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3일 일요일

크리스토퍼 놀란의 '던커크', 맘에 들지 않은 건 영국군 헬멧 뿐

몇몇 굵직한 블록버스터를 연출했으나 "팬보이용 영화 전문"이라는 선입견에 가로막힌 영화감독이 있다.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이다.

놀란 감독은 SF와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로 주목받으면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특정 쟝르 영화에 열광하는 팬보이들로부턴 인기가 높았으나 아카데미의 반응은 차가웠다.

문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SF, 수퍼히어로 쟝르 영화로 상업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영화를 내놓으려 했다는 데 있다. 현재 헐리우드 영화들이 "빅버젯 상업영화"와 "인디펜던트 예술영화"로 양극화되었으므로 상업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영화의 필요성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SF, 수퍼히어로 쟝르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왜냐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SF, 수퍼히어로 쟝르 영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과 일부 팬보이 층을 겨냥한 오락영화 정도로 생각할 뿐 진지하게 볼 영화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007 시리즈, 코믹북 수퍼히어로 시리즈 등 액션-SF-수퍼히어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어둡고 무거운 톤의 무언가 있어 보이는 묵직한 영화처럼 아무리 포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청소년과 일부 팬보이들이 좋아할 만한 분위기를 조성해주면 그들은 쉽게 넘어갈지 몰라도 나머지 성인 관객들은 쉽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다. 어떻게 포장했든 간에 액션-SF-수퍼히어로 블록버스터 영화는 청소년과 팬보이들을 겨냥한 영화일 뿐 그 이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더군다나 빅버젯 SF-수퍼히어로 블록버스터 영화가 판치는 요즘엔 그러한 선입견의 벽이 더욱 높아졌을 수밖에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여지껏 아카데미 감독상 부문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을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싫든 좋든,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간에 이러한 선입견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를 보고 나서 "크리스토퍼 놀란은 SF-수퍼히어로 영화를 이제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다. 긱 스타일의 코믹북 영화 전문가로 이미지가 굳어버릴 것 같아서다. 배트맨 시리즈, '인셉션' 등과 같은 청소년용 영화를 묵직한 다른 성격의 영화인 것처럼 위장시키느라 우왕좌왕하지 말고 지금부턴 새로운 쟝르와 스타일의 영화에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했던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놀란 감독이 그의 2017년 새로운 영화로 선입견의 벽을 넘기 위한 "높이뛰기"에 도전한 듯 하다.

"벽"을 넘기 위한 "높이뛰기"에는 멕시칸들만 관심이 높은 줄 알았는데, 놀란 감독도 그가 넘어야 할 다른 "벽"을 넘기 위한 "높이뛰기"에 도전한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17년 새로운 영화는 워너 브러더스의 전쟁영화 '던커크(Dunkirk)'다.

'던커크'는 2차대전 초기였던 1940년 5월 프랑스 북부 던커크/뒹케르크에 고립된 영국군을 비롯한 연합군을 철수시키던 작전인 ‘오퍼레이션 다이나모(Operation Dynamo)’를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로, 놀란이 제작, 연출, 스크린플레이를 맡았다.

촬영감독은 '인터스텔라(Interstellar)', '007 스펙터(SPECTRE)의 호이터 반 호이테마(Hoyte van Hoytema), 편집은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트릴로지의 리 스미스(Lee Smith), 음악은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를 비롯 여러 편의 놀란 감독의 영화 음악을 맡았던 한스 지머(Hans Zimmer), 프로덕션 디자인은 '인터스텔라'와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의 네이선 크롤리(Nathan Crowley), 의상은 '인셉션(Inception)'의 제프리 컬랜드(Jeffrey Kurland), 시각효과는 '매드 맥스: 퓨리 로드(Mad Max: Fury Road)'의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이 각각 담당했다.

