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5일 목요일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로 누가 있을까? - 에이든 터너

본드팬들의 공통된 습관 중 하나는 틈이 나는 대로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감을 찾는 일이다. 때가 되면 새로운 영화배우로 제임스 본드가 교체되기 때문에 다음 번 제임스 본드 후보로 어떤 배우들이 있는지 미리 미리 점검해보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Sean Connery)부터 지금의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에 이르기까지 제임스 본드 역은 스코틀랜드, 호주, 잉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잉글랜드 출신의 배우들이 맡았다. 따라서 브리튼 제도(British Isles)와 호주 출신 배우들이 새로운 제임스 본드 후보감으로 항상 오르내리곤 한다.

영화배우의 출생지역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는 것은 키, 체격, 머리색 등이다. 제임스 본드를 창조한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제임스 본드의 키, 체격, 머리색, 눈동자색 등을 소설에서 자세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본드팬들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을 영화배우를 물색할 때 이언 플레밍이 소설에서 묘사한 제임스 본드 캐릭터와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언 플레밍이 1957년 출간된 제임스 본드 소설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에서 밝힌 제임스 본드 관련 주요 사항은 다음과 같다:

Height: 183 cm
Weight: 76 kg; Slim build
Eyes: Blue
Hair: Black
Scar down right cheek & on left shoulder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가 미국 뮤지션 호기 카마이클(Hoagy Carmichael)을 연상케 하는 미남이라고 소개했다.

◀호기 카마이클

따라서 제임스 본드는 키 183 cm에 몸무게 76 kg의 마른 체형이며, 눈은 파란색이고 머리는 검정색인 깔끔한 미남형 사나이다. 오른쪽 뺨에 흉터가 있는 것으로 돼있지만 이건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원작소설에서 제임스 본드가 저렇게 묘사되었기 때문에 갈색이나 검정색 머리에 키가 6피트 이상인 마른 체형의 깔끔한 미남형 얼굴의 영화배우들이 007 영화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아왔다. 숀 코네리부터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2000년대 중반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를 제 6대 제임스 본드로 발표하자 일부 본드팬들이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언론과 인터넷 등지에서 소동이 벌어졌었는데, 그 이유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머리색이 갈색이나 검정색이 아닌 금발/블론드였으며 키도 6피트가 채 되지 않는 5피트 10인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블론드 머리에 키가 6피트가 채 되지 않는 영화배우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건 다니엘 크레이그가 처음이었다.


외모 조건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는 건 나이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을 참고하면, 제임스 본드의 나이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정도가 알맞다.

문제는 007 시리즈가 매년마다 새로운 영화가 나오는 시리즈가 아니라는 데 있다. 60년대 초창기엔 매년마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개봉했지만 그 이후부터 2년마다로 바뀌었으며, 요새는 3년 간격도 흔해졌다. 특히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공개되는 주기가 더욱 불규칙해졌다. 007 시리즈 23탄 '스카이폴(Skyfall)'은 007 시리즈 22탄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가 개봉한지 4년 뒤에 개봉했으며, 007 시리즈 24탄 '스펙터(SPECTRE)'는 '스카이폴'이 개봉한지 3년이 지난 2015년 11월 개봉한다. 2006년 제임스 본드가 된 다니엘 크레이그가 2015년 현재 4개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출연하는 데 그친 이유는 새로운 영화가 공개되는 주기가 길어지고 불규칙해졌기 때문이다. 만약 새로운 007 시리즈가 2년마다 꼬박꼬박 공개되었다면 다니엘 크레이그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출연한 제임스 본드 영화 수는 모두 5개가 됐을 것이다.

일부 본드팬들은 "양보다 질"을 강조한다. 일리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새로운 영화가 공개되는 주기가 길어지거나 불규칙해지면 제임스 본드 역을 맡게 될 영화배우의 나이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칫하면 50대를 쑥 넘긴 제임스 본드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본드팬들은 '50대 제임스 본드'의 탄생을 반기지 않는다. 50대 후반까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로저 무어(Roger Moore) 시대의 학습효과 덕분이다. 50대를 넘긴 영화배우는 제임스 본드를 맡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게 중론이다. 50대 초까지는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로저 무어의 8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를 기억하는 본드팬들 중엔 '50'이라는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본드팬들도 많다.

현재는 50대를 넘겨서까지 제임스 본드로 출연한 배우는 로저 무어 하나가 유일하다. 피어스 브로스난은 40대 후반에 007 시리즈를 떠났고, 다니엘 크레이그는 현재 47세이다.

