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4일 월요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조금 싱거웠지만 여름철 영화론 O.K

언제부터인가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죄다 어두침침해졌다. 유니버설의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가 진지하고 격렬한 액션 영화 유행을 몰고 왔고 워너 브러더스의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트릴로지가 심각하고 어두침침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 유행을 몰고 온 주범(?)으로 꼽힌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런 유행에 식상한다는 반응이 늘기 시작했다. '어둡게', '진지하게', '격렬하게'라는 유행 공식에 철저하게 맞춘 영화들만 쏟아져 나오니까 그런 영화들이 전부 싸구려틱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까놓고 바보스러운 영화보다 별 것 없으면서 겉으로만 거창한 척, 묵직한 척, 진지한 척 하는 영화들이 더 유치하고 바보스럽게 보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듯 했다.

이렇다 보니 "도저히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데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영화가 싫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디즈니의 마블(Marvel)은 '어두침침' 유행에 덜 휘말리는 편이다. 물론 디즈니도 수상한 영화들을 많이 내놨으며 마블 또한 마찬가지로 시원치 않은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들을 내놓은 바 있지만, 다른 영화 스튜디오보다 패밀리-프렌들리를 중요시 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보다 밝고 유머도 풍부한 영화들이 많이 눈에 띈다. '아이언 맨(Iron Man)', '토르(Thor)', '어벤저스(The Avengers)'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패밀리-프렌들리 여름철 영화로는 밝은 분위기에서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마블 코믹스의 영화가 더 적합하다고 본다.

이러한 마블이 2014년 여름 시즌을 마감할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를 내놨다.

그렇다. 벌써 8월이다. 월드컵 때문이었는지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가 없었기 때문인지 2014년 여름 시즌이 상당히 빨리 지나간 듯한 느낌이다. 여름철 블록버스터보다 월드 뉴스가 더 익사이팅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마블이 내놓은 최신작의 제목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Guardians of the Galaxy)'.

그렇다. 금년 초 ABC TV의 '지미 키멜 라이브(Jimmy Kimmel Live)'에서 첫 번째 트레일러를 최초로 공개했을 때 왠지 재앙 수준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바로 그 영화다. 코미디언 크리스 프랫(Chris Pratt)을 주인공으로 세운 만큼 유머 비중을 늘린 영화라는 사실은 잘 알겠는데 무언가 좀 굉장히 어색해 보였다. 식상한 '어두침침'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히 알 수 있었으나 억지로 웃기려 하는 영화처럼 보였다. 유머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너무 오버하는 영화 같았다.

이 정도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첫 번째 트레일러를 본 첫 인상이 좋지 않았다.

과연 그 첫 인상이 정확했을까 아니면 빗나갔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제법 볼 만했다. 첫 번째 트레일러를 보고 걱정했던 만큼 실망스럽진 않았다. 그러나 영화가 조금 싱거웠기 때문에 대단히 만족스러웠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여름철 영화로 즐기기엔 그럭저럭 무난했지만 큰 만족감이 드는 영화는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인디아나 존스(Indiana Jones)와 '스타 워즈(Star Wars)'가 '어벤져스'를 만난 듯한 영화였다. '스타-로드'라 불리는 메인 캐릭터 피터 퀼(크리스 프랫)은 인디아나 존스와 핸 솔로의 영향을 받은 캐릭터였으며, 영화의 주 무대가 우주였으므로 다른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와 달리 '스타 워즈', '스타 트렉(Star Trek)' 등 우주 배경의 SF 영화에 보다 가까워 보였다. 우주 배경의 판타지 영화에 가까웠던 '토르' 시리즈처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도 일반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와 분위기가 다소 다른 영화였다.

