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존 르 카레(John Le Carre)다. 전직 영국 정보부 오피서 출신 소설가 존 르 카레(본명: 데이빗 콘웰)는 지난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러 편의 베스트셀러 스파이 소설을 선보인 유명한 영국의 스파이 소설가다. 르 카레는 한국에선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1963년 소설 '더 스파이 후 케임 인 프롬 더 콜드(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으며, 그의 많은 소설이 TV 시리즈와 영화 등으로 제작되었다.
한편에선 존 르 카레가 한 물 갔다고 한다. 르 카레가 냉전시대 배경의 스파이 소설로 유명했던 건 사실이지만 현재 진행형인 테러와의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예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냉전시대는 르 카레의 시대였던 반면 테러와의 전쟁은 그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인지 다소 시각차가 나거나 르 카레가 나이브하게 보일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르 카레의 2008년 소설 '모스트 원티드 맨(A Most Wanted Man)'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참수 처형과 자폭 테러 등으로 악명 높은 거친 테러리스트들을 과거 냉전시대의 세련된 스파이들과 동등하게 상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인 만큼 정보부도 상대에 맞춰 거칠어질 수 밖에 없지만, 르 카레가 이 부분에서 소프트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가 잘 알고 있는 세련된 올드스쿨 스파이크래프트 쪽에만 밝을 뿐 파괴와 살상이 목표인 테러리스트들을 상대하는 거친 테러와의 전쟁 시대는 그의 전문이 아닌 듯 했다.
존 르 카레의 소설 '모스트 원티드 맨'은 러시아 범죄자의 검은 돈을 관리하는 독일 은행의 영국인 은행장 토니 브루, 토니 브루를 찾아가 도움을 받으라는 말을 듣고 독일 함부르크에 밀입국한 체첸-러시안 청년 이사, 이사의 독일 체류를 위해 뛰는 독일인 좌파 인권 변호사 애나벨 릭터, 이사의 독일 밀입국을 모니터링하는 독일 카운터테러리즘 오피서 건터 바크맨, 겉으로는 테러에 반대하고 평화를 주장하면서 뒤로는 테러리스트에 자금 지원을 한다는 의심을 서방 정보기관들로부터 받고 있는 독일 거주 무슬림 지도자 압둘라, 은행장 토니 브루를 찾아가 이사가 원하는 대로 들어줄 것을 요구하는 영국 MI6, 건터 바크맨 주도의 오퍼레이션에 '옵저버' 자격으로 참여하여 상황을 주시하는 미국 CIA 등이 뒤엉킨 테러와의 전쟁을 소재로 한 스파이 스릴러 소설이다.
소설 자체는 읽을 만했다. 스토리와 등장 캐릭터 모두 흥미진진했으며 전개도 스피디했다. 그러나 '모스트 원티드 맨'은 미국의 네오콘과 CIA의 오퍼레이션에 대한 비난이 핵심인 소설이었다는 점이 신경에 거슬렸다. 르 카레가 부시 정권의 팬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데다 그가 무슨 문제를 제기하려는 지도 알 수 있었으나 다소 시각차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르 카레의 냉전시대 배경 클래식 스파이 소설들은 지금 다시 읽어도 재밌는 반면 테러와의 전쟁 등 현재를 배경으로 한 르 카레의 소설엔 손이 잘 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미국서 출간되기 무섭게 서점에서 하드커버로 구입한 존 르 카레의 마지막 책이 '모스트 원티드 맨'이 된 이유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었으리라 본다. 르 카레의 '모스트 원티드 맨'은 읽을 만했지만 입맛에 맞는 소설은 아니었다.
그런데 르 카레의 '모스트 원티드 맨'을 각색한 영화가 개봉했다.
메인 캐릭터인 독일 카운터테러리즘 오피서 건터 바크맨 역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필립 시모어 호프맨(Phillip Seymour Hoffman), 독일인 여변호사 애나벨 릭터 역은 캐나다 여배우 레이첼 맥애덤스(Rachel McAdams), 영국인 은행장 피터 브루 역은 미국 영화배우 윌렘 데포(Willem Dafoe), CIA 오피서 마사 역은 미국 여배우 로빈 라이트(Robin Wright), 독일에 밀입국한 청년 이사 역은 러시아 영화배우 그리고리 도브리긴(Grigoriy Dobrygin), 테러리스트를 후원한다는 의심을 받는 무슬림 지도자 압둘라 역은 이란 배우 호메이온 어샤디(Homayoun Ershadi)가 각각 맡았다.
