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일 금요일

도널드 트럼프 이민 공약, 강경한 듯 하면서도 누그러진 양다리 정책

멕시코 출신 이민자들을 범죄자로 매도하고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할 것이며 그 건설비용을 멕시코에게 물리겠다고 하면서 멕시코를 신나게 공격했던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멕시코를 전격 방문해 멕시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에 대한 미국 반응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편이다. 시비만 거는 게 아니라 적진에도 들어가 대화를 하는 협상가 모습을 보였다는 점, 멕시코에서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를 트럼프가 휘어잡았다는 점 등이 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성향 안티-트럼프, 빌 크리스톨(Bill Kristol) 등도 트럼프의 멕시코 방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멕시코에서 정상회담 예행연습을 마친 트럼프는 애리조나 주로 이동해 최근 오락가락하던 이민 공약을 재정리해 발표했다. 최근 들어 트럼프가 불법이민에 강경하던 기조에 변화를 보이는 조짐을 보이면서 여러 말이 오가자 그의 이민 관련 공약을 다시 발표한 것이다.

사실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강경한 듯 하면서도 다소 누그러진 듯 양다리를 걸치면서 지지층과 중도층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약간의 변화를 준 정도가 전부였다.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멕시코 국경에 장벽 건설을 할 것이며, 그 비용을 멕시코에게 받겠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한다는 건 트럼프 지지자 뿐 아닌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와 경쟁했던 여러 후보들도 비슷한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최근에 무소속으로 대선 출마 선언을 했던 CIA 출신 보수성향 안티-트럼프 후보 에반 맥멀린(Evan McMullin)도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멕시코 국경 문제가 단지 이민, 범죄 문제 뿐 아니라 미국의 안보와도 직결된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장벽 건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인 건 아니지만, 어지러운 국경 문제를 완화시키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비용이다.

얼마가 필요한가가 문제가 아니라 트럼프가 건설비용을 멕시코에게 부담시키겠다고 한 게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고만 했으면 별 탈이 없었을텐데, 여기서 더 나아가 건설비용을 멕시코에게 받아내겠다고 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장벽 건설" 하면 "멕시코 부담"이 항상 뒤따라붙게 된 것이다. 멕시코는 건설비용을 내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트럼프는 멕시코 정부가 비용을 보내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멕시코가 지불한 셈이 되도록 만들 방법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돈을 안 보내면 여러 불이익을 주는 등의 다른 방법으로 받아낼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트럼프가 시작부터 건설비용을 멕시코에게 부담시키겠다는 주장을 편 바람에 장벽 건설의 필요성에 우선적으로 포커스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멕시코로부터 건설비용을 받아내겠다고 한 게 거추장스런 존재가 됐다. 그러나 이제 와서 번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트럼프가 멕시코를 다녀와서도 건설비용 멕시코 부담을 굽히지 않은 건 "장벽 건설"과 함께 "멕시코 부담"까지 트럼프의 핵심 공약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멕시코 대통령을 "친구"라고 칭했고, 미국만 멕시코로부터 마약, 범죄, 불법이민 등의 피해를 입는 게 아니라 멕시코도 미국의 돈과 무기가 멕시코 범죄조직에게 흘러들어가는 피해를 입고 있으므로 양국이 힘을 합해 국경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이전보다 한층 부드러워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미 핵심 공약이 된 "장벽 건설비용 멕시코 부담"을 이제와서 뒤집을 순 없었다.

◆불법이민자 추방

대다수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다른 건 다 양보해도 불법이민자 추방 공약 만큼은 양보하지 못한다"다. 트럼프가 다른 공약들을 전부 다 뒤집는다 해도 불법이민자 문제 하나 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얼마 전 폭스 뉴스의 '해니티(Hannity)'에 출연해 미국서 오래 생활한 불법이민자 가족을 추방하겠다는 데서 한발짝 물러서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자 앤 콜터(Anne Coulter) 등 반이민 성향이 매우 강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불법이민자 추방 문제를 놓고 트럼프가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다수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불법이민 문제 해결을 강하게 원하는 사람들이라서, 트럼프가 불법이민자 추방을 놓고 주춤거리면 지지기반이 무너질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스패닉 표와 트럼프의 강경한 이민 공약에 거부감을 느끼는 중도층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 트럼프 지지자 중에서도 40% 이상이 트럼프가 이민 문제에 다소 부드러운 톤을 띤 것에 찬성한다는 의견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불법이민자들에게 다소 유화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게 트럼프에게 유리할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트럼프가 애리조나에서 발표한 이민 공약은 강경 기조에 변함없음을 지지자들에게 재확인시킴과 동시에 "미국내 불법이민자 전원 추방"은 슬쩍 비켜갔다.

