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1일 월요일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로 누가 있을까? - 톰 히들스턴

본드팬들의 공통된 습관 중 하나는 틈이 나는 대로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감을 찾는 일이다. 때가 되면 새로운 영화배우로 제임스 본드가 교체되기 때문에 다음 번 제임스 본드 후보로 어떤 배우들이 있는지 미리 미리 점검해보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Sean Connery)부터 지금의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에 이르기까지 제임스 본드 역은 스코틀랜드, 호주, 잉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잉글랜드 출신의 배우들이 맡았다. 따라서 브리튼 제도(British Isles)와 호주 출신 배우들이 새로운 제임스 본드 후보감으로 항상 오르내리곤 한다.

영화배우의 출생지역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는 것은 키, 체격, 머리색 등이다. 제임스 본드를 창조한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제임스 본드의 키, 체격, 머리색, 눈동자색 등을 소설에서 자세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본드팬들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을 영화배우를 물색할 때 이언 플레밍이 소설에서 묘사한 제임스 본드 캐릭터와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언 플레밍이 1957년 출간된 제임스 본드 소설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에서 밝힌 제임스 본드 관련 주요 사항은 다음과 같다:

Height: 183 cm
Weight: 76 kg; Slim build
Eyes: Blue
Hair: Black
Scar down right cheek & on left shoulder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가 미국 뮤지션 호기 카마이클(Hoagy Carmichael)을 연상케 하는 미남이라고 소개했다.

◀호기 카마이클

따라서 제임스 본드는 키 183 cm에 몸무게 76 kg의 마른 체형이며, 눈은 파란색이고 머리는 검정색인 깔끔한 미남형 사나이다. 오른쪽 뺨에 흉터가 있는 것으로 돼있지만 이건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원작소설에서 제임스 본드가 저렇게 묘사되었기 때문에 갈색이나 검정색 머리에 키가 6피트 이상인 마른 체형의 깔끔한 미남형 얼굴의 영화배우들이 007 영화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아왔다. 숀 코네리부터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2000년대 중반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를 제 6대 제임스 본드로 발표하자 일부 본드팬들이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언론과 인터넷 등지에서 소동이 벌어졌었는데, 그 이유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머리색이 갈색이나 검정색이 아닌 금발/블론드였으며 키도 6피트가 채 되지 않는 5피트 10인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블론드 머리에 키가 6피트가 채 되지 않는 영화배우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건 다니엘 크레이그가 처음이었다.


외모 조건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는 건 나이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을 참고하면, 제임스 본드의 나이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정도가 알맞다.

문제는 007 시리즈가 매년마다 새로운 영화가 나오는 시리즈가 아니라는 데 있다. 60년대 초창기엔 매년마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개봉했지만 그 이후부터 2년마다로 바뀌었으며, 요새는 3년 간격도 흔해졌다. 특히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공개되는 주기가 더욱 불규칙해졌다. 007 시리즈 23탄 '스카이폴(Skyfall)'은 007 시리즈 22탄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가 개봉한지 4년 뒤에 개봉했으며, 007 시리즈 24탄 '스펙터(SPECTRE)'는 '스카이폴'이 개봉한지 3년이 지난 2015년 11월 개봉한다. 2006년 제임스 본드가 된 다니엘 크레이그가 2015년 현재 4개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출연하는 데 그친 이유는 새로운 영화가 공개되는 주기가 길어지고 불규칙해졌기 때문이다. 만약 새로운 007 시리즈가 2년마다 꼬박꼬박 공개되었다면 다니엘 크레이그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출연한 제임스 본드 영화 수는 모두 5개가 됐을 것이다.

일부 본드팬들은 "양보다 질"을 강조한다. 일리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새로운 영화가 공개되는 주기가 길어지거나 불규칙해지면 제임스 본드 역을 맡게 될 영화배우의 나이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칫하면 50대를 쑥 넘긴 제임스 본드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본드팬들은 '50대 제임스 본드'의 탄생을 반기지 않는다. 50대 후반까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로저 무어(Roger Moore) 시대의 학습효과 덕분이다. 50대를 넘긴 영화배우는 제임스 본드를 맡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게 중론이다. 50대 초까지는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로저 무어의 8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를 기억하는 본드팬들 중엔 '50'이라는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본드팬들도 많다.