연출은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 주연의 스릴러 영화 '아메리칸(The Amercian)'을 연출한 네덜란드 영화감독 앤튼 코빈(Anton Corbjin)이 맡았으며, 각색은 멜 깁슨(Mel Gibson) 주연의 스릴러 '에지 오브 다크니스(Edge of Darkness)'의 스크린플레이를 썼던 호주 스크린라이터 앤드류 보벨(Andrew Bovell)이 맡았다.
과연 영화버전 '모스트 원티드 맨'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기대 이상이었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요근래 나온 최고의 스파이 스릴러 영화였다. 책을 기초로 한 영화들이 기대 이하에 머무르는 경우가 잦았고 소설의 팬들을 만족시킬 만큼 영화로 잘 옮겨진 경우도 드물었기 때문에 '모스트 원티드 맨'도 '일단 두고 보자'였다. 그러나 '모스트 원티드 맨'은 영화가 소설보다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일단 출연진은 흠잡을 데가 거의 없었다. 필립 시모어 호프맨은 존 르 카레가 창조한 유명한 스파이 캐릭터 조지 스마일리와 '더 스파이 후 케임 인 프롬 더 콜드'의 알렉 리마스를 번갈아 연상시키면서 지치고 외로운 독일 카운터테러리즘 오피서 건터 바크맨 역을 멋지게 소화했다. 시모어 호프맨은 르 카레가 소설에서 묘사했던 건터 바크맨과 외모에서부터 성격까지 완벽하게 일치된 모습을 보여줬다. 시모어 호프맨이 아쉽게도 금년 초에 세상을 떠나긴 했어도 곧 열릴 메이저 헐리우드 영화 시상식에서 남우주연 후보에 오를 만해 보였다. 영국 은행장 토니 브루 역은 유머 감각이 풍부해 보이는 전형적인 영국 중년신사 타잎의 배우가 맡아 약간의 코믹 릴리프 역할도 맡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베테랑 영화배우 윌렘 데포의 매우 심각해 보이는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워낙 딱딱하고 진지한 톤의 영화였던 만큼 토니 브루가 약간이나마 웃음을 주는 역할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없지 않아 있지만 긴장감이 흐르는 윌렘 데포 버전도 맘에 들었다. 레이첼 맥애덤스가 독일 여변호사 애나벨 릭터 역을 맡았다는 점도 처음엔 약간 의외였다. 르 카레의 책을 읽으면서 머릿 속에서 그려봤던 애나벨 릭터의 모습은 당차고 쌀쌀맞은 스타일의 여성이었는데, 레이첼 맥애덤스에선 그런 면을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왠지 애나벨 릭터가 존 르 카레 버전 리스벳 살란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루니 마라(Rooney Mara)가 맡았다면 더욱 잘 어울렸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온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맥애덤스 버전도 나쁘진 않았다. 캐릭터 이미지가 보다 흐리멍텅해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크게 방해가 되진 않았다. 쌀쌀맞은 애나벨 릭터와 다소 능글거리는 토니 브루가 연출하는 코믹한 씬을 볼 수 없었던 것이 뭐니뭐니 해도 제일 아쉬웠지만, '모스트 원티드 맨'은 유머와는 담을 쌓은 듯한 영화였다.
