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1일 목요일

영국 텔레그래프 "왜 사람들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에 등을 돌렸나"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The Telegraph)에 "왜 우리는 '본드25'가 실패하길 바랄까? 어떻게 사람들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에 등을 돌렸나(Why do we all want Bond 25 to fail? How the public turned against Daniel Craig's 007)"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제임스 본드가 건배럴 앞으로 걸어가 겨냥을 하기도 전부터 '본드25(임시제목)'를 실패작으로 보는 여론이 이미 형성됐으며, 언론 역시 '본드25'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 사고들을 대서특필하며 부정적인 기사를 많이 내놓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텔레그래프는 그 원인으로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가 "(007 시리즈에 또 출연하느니) 차라리 손목을 긋겠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한 이후 미운 털이 박혔으며, 2015년작 '스펙터(SPECTRE)'가 공개된 이후 차기 제임스 본드 루머가 달아올랐을 때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오는 것으로 발표되자 실망섞인 탄식이 적지 않게 흘러나왔다는 점 등을 그 원인으로 들었다.

"본드팬"들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시대가 '스펙터'로 완결된 것으로 판단하고 '본드25'부터는 새로운 배우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손목을 긋겠다"던 다니엘 크레이그가 또다시 '본드25'로 돌아온다고 하자 그 때부터 김이 빠져서 일찌감치부터 '본드25'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는 것이다.

"The guns were out for Craig's tenure as soon he joked that he’d rather “slit his wrists” than make another Bond film, a widely criticised comment made while on the Spectre publicity duties in 2015. " - The Telegraph 

"After all the bluster and debate, there was a collective sigh of disappointment when Daniel Craig announced he would return as Bond – lured by either the series' artistic direction or the reported £18.4 million fee." - The Telegraph 

"And there’s perhaps something deeper to it – a sense that, in the fans’ eyes at least, Craig’s time has come to its natural conclusion, and Bond should be starting a new era." - The Telegraph


"손목을 긋겠다" 발언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를 비호감으로 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어도, '스펙터'로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가 완결된 것으로 생각했던 "본드팬"들이 크레이그의 '본드25' 리턴 발표를 보고 실망했다는 점에는 수긍이 간다.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완결편 성격을 지녔던 점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콴텀 오브 솔리스(Quantum of Solace)', '스카이폴(Skyfall)'의 배후에 블로펠드가 있었다고 설정하면서 크레이그가 출연한 제임스 본드 시리즈 세 편 모두를 하나로 묶어서 '스펙터'에서 마침표를 찍으려던 계획이었다.

전작과 줄거리가 이어지지 않았던 과거 시절에는 영화상의 줄거리 흐름만 보고 주연배우 교체를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는 전작과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형식을 택하면서 줄거리 흐름만 보고 어느 것이 완결편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바뀌었다. 이 덕분에 '스펙터'를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007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본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완결편 성격을 띄었던 '스펙터'가 다소 실망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007 제작진과 다니엘 크레이그가 더이상 미련을 갖지 않고 '스펙터'로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를 완결시켰더라면 "마지막이 약간 아쉬웠어도 그런대로 잘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온다고 발표하자 007 제작진과 다니엘 크레이그 모두 구질구질하게 보이게 됐다.

물론, '카지노 로얄'부터 '스펙터'까지의 4부작 시리즈를 완결짓고 '본드25'부터 새출발 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본드25'가 크레이그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 새출발 타령을 한다는 자체가 이상하게 들린다.

그렇다고 '본드25'가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도 아니다. '스펙터'에 등장했던 "본드걸", 매들린 스완(레아 세두)이 '본드25'에 또 등장한다는 것만 보더라도 '본드25' 역시 전작과 연결되는 세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드25'는 "최종" 완결편?

원래는 '스펙터'가 완결편이었으나 크레이그가 하나 더 찍기로 하면서 '본드25'가 "최종 완결편"이 된 것처럼 보인다.

만약 크레이그가 '본드26'로 또 돌아온다면 그 때는 "또 최종", '본드27'은 "한번 더 최종", '본드28'은 "이번엔 진짜 최종"이 되지 않을까.

007 시리즈가 원래 똑같은 포뮬라를 계속 반복해서 울궈먹기로 소문나 있는데, 이번에는 "완결편"으로 울궈먹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드25'의 기대치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인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007 시리즈에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007 시리즈는 "과거와의 차별화"로 큰 효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007 시리즈와는 다르다"는 점 하나를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는 평범한 액션영화일 뿐이었기 때문에 그 효과가 꾸준히 지속되기 어려웠다. "과거와의 차별화" 반짝쇼 효과는 이미 약발이 다 떨어져 있었다. 2012년 공개된 '스카이폴'을 보고 "007 시리즈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또 하나의 헐리우드 액션영화일 뿐" 등의 비판적인 평가를 한 사람들은 "과거와의 차별화" 효과에서 이미 벗어난 사람들이었다고 보면 된다.

"과거와의 차별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007 제작진은 2015년 공개된 '스펙터'를 보다 전통적인 007 시리즈 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다음으로 유명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빌런 캐릭터, 블로펠드와 그의 범죄조직, 스펙터까지 등장시켰는데도 불구하고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블로펠드까지 불러 놓고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면 더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로는 이미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고 더이상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스토리가 어찌됐든 간에 '스펙터'로 완결시키고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를 끝내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울궈먹기 좋아하는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한 번 더 울궈먹자"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25'에 출연한다고 직접 발표했다. 007 시리즈를 어느 정도 지켜본 "본드팬"이라면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싫든좋든 그렇게 결정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걸 학습효과를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펙터'가 공개된 이후 차기 제임스 본드 후보 이야기들이 바로 나온 것도 "이제 크레이그는 007 시리즈에서 떠날 때가 됐다"는 의미였다. 007 제작진이 크레이그와 함께 또 한 번 같이 울궈먹을 생각을 할 게 뻔했으므로 "그렇게 하지 말고 새로운 배우로 교체하라"는 의미도 담겨있었다. 그러나 크레이그가 '본드25' 출연을 공식 확인하면서 "주인공 이름만 제임스 본드인 게 전부인 평범한 헐리우드 액션영화"가 또 하나 나오게 됐다.

물론, 과거 007 시리즈에도 이런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에는 "007 시리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라는 게 뚜렷하게 존재했다. 스토리부터 시작해서 시시하기 짝이 없는 영화들이 많았지만, "007 시리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에 이끌려 계속 영화관을 찾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007 시리즈에서는 이 마저도 제대로 찾아볼 수 없다. 평론가들로부터 낙제점을 받았어도 영화가 시작하면서 건배럴 씬이 나오고 귀에 익은 제임스 본드 테마가 흐르면 그것만으로도 영화관을 찾은 보람이 느껴졌는데,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007 시리즈에서는 이런 재미조차 없다. "왜 이 영화를 영화관에 가서 봐야 하나? 단지 제목에 007이 들어가고 주인공 이름이 제임스 본드라는 이유 때문에?"라는 생각만 들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본드25'에 대한 반응이 미지근한 것이 당연하지 않나 싶다. 영화가 아직 개봉하지도 않았고 자세한 스토리도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이미 영화를 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한눈에 제임스 본드 영화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고, 007 시리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가 풍성해지지 않는 한 007 시리즈에 대한 관심도 계속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이 '본드25'에서 바로잡힐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만큼 '본드25'에 쏠리는 관심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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