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3일 목요일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헨치맨 '본드24'로 돌아올 수 있을까?

얼마 전부터 2015년 개봉 예정인 007 시리즈24탄 '본드24(제목미정)'에 체격이 좋은 헨치맨이 등장한다는 소식이 돌기 시작했다. 제작진이 힌스라는 이름의 헨치맨 역할을 맡을 키가 6피트 2인치 이상의 배우를 찾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힌스는 악당 보스가 아니라 헨치맨으로, '본드24'에서 본드와 여러 차례 격투를 벌이는 상대로 알려졌다. 영화 웹사이트들에 의하면 힌스 역을 맡을 배우가 정해졌다고 하지만 아직 공식 발표가 이뤄진 것이 아닌 데다 핵심 관심사까지는 아니므로 조만간 한 두달 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프레스 컨퍼런스 내용을 보고 확인할 생각이다.

007 시리즈엔 유명한 헨치맨들이 여럿 있다. 007 시리즈 2탄 '위기일발/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의 레드 그랜트(로버트 쇼), 3탄 '골드핑거(Goldfinger)'의 오드잡(해롤드 사카타), 10탄과 11탄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와 '문레이커(Moonraker)'의 죠스(리처드 킬), 16탄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의 다리오(베니치오 델 토로), 17탄 '골든아이(GoldenEye)'의 제니아 오너탑(팜키 옌슨) 정도를 대표로 꼽을 수 있다. 헨치맨들은 모든 007 시리즈에 빠짐 없이 등장했지만 항상 강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성공한 헨치맨보다 실패한 헨치맨이 더 많았다.

그렇다면 '본드24'에선 성공한 헨치맨을 만나볼 수 있을까?

지난 '스카이폴(Skyfall)'을 되돌아 보면 '본드24'에서 성공적인 헨치맨을 만나볼 것 같다는 생각이 생기지 않는다.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주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클래식 007 시리즈에서 워낙 멀리 벗어나 더이상 007 시리즈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007 제작진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고 해서 무조건 항상 긍정적으로 받아줘야 한다는 법은 없다. 007 제작진이 시도한 변화란 유행을 이끄는 남의 영화사 액션영화를 모방한 것이 전부기 때문에 그들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최신 유행을 따르는 감각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성을 살릴 생각은 안 하고 덮어놓고 유행만 쫓아다니면 굉장히 싸구려스럽게 보인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특정 패션 스타일이 유행이라고 해서 모든 남녀가 전부 똑같은 옷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돌아다닌다면 얼마나 코믹하겠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요새 유행하는 헐리우드 영화들과 차이가 나지 않는 쪽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렇게 해서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그 대신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과거처럼 독특하게 눈에 띄는 프랜챠이스가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헐리우드 액션영화 중 하나가 됐다. 더이상 특별할 게 없다는 것이다.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클래식 007 시리즈보다 유니버설의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 워너 브러더스의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트릴로지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오직 제임스 본드만 해결할 수 있는 미션, 오직 007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는 액션 등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스카이폴'의 주인공을 제이슨 본이나 이든 헌트(Ethan Hunt), 또는 잭 라이언(Jack Ryan), 심지어 배트맨 등 비슷비슷한 액션영화 캐릭터로 바꿔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것 같다는 비판을 듣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007 제작진이 시도한 변화라는 것은 원작소설 고갈과 아이디어 부재에 시달리던 007 제작진이 흥행실패를 어떻게든 면하기 위해 남의 영화를 모방하는 방법으로 급하게 틀어막은 것이 전부라는 비판을 사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이처럼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어디로 어떻게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진 판국이라 '본드24'에서 훌륭한 클래식 007 시리즈 헨치맨이 탄생하길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007 제작진이 과거 오드잡이나 죠스와 같은 인기 헨치맨에 욕심을 낼 가능성이 있다. 한동안 흥미로운 인기 캐릭터를 선보이지 못해왔던 007 제작진이 '본드24'에서 헨치맨 캐릭터에 욕심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그런 헨치맨 캐릭터를 소개하면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클래식 007 시리즈에서 지나치게 벗어났다"고 비판하는 본드팬들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방편으로 클래식 007 시리즈 헨치맨을 연상케 하는 캐릭터를 '본드24'에 등장시키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골드핑거'의 오드잡처럼 흔히 보기 어려운 캐릭터나 '나를 사랑한 스파이', '문레이커'의 죠스처럼 겉으로 보기엔 무시무시해도 실제로는 바보스러운 코믹 릴리프 용 헨치맨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골드핑거'에서 오드잡 역을 맡았던 해롤드 사카타(Harold Sakata)는 프로 레슬러 출신이며 '나를 사랑한 스파이', '문레이커'에서 죠스 역을 맡았던 리처드 킬(Richard Kiel)은 키가 7 피트가 넘는 거인이므로 007 제작진이 찾는 '본드24' 헨치맨과 유사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본드24'에서 오드잡이나 죠스를 연상시키는 헨치맨을 보게 되는 걸까?