스토리는 원작과 차이가 나지 않았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원작에 충실하게 옮겨진 영화였다. 제작진이 소설과 약간 다른 순서로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영화의 스토리가 소설보다 리니어하게 전개되도록 변화를 준 덕분에 스토리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원작소설과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를 꼽자면 영화버전엔 영국 MI6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소설에선 미국, 영국, 독일 정보부 모두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영화에선 MI6 파트를 생략하면서 스토리를 보다 단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스토리를 엉성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소설보다 전개 속도가 빠르고 이해하기 쉽도록 변화를 줬다는 장점들만 눈에 띄었지 단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처럼 익사이팅한 액션과 스릴은 없었으나 스토리 하나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내내 긴장을 풀 틈을 주지 않고 스크린을 노려보게 만들었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현재까지 개봉한 2014년 영화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영화였다. 입맛에 딱 맞는 주제의 영화는 아니었지만 영화 자체는 흠잡을 데가 거의 없어 보였다. 소설에서 입맛에 맞지 않았던 부분은 영화 버전에도 여전히 존재했으나 영화로 옮겨지면서 다소 마일드해진 덕분인지 크게 방해되지 않았으며,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스크린에서 눈을 뗄 틈이 없었을 정도로 상영시간을 100% 즐길 수 있었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곧 열릴 메이저 헐리우드 영화 시상식에서 연기, 각색, 촬영 부문 등에서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아카데미 남우주연과 각색상 후보에 올랐던 존 르 카레의 소설을 기초로 한 2011년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Tinker Tailor Soldier Spy)'보다도 '모스트 원티드 맨'이 더 맘에 들었다. 소설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더 맘에 들지만 영화 버전은 '모스트 원티드 맨'이 더 맘에 들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모스트 원티드 맨'을 요근래 나온 최고의 스파이 스릴러 영화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모스트 원티드 맨'에서 007 시리즈나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 타잎의 액션과 스릴을 기대한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스파이 스릴러라고 하면 액션 스릴러 영화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므로 '모스트 원티드 맨'도 어둡고 심각한 톤의 액션 스릴러 영화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런 류의 스파이-액션 영화를 기대했다면 '모스트 원티드 맨'은 가장 지루한 스파이 스릴러 영화가 될 것이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액션 스릴러 영화 팬들을 겨냥한 스파이 영화가 아니다. 존 르 카레의 소설을 기초로 한 스파이 영화들은 쟝르 상으로 드라마에 속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모스트 원티드 맨'도 마찬가지다. 정보부 오퍼레이터들이 타겟을 감시하고 미행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릴 이상을 기대해선 안 된다. 스파이물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것만으로 충분하겠지만 액션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크게 부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제작진은 원작소설에 없는 추격씬을 영화에 넣으면서 소설보다 좀 더 인텐스하고 스릴넘치도록 만들긴 했지만, 액션 스릴러 팬들의 눈엔 있으나 마나 한 씬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존 르 카레의 소설과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모스트 원티드 맨'에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에선 존 르 카레가 한 물 갔다고 한다. 르 카레가 냉전시대 배경의 스파이 소설로 유명했던 건 사실이지만 현재 진행형인 테러와의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예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냉전시대는 르 카레의 시대였던 반면 테러와의 전쟁은 그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인지 다소 시각차가 나거나 르 카레가 나이브하게 보일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르 카레의 2008년 소설 '모스트 원티드 맨(A Most Wanted Man)'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참수 처형과 자폭 테러 등으로 악명 높은 거친 테러리스트들을 과거 냉전시대의 세련된 스파이들과 동등하게 상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인 만큼 정보부도 상대에 맞춰 거칠어질 수 밖에 없지만, 르 카레가 이 부분에서 소프트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가 잘 알고 있는 세련된 올드스쿨 스파이크래프트 쪽에만 밝을 뿐 파괴와 살상이 목표인 테러리스트들을 상대하는 거친 테러와의 전쟁 시대는 그의 전문이 아닌 듯 했다.
존 르 카레의 소설 '모스트 원티드 맨'은 러시아 범죄자의 검은 돈을 관리하는 독일 은행의 영국인 은행장 토니 브루, 토니 브루를 찾아가 도움을 받으라는 말을 듣고 독일 함부르크에 밀입국한 체첸-러시안 청년 이사, 이사의 독일 체류를 위해 뛰는 독일인 좌파 인권 변호사 애나벨 릭터, 이사의 독일 밀입국을 모니터링하는 독일 카운터테러리즘 오피서 건터 바크맨, 겉으로는 테러에 반대하고 평화를 주장하면서 뒤로는 테러리스트에 자금 지원을 한다는 의심을 서방 정보기관들로부터 받고 있는 독일 거주 무슬림 지도자 압둘라, 은행장 토니 브루를 찾아가 이사가 원하는 대로 들어줄 것을 요구하는 영국 MI6, 건터 바크맨 주도의 오퍼레이션에 '옵저버' 자격으로 참여하여 상황을 주시하는 미국 CIA 등이 뒤엉킨 테러와의 전쟁을 소재로 한 스파이 스릴러 소설이다.
