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3(Terminator 3: Rise of the Machines)'가 개봉했던 때였던가? 첫 번째 '터미네이터' 영화가 개봉한지 거진 20년이 지났는데도 나이 든 아놀드 슈왈츠네거(Arnold Schwarzenegger)가 계속해서 터미네이터로 출연한 것을 보고 "나중엔 늙은 터미네이터가 지팡이를 짚고 나올 것"이라고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2015년 개봉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Terminator: Genisys)'를 보니 실제로 그렇게 돼가는 듯 하다.
첫 번째 영화가 개봉한지 30년이 지난 2015년에도 터미네이터는 변함없이 아놀드 슈왈츠네거였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다섯 번째 영화인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엔 아놀드 슈왈츠네거, 에밀리아 클라크(Emilia Clarke), 제이 코트니(Jai Courtney), 제이슨 클라크(Jason Clarke), J.K 시몬스(Simmons), 이병헌 등이 출연한다.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변함없이 터미네이터 역을 맡았으며, 에밀리아 클라크는 사라 코너, 제이 코트니는 카일 리스, 제이슨 클라크는 존 코너, J.K 시몬스는 오브라이언 형사, 이병헌은 터미네이터 T-1000 역을 맡았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줄거리는 첫 번째 '터미네이터' 영화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존 코너의 어머니인 사라 코너를 죽이기 위해 터미네이터가 2029년에서 1984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안 존 코너(제이슨 클라크)가 카일 리스(제이 코트니)에게 사라 코너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기며 1984년으로 보내는 것까지는 첫 번째 '터미네이터' 영화 줄거리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카일 리스가 1984년에 도착하면서 크게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사라 코너는 터미네이터가 자신을 죽이려 하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카일 리스가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어야 하지만,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사라 코너(에밀리아 클라크)는 이미 이 사실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1973년부터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왈츠네거)와 함께 생활하면서 미래에 벌어질 사건에 대해 미리 다 알고있었던 사라 코너는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와 카일 리스가 1984년에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사라 코너가 모든 걸 다 알고있을 뿐만 아니라 터미네이터를 'Pops'라 부르며 부녀지간처럼 지내는 것을 본 카일 리스는 혼란스러워 한다. 터미네이터 aka 'Pops'가 1973년부터 사라 코너와 함께 생활하면서 역사가 바뀐 것이다.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는 'Pops'가 만든 타임머신을 이용해 2017년으로 시간 여행을 해서 '저지먼트 데이(Judgement Day)'를 막기로 한다...
아이디어는 괜찮은 편이었다. 시간 여행을 이용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상황에 놓이도록 만든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까지 알고있던 '터미네이터' 시리즈 스토리가 뒤죽박죽이 되긴 했지만 시리즈를 새로 리부팅하는 아이디어로는 나쁘지 않았다. 시간 여행이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뒤죽박죽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모두 밝혀지지 않고 끝까지 물음표로 남은 것이 있는 등 스토리가 부드럽게 전개되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는 도중에 흥미를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험악한 플롯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견딜 만했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신선한 영화는 아니었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터미네이터' 1탄과 2탄, '터미네이터: 살베이션(Terminator: Salvation)', 그리고 TV 시리즈 '터미네이터: 사라 코너 크로니클(The Terminator: Sarah Conner Chronicles)' 등에서 빌려온 여러 아이디어를 하나로 끼워맞춘 영화였다. 지금까지 나온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전부 믹서기에 넣고 갈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영화였다. 지금까지 알고있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줄거리가 바뀌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과거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T-800, T-1000 모두 낯익은 캐릭터였으며, 인간과 기계 하이브리드 캐릭터는 '터미네이터 살베이션', 타임머신을 이용해 시간 여행을 하는 설정은 '터미네이터: 사라 코너 크로니클' 등에서 가져온 것이 전부였을 뿐 '플롯 트위스트'를 제외하곤 신선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었다.
폭력 수위가 높은 R 레이팅의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PG-13 레이팅의 패밀리-프렌들리 SF 영화로 다운그레이드됐다는 점도 맘에 들지 않았다. 요즘엔 R 레이팅의 블록버스터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만큼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헐리우드를 먹여살리는 전세계의 코묻은 돈을 노릴 수밖에 없었겠지만, 결국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비슷비슷한 또래를 겨냥한 비슷비슷한 줄거리와 비슷비슷한 시각효과의 비슷비슷한 SF 영화가 되고 말았다.