(참고: 숀 코네리가 출연한 1983년 제임스 본드 영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Never Say Never Again)'은 EON 프로덕션이 제작하는 '오피셜' 007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는 영화이므로 50대 제임스 본드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본드25'까지 계약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007 시리즈 프로듀서는 2015년 초 가진 인터뷰에서 'OPEN-ENDED CONTRACT'라고 밝혔다.

만약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오고 '본드25'가 앞으로 3년 뒤인 2018년 개봉한다고 가정하면, 크레이그가 만으로 50세가 되는 해에 '본드25'가 개봉하는 게 된다. 이렇게 되면 로저 무어에 이어 두 번째로 50대 제임스 본드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2018년 개봉 예정(추정)인 '본드25'에 출연하기 적당한 나이의 새로운 영화배우를 찾아나서야 한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3년마다 개봉한다는 점까지 계산해서 50대를 쑥 넘기기 전에 최소한 3~4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나이의 배우를 골라야 한다. '본드28'이 개봉할 2027년에 나이가 50대를 넘기지 않을 배우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할 필요는 물론 없다. 또한, '본드25'가 2018년이 아닌 2017년에 개봉하고 그 이후부터는 2년마다 꼬박꼬박 새로운 영화를 공개하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등 여러 가지 변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따져봐야 가장 이상적인 후보를 고를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의 조건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대충 마무리 짓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다니엘 크레이그의 뒤를 이를 제임스 본드 후보로 누가 있을까?

아일랜드 배우 에이든 터너(Aidan Turner)가 있다.





에이든 터너는 워너 브러더스의 판타지 블록버스터 '호빗(The Hobbit)' 트릴로지, 영국 TV 시리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 '폴다크(Poldark)' 등에 출연한 아일랜드 배우다.

  • 출생지: 아일랜드
  • 생년월일: 1983년 6월19일
  • 키: 6피트
  • 머리: 짙은 갈색
  • 눈동자: 갈색

1983년생, 키 6피트, 갈색 머리라면 일단 기본적인 조건엔 충족된다.

에이든 터너는 BBC의 2015년 미니시리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출연한 뒤 유력한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로 급부상했다. 로저 무어가 에이든 터너를 훌륭한 제임스 본드 후보감으로 꼽았다는 영국 언론의 보도도 종종 올라오고 있다.

터너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출연 뒤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로 주목받은 이유는 덮수룩한 수염과 치렁치렁하게 긴 머리를 모두 없애고 검정색 턱시도를 입은 깔끔한 젠틀맨으로 변신한 모습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본드팬들에겐 턱시도 차림의 에이든 터너의 모습이 "제임스 본드 오디션 포토"처럼 보였을 것이다.


에이든 터너는 티모시 달튼의 "진지함"과 피어스 브로스난의 "핸썸함"을 합쳐놓은 듯한 배우다. 만약 007 제작진이 점잖고 세련된 제임스 본드를 되돌려놓고자 한다면 에이든 터너가 좋은 초이스가 될 듯 하다.

액션 히어로 역에 어울릴 만한 터프가이 이미지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는 "워리어" 타잎의 액션 히어로가 아니라 매우 사교적이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액션 히어로이므로 크게 문제될 게 없다. 007 시리즈는 시도 때도 없이 쏘고 때려부수고 주먹을 휘두르는 액션 영화가 아니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들어서 007 시리즈가 그런 액션 영화가 됐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007 시리즈는 원래 격렬한 액션 영화가 아니다. 따라서 에이든 터너는 "올바른" 제임스 본드 역에 아주 잘 어울릴 것으로 보인다. 날카로운 이미지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좋았겠지만, 호사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면서도 진지해질 땐 진지해지는 제임스 본드를 기대해볼 만하다.

에이든 터너가 다니엘 크레이그의 뒤를 이을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로 알맞아 보이는 이유는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구축한 진지한 톤을 어느 정도 이어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볍고 유쾌한 톤으로 완전히 180도로 뒤집지 않고 진지한 톤을 어느 정도 이어받으면서 새로운 제임스 본드 시대를 열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영화배우만 바꿔서 그대로 가자"는 쪽으로 흐르진 않을 것이다. 에이든 터너는 난폭하게 주먹을 휘두르며 거칠게 뛰어다니던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본드와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지해질 때도 있지만 크레이그 버전 본드처럼 몸으로 때우는 액션맨 타잎엔 어울리지 않는다. 에이든 터너는 주먹보다 총을 사용하고, 몸보다는 머리를 사용하는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 잘 어울려 보인다. 에이든 터너 버전 제임스 본드가 MMA 선수처럼 근육을 키우고 주먹질을 하는 모습은 기대하기 어렵다.

