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SF-판타지 쟝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SF-판타지 쟝르에 큰 관심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로봇 애니메이션 같은 SF물에 열광할 때 나는 추리소설과 탱크, 전투기 프라모델에 푹 빠져있었다. 간혹 생일, 크리스마스 때 로봇 완구를 선물로 받으면 패키지가 개봉되지도 않은 상태로 방치되곤 했다. 나에게 로봇 완구를 선물하는 것은 채식주의자에게 꽃등심을 선물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다 보니 1979년 공개된 '문레이커(Moonraker)'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제임스 본드 영화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주 기지", "스페이스 셔틀", "광선총 전투" 등 SF-판타지 영화에나 나옴 직한 설정들로 가득찬 영화가 바로 '문레이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레이커'가 나와 인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첫 째로, '문레이커'는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본 제임스 본드 영화 포스터이다.
영화관에서 본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는 아니지만, 포스터만 따지면 '문레이커'가 첫 번째다. 벽에 붙어 있던 '문레이커' 포스터를 봤을 때는 "007 시리즈",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무엇인지 잘 모르던 때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를 통해 007 시리즈를 알게 된 이후 "그 때 봤던 그 포스터도 007 시리즈였다"는 걸 알게 됐다.
둘째로, '문레이커'는 제임스 본드 원작소설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 영화이다.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라는 영국 작가가 주로 50년대에 발표한 스파이 스릴러 소설 시리즈를 영화로 옮긴 것이 007 시리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렇다면 우주에 나가 광선총 전투를 벌이는 플롯이 50년대에 출간된 원작소설 '문레이커'에도 나온다는 것인가" 궁금해졌다. 영화 뿐 아니라 원작소설부터 SF-판타지 성격이 짙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제임스 본드 소설을 구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형서점부터 시작해서 동네 헌책방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80년대 중반에는 제임스 본드 소설을 서점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간혹 있더라도 영문 원제와 제목이 완전히 달라서 코앞에 놓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정사탈출(情事脫出)'이다. 이 제목만 보고 '정사탈출'이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라는 사실을 한번에 알아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문레이커'는 헌책방에서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색이 누렇게 변한 헌책이었지만 그래도 한글 번역본이었다. 어렵게 구한 '문레이커' 소설을 읽어본 결과 메인 빌런 이름 등 사소한 몇 가지를 제외하고 영화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소설에는 우주, 광선총 등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영화 '문레이커'는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 정도만 원작과 같을 뿐 내용은 완전히 다른 영화였던 것이다. 나중에 차차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만든 제임스 본드 영화가 한 둘이 아니다.
셋 째로, SF영화를 연상시키는 우주 씬이 맘에 안 들어 '문레이커'에서 우주 씬을 전부 잘라내기도 했다.
여기서 잠깐! 007 시리즈도 SF영화 아니냐고?
007 시리즈에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설정과 여러 특수장비 등이 자주 등장해 왔으므로 SF물과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그러나 영화의 쟝르 자체를 SF로 분류해야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본다. SF물의 경계까지 아슬아슬하게 접근한 적은 있어도, 그 선을 넘은 적은 없었다. IMDb에서 007 시리즈를 검색해보면 거의 모든 영화들의 쟝르가 "액션", "어드벤쳐", "스릴러"로 돼있다.
그러나 '문레이커'를 검색하면 "액션", "어드벤쳐", "스릴러" 뿐 아니라 "Sci-Fi"가 하나 더 추가되어 있다. 다른 007 시리즈와는 달리 '문레이커'만은 유일하게 쟝르를 SF로 분류한 것이다.다른 007 시리즈는 아슬아슬한 경우가 있어도 SF물로 분류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으나, 우주에 나가 광선총 전투를 벌이는 '문레이커'는 예외로 SF물로 분류한 듯 하다.
어렸을 적부터 SF-판타지물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 당연하겠지만 - 터무니없는 플롯과 비현실적인 가젯이 등장하는 007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보다 사실적인 플롯과 그럴싸해 보이는 가젯이 등장하는 스타일을 훨씬 더 좋아한다.