현재는 50대를 넘겨서까지 제임스 본드로 출연한 배우는 로저 무어 하나가 유일하다. 피어스 브로스난은 40대 후반에 007 시리즈를 떠났고, 다니엘 크레이그는 현재 47세이다.

(참고: 숀 코네리가 출연한 1983년 제임스 본드 영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Never Say Never Again)'은 EON 프로덕션이 제작하는 '오피셜' 007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는 영화이므로 50대 제임스 본드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본드25'까지 계약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007 시리즈 프로듀서는 2015년 초 가진 인터뷰에서 'OPEN-ENDED CONTRACT'라고 밝혔다.

만약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오고 '본드25'가 앞으로 3년 뒤인 2018년 개봉한다고 가정하면, 크레이그가 만으로 50세가 되는 해에 '본드25'가 개봉하는 게 된다. 이렇게 되면 로저 무어에 이어 두 번째로 50대 제임스 본드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2018년 개봉 예정(추정)인 '본드25'에 출연하기 적당한 나이의 새로운 영화배우를 찾아나서야 한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3년마다 개봉한다는 점까지 계산해서 50대를 쑥 넘기기 전에 최소한 3~4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나이의 배우를 골라야 한다. '본드28'이 개봉할 2027년에 나이가 50대를 넘기지 않을 배우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할 필요는 물론 없다. 또한, '본드25'가 2018년이 아닌 2017년에 개봉하고 그 이후부터는 2년마다 꼬박꼬박 새로운 영화를 공개하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등 여러 가지 변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따져봐야 가장 이상적인 후보를 고를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의 조건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대충 마무리 짓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다니엘 크레이그의 뒤를 이를 제임스 본드 후보로 누가 있을까?

영국 배우 톰 히들스턴(Tom Hiddleston)이 있다.





톰 히들스턴은 마블 코믹스의 수퍼히어로 영화 시리즈 '토르(Thor)'와 '어벤져스(The Avengers)', 존 르 카레(John Le Carre)의 소설을 기초로 한 BBC의 미니시리즈 '나잇 매니저(The Night Manager)' 등에 출연한 영국 배우다.

  • 출생지: 영국
  • 생년월일: 1981년 2월9일
  • 키: 6피트 2인치
  • 머리: 블론드
  • 눈동자: 초록

1981년생에 키가 6피트 2인치라면 일단 기본적인 조건엔 충족된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는 머리가 블론드라는 점. 블론드인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바 있으므로 '블론드 본드'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재발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재발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원작을 중요시 여기는 본드팬들은 블론드 배우가 제임스 본드가 되면 또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이 열려있다. 원작을 중요시 하는 본드팬들은 제임스 본드를 창조한 소설가, 이언 플레밍이 원작소설에서 본드의 머리색을 '검정색'으로 묘사한 만큼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배우도 머리색이 갈색 또는 검정색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영화팬들은 머리색을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원작소설을 중요시 여기는 다수의 하드코어 본드팬은 생각이 다르다. 지난 2005년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로 발탁됐을 때 난리가 났던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되도록이면 키와 머리색 등이 원작소설의 캐릭터와 일치하는 배우를 고르는 게 가장 현명하다.