007 제작진이 '본드24'에 오드잡, 죠스를 연상시키는 헨치맨을 등장시키려 한다면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와 줄거리와 잘 어울리는 필요한 헨치맨 캐릭터를 준비하지 않고 오드잡이나 죠스 등과 같은 스타급 헨치맨을 탄생시키는 데 쓸데 없이 집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식선에서 볼 때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어울리는 헨치맨 타잎은 '라이센스 투 킬'의 다리오 스타일이다. 실제로 있을 법한 사실적인 범죄자 킬러 타잎이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크레이그의 본드 캐릭터가 가벼운 코믹북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크레이그의 본드가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과 항상 바로 비교되는 이유도 진지한 이미지 때문이다. 따라서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로저 무어(Roger Moore) 시절의 죠스와 같은 우스꽝스러운 헨치맨을 등장시킨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아 보인다. '어스틴 파워(Austin Powers)' 같은 코메디 영화에나 어울림직한 헨치맨을 이제 와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등장시킨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다.

그러나 "오드잡, 죠스처럼 기억에 남는 헨치맨 캐릭터를 새로 탄생시킨다"는 것이 007 제작진의 'TO DO LIST'에  들어있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하필이면 마블 코믹스의 수퍼히어로 영화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Guardians of the Galaxy)'에 출연했던 데이브 바티스타(Dave Batista)가 '본드24' 헨치맨 후보라는 루머가 나온 것도 그러한 의혹을 키우고 있다. 지난 '스카이폴'에선 DC 코믹스 스타일을 모방하더니 이번 '본드24'는 마블 코믹스를 따라할 차례라는 것으로 들리는 것이다.