이렇다 보니 '문레이커'의 우주 씬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80년대에는 비디오를 녹화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우주 씬이 나올 때는 퍼즈(Pause) 또는 스탑(Stop)을 눌러 녹화를 중지했다가 우주 씬이 끝나면 다시 이어서 녹화하곤 했다. 지구에서 우주로 이동하는 씬, 우주에서 광선총 배틀을 벌이는 씬 등은 전부 뺐다. 우주기지 내부에서 벌어지는 씬은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었으나, 우주기지로 이동하는 씬들을 모두 잘라내면서 지구에 있는 기지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우주 씬들을 닥치는대로 잘라내니까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부분 전체가 뒤죽박죽이 돼버렸지만, 그 때 당시에는 영화가 뒤죽박죽이 되는 것보다 우주 씬이 더 보기 싫었다.
90년대에는 약간의 장비 업그레이드를 했다. 비디오 믹서를 구입한 것이다. 그 때 당시 DJ 장비에 관심이 많았던 바람에 "내친 김에 비디오도 한번 해보자"고 달려든 것이다. 그래서 고가의 전문가용까지는 아니어도, 여러 대의 VCR을 연결해 영상 편집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비디오 믹서를 구입했다. 이와 함께 TV 3대, VCR 3대까지 구입했다.
그러나 '문레이커 리믹스'에는 실패했다. 많은 우주 씬들을 모두 걸러내는 건 거진 불가능했다.
정신이 주기적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던 1020대 시절이었으니까 저 짓을 했지, 지금은 돈주고 하라고 해도 안 한다.
아래 이미지는 당시에 내가 구입했던 믹서와 동일한 모델로 보인다.
그렇다. 바로 '문레이커'는 "이제는 영화를 직접 편집까지 해가면서 보냐"는 소리를 듣도록 만든 영화다.
2000년대에 와서 캠코더로 촬영한 동영상을 컴퓨터로 편집할 일이 생긴 적이 있었다. 바로 이 때 "내친 김에 '문레이커'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불끈 솟구쳤다. 한동안 '문레이커 리믹스'를 잊고 살아오다 동영상 편집을 하게 되니까 그 빌어먹을(?) '문레이커'가 또다시 머리 위에 착륙한 것이다.
가만 보니까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편집하면 식은 죽 먹기일 것 같았다.
그러나 안 하기로 했다.
이렇다 보니 1979년 공개된 '문레이커(Moonraker)'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제임스 본드 영화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주 기지", "스페이스 셔틀", "광선총 전투" 등 SF-판타지 영화에나 나옴 직한 설정들로 가득찬 영화가 바로 '문레이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레이커'가 나와 인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첫 째로, '문레이커'는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본 제임스 본드 영화 포스터이다.
영화관에서 본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는 아니지만, 포스터만 따지면 '문레이커'가 첫 번째다. 벽에 붙어 있던 '문레이커' 포스터를 봤을 때는 "007 시리즈",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무엇인지 잘 모르던 때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를 통해 007 시리즈를 알게 된 이후 "그 때 봤던 그 포스터도 007 시리즈였다"는 걸 알게 됐다.
둘째로, '문레이커'는 제임스 본드 원작소설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 영화이다.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라는 영국 작가가 주로 50년대에 발표한 스파이 스릴러 소설 시리즈를 영화로 옮긴 것이 007 시리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렇다면 우주에 나가 광선총 전투를 벌이는 플롯이 50년대에 출간된 원작소설 '문레이커'에도 나온다는 것인가" 궁금해졌다. 영화 뿐 아니라 원작소설부터 SF-판타지 성격이 짙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제임스 본드 소설을 구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형서점부터 시작해서 동네 헌책방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80년대 중반에는 제임스 본드 소설을 서점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간혹 있더라도 영문 원제와 제목이 완전히 달라서 코앞에 놓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정사탈출(情事脫出)'이다. 이 제목만 보고 '정사탈출'이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라는 사실을 한번에 알아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문레이커'는 헌책방에서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색이 누렇게 변한 헌책이었지만 그래도 한글 번역본이었다. 어렵게 구한 '문레이커' 소설을 읽어본 결과 메인 빌런 이름 등 사소한 몇 가지를 제외하고 영화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소설에는 우주, 광선총 등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영화 '문레이커'는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 정도만 원작과 같을 뿐 내용은 완전히 다른 영화였던 것이다. 나중에 차차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만든 제임스 본드 영화가 한 둘이 아니다.
