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8일 수요일

내 수집품 중에는 왜 친필싸인 콜렉티블이 없을까?

나는 어디 가서 "수집 좀 한다"고 거들먹거릴 만한 입장이 되지 않는다. 이것저것 수집하는 것을 은근히 좋아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지만, 본격적으로 스케일 크게 빠진 적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없는 듯 하다. 이것저것 끄적거리며 시늉만 내보는 정도에서 그친 게 전부지, 그 다음 레벨로 넘어간 적은 없다.

지난 80년대부터 지금까지 비교적 꾸준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 콜렉티블 중 하나는 영화와 관련된 상품들이다.

영화 콜렉티블에 대한 관심은 지난 80년대 한국에서 살 때 영화관에서 판매하던 팜플렛/프로그램, 광고지/플라이어(Flyer) 등을 모으던 데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영화관에서 프로그램을 구입하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다"는 걸 기억하려는 의미로 구입하는 버릇이 생기면서 "영화를 관람하면 반드시 구입해야 하는 기념품"으로 굳어버렸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 때는 쌓아놓을 줄만 알았지 제대로 보관할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당수의 80년대 영화 프로그램들의 상태가 상당히 안 좋은 편이다.

(참고: '007 뷰투어킬'은 서울극장에서 고교생 관람가로 개봉한 바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는 없었으나 팜플렛만 구입하겠다고 극장 직원들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 팜플렛만 사들고 바로 나왔던 기억이... 팜플렛도 "고교생 구입가"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더랬지... 그런데 미국에 와보니까 '007 뷰투어킬'은 모든 연령 다 볼 수 있는 PG 레이팅...)




이 습관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어서, 관광지나 박물관 등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기념품 코너에 들어가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것이 됐다. 기념품으로 프로그램을 구입해서 집에 갖다놔야만 그곳을 제대로 다녀온 것 같다는 기분이 들고, 빈손으로 돌아오면 가장 중요한 것을 못보고 도중에 그냥 돌아온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프로그램이 없으면 엽서라도 한장 사들고 와야지, 안 그러면 찜찜함이 오래 간다. 물론 모자, 티셔츠 등 여러 다른 기념품들이 있지만, 영화관에서 프로그램을 구입하던 기억이 강해서 그런지 유독 "종이에 인쇄된 기념품"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그러나 미국에 온 이후 영화 콜렉티블에 대한 관심이 주춤해졌다. 미국 영화관에서는 프로그램을 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서점에서 판매하는 영화 관련 책과 매거진을 구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지금은 쇼핑몰에서 찾아보기 어렵지만, 각종 영화관련 상품을 판매하던 썬코스트(Suncoast) 스토어에도 자주 갔다.

특히, 1995년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개봉했을 때가 아주 오랜만에 가장 신났을 때였다. 그 때 썬코스트에서 구입했던 '골든아이(GoldenEye)' 콜렉티블들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요즘에도 인터넷을 통해서 프로그램, 로비카드, 책, 매거진, 프레스킷, 액션피겨, 다이캐스트 자동차 등 영화 관련 콜렉티블을 찾아다니곤 한다. 요즘에는 주로 007 시리즈 관련 콜렉티블만 뒤지고 다니지만, 가끔씩이긴 해도 그 이외의 영화 관련 콜렉티블도 훑어보곤 한다.

요즘엔 헐리우드 영화 시상식들이 정치집회로 둔갑한 바람에 관심을 끊었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어워즈 시즌에 맞춰서 나오는 영화 홍보 아이템들도 살펴보곤 했다.


그런데 한가지 관심이 없는 아이템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영화배우의 친필싸인이 담긴 콜렉티블이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생긴 것이지, 싸인을 받기 위해 돌아다니거나 친필싸인이 담긴 콜렉티블을 일부러 구입한 적은 없다.

왜냐고?

007 시리즈를 예로 들어보자. 내가 80년대 초부터  007 시리즈를 좋아해왔지만, 나는 007 시리즈와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이지,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영화배우의 팬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주연배우들의 사진도 많고, 그들의 모습을 한 액션피겨들도 여럿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해당 배우의 팬이라서 구입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영화"와 "캐릭터"의 팬이라서 구입한 것이지, "영화배우"의 팬이라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숀 코네리(Sean Connery), 로저 무어(Roger Moore) 등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배우들이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포토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제임스 본드 관련 포토가 아니면 관심없다. 내가 관심있는 건 제임스 본드 콜렉티블이지 숀 코네리, 로저 무어 콜렉티블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제임스 본드 포토에 출연 영화배우들의 친필싸인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다. 다만, 친필싸인은 영화 콜렉티블이 아니라 영화배우 콜렉티블로 보기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이렇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콜렉티블 중에서 값어치가 제법 나가는 것이 거의 없다. 몇몇 레어 아이템들이 있긴 하지만, 대단히 특별하다고 할 만한 건 없다. 값어치를 염두에 두고 모으는 게 아니라 추억이 될 만한 기념품을 모으는 마이너급 콜렉터라서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인지 쓸데 없는 것들만 하나 가득이고, 영양가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아, 그러고 보니 또 하나 관심이 없는 아이템이 있다.

프로모션 용도로 만든 제품들이다. 예를 들자면, 007 로고가 프린트된 펜, 영화 제목이 프린트된 수첩/노트북, 열쇠고리 같은 것들 말이다. 무료로 나눠주는 걸 받은 경우에는 군소리하지 않지만, 돈을 내고 구입은 하고싶지 않은 아이템 중 하나다. 영화에 등장했던 소품과 브랜드까지 똑같은 동일한 제품이거나 레플리카(Replica)라면 또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영화와 무관한 상품에 로고나 타이틀만 프린트한 게 전부인 아이템에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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