물론 '본드24'에서 오드잡, 죠스와 비견될 만한 스페셜한 헨치맨 캐릭터가 탄생한다면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하지만 덮어 놓고 건장한 체격에 험상궂은 얼굴의 눈에 띄는 헨치맨 캐릭터를 등장시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개성이 부족한 짝퉁을 얼렁뚱땅 내놓는다고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007 시리즈에 전형적인 조건을 갖춘 헨치맨 캐릭터들이 이미 여러 명 등장했으나 거의 대부분이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기억에서 사라졌다. 이들이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겉으로 보기엔 그럴싸해도 개성과 특징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헨치맨 캐릭터들은 액션 씬에 몇 차례 나온 정도로 기억될 뿐 특별한 헨치맨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성공 케이스 중 하나인 '골드핑거'의 오드잡은 개성이 뚜렷할 뿐만 아니라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소설에도 나오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소설과 영화에 모두 등장한 오리지날 제임스 본드 캐릭터라는 이점이 있었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 '문레이커'의 죠스는 도무지 007 시리즈와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과장된 코믹북 스타일 헨치맨이지만 외모부터 워낙 개성 있고 유별난 데다 웃음을 주는 코믹 릴리프 역할까지 맡은 싫지 않은 악당 캐릭터라는 덕분에 성공했다. 죠스가 가장 유명한 제임스 본드 시리즈 캐릭터 중 하나라는 데 이의를 보이는 본드팬은 없지만 그런 성격의 캐릭터가 007 시리즈에 적합한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소설을 중요시 하거나 진지한 톤의 비교적 사실적인 제임스 본드 영화를 좋아하는 본드팬들은 죠스와 같은 헨치맨이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것을 탐탁치 않아 한다. 특히 다니엘 크레이그의 진지하고 사실적인 스타일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죠스와 같은 캐릭터를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대체적으로 다니엘 크레이그나 티모시 달튼 스타일의 진지한 제임스 본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죠스나 '나를 사랑한 스파이' 스타일의 제임스 본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걱정되는 건 007 제작진이 죠스와 같은 지나치게 과장된 헨치맨을 또 등장시킬 생각을 갖고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코믹북 수퍼히어로 시리즈를 따라해야만 제임스 본드가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007 제작진이 판단한 듯 하므로 죠스처럼 코믹북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헨치맨 캐릭터를 '본드24'에 등장시킬 생각을 하는 지도 모른다. 이미 '스카이폴'에서 코믹북 수퍼히어로 흉내내기를 시도한 바 있으므로 '본드24'에서도 계속 해서 그쪽으로 가려고 할 수 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도 12세들을 감탄시키기 위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시리즈를 까놓고 따라하기 시작했으므로 다니엘 크레이그에 어울리는 제임스 본드 세계를 또 무시하고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 팬들에게 친숙한 코믹북 스타일 헨치맨을 등장시키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죠스와 비슷한 코믹북 스타일 헨치맨이 등장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다. 그러나 이미 '스카이폴'에 실바(하비에르 바뎀)라는 코믹북 스타일 악당이 등장한 바 있으므로 그보다 한술 더 뜨는 코믹북 스타일 헨치맨이 '본드24'에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크레이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을 떠올리면 죠스와 같은 코믹북 스타일 헨치맨의 등장은 어림도 없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크레이그의 세 번째 영화 '스카이폴'을 보고 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로 들린다.

이것은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를 제 6대 제임스 본드로 발탁했을 당시 이를 지지했던 본드팬들에 대한 배신 행위나 다름없다. 본드팬들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엔 보다 원작 스타일에 충실한 진지하고 사실적인 쪽으로 이동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수퍼-스파이' 태그를 떼어버리고 보다 리얼한 제임스 본드 세계와 캐릭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스카이폴'에서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시대로 되돌아가버렸다. 크레이그에게 어울리는 개성있는 제임스 본드 세계와 캐릭터를 완성시켜나가지 못하고 흔해 빠진 코믹북 수퍼히어로 시리즈나 기웃거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한 스파이' 스타일의 어린이용 만화영화 같은 제임스 본드 영화가 싫다면서도 겉포장을 어떻게 했냐의 차이일 뿐 근본적으로는 어린이용 만화영화 스타일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스카이폴'은 맘에 든다는 모순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위기를 조금 무겁게 잡아주면 무언가가 있는 완전히 다른 영화인 것으로 쉽게 착각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다크 나이트' 연막 효과라고 할까? '스카이폴'은 바로 이 '다크 나이트' 연막 효과의 덕을 톡톡히 본 영화 중 하나다.

그러므로 007 제작진이 '본드24'에서도 '다크 나이트' 연막 효과에 한 번 더 의존하려 들 수도 있다. 이런 것에 잘 넘어가는 사람들은 약간 톤이 어두울 뿐 죠스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코믹북 스타일 헨치맨이 '본드24'에 등장하더라도 "죠스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라고 주장하며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랫 동안 기억될 만한 스페셜한 헨치맨 캐릭터가 탄생할 것으로는 기대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모두 '만약의 경우'일 뿐이다. '본드24'가 지난 '스카이폴'처럼 코믹북 수퍼히어로 짝퉁이 될 것인지는 두고 볼 문제이지 아직은 알 수 없으며, 007 제작진이 '본드24'에 스페셜한 헨치맨을 등장시킬 계획인지도 아직은 불확실하다. 루머로 알려진 대로 데이브 바티스타가 '본드24'의 헨치맨 역을 맡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짝퉁 오드잡이나 죠스와 같은 헨치맨이 아니라 사실적인 킬러 역할을 맡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지난 '스카이폴' 이후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앞으로 어디로 가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진 만큼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