리로 들렸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파트에선 "What?"이라고 중얼거리며 다소 황당해 하는 관객들도 많았다. 아무리 여름철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라지만 실존했던 과거 미국 대통령(들)까지 줄거리로 끌어들인 건 여러모로 너무 지나쳐 보였으며 괜히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어 보였다.

또 하나 신경쓰였던 것은 플라스틱 핸드건이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 역시 액션영화인 까닭에 총기 사용 씬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데, 이상하게도 이번 영화엔 평범한 핸드건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보이는 핸드건이 자주 등장했다. 액션영화에선 싫든 좋든 핸드건이 눈에 띌 수밖에 없게 돼있는데,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에선 평범하지 않아 보이는 플라스틱 핸드건이 더욱 눈에 띄었다. 평범한 핸드건이었다면 별 생각 없이 지나칠 수 있었겠지만, 핸드건이 어딘가 유별나 보였기 때문에 더욱 시선을 끌었다.

왜 이런 핸드건을 영화에 사용한 것일까?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기 브랜드의 평범한 핸드건이 아닌 바로 눈에 띄는 특별한 핸드건을 영화에 굳이 사용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물론 여러 가지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의도였든 간에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였다면 기대 이상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는 액션은 충분하고 유머와 볼거리는 풍부하며 스토리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한 영화였다. 패밀리용 영화로써는 다소 거친 감이 있었지만, 남녀노소 모두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을 만한 영화였다.

표를 살 때만 해도 제법 볼 만했던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일지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영화관을 나설 때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요새 나오는 수많은 수퍼히어로 영화들 중에서 가장 관심이 없던 시리즈가 20세기 폭스의 '엑스맨' 시리즈였는데, 이번 영화를 보고 나니 생각이 제법 달라졌다. 멀쩡해 보이는 휴 잭맨이 손등에 괴상한 걸 달고 폼을 잡은 모습을 볼 때마다 고개를 저으며 피하게 됐던 영화였는데, 이젠 좀 '엑스맨' 유니버스에 익숙해진 것일까?

마지막으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을 들어보자. 뭐니뭐니 해도 이 곡은 70년대와 딱 어울리는 듯 하다.



댓글 2개 :

  1. 플라스틱 핸드건은 극중 매그니토의 능력이 금속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기에 인간들이 그를 막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라고 보시면 편하실 겁니다. 기존 엑스맨 트릴로지 2편에서도 매그니토가 플라스틱 감옥에 갇힌다는 설정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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