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3일 금요일

'아메리칸 스나이퍼',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 '대이변' 주인공 될까?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연출,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 주연의 전쟁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가 미국에서 흥행기록을 세웠다. 작년 12월25일 미국서 제한 상영을 시작해 지난 1월16일 전국적으로 개봉한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개봉 첫 주말에 8천 9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1월 개봉 첫 주말 역대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이어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기념일이 낀 주말에 개봉한 역대 최고 흥행작에도 올랐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금요일부터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기념일인 월요일까지 나흘간 무려 1억 5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R 레이팅(17세 이상 관람가)의 전쟁영화가 틴-프렌들리의 코믹북 수퍼히어로 블록버스터에 맞먹는 흥행수익을 기록한 것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미국에서 흥행돌풍을 일으키자 일각에선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션 효과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 남우주연, 각색 등을 비롯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직후 미국 전역에서 개봉했으므로 아카데미 노미네이션 효과를 톡톡히 본 게 아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헐리우드 전문가들은 아카데미 노미네이션이 흥행에 도움을 준 사례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면서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예상 밖의 흥행돌풍이 단지 아카데미 노미네이션 효과 뿐은 아닌 듯 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국서 흥행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뜨거운 정치적 논쟁을 일으키며 헐리우드의 핫 이슈가 됐다. 미국 우파 진영에서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용맹스러운 군인이 미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겪는 문제와 전쟁 후유증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면서 전반적으로 높은 점수를 준 반면 미국 좌파 진영에서는 "전쟁을 미화한 영화", "전쟁광 크리스 카일은 살인자", "사실과 다르게 크리스 카일을 미화한 영화"라면서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공격했다. 좌파 영화인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는 2차대전에 참전했던 그의 삼촌이 스나이퍼에 의해 전사한 이후로 스나이퍼는 비겁자라고 배웠다면서 스나이퍼를 비판해 논란이 일었고, 코미디언 세스 로갠(Seth Rogen)은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보면서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2차대전 영화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Inglorious Basterds)'에 나왔던 나치 프로파간다 영화가 떠올랐다고 트위터에 적어 논란이 일었다. 로갠은 "두 영화 모두 스나이퍼가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나치 프로파간다 영화에 비유한 것으로 이해했다. 이라크 전쟁 참전 군인의 삶을 긍정적으로 그린 영화가 개봉하자 대뜸 "프로파간다 영화"라고 쏘고 나온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이클 무어와 세스 로갠의 트윗 내용이 보도되면서 트위터에서 한바탕 전투가 벌어졌던 것으로 전해졌으며, '아메리칸 스나이퍼' 논쟁은 TV와 케이블 뉴스 채널로도 옮겨붙었다.



한편, 헐리우드 전문 매체들은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흥행성공이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지에 주목하고 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기대를 뒤엎고 작품, 남우주연, 각색을 포함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을 뿐만 아니라 흥행에도 성공하면서 지금까지 프론트러너로 꼽히던 영화들을 물리치고 역전에 성공하는 '대이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현재로써는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메이저 부문에서 역전승을 거두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선 작품상부터 살펴보자.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나 감독상 후보엔 오르지 못했다. 여기서 문제는, 작품과 감독 부문 모두 노미네이션을 받지 못한 영화에게 작품상이 돌아간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작품과 감독 부문에 모두 후보에 올랐던 영화에 작품상이 돌아갔으며, 작품 부문에만 후보에 올랐던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경우는 지금까지 네 차례에 불과하다. 가장 최근작으로는 2012년 영화 '아르고(Argo)'가 있다. '아르고'는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만 올랐을 뿐 감독상 후보엔 오르지 못했는데도 작품상을 받았다. 따라서 '아메리칸 스나이퍼'에게도 기회가 열려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워낙 드물게 발생했으므로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

하지만 로이터에 따르면, 로이터가 일반인을 상대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에 대한 의견조사를 벌인 결과 22%가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선택했다고 한다. 2위를 차지한 '셀마(Selma)'는 8%를 얻는 데 그쳤고, 작품상 수상 유력 후보로 꼽히는 '보이후드'는 4%에 그쳤다.


CNN의 의견조사에서도 현재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37%로 1위에 올라있다.


물론 이것은 일반 관객들의 의견을 조사한 것일 뿐이다. 작품상 후보작 중에서 일반 관객들이 가장 많이 본 영화가 '아메리칸 스나이퍼'로 보이므로 크게 놀라운 결과도 아니다. 그러나 일반 관객들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 중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가장 맘에 들어하는 것만은 사실인 듯 하다.

남우주연 부문도 쉽지 않다.

'버드맨(Birdman)'의 마이클 키튼(Michael Keaton), '시어리 오브 에브리씽(Theory of Everything)'의 에디 레드메인(Eddie Redmayne)' 등 만만치 않은 상대가 버티고 있어서다. 브래들리 쿠퍼가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기대 이상의 좋은 연기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며, 3년 연속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연기부문 후보에 오른 것도 평가할 만하다. 일각에선 이런 이유를 들며 "한 번 받을 때가 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물론 쿠퍼가 상을 받을 만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금년에 남우주연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카데미 남우주연 프론트러너로 꼽히는 마이클 키튼과 에디 레드메인은 모두 스크린 액터스 길드(SAG) 어워드에서도 남우주연 후보에 올랐으나 브래들리 쿠퍼는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앞으로 상황이 변할 가능성은 열려있으므로 지켜볼 만하겠지만, 실제로 역전이 이뤄질 지는 현재로썬 예측하기 어렵다.

각색 부문은 해 볼만 할 것 같지만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을 추월할 수 있겠는지 의심스럽다.

편집 부문도 쉽지 않다. 완성하는 데 12년이 걸린 영화 '보이후드(Boyhood)'가 버티고 있어서다.

이렇게 따져보면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메이저 부문에서 수상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뚜렷한 프론트러너가 버티고 있거나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운드 편집, 사운드 믹싱 등 기술 부문에서 수상 가능성은 열려있어도 주요 부문에선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아메리칸 스나이퍼'에 가장 좋은 씨나리오는 무엇일까?

작품상을 받는 것이다. 만약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작품상을 받는다면 감독 부문 후보에 들지 못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남우주연 수상 가능성이 낮은 브래들리 쿠퍼 모두 프로듀서로써 작품상 트로피를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썬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작품상 프론트러너로 꼽히는 '보이후드', '이미테이션 게임' 등을 제치고 작품상을 수상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앞으로 분위기가 반전될 가능성은 있어도 현재로써는 "글쎄올시다"다.

미국의 일부 보수 우파 진영에선 왼쪽으로 기운 헐리우드가 그들의 취향에 맞지 않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에 상을 줄리 없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미국서 흥행기록을 세우자 헐리우드 전문 매체들도 일부 기사를 통해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은근히 견제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 좌파 진영에서 제기한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문제점들은 대부분 반박이 가능하므로 현재로썬 치명적인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하지만 만약 좌파 성향의 미국 언론들과 헐리우드 매체들이 논란거리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보도하면서 아카데미 멤버들을 압박한다면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수상 가능성에 악역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란 점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예상했던 대로 프론트러너에게 상이 돌아가는 뻔한 결과가 나오기 딱 알맞아 보였는데, 흥행돌풍을 일으키며 나타난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업셋 스페셜리스트'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실제로 '대이변'의 주인공이 되는가는 조금 더 지켜보면 보다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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