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6일 화요일

'마션', 지금까지 본 2015년 영화 중 최고인 21세기판 로빈슨 크루소

21세기 버전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 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고로 인해 무인도에 홀로 상륙한 주인공이 구조될 때까지 홀로 버텨야 한다는 서바이벌 스토리는 더이상 그리 신선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런 줄거리의 비슷비슷한 서바이벌 영화들이 지금까지 많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주를 배경으로 한 21세기판 로빈슨 크루소를 만드는 건 어떨까?

20세기 폭스의 '마션(The Martian)'이 바로 그런 영화다.

'마션'의 출연진은 맷 데이먼(Matt Damon), 제프 대니얼스(Jeff Daniels), 치웨텔 에지오퍼(Chiwetel Ejiofor), 숀 빈(Sean Bean), 크리스틴 위그(Kristen Wiig), 제시카 채스테인(Jessica Chastain), 마이클 페냐(Michael Pena), 케이트 마라(Kate Mara), 액슬 헤니(Aksel Hennie), 세바스챤 스탠(Sebastian Stan) 등 출연진은 화려한 편이다. 맷 데이먼은 화성에 갔다 사고로 고립된 NASA 소속 우주인 마크 와트니 역을 맡았고, 제프 대니얼스, 숀 빈, 치웨텔 에지오퍼, 크리스틴 위그는 화성에 고립된 와트니의 생존과 구출을 위해 머리를 굴리는 NASA 간부와 직원 역으로 출연했다. 제시카 채스테인은 와트니와 같은 화성 탐사 팀의 리더, 루이스 역을 맡았고, 마이클 페냐, 케이트 마라, 액슬 헤니, 세바스챤 스탠은 와트니의 화성 탐사 팀 동료 우주인으로 출연했다.

'마션'은 미국 작가 앤디 위어(Andy Weir)의 동명 소설을 기초로 했으며, 연출은 영국의 베테랑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이 맡았다.

영화 '마션'은 화성에 갔던 NASA 탐사 팀 우주인 중 하나인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강한 모래폭풍으로 사고를 당해 같이 온 팀과 떨어져 홀로 화성의 인공 거주지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구조될 때까지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줄거리다. 화성을 탈출한 나머지 NASA 우주인 5명은 와트니가 사고로 죽은 걸로 알고 지구로의 귀환길에 오른다. 그러나 지구에서 화성을 관찰하던 NASA 직원들이 와트니가 살아있음을 밝혀내고 구조팀이 도착할 때까지 와트니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나선다. 한편, 화성의 인공 거주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와트니는 지구와 교신할 방법을 찾음과 동시에 구조팀이 올 때까지 버틸 물과 식량을 확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식물학자 지식까지 동원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결론부터 미리 밝히자면, '마션'은 지금까지 본 2015년 영화 중 최고로 맘에 드는 영화였다.

공상과학물을 즐겨 읽거나 보지 않는 편이지만 '마션'은 예외였다. '마션'은 소설과 영화를 모두 읽고 본 몇 안 되는 공상과학물 중 하나다.

'마션'도 공상과학물인데 왜 맘에 들었을까?

'마션'은 터무니 없는 허구의 판타지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은 우주인을 화성에 보내지 못했지만, 화성에 인간을 보내는 건 문자 그대로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머지 않은 미래에 '마션'과 같은 사태가 실제로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얼마 전에 개봉한 '그래비티(Gravity)'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우주 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다. 하지만 '그래비티'는 스토리가 굉장히 빈약했으며, 비쥬얼 빼면 볼 게 거의 없는 영화였다. 반면, '마션'은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있었다. '그래비티'가 비쥬얼 중심의 우주 사고 영화였다면, '마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눈을 팔 틈을 주지 않는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있는 영화였다.

또한, 화성에 홀로 남은 와트니가 낙천적인 성격과 유머감각을 뽐내며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모습, 지구에 있는 NASA 사람들도 와트니를 구출할 묘안을 찾아내기 위해 몇날 며칠 잠을 설치면서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위기 상황에서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해 연구하는 것 만큼 멋진 모습이 어디에 또 있겠나 한다. '마션'은 요새 자주 눈에 띄는 암울하고 냉소적인 분위기의 영화들과 달리 멍멍이 같은 시츄에이션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내고야 마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FEEL-GOOD MOVIE'였다.