머리색에 이은 또다른 문제는 헤어스타일이다. 톰 히들스턴은 곱슬머리를 전부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을 자주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제임스 본드에 어울리는 단정한 헤어스타일이 아니다. 머리가 헝클어져 보이며 곱슬머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넓은 이마와 하늘로 올라가는 헤어스타일 때문에 톰 히들스턴을 볼 때마다 만화 캐릭터, 바트 심슨(Bart Simpson)이 떠오른다. 그러므로 만약 히들스턴이 제임스 본드가 된다면 구렛나룻을 약간 더 기르고 차분하게 옆 가르마를 탄 보다 제임스 본드에 가까운 헤어스타일로 바꿔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바트 심슨

일단 머리 문제를 넘어가고 나면 히들스턴은 훌륭한 제임스 본드 후보감으로 꼽을 만하다. 우람한 마초 액션 스타 이미지가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건 제임스 본드 후보가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이 아니므로 크게 신경쓸 것이 못된다. 요새 인기를 끌고 있는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의 영향으로 제임스 본드를 우람한 근육의 마초 액션 히어로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제임스 본드는 그런 타잎의 캐릭터가 아니다. 요새는 수퍼히어로 영화 뿐만 아니라 모든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근육을 키우고 나오는 게 유행이라서 제임스 본드도 그런 쪽으로 가야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람한 체격은 제임스 본드 후보의 중요한 조건이 아니므로 히들스턴의 최대 단점으로 꼽을 수 없다. 제임스 본드는 워리어 타잎의 액션 히어로가 아니므로 히들스턴의 체격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히들스턴이 격렬한 액션 씬에 잘 어울려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만약 히들스턴이 제임스 본드가 된다면 모든 걸 몸과 주먹으로 해결하는 피지컬한 제임스 본드와는 거리가 먼 캐릭터가 탄생할 듯 하다.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가 뛰고 달리고 주먹질만 하다 볼일 다 봤다는 지적을 받아왔으나 만약 히들스턴이 차기 제임스 본드가 된다면 보다 점잖고 지적인 제임스 본드를 기대할 수 있을 듯 하다. 히들스턴이 격렬한 맨손격투 씬 등을 박진감 있게 연기할 수 있겠는지 궁금한 것은 사실이지만, 007 시리즈에선 필요한 경우에만 맨손격투 씬이 한 두차례 정도 짧게 나오는 것으로 충분하지 시도 때도 없이 주먹질 발길질을 하는 영화 시리즈가 아니므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히들스턴은 거칠고 강렬한 이미지가 부족한 대신 차갑고 날카로운 이미지가 있다. 마블 코믹스의 수퍼히어로 시리즈에서 악당 로키 역으로 출연하고 재규어 자동차의 광고에도 "BRITISH VILLAINS"로 출연한 덕분인지 다소 사악한(?) 이미지가 풍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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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BRITISH VILLAINS" 광고

이런 점이 히들스턴의 제임스 본드에 큰 플러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는 육체적으로는 강한 육식동물처럼 보여도 정신적으로는 나약하고 감성적인 초식동물 캐릭터였으나 히들스턴 버전은 이와 반대로 육체적으로는 초식동물처럼 보여도 정신적으로는 강하고 차갑고 비정하며 인정사정이 없는 맹수인 제임스 본드를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피어스 브로스난과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를 거치면서 "제임스 본드가 무결점의 초식남化 됐다"는 비판이 본드팬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왔는데, 만약 악역 연기에도 능한 히들스턴이 제임스 본드가 된다면 이런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그러나 톰 히들스턴 버전 제임스 본드가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게 사실이다. 존 르 카레 영화에 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를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한 것처럼 보인다는 공통점도 있다. 어둡고 진지한 스타일의 배우가 제임스 본드를 맡는다는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에 이어 연속으로 진지한 배우에게 제임스 본드 역을 맡기면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 캐릭터와의 차별화가 어려워질 수 있다.

물론 히들스턴 버전 제임스 본드는 크레이그 버전보다 유머 감각이 있는 위트 있는 캐릭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히들스턴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다니엘 크레이그 시절과 크게 차이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007 시리즈의 칙칙함을 걷어내면서 분위기 전환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히들스턴만의 개성 있는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보다 약간 사근사근해진 게 전부일 뿐 전반적으로는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제임스 본드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보다 좀 더 밝고 유쾌해진 톤의 007 시리즈를 기대하는 본드팬들에겐 약간 의심스러운 초이스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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