'던커크'엔 톰 하디(Tom Hardy), 잭 로우든(Jack Lowden), 마크 라일런스(Mark Rylance), 케네스 브래너(Kenneth Branah), 제임스 다씨(James D'Arcy), 킬리언 머피(Cillian Murphy) 등 베테랑 배우들과 신인배우 핀 화이트헤드(Fionn Whitehead), 영국 보이밴드 '원 디렉션(One Direction)' 멤버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애네이린 바너드(Aneurin Barnard) 등이 출연했다. 톰 하디는 던커크 철수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출격한 영국군 파일럿 "패리어", 잭 로우든은 패리어(톰 하디)와 함께 출격한 영국군 파일럿 "콜린스", 마크 라일런스는 던커크에 고립된 영국군 구출을 돕기 위해 배를 끌고 출동한 민간인 선원 "도슨", 케네스 브래너와 제임스 다씨는 던커크 철수작전을 지휘하는 영국군 장교 "볼튼"과 "위넌트", 킬리언 머피는 던커크 철수작전 중 조난당했다 도슨(마크 라일런스)에 의해 구조되는 영국군 병사 역으로 각각 출연했다. 핀 화이트헤드, 해리 스타일스, 애네이린 바너드 3명은 던커크에서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영국군 병사 "토미", "알렉스", "깁슨" 역으로 각각 출연했다.

▲(왼쪽부터)해리 스타일스, 애네이린 바너드, 핀 화이트헤드

▲(왼쪽부터)제임스 다씨, 케네스 브래너

▲마크 라일런스

▲톰 하디

지금까지 본 클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입맛에 맞는 듯 하면서도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뚜렷하게 눈에 띄는 작품들이었다. 그럴듯해 보이면서도 맘에 쏙 드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던커크'는 어땠을까?

맘에 들지 않은 건 영국군 헬멧 하나가 전부였다.

과거 영국군 헬멧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던커크'에서도 역시 맘에 들지 않았다. 병사들이 라면을 끓이다 말고 냄비를 뒤집어쓰고 나온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열렬한 UFO 동호회 멤버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던커크'에서 맘에 들지 않았던 건 문제의 헬멧 하나가 전부였다. 헬멧을 제외하곤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그렇다. '던커크'는 지금까지 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맘에 드는 영화였다.

'던커크'는 유치한 청소년용 영화를 겉으로만 묵직하고 그럴듯 하게 보이도록 포장해놓은 영화가 아니었다.

"2차대전 피로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2차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워낙 많아서 "2차대전" 하면 피로감이 밀려오는 게 사실이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던커크'에선 피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줄거리는 단조로운 편이었고, 뚜렷한 메인 캐릭터가 없을 뿐 아니라 대사량이 매우 적은 영화였으므로 드라마적인 요소가 풍부한 영화는 분명히 아니었다. 극장용 영화라기 보다 히스토리 채널(History Channel)용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성격을 띤 영화 쪽에 보다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하늘과 바다, 그리고 던커크 해변에서 펼쳐지는 필사적인 철수작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한눈을 팔 틈이 없었다. 전투 씬을 비롯한 모든 장면들이 매우 인텐스했고, 마치 던커크 현장에 가있는 것처럼 현실감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독일군의 폭격을 받으며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영국군 병사들, 던커크에 고립된 영국군을 구출하기 위해 배를 몰고 전쟁터로 향하는 영국인들의 애국심, 부족한 연료도 잊고 독일군 비행기와 치열한 공중전을 벌이는 용감한 영국군 파일럿의 활약 등 모두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배를 몰고 던커크로 향하던 도슨(마크 라일런스)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영국군 전투기를 올려다 보면서 "Rolls-Royce Merlin engine. Sweetest sound you could hear out here."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도슨의 애국심과 "BRITISH PRIDE"가 물씬 풍겼다.