앤디 위어의 원작소설부터 훌륭했다. 전문 용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공상과학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처음엔 '마션'에 적응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전문 용어 블리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에 빠져들었으며, 읽는 도중에 책을 내려놓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그렇다면 영화버전은 원작소설에 얼마나 충실하게 영화로 옮겨졌을까?

'마션'은 원작소설에 매우 충실하게 영화로 옮겨졌다. 영화의 큰 스토리는 소설과 차이가 나지 않았으며, 소설에 나온 대화 내용이 그대로 영화 대사로 옮겨진 경우도 많았다. 와트니가 홀로 만든 로그의 내용이 소설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는데, 영화에서도 와트니가 남긴 로그의 코믹한 내용들이 독백과 비디오로그를 통해 자주 나왔다.

한가지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은 욕설이다. 소설엔 F자가 들어간 욕설이 상당히 자주 튀어나오는데 영화에선 F 욕설이 딱 두 번 나오는 데 그쳤다. F 욕설이 2회 이상 나오면 미국서 R 레이팅을 받게 되므로 딱 두 번만 나오도록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에도 와트니가 NASA와 문자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 씬에서 F 욕설이 더러 나왔으나  "F__KING"으로 센서 처리를 했다. F 욕설 2회까지는 청소년-프렌들리 레이팅인 PG-13을 받을 수 있으나 2회가 넘으면 성인용 영화 레이팅인 R을 받게 되므로 센서 처리가 불가피했던 모양이다. PG-13 욕설 제한 덕분에 와트니가 절망감을 표출하는 씬이 다소 코믹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와트니가 홀로 좌절감에 빠져 절망적인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씬에선 F 욕설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으나 이미 F 욕설을 2회 사용했기 때문인지 욕설 대신 동물적인(?) 외마디 비명으로 대신했다. 욕이 튀어나와야 보다 자연스러운 씬인데 욕을 할 수 없으니까 이상한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대신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마션'은 유머도 풍부한 영화였다. '마션'이 화성에서 벌어지는 처절하고 인텐스한 서바이벌 영화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겐 다소 의외겠지만, 소설을 먼저 읽은 사람들은 유머가 상당히 풍부하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을 것이다. 당장 주인공부터 상당히 코믹한 캐릭터였다.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구조될 때까지 홀로 화성에서 버텨야 하는 멍멍이 같은 상황에 처했으면서도 밤낮 징징거리며 죽는 소리를 내는 캐릭터가 아니었으며, 재치가 빛나는 유머감각을 수시로 뽐내는 캐릭터였다. 와트니 구조를 위해 비상이 걸린 NASA 직원들도 유머가 풍부했다. 이들도 대부분 농담을 한마디씩 정도는 할 줄 아는 캐릭터였으며, 여기에 괴짜 천재 직원까지 가세하면서 스트레스로 가득한 골치아픈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화성과 지구 양쪽에서 모두 덜렁거리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지고 "잘못하단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문제가 생겼지만 제작진이 유머 파트에 공을 들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맷 데이먼도 '마션'에서 아주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데이먼은 와트니 역에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어울렸다. 데이먼이 출연한 최근 영화 중 볼 만한 영화가 많지 않았는데, '마션'은 데이먼의 최근 영화 중 단연 최고라 할 만했다. 오랜만에 데이먼이 그와 아주 잘 어울리는 영화를 골랐다. 맷 데이먼은 제시카 채스테인과 함께 출연했던 2014년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에서도 다른 행성에 홀로 고립된 우주인 역을 연기했었는데, 우주 미아 전문 배우가 되는 건가?

'마션'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근 영화 중에서도 최고다. 스콧 감독이 연출한 최근 영화 중 특별히 눈에 띄는 영화가 없었는데, '마션'으로 아직 한물 가지 않았고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렇다. '마션'은 아주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마션'은 10월에 개봉했지만 여름철 블록버스터의 조건을 모두 갖춘 영화였다. 영화가 시작해서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지루하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진지하고 긴장감 넘치는 재앙영화는 아니었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가는 가볍고 유쾌한 톤의 우주 어드벤쳐 영화로는 최고 수준이었다.

영화가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곧 객석은 다시 웃음바다가 됐다. 왜냐, 엔드 타이틀로 클래식 디스코 'I Will Survive'가 나왔기 때문이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화성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디스코밖에 없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하는 수 없이 디스코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와트니를 생각하면...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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