액션도 볼거리가 없었다. 폭력수위가 낮아졌더라도 여전히 박진감 넘치는 액션 씬을 기대했지만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액션 씬은 대체적으로 밋밋했으며 이전 '터미네이터' 영화에서 봤던 비슷비슷한 씬들의 반복에 그쳤다. 피부가 벗겨져 기계가 드러난 터미네이터의 모습은 1984년의 첫 번째 영화에선 쇼킹했지만 지금은 우스꽝스러울 뿐인데, 어찌 된 것이 이번 영화에서도 피부가 벗겨진 터미네이터, 총에 맞아 구멍이 난 T-1000 등 이미 익숙해진 씬들의 반복이었을 뿐 색다른 액션 씬이 없었다. 인간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씬 대신 싸이보그끼리 벌이는 SF 폭력 씬으로 폭력 수위를 끌어내리는 효과는 있었으나 새롭지도 익사이팅하지도 않은 액션 씬의 반복이었다.
반면 새로운 캐릭터에 적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귀여운 사라 코너와 우람한 카일 리스가 약간 어색해 보였던 건 사실이지만, 금세 적응이 됐다. 얼마 전 헐리우드 액션 레전드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와 함께 '다이 하드(Die Hard)' 시리즈에 출연했던 호주 영화배우 제이 코트니는 이번엔 또다른 헐리우드 액션 레전드 아놀드 슈왈츠네거와 함께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새로 떠오르는 헐리우드 액션 스타로 얼굴 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사라 코너 역을 맡은 에밀리아 클라크는 처음엔 웬 중학생이 사라 코너 역을 맡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차 익숙해졌으며 유머로 가득한 얼굴이 신선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가장 큰 문제는 아놀드 슈왈츠네거에 있다.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터미네이터라는 데 이견을 보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60대에 접어든 슈왈츠네거가 과거처럼 차갑고 살기넘치는 싸이보그를 연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터미네이터 2'부터 터미네이터가 '킬러'에서 '가디언'으로 바뀌면서 더욱 김이 샜다. 인간의 힘으로는 쉽게 해치울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터미네이터 앞에선 파리 목숨일 뿐인 사라 코너(린다 해밀튼)와 카일 리스(마이클 빈)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데서 전달되던 서스펜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는 첫 번째 영화에서 검은 가죽 잠바에 검은색 썬글래스를 쓰고 눈앞에 보이는 인간들을 다 죽이고 돌아다닐 때가 가장 멋있었다. 첫 번째 영화에서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를 끈질기게 추격하던 터미네이터가 영화 마지막에 파괴되었을 때 크게 낙담했을 만큼 터미네이터는 멋진 녀석이었다. 이렇게 스타일리쉬하던 냉혈 킬러가 '터미네이터 2'부터 악당이 아닌 '가디언'으로 변신하면서 김을 빼놓더니 이번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선 사라 코너에게 'Pops'라고 불리는 존재가 됐다.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터미네이터의 스타일이 많이 구겨졌다.
사라 코너를 비롯한 인간을 보호하는 '가디언' 역할을 맡은 터미네이터가 다른 싸이보그들과 대결하는 '머신 vs 머신' 줄거리로는 스타일리쉬한 '터미네이터' 영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터미네이터' 영화는 이미 여러 편 봤으며, 터미네이터의 매력과 스타일을 제대로 살리기도 어렵다. 더군다나 요샌 비슷비슷한 SF-판타지-수퍼히어로 영화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시각효과만으로는 눈길을 끌기 어렵다. 따라서 터미네이터를 다시 냉혈 킬러 악당으로 돌려보내고 '인간 vs 머신'의 줄거리를 되살리는 게 나을 듯 하다. 그러나 60대의 슈왈츠네거에게 킬러 싸이보그 역을 맡기는 건 무리이므로 젊은 터미네이터를 연기할 새로운 배우를 찾아야 한다. 물론 슈왈츠네거가 없는 '터미네이터' 영화를 상상하기 어렵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주연배우 교체라는 고비를 넘지 못하면 장수 시리즈가 될 수 없다. 007 시리즈가 좋은 예다. 숀 코네리(Sean Connery)가 제임스 본드를 떠나면 모든 게 다 끝날 것 같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섯 차례나 배우가 바뀌면서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아놀드 슈왈츠네거 없는 '터미네이터' 영화를 상상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 고비를 넘어야 미래가 보인다.