트럼프는 불법이민자 중 범죄자부터 우선적으로 추방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권에선 모든 이민 관련법들이 집행될 것이며, 미국에 불법으로 입국한 사람들은 모두 추방 대상이라고 했다. 이어, 트럼프는 범죄자, 갱멤버, 안보위협 대상, 비자 기간보다 오래 체류한 자 등을 우선으로 추적해 추방시킬 것이라고 했다.

"In a Trump Administration, all immigration laws will be enforced. As with any law enforcement activity, we will set priorities. But, unlike this Administration, no one will be immune or exempt from enforcement – and ICE and Border Patrol officers will be allowed to do their jobs. Anyone who has entered the United States illegally is subject to deportation – that is what it means to have laws and to have a country. Our enforcement priorities will include removing criminals, gang members, security threats, visa overstays, public charges – that is, those relying on public welfare or straining the safety net, along with millions of recent illegal arrivals and overstays who’ve come here under the current Administration." - Donald Trump

흥미로운 건, 범죄자가 아닌 나머지 불법이민자 처리다.

트럼프는 불법이민자 단속반을 증강시킬 것이며, 국경을 넘어 불법으로 미국에 입국한 사람들을 모두 추방시킬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트럼프는 미국 체류 불법이민자들이 합법 이민자로 변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내 불법이민자들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살고 싶다면 본국으로 되돌아갔다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재입국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불법이민자가 미국내에서 합법이민자로 신분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불법체류를 눈감아주고 합법으로 신분 변경을 허락하는 "Amnesty"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트럼프의 공약에 따르면, 불법이민자들이 미국내에서 합법 신분을 취득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합법 신분을 취득하길 원하면 본국으로 돌아갔다 재입국하는 방법밖에 없다.

"For those here illegally today who are seeking legal status, they will have one route and one route only: to return home and apply for re-entry under the rules of the new legal immigration system that I have outlined above. Those who have left to seek entry under this new system will not be awarded surplus visas, but will have to enter under the immigration caps or limits that will be established. There will be no amnesty." - Donald Trump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트럼프가 처음부터 주장했던 "불법이민자 전원 추방"과 다를 게 없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미국내에서 신분 변경을 할 수 없으니 불법이민자가 스스로 출국하길 권유하는 게 전부로 들린다. 비록 신분변경은 불가능하더라도 강제 추방이 아니라 스스로 나가라는 얘기므로 매우 강경한 이민 정책이라곤 하기 어렵다. 강경하게 들리긴 해도 "미국내에서 신분변경이 안 된다"는 게 핵심이지 "불법이민자 전원 강제 추방"은 분명히 아니다.

또한, 트럼프는 범죄자가 아닌 불법이민자들을 모조리 추적해 추방시키겠다고 하지 않았다. 원칙대로 하자면 모든 불법이민자가 추방 대상이므로 엄밀하게 따지면 불법이민자 전원이 단속 대상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전체 불법이민자들을 모두 단속해서 추방시키겠다고 하진 않았다. "불법이민자 전원 추방"을 슬쩍 비켜간 것이다.

트럼프는 국경에 장벽을 쌓고 새로운 합법 이민 시스템을 수립하여 불법이민 문제를 완전히 근절시키고 나서 남아있는 불법이민자 처리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In several years, when we have accomplished all of our enforcement goals – and truly ended illegal immigration for good, including the construction of a great wall, and the establishment of our new lawful immigration system – then and only then will we be in a position to consider the appropriate disposition of those who remain." - Donald Trump