만약 에이든 터너가 차기 제임스 본드가 되면 격렬한 액션 씬의 반복이 전부였던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007 시리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액션 씬의 빈도를 줄이고 격력한 액션 씬을 익사이팅하고 스타일리쉬한 액션/스턴트 씬으로 대신하면서 클래식 007 시리즈의 느낌을 되살리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리얼하면서도 스케일이 큰 플롯과 경치가 아름다운 로케이션도 007 시리즈로 다시 되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007 제작진이 지난 피어스 브로스난 시대에 플롯, 로케이션, 액션/스턴트 씬 모두에서 실패한 전력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브로스난 시대의 실패가 크레이그 시대를 몸으로 때우는 격렬한 "액션 본드"로 만든 원인이다. 과거부터 해오던대로 계속 따라가고자 했으나 브로스난 시대에 와서 맘처럼 되지 않고 계속 헛스윙을 하자 여기저기 다급하게 두리번거리며 남의 영화를 베끼기 시작하면서 007 시리즈를 평범한 헐리우드 액션영화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007 제작진이 지난 브로스난 시대의 실수를 반복하면 에이든 터너 시대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댓글 7개 :

  1.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답글삭제
  2. 스틸 속 모습을 보면서 들은 생각이, 도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해서 제임스 메이슨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악역 + 숀 코너리 발탁 전 제임스 본드 후보) 역할을 맡아도 어울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에이던 터너의 연기에 마이클 요크 (젊을적 '삼총사'시리즈에서 다르타냥을 연기했고, 74년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잉그리드 버그먼, 숀 코너리와도 호흡을 맞추었습니다.)의 목소리 더빙까지 더해지면 완벽할 거 같아요. 너무 60-70년대 적인 아이디어인가요, 목소리를 더빙한다는 게? 메이슨과 요크 목소리는 흡사하다는 생각이 항상 들었거든요.

    답글삭제
    답글
    1. 그러고 보니 제임스 메이슨과 비슷한 데가 많아 보입니다.
      에이든 터너가 젊었을 적 제임스 메이슨 역에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저는 만약 '북북서'가 리메이크된다면 빌리 밥 손튼을 악역으로 꼽아본 적은 있습니다...^^

      삭제
  3.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답글삭제
  4.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답글삭제
  5. 최근에 갑자기 생각나서 글 올립니다. 제임스 본드 및 조연 후보로 제이미 글러버 (Jamie GLOVER)는 어떨지요? 아버지이자 선배 연기자인 줄리언 글러버 (Julian GLOVER)가 1979년에 제임스 본드 후보로 고려되었다가 (- 위키백과 참조) 2년 후에 '포 유어 아이스 온리'에서 악역 크리스타토스를 연기한 전적이 있습니다.
    제이미 글러버: https://www.youtube.com/watch?v=HhLxPKlAfFs

    제이미 글러버는 아직은 세계적인 인지도는 떨어지는 조연 전문 배우입니다. 영드 '워털루 로드' (2006-2007년)에 출연했고, 오디오북을 많이 녹음한 만큼 목소리도 멋들어지는 전문 성우입니다. BBC 라디오극에서 벤허와 도리언 그레이를 연기했으며,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비디오 게임에서 루핀 교수를, '스타 워즈' 시리즈의 게임에서 비어스 장군 (아버지의 배역을 이어받음)을 연기했습니다.

    답글삭제
    답글
    1. 60년대생 배우들은 이젠 현실적으로 차기 후보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엔 3년마다 새로운 영화가 공개돼서 70년대 중후반 태생도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나이 압박에서 벗어나 중년 캐릭터로 다시 되돌아가보자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만,
      그럴바엔 굳이 또 60년대생 배우 중에서 고를 필요가 있겠나 싶습니다.
      70년대 초중반 태생 배우 중에서 고르는 게 더 나을 수 있겠죠.
      루퍼트 펜리-존스, 리처드 아미티지, 주드 로 등등...
      나이 압박에서 벗어난다면 그냥 다니엘 크레이그로 계속 가는 방법도 있겠죠.
      다만 크레이그의 본드는 피지컬한 액션 이미지가 강해서 중년 본드에 부적합하다고 봅니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