그러나 제작진은 이번에도 아놀드 슈왈츠네거에 의존하는 또 하나의 '터미네이터' 영화를 내놓는 데 그쳤다. '플롯 트위스트'가 나름 흥미롭긴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리부트를 하는 김에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아닌 다른 젊은 배우와 함께 새로 시작하는 게 보다 나을 뻔 했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배우와 함께 시리즈를 리부팅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리스크도 따르지만, 이젠 리부트를 할 것이면 분명하게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렇다고 아놀드 슈왈츠네거 영화를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건 아니다. 슈왈츠네거의 영화를 보면서 자랐는데 그의 영화를 싫어할 리 없다. 그가 계속 액션 영화에 출연하는 것에도 찬성이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선 이제 떠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터미네이터인 건 사실이지만 이젠 더이상 터미네이터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다른 액션 히어로 역할은 몰라도 '머신', '싸이보그' 역에선 은퇴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 기대치를 워낙 낮게 잡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의외로 볼 만했다. 상당히 한심한 영화일 것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그 정도로 한심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었으나, 가까스로 평균은 되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괴로움이 밀려올 정도로 고문적인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속편은 별로 기다려지지 않는다. 보아하니 속편으로 이어질 모양인데, 이번 영화와 마찬가지로 플롯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전 영화들과 별 차이가 없는 영화가 될 것 같아서 기대가 되지 않는다. 너무나도 푸근한 이미지의 'T-Pops'에도 더이상 흥미가 끌리지 않는다.
그런데 2015년 개봉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Terminator: Genisys)'를 보니 실제로 그렇게 돼가는 듯 하다.
첫 번째 영화가 개봉한지 30년이 지난 2015년에도 터미네이터는 변함없이 아놀드 슈왈츠네거였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다섯 번째 영화인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엔 아놀드 슈왈츠네거, 에밀리아 클라크(Emilia Clarke), 제이 코트니(Jai Courtney), 제이슨 클라크(Jason Clarke), J.K 시몬스(Simmons), 이병헌 등이 출연한다.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변함없이 터미네이터 역을 맡았으며, 에밀리아 클라크는 사라 코너, 제이 코트니는 카일 리스, 제이슨 클라크는 존 코너, J.K 시몬스는 오브라이언 형사, 이병헌은 터미네이터 T-1000 역을 맡았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줄거리는 첫 번째 '터미네이터' 영화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존 코너의 어머니인 사라 코너를 죽이기 위해 터미네이터가 2029년에서 1984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안 존 코너(제이슨 클라크)가 카일 리스(제이 코트니)에게 사라 코너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기며 1984년으로 보내는 것까지는 첫 번째 '터미네이터' 영화 줄거리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카일 리스가 1984년에 도착하면서 크게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사라 코너는 터미네이터가 자신을 죽이려 하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카일 리스가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어야 하지만,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사라 코너(에밀리아 클라크)는 이미 이 사실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1973년부터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왈츠네거)와 함께 생활하면서 미래에 벌어질 사건에 대해 미리 다 알고있었던 사라 코너는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와 카일 리스가 1984년에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사라 코너가 모든 걸 다 알고있을 뿐만 아니라 터미네이터를 'Pops'라 부르며 부녀지간처럼 지내는 것을 본 카일 리스는 혼란스러워 한다. 터미네이터 aka 'Pops'가 1973년부터 사라 코너와 함께 생활하면서 역사가 바뀐 것이다.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는 'Pops'가 만든 타임머신을 이용해 2017년으로 시간 여행을 해서 '저지먼트 데이(Judgement Day)'를 막기로 한다...