따라서, 불법이민자가 합법 신분 취득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의미도 된다. 범죄자가 아닌 불법이민자들까지 악착같이 추적해서 추방시키겠다고 하지 않았으므로, 신분 변경을 희망하면 출국했다 재입국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얘기가 된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추방" 카드를 사용하면서 불법이민자 처리 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는 듯 하면서도 "불법이민자 전원 추방"에선 한발짝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불법체류자 발생을 막고 미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불법이민자들을 우선적으로 추방시키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게 핵심으로 들린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고 체류기간을 넘겨 미국에 머무르는 외국인들을 단속하겠다는 건 일반적으로 누구나 내놓을 수 있는 공약이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크리스 크리스티(Chris Christie) 뉴 저지 주지사도 비슷한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멕시코 국경 문제도 공화당 경선에 나왔던 전직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Rick Perry)가 이슈화하려던 것이므로 장벽 건설도 유별날 정도로 강경한 이민 공약이 아니다. "불법 이민자 자진 추방"도 그다지 새로운 공약이 아니다.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Mitt Romney)도 자진 추방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불법이민자들을 모두 강제로 추방시키는 것보다 미국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게 만들어 그들이 자진해서 떠나도록 만드는 게 여러모로 덜 부담스러운 방법이므로 앞으로 이런 아이디어가 계속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불법이민자를 단속하지 않는 일명 '생츄어리 시티(Sanctuary City)'는 없애는 게 상식적으로도 맞고 이민자 입장에서 볼 때도 유리하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좌파들은 툭하면 "관용", "관용" 하는데, '생츄어리 시티'와 같은 좌파들의 지나친 관용이 지금의 트럼프 열풍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거꾸로 '생츄어리 시티'는 미국인들이 반이민 성향을 갖게 하고 소수계 이민자들에게 반감을 갖도록 만드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할 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좌파-리버럴들이 모여앉아서 공자왈 맹자왈 할 땐 '생츄어리 시티' 같은 게 듣기에 좋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론 소수계 이민자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일부는 트럼프가 미국내 불법이민자들이 합법이민자로 신분 변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길 기대한 듯 하다. 최근 들어 트럼프가 다소 부드러워진 것 같자 불법이민자 신분 변경을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을 기대한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마디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기대할 게 따로 있지, 트럼프가 "Amnesty"를 수용할 것 같았단 말인가.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가 불법이민자 사면 문제로 마코 루비오(Marco Rubio) 등에게 맹공을 퍼부은 것을 봤으면서도 트럼프가 "Amnesty"를 수용할 것을 기대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트럼프와 트럼프 지지층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불법이민 문제인데, 트럼프가 미쳤다고 이제와서 골수 지지층 이탈을 불러올 "Amnesty"를 수용할 것 같았단 말인가.

이렇게 기대할 수 없었던 걸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이번 트럼프의 이민 정책 발표가 매우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무조건 비판하고 보자는 식의 국내외 좌파-애꾸눈-글쟁이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초강경 이민 정책 발표했다", "백인들만을 위한 정책"이라고 소란피울 것은 안 봐도 비디오 수준이다. 툭하면 "백인" 타령을 하면서 트럼프를 인종차별자로 몰아가려 하고, 미국 대통령 후보가 미국과 미국인을 우선으로 삼은 공약과 정책을 내놓는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이죽대는 자들도 있으니 더이상 길게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특히 해외 언론 쪽이 더 한심하다. 좌편향 미국 메이저 언론만 주로 찾아보면서 미국 관련 기사를 항상 좌편향적 시각에서 쓰는 해외 언론사들도 많이 눈에 띈다. 끽해야 중도좌파 정도밖에 안 되면서도 자칭 '보수언론'이라는 해외 언론사들이 미국의 좌편향 메이저 언론들의 좌편향 기사들만 열심히 퍼가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어찌됐든 '멕시코 정상회담'으로 겉으로나마 멕시코와의 관계를 개선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 트럼프의 연출 효과는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를 초청한 멕시코 대통령과 초청에 응한 트럼프 모두 각자 속셈이 있어서 만난 게 전부일 것이므로 진지하게 "진정성"을 논하긴 곤란하다. 그러나 이 덕분에 트럼프가 짭짤한 효과를 누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 전 뉴욕시장,  제프 세션스(Jeff Sessions) 알라바마 주 공화당 상원의원이 "Make Mexico Great Again Also"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트럼프 유세 현장에 나타나 '멕시코 정상회담'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또한, 가장 까다로운 문제 중 하나였던 "불법이민자 전원 추방"에서 한발짝 물러났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다. "Amnesty"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여전히 실망스러웠겠지만, 트럼프는 "추방"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강경한 톤을 유지하는 듯 하면서도 "불법이민자 전원 추방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슬쩍 피할 수 있는 도망처를 마련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강경한 이민 정책을 열렬히 지지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을 강경한 톤으로 만족시킴과 동시에 "불법이민자 전원 추방"에선 슬쩍 한발짝 물러나면서 도망갈 장소까지 마련했으므로 과히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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