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은 배우가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될 가능성 전혀 없는 걸까?

휴 잭맨(Hugh Jackman), 데이미언 루이스(Damian Lewis) 등 제임스 본드 역을 맡기에 나이가 많은 편인 배우가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뒤를 이어 제 7대 제임스 본드로 발탁될 가능성이 있을까?

휴 잭맨은 10년 전부터 훌륭한 제임스 본드 후보감으로 꼽혀왔으며, 데이미언 루이스는 얼마 전부터 유력한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감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데이미언 루이스는 007 프로듀서들이 이그지큐티브 프로듀서를 맡은 2014년 영국 영화에 출연한 바 있다.

데이미언 루이스는 며칠 전 미국 CBS의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해 제임스 본드 루머 관련 질문을 받고 ""I could tell you, but I'd have to kill you."라고 애매한 답변을 했으며, 휴 잭맨은 마티니를 마시면서 007 시리즈의 유명한 대사 중 하나인 "Shaken, not stirred."라고 말하는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려 "007 오디션 테이프가 아니냐"는 반응을 얻었다.

SHAKEN, NOT STIRRED. pic.twitter.com/f0yCN6P6Uh

— Hugh Jackman (@RealHughJackman) January 10, 2016

과연 이들이 실제로 제임스 본드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

역시 한가지 가장 큰 문제가 있다: 바로 나이다.

휴 잭맨은 1968년생이고 데이미언 루이스는 1971년생이다. 이들은 모두 '본드25'가 개봉할 때가 되면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반이 된다. 따라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기에 적합한 나이의 배우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아직은 '본드25'의 개봉 스케쥴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007 스펙터(SPECTRE)'와 3년 간격으로 개봉한다고 가정해 보자. 2018년이 되면 1968년생인 휴 잭맨은 50세가 되며, 1971년생인 데이미언 루이스는 47세가 된다. 지금까지 만으로 47세 또는 50세에 제임스 본드로 데뷔한 배우는 없다. 45세에 제임스 본드로 데뷔한 로저 무어(Roger Moore)가 현재로썬 가장 많은 나이에 제임스 본드로 데뷔한 배우다. 만약 휴 잭맨, 데이먼 루이스 또는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 중 하나가 '본드25'로 제임스 본드 데뷔를 한다면 로저 무어의 기록을 깨게 된다.

또한, '50'이 007 시리즈의 '매직 넘버'라는 점도 걸림돌 중 하나다.

NFL에서 러닝백 나이 30세를 '매직 넘버'라고 부르는 것처럼 007 시리즈에선 영화배우 나이 50세가 '매직 넘버'다. NFL에서 '30'을 매직 넘버라고 부르는 이유는 러닝백들이 30세를 넘어서면서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007 시리즈에서 '50'이 매직 넘버인 이유는 영화배우의 나이가 50세를 넘어서면 제임스 본드 영화를 소화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이가 이미 40대 후반이거나 이미 50대인 배우에게 제임스 본드 역을 맡기는 건 이상적인 선택이 아니다. 007 시리즈를 떠날 나이가 된 배우를 제임스 본드로 발탁한 게 되므로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전혀 가망이 없는 걸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007 시리즈에서 영화배우의 나이를 중요하게 따져야 하는 이유는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매년마다 개봉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007 시리즈는 지난 90년대까지만 해도 2년 간격으로 새로운 영화가 공개되었으나, 최근엔 3년 간격이 정상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이렇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배우를 제임스 본드로 발탁하면 바로 뒤돌아서서 나이 걱정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휴 잭맨이나 데이미언 루이스에겐 2~3년 간격이 부담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를 매년마다 공개할 수도 없다. 지난 60년대엔 007 제작진이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남긴 원작소설을 참고할 수 있었으므로 매년마다 새로운 영화를 내놓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참고할 원작소설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매년마다 새로운 줄거리의 제임스 본드 영화를 내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007 제작진이 '호빗(The Hobbit)' 스타일의 3부작을 계획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나의 줄거리를 삼등분해서 3부작으로 한꺼번에 만든 다음 1부, 2부, 3부로 나눠서 매년마다 개봉하는 방법이 있다. 3부작 '호빗'이 3년 연속으로 매년마다 개봉했듯이 말이다. 이렇게 하면 나이가 많은 배우를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해도 2~3년 간격의 부담 없이 3년안에 세 편의 영화를 공개할 수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이런 방식은 007 시리즈 스타일이 아니다. 007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서로 줄거리가 연결되는 영화 시리즈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 줄거리가 연결되는 시리즈를 처음으로 시도했으나,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속편 시리즈는 007 시리즈와 여전히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속편 방식을 그만 두길 요구하는 본드팬들도 많으며, 어느 헐리우드 영화평론가는 "속편은 007 시리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쓰기도 했다.

따라서 007 시리즈를 '호빗' 스타일 3부작으로 제작한다고 하면 펄쩍 뛸 본드팬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도 이질감으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한술 더 뜨는 것이냔 비난도 쏟아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호빗' 스타일 3부작 아이디어가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007 시리즈는 과거에 하던대로 줄거리가 서로 이어지지 않는 독립된 플롯의 스탠얼론 영화 시절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변화도 좋다지만 이젠 "CHANGE"라고 하면 바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넌더리가 난 상태라서 쓸데없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면서 007 시리즈를 계속해서 정체불명의 영화로 만드는 아이디어엔 언제나 변함없이 반대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배우를 차기 제임스 본드로 발탁하더라도 나이 문제를 정면돌파하지 않고 비켜갈 방법은 있다. 물론 방법이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방법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므로 나이가 많은 배우가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하긴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007 제작진이 나이가 많은 배우를 굳이 선택할 필요가 있는지 궁금하다. 특별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와 아이디어가 아주 흥미롭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나이 많은 배우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