아이디어는 괜찮은 편이었다. 시간 여행을 이용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상황에 놓이도록 만든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까지 알고있던 '터미네이터' 시리즈 스토리가 뒤죽박죽이 되긴 했지만 시리즈를 새로 리부팅하는 아이디어로는 나쁘지 않았다. 시간 여행이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뒤죽박죽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모두 밝혀지지 않고 끝까지 물음표로 남은 것이 있는 등 스토리가 부드럽게 전개되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는 도중에 흥미를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험악한 플롯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견딜 만했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신선한 영화는 아니었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터미네이터' 1탄과 2탄, '터미네이터: 살베이션(Terminator: Salvation)', 그리고 TV 시리즈 '터미네이터: 사라 코너 크로니클(The Terminator: Sarah Conner Chronicles)' 등에서 빌려온 여러 아이디어를 하나로 끼워맞춘 영화였다. 지금까지 나온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전부 믹서기에 넣고 갈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영화였다. 지금까지 알고있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줄거리가 바뀌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과거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T-800, T-1000 모두 낯익은 캐릭터였으며, 인간과 기계 하이브리드 캐릭터는 '터미네이터 살베이션', 타임머신을 이용해 시간 여행을 하는 설정은 '터미네이터: 사라 코너 크로니클' 등에서 가져온 것이 전부였을 뿐 '플롯 트위스트'를 제외하곤 신선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었다.
폭력 수위가 높은 R 레이팅의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PG-13 레이팅의 패밀리-프렌들리 SF 영화로 다운그레이드됐다는 점도 맘에 들지 않았다. 요즘엔 R 레이팅의 블록버스터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만큼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헐리우드를 먹여살리는 전세계의 코묻은 돈을 노릴 수밖에 없었겠지만, 결국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비슷비슷한 또래를 겨냥한 비슷비슷한 줄거리와 비슷비슷한 시각효과의 비슷비슷한 SF 영화가 되고 말았다.
액션도 볼거리가 없었다. 폭력수위가 낮아졌더라도 여전히 박진감 넘치는 액션 씬을 기대했지만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액션 씬은 대체적으로 밋밋했으며 이전 '터미네이터' 영화에서 봤던 비슷비슷한 씬들의 반복에 그쳤다. 피부가 벗겨져 기계가 드러난 터미네이터의 모습은 1984년의 첫 번째 영화에선 쇼킹했지만 지금은 우스꽝스러울 뿐인데, 어찌 된 것이 이번 영화에서도 피부가 벗겨진 터미네이터, 총에 맞아 구멍이 난 T-1000 등 이미 익숙해진 씬들의 반복이었을 뿐 색다른 액션 씬이 없었다. 인간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씬 대신 싸이보그끼리 벌이는 SF 폭력 씬으로 폭력 수위를 끌어내리는 효과는 있었으나 새롭지도 익사이팅하지도 않은 액션 씬의 반복이었다.
반면 새로운 캐릭터에 적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귀여운 사라 코너와 우람한 카일 리스가 약간 어색해 보였던 건 사실이지만, 금세 적응이 됐다. 얼마 전 헐리우드 액션 레전드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와 함께 '다이 하드(Die Hard)' 시리즈에 출연했던 호주 영화배우 제이 코트니는 이번엔 또다른 헐리우드 액션 레전드 아놀드 슈왈츠네거와 함께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새로 떠오르는 헐리우드 액션 스타로 얼굴 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사라 코너 역을 맡은 에밀리아 클라크는 처음엔 웬 중학생이 사라 코너 역을 맡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차 익숙해졌으며 유머로 가득한 얼굴이 신선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가장 큰 문제는 아놀드 슈왈츠네거에 있다.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터미네이터라는 데 이견을 보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60대에 접어든 슈왈츠네거가 과거처럼 차갑고 살기넘치는 싸이보그를 연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터미네이터 2'부터 터미네이터가 '킬러'에서 '가디언'으로 바뀌면서 더욱 김이 샜다. 인간의 힘으로는 쉽게 해치울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터미네이터 앞에선 파리 목숨일 뿐인 사라 코너(린다 해밀튼)와 카일 리스(마이클 빈)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데서 전달되던 서스펜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는 첫 번째 영화에서 검은 가죽 잠바에 검은색 썬글래스를 쓰고 눈앞에 보이는 인간들을 다 죽이고 돌아다닐 때가 가장 멋있었다. 첫 번째 영화에서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를 끈질기게 추격하던 터미네이터가 영화 마지막에 파괴되었을 때 크게 낙담했을 만큼 터미네이터는 멋진 녀석이었다. 이렇게 스타일리쉬하던 냉혈 킬러가 '터미네이터 2'부터 악당이 아닌 '가디언'으로 변신하면서 김을 빼놓더니 이번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선 사라 코너에게 'Pops'라고 불리는 존재가 됐다.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터미네이터의 스타일이 많이 구겨졌다.