소설 자체는 읽을 만했다. 스토리와 등장 캐릭터 모두 흥미진진했으며 전개도 스피디했다. 그러나 '모스트 원티드 맨'은 미국의 네오콘과 CIA의 오퍼레이션에 대한 비난이 핵심인 소설이었다는 점이 신경에 거슬렸다. 르 카레가 부시 정권의 팬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데다 그가 무슨 문제를 제기하려는 지도 알 수 있었으나 다소 시각차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르 카레의 냉전시대 배경 클래식 스파이 소설들은 지금 다시 읽어도 재밌는 반면 테러와의 전쟁 등 현재를 배경으로 한 르 카레의 소설엔 손이 잘 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미국서 출간되기 무섭게 서점에서 하드커버로 구입한 존 르 카레의 마지막 책이 '모스트 원티드 맨'이 된 이유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었으리라 본다. 르 카레의 '모스트 원티드 맨'은 읽을 만했지만 입맛에 맞는 소설은 아니었다.
그런데 르 카레의 '모스트 원티드 맨'을 각색한 영화가 개봉했다.
메인 캐릭터인 독일 카운터테러리즘 오피서 건터 바크맨 역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필립 시모어 호프맨(Phillip Seymour Hoffman), 독일인 여변호사 애나벨 릭터 역은 캐나다 여배우 레이첼 맥애덤스(Rachel McAdams), 영국인 은행장 피터 브루 역은 미국 영화배우 윌렘 데포(Willem Dafoe), CIA 오피서 마사 역은 미국 여배우 로빈 라이트(Robin Wright), 독일에 밀입국한 청년 이사 역은 러시아 영화배우 그리고리 도브리긴(Grigoriy Dobrygin), 테러리스트를 후원한다는 의심을 받는 무슬림 지도자 압둘라 역은 이란 배우 호메이온 어샤디(Homayoun Ershadi)가 각각 맡았다.
연출은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 주연의 스릴러 영화 '아메리칸(The Amercian)'을 연출한 네덜란드 영화감독 앤튼 코빈(Anton Corbjin)이 맡았으며, 각색은 멜 깁슨(Mel Gibson) 주연의 스릴러 '에지 오브 다크니스(Edge of Darkness)'의 스크린플레이를 썼던 호주 스크린라이터 앤드류 보벨(Andrew Bovell)이 맡았다.
과연 영화버전 '모스트 원티드 맨'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기대 이상이었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요근래 나온 최고의 스파이 스릴러 영화였다. 책을 기초로 한 영화들이 기대 이하에 머무르는 경우가 잦았고 소설의 팬들을 만족시킬 만큼 영화로 잘 옮겨진 경우도 드물었기 때문에 '모스트 원티드 맨'도 '일단 두고 보자'였다. 그러나 '모스트 원티드 맨'은 영화가 소설보다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일단 출연진은 흠잡을 데가 거의 없었다. 필립 시모어 호프맨은 존 르 카레가 창조한 유명한 스파이 캐릭터 조지 스마일리와 '더 스파이 후 케임 인 프롬 더 콜드'의 알렉 리마스를 번갈아 연상시키면서 지치고 외로운 독일 카운터테러리즘 오피서 건터 바크맨 역을 멋지게 소화했다. 시모어 호프맨은 르 카레가 소설에서 묘사했던 건터 바크맨과 외모에서부터 성격까지 완벽하게 일치된 모습을 보여줬다. 시모어 호프맨이 아쉽게도 금년 초에 세상을 떠나긴 했어도 곧 열릴 메이저 헐리우드 영화 시상식에서 남우주연 후보에 오를 만해 보였다. 영국 은행장 토니 브루 역은 유머 감각이 풍부해 보이는 전형적인 영국 중년신사 타잎의 배우가 맡아 약간의 코믹 릴리프 역할도 맡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베테랑 영화배우 윌렘 데포의 매우 심각해 보이는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워낙 딱딱하고 진지한 톤의 영화였던 만큼 토니 브루가 약간이나마 웃음을 주는 역할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없지 않아 있지만 긴장감이 흐르는 윌렘 데포 버전도 맘에 들었다. 레이첼 맥애덤스가 독일 여변호사 애나벨 릭터 역을 맡았다는 점도 처음엔 약간 의외였다. 르 카레의 책을 읽으면서 머릿 속에서 그려봤던 애나벨 릭터의 모습은 당차고 쌀쌀맞은 스타일의 여성이었는데, 레이첼 맥애덤스에선 그런 면을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왠지 애나벨 릭터가 존 르 카레 버전 리스벳 살란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루니 마라(Rooney Mara)가 맡았다면 더욱 잘 어울렸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온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맥애덤스 버전도 나쁘진 않았다. 캐릭터 이미지가 보다 흐리멍텅해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크게 방해가 되진 않았다. 쌀쌀맞은 애나벨 릭터와 다소 능글거리는 토니 브루가 연출하는 코믹한 씬을 볼 수 없었던 것이 뭐니뭐니 해도 제일 아쉬웠지만, '모스트 원티드 맨'은 유머와는 담을 쌓은 듯한 영화였다.