셋 째로, SF영화를 연상시키는 우주 씬이 맘에 안 들어 '문레이커'에서 우주 씬을 전부 잘라내기도 했다.
여기서 잠깐! 007 시리즈도 SF영화 아니냐고?
007 시리즈에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설정과 여러 특수장비 등이 자주 등장해 왔으므로 SF물과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그러나 영화의 쟝르 자체를 SF로 분류해야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본다. SF물의 경계까지 아슬아슬하게 접근한 적은 있어도, 그 선을 넘은 적은 없었다. IMDb에서 007 시리즈를 검색해보면 거의 모든 영화들의 쟝르가 "액션", "어드벤쳐", "스릴러"로 돼있다.
그러나 '문레이커'를 검색하면 "액션", "어드벤쳐", "스릴러" 뿐 아니라 "Sci-Fi"가 하나 더 추가되어 있다. 다른 007 시리즈와는 달리 '문레이커'만은 유일하게 쟝르를 SF로 분류한 것이다.다른 007 시리즈는 아슬아슬한 경우가 있어도 SF물로 분류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으나, 우주에 나가 광선총 전투를 벌이는 '문레이커'는 예외로 SF물로 분류한 듯 하다.
어렸을 적부터 SF-판타지물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 당연하겠지만 - 터무니없는 플롯과 비현실적인 가젯이 등장하는 007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보다 사실적인 플롯과 그럴싸해 보이는 가젯이 등장하는 스타일을 훨씬 더 좋아한다.
이렇다 보니 '문레이커'의 우주 씬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80년대에는 비디오를 녹화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우주 씬이 나올 때는 퍼즈(Pause) 또는 스탑(Stop)을 눌러 녹화를 중지했다가 우주 씬이 끝나면 다시 이어서 녹화하곤 했다. 지구에서 우주로 이동하는 씬, 우주에서 광선총 배틀을 벌이는 씬 등은 전부 뺐다. 우주기지 내부에서 벌어지는 씬은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었으나, 우주기지로 이동하는 씬들을 모두 잘라내면서 지구에 있는 기지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우주 씬들을 닥치는대로 잘라내니까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부분 전체가 뒤죽박죽이 돼버렸지만, 그 때 당시에는 영화가 뒤죽박죽이 되는 것보다 우주 씬이 더 보기 싫었다.
90년대에는 약간의 장비 업그레이드를 했다. 비디오 믹서를 구입한 것이다. 그 때 당시 DJ 장비에 관심이 많았던 바람에 "내친 김에 비디오도 한번 해보자"고 달려든 것이다. 그래서 고가의 전문가용까지는 아니어도, 여러 대의 VCR을 연결해 영상 편집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비디오 믹서를 구입했다. 이와 함께 TV 3대, VCR 3대까지 구입했다.
그러나 '문레이커 리믹스'에는 실패했다. 많은 우주 씬들을 모두 걸러내는 건 거진 불가능했다.
정신이 주기적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던 1020대 시절이었으니까 저 짓을 했지, 지금은 돈주고 하라고 해도 안 한다.
아래 이미지는 당시에 내가 구입했던 믹서와 동일한 모델로 보인다.
그렇다. 바로 '문레이커'는 "이제는 영화를 직접 편집까지 해가면서 보냐"는 소리를 듣도록 만든 영화다.
2000년대에 와서 캠코더로 촬영한 동영상을 컴퓨터로 편집할 일이 생긴 적이 있었다. 바로 이 때 "내친 김에 '문레이커'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불끈 솟구쳤다. 한동안 '문레이커 리믹스'를 잊고 살아오다 동영상 편집을 하게 되니까 그 빌어먹을(?) '문레이커'가 또다시 머리 위에 착륙한 것이다.
가만 보니까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편집하면 식은 죽 먹기일 것 같았다.
그러나 안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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