그러나 특별히 눈에 띄는 배우나 캐릭터는 없었다. 여러 명의 배우와 캐릭터가 등장했으나 뚜렷한 메인 캐릭터가 없었고 대사량도 적었기 때문에 특정 캐릭터 또는 출연 배우가 특별하게 눈에 띌 기회가 없었다. 마크 라일런스, 톰 하디, 케네스 브래너 등 굵직한 배우들의 존재감은 느껴졌으나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하지만 각자 맡은 역할을 모두 충실하게 해냈다. 특별히 눈에 띄거나 인상적인 캐릭터 또는 출연 배우는 없었어도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잘 해낸 덕분에 특별하게 눈에 거슬린 배우도 없었다. 물론, "연기"와 "캐릭터" 파트를 '던커크'의 최대 약점으로 꼽을 수도 있지만, 특별히 대단할 건 없어도 영화를 보는 데 크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뚜렷한 메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줄거리가 전개되는 타잎의 영화가 아니라서 다소 산만하고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던커크'의 최대 단점으로 꼽을 정도는 아니었다.

유머가 좀 부족했던 게 살짝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놀란의 영화들이 대부분 유머가 매마른 편이고, '던커크' 또한 영화의 성격상 농담을 주고받는 분위기와 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지만, 다소 바보스러우면서도 코믹한 대사를 조금 넣었더라도 크게 나쁘지 않았을 듯 하다. 예를 들자면, 영국군 파일럿 하나가 독일군에게 붙잡혔을 때 싱긋 웃으면서 "Sorry ladies, forgot to bring passport..." 정도의 농담을 던지며 여유를 보이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보다 쿨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정도의 한줄 농담으로 영화의 분위기가 크게 훼손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영화의 성격상 "제임스 본드" 스타일의 농담이 적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 아직도 "WHY SO SERIOUS"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이번 '던커크'를 통해 크리스토퍼 놀란을 "진지한" 영화감독으로 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날 듯 하다. "청소년과 팬보이용 SF-수퍼히어로 영화 전문"에서 확실하게 졸업하는 계기가 될 듯 하다. 청소년용 영화를 묵직하게 보이도록 겉포장을 하기 위해 쓸데 없이 시간 낭비를 하는 것 보다 "우스운 영화"로 취급받지 않는 쟝르의 영화를 자주 만드는 게 놀란에게 보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번엔 '던커크'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를 수 있을까?

"이번엔 후보에 오른다"에 돈을 걸겠다.

댓글 8개 :

  1. 전쟁 영화를 개인적으로 좋아 하는데
    꼭 봐야 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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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9년 11월 8일에 본드25가 돌아온다고 합니다.
    각본은 닐 퍼비스와 로버트 웨이드 이렇게 발표되었고,
    감독 및 캐스트는 추후 발표된다고 합니다.

    항상 실망하는 희망고문이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래도 기대합니다.^^

    던커크는 이번주에 아이맥스로 보려고 하는데 놀란이 SF에서 살짝 발을 빼었군요~
    의외로 플롯과 narrative가 단순하지만, 두 번은 봐야 이해가 된다고 해서 두 번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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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년에 개봉하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가 자꾸 나오더니 결국 2019년으로 밀렸더군요.
      아직 새로운 파트너와 주연배우 등이 정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제 생각엔 SF-블록버스터와 거리를 약간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시간이 나는대로 70미리로 다시 한번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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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벌써 골든글러브 감독상, 작품상에 올랐습니다. 아카데미에도 분명 오를 것에 저도 돈을 걸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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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기대됩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다만 '더 포스트'를 경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필버그 연출,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주연, 펜타곤 페이퍼 실화를 다뤘다는 점,
      정부가 은폐하려던 걸 언론들이 파헤친다는 줄거리 등 헐리우드 쪽에서 좋아할 만합니다.
      특히 트럼프와 미국 메이저 언론의 관계 등을 감안하면 '더 포스트'가 유리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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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다크 나이트' 는 수많은 영화 명작 순위에 오르고 엄청난 고평가를 받은 영화가 아닌가요. 그런 영화가 단지 '묵직하게 보이도록 겉포장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씀은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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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쟝르의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넘기 어려운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 쪽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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