피터 퀼 뿐만 아니라 메인 캐릭터 전체가 수퍼히어로보다 SF 어드벤쳐물 캐릭터에 가까워 보였다. '스타 트렉'에서 튀어나온 듯한 초록색 피부의 가모라(조 살다나), 너구리처럼 생긴 로켓(음성 브래들리 쿠퍼), 나무처럼 생긴 그룻(음성 빈 디젤), 근육질의 디스트로이어(데이빗 바티스타) 등 메인 캐릭터 모두 뚜렷한 특기를 지닌 괴짜들이었으나 크게 특별할 것은 없는 캐릭터들이었다. 이들은 '스타 워즈'나 '스타 트렉'과 같은 영화에 보다 잘 어울려 보이는 캐릭터들이었지 수퍼파워를 지닌 수퍼히어로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코믹북 수퍼히어로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였을까? 지난 '토르' 시리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반 수퍼히어로 영화들과의 차이가 느껴지는 색다른 맛이 맘에 들었다. SF-판타지물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퍼히어로물보다는 SF-판타지물이 보다 입맛에 쉽게 맞기 때문인 듯 하다. 전형적인 수퍼히어로물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수퍼히어로 영화가 더 맘에 든다는 것이 약간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최근 들어 재밌게 본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대부분 그런 영화였다. 요즘엔 수퍼히어로 영화가 워낙 많이 나오는 바람에 싫든 좋든 자주 보게 돼있는데, SF-판타지 분위기가 흐르는 수퍼히어로 영화 덕분에 관심이 없던 수퍼히어로물에 그럭저럭 재미를 붙일 수 있게 됐으니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유머도 풍부했다. '토르'와 '어벤저스'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던 특징 중 하나가 풍부한 유머였는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도 마찬가지였다. 메인 캐릭터 전체가 모두 멀쩡해 보이다가도 순식간에 수상해지는 것이 다들 코믹했고, 조크와 말장난도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인지, 너무 유머에만 올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칙칙한 분위기에 유머가 매마른 영화들이 요새 많이 나온 것은 사실이므로 별 것도 없으면서 심각한 척 육갑하지 않고 가볍게 넘어가는 스타일이 유쾌하고 보기에도 편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과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든 간에 적당한 게 좋지 과하면 문제가 생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코미디성이 강한 영화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SF-수퍼히어로 영화라는 점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데 주객이 전도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면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래도 영화 내내 옅은 미소 한 번 짓지 않고 딱딱하게 굳은 콘크리트 얼굴로 끝까지 밀고 가는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보단 보기에 좋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볼거리도 풍부한 편이었다. 하지만 악당부터 시작해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세계와 액션 씬이 '토르', '스타 트렉'의 것과 비슷했기 때문에 눈에 띄게 새로운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서 본 듯한 것을 다른 영화에서 반복해서 보게 되는 건 이젠 뉴스감도 아니며 "요즘 아이들은 30년 전의 것을 모른다"면서 리메이크를 계속 하는 판이므로 앞으로 눈에 띄게 새로운 점을 찾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질 듯 하다. 그래도 눈을 즐겁게 해주는 씬들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눈만 즐거웠을 뿐 액션 씬에서 에너지와 익사이팅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SF 영화들 못지 않게 스크린은 화려했지만 액션이 미지근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문제는 줄거리에 있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피터 퀼(크리스 프랫)이 아무 것도 모른 채 입수한 정체 불명의 원형 물체가 대단히 위험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이용해 재앙적인 파괴를 꾀하는 세력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혈투를 벌인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캐릭터, 유머, 볼거리에만 신경을 쏟았을 뿐 스토리텔링엔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았다. 영화를 어느 정도 재밌게 보려면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어 줄거리 전개를 타고 마지막까지 술술 흘러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류의 영화에선 스토리 자체보다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가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선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정체 불명의 원형 물체를 놓고 옥신각신한다는 줄거리 자체부터 그다지 흥미가 끌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조리 있고 흥미진진하게 줄거리를 전개할 필요가 있었는데 제작진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영화의 세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끌어줄 정도는 돼야 했으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토리는 전개가 산만해서 집중하기 어려웠다. 똑같은 이야기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전달 방법은 영 신통치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는 알겠는데 '이렇게 밖에 전달할 수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누구를 배신하고 어쩌고 자시고 했지만 고개만 젓게 됐다. 스토리엔 흥미가 끌리지 않았고 영화 내내 스릴과 감동, 익사이팅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유머가 풍부한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몇차례 피식 웃은 걸 제외하곤 내내 무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관객을 웃기려는 의도에서 유머를 넣은 게 아니라 순조롭지 않은 스토리 전개를 부드럽게 해주는 역할로 사용된 것처럼 보였다. 곳곳에 배치된 유머가 영화의 전개를 아슬아슬하게 연결시켜줬을 뿐이었으므로 만약 유머가 없었다면 영화가 공중 분해됐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말장난과 몇몇 볼거리로 대충 때우고 넘어가자는 무성의하게 만든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 문제점이 영화를 싱겁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틴에이저들을 주 타겟으로 한 영화였으므로 여름철 영화로썬 그래도 이 정도면 O.K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입맛에 잘 맞을 정도까진 아니었다.

영화에 자주 나온 70년대 음악도 약간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뉴-스쿨과 올드-스쿨이 만났다는 점을 스타일리쉬하게 묘사하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너무 두드러지게 나타나 보였다. 70년대 올디 음악으로 스타일리쉬한 분위기를 내는 건 한 물 간 수법 같은데 굳이 그런 것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70년대 음악이 나오게 된 이유를 메인 캐릭터 피터 퀄의 배경 스토리와 연결시키는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고 스타일리쉬하게 보이려고 70년대 올디 음악을 갖다 붙인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자녀들에 의해 영화관에 끌려온 부모 세대들을 위한 서비스로 볼 수도 있었지만 여전히 불필요해 보였다. 그렇다고 70년대 음악이 듣기 싫었던 것은 아니다. 곡들은 모두 좋았다. 그러나 영화와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그럭저럭 볼 만했어도 아주 맘에 드는 영화는 아니었다.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던 영화인데 생각했던 것보단 볼 만했지만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머가 매마른 삭막한 영화에 질린 사람들과 다소 실없고 유치한 유머로 가득한 코미디 영화에 관대한 사람들에겐 재밌는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어벤저스' 레벨의 엔터테인먼트 선물세트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그쪽을 겨냥한 것은 분명했지만 겨냥만 했을 뿐 가깝게 접근하진 못했다.

물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도 시리즈화 된다. 1탄이 개봉하기도 전에 2탄 개봉 스케쥴이 발표되었다. 2탄은 2017년 7월28일 개봉 예정이다.

제작진은 2탄에서도 풍부한 유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영화를 좀 더 세련되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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