사라 코너를 비롯한 인간을 보호하는 '가디언' 역할을 맡은 터미네이터가 다른 싸이보그들과 대결하는 '머신 vs 머신' 줄거리로는 스타일리쉬한 '터미네이터' 영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터미네이터' 영화는 이미 여러 편 봤으며, 터미네이터의 매력과 스타일을 제대로 살리기도 어렵다. 더군다나 요샌 비슷비슷한 SF-판타지-수퍼히어로 영화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시각효과만으로는 눈길을 끌기 어렵다. 따라서 터미네이터를 다시 냉혈 킬러 악당으로 돌려보내고 '인간 vs 머신'의 줄거리를 되살리는 게 나을 듯 하다. 그러나 60대의 슈왈츠네거에게 킬러 싸이보그 역을 맡기는 건 무리이므로 젊은 터미네이터를 연기할 새로운 배우를 찾아야 한다. 물론 슈왈츠네거가 없는 '터미네이터' 영화를 상상하기 어렵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주연배우 교체라는 고비를 넘지 못하면 장수 시리즈가 될 수 없다. 007 시리즈가 좋은 예다. 숀 코네리(Sean Connery)가 제임스 본드를 떠나면 모든 게 다 끝날 것 같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섯 차례나 배우가 바뀌면서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아놀드 슈왈츠네거 없는 '터미네이터' 영화를 상상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 고비를 넘어야 미래가 보인다.
그러나 제작진은 이번에도 아놀드 슈왈츠네거에 의존하는 또 하나의 '터미네이터' 영화를 내놓는 데 그쳤다. '플롯 트위스트'가 나름 흥미롭긴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리부트를 하는 김에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아닌 다른 젊은 배우와 함께 새로 시작하는 게 보다 나을 뻔 했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배우와 함께 시리즈를 리부팅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리스크도 따르지만, 이젠 리부트를 할 것이면 분명하게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렇다고 아놀드 슈왈츠네거 영화를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건 아니다. 슈왈츠네거의 영화를 보면서 자랐는데 그의 영화를 싫어할 리 없다. 그가 계속 액션 영화에 출연하는 것에도 찬성이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선 이제 떠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터미네이터인 건 사실이지만 이젠 더이상 터미네이터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다른 액션 히어로 역할은 몰라도 '머신', '싸이보그' 역에선 은퇴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 기대치를 워낙 낮게 잡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의외로 볼 만했다. 상당히 한심한 영화일 것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그 정도로 한심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었으나, 가까스로 평균은 되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괴로움이 밀려올 정도로 고문적인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속편은 별로 기다려지지 않는다. 보아하니 속편으로 이어질 모양인데, 이번 영화와 마찬가지로 플롯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전 영화들과 별 차이가 없는 영화가 될 것 같아서 기대가 되지 않는다. 너무나도 푸근한 이미지의 'T-Pops'에도 더이상 흥미가 끌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번 5편에 많이 분노하는데 그 이유는 시리즈에서 느슨하게나마 유지되던 연속성을 아무런설명없이 파괴한것도 있지만 세계관의 메시아이며 시리즈의 공통 주제인 존 코너 지키기-4편에도 있었던-를 엉망으로 난도질한 탓이 더 크다고 추정합니다.
답글삭제개인적ㅇ시리즈 순위는 2>1>>>>4>>>>>>>3>>5
스토리까지 똑같이 반복되면 신선도가 더욱 떨어질 것을 염려한 게 아니었나 합니다.
삭제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리부트/리메이크도 아니었으므로 스토리를 뒤집는 쪽을 택한 듯 합니다.
나이 든 아놀드 슈왈츠네거를 터미네이터로 계속 소개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을테구요.
다소 무리한 감은 들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