스토리는 원작과 차이가 나지 않았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원작에 충실하게 옮겨진 영화였다. 제작진이 소설과 약간 다른 순서로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영화의 스토리가 소설보다 리니어하게 전개되도록 변화를 준 덕분에 스토리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원작소설과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를 꼽자면 영화버전엔 영국 MI6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소설에선 미국, 영국, 독일 정보부 모두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영화에선 MI6 파트를 생략하면서 스토리를 보다 단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스토리를 엉성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소설보다 전개 속도가 빠르고 이해하기 쉽도록 변화를 줬다는 장점들만 눈에 띄었지 단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처럼 익사이팅한 액션과 스릴은 없었으나 스토리 하나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내내 긴장을 풀 틈을 주지 않고 스크린을 노려보게 만들었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현재까지 개봉한 2014년 영화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영화였다. 입맛에 딱 맞는 주제의 영화는 아니었지만 영화 자체는 흠잡을 데가 거의 없어 보였다. 소설에서 입맛에 맞지 않았던 부분은 영화 버전에도 여전히 존재했으나 영화로 옮겨지면서 다소 마일드해진 덕분인지 크게 방해되지 않았으며,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스크린에서 눈을 뗄 틈이 없었을 정도로 상영시간을 100% 즐길 수 있었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곧 열릴 메이저 헐리우드 영화 시상식에서 연기, 각색, 촬영 부문 등에서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아카데미 남우주연과 각색상 후보에 올랐던 존 르 카레의 소설을 기초로 한 2011년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Tinker Tailor Soldier Spy)'보다도 '모스트 원티드 맨'이 더 맘에 들었다. 소설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더 맘에 들지만 영화 버전은 '모스트 원티드 맨'이 더 맘에 들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모스트 원티드 맨'을 요근래 나온 최고의 스파이 스릴러 영화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모스트 원티드 맨'에서 007 시리즈나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 타잎의 액션과 스릴을 기대한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스파이 스릴러라고 하면 액션 스릴러 영화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므로 '모스트 원티드 맨'도 어둡고 심각한 톤의 액션 스릴러 영화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런 류의 스파이-액션 영화를 기대했다면 '모스트 원티드 맨'은 가장 지루한 스파이 스릴러 영화가 될 것이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액션 스릴러 영화 팬들을 겨냥한 스파이 영화가 아니다. 존 르 카레의 소설을 기초로 한 스파이 영화들은 쟝르 상으로 드라마에 속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모스트 원티드 맨'도 마찬가지다. 정보부 오퍼레이터들이 타겟을 감시하고 미행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릴 이상을 기대해선 안 된다. 스파이물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것만으로 충분하겠지만 액션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크게 부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제작진은 원작소설에 없는 추격씬을 영화에 넣으면서 소설보다 좀 더 인텐스하고 스릴넘치도록 만들긴 했지만, 액션 스릴러 팬들의 눈엔 있으나 마나 한 씬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존 르 카레의 소설과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모스트 원티드 맨'에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저도 좋게봤습니다. 소설자체도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소설 속 함부르크는 거친 느낌인데 실제 함부르크는 뭔가 낭만적인 항구도시느낌도 나면서도 속에 뭔가를 더러운것을 숨기는 듯한 느낌이어서 좋았네요.
답글삭제결말부분도 미국요원의 일갈로 끝났던 소설은 뭔가 좀 속된말로 노티난다고 할까나요.. 너무 프로파간다같다고 할까나요 그랬는데 영화는
필립세이호프먼이 외치는 그 명대사! 감정을 한번도 안드러내다가 유일하게 딱 드러내고 펑하고 폭발하는식으로 각색한 부분이 더 좋았습니다.
결말의 씁쓸함이 시리아나때를 떠올리기도하고요.
다만 그린존때까지만해도 911관련 소재는 지친느낌이었는데 역시 모스트원티드맨도 좀 늦지않았나 생각도 듭니다.
저도 소설보다 영화 버전이 더 맘에 들었습니다. 깔끔하게 영화로 옮긴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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