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20일 금요일

액션영화 줄거리 비현실적이면 곤란하다

액션영화가 100% 사실적일 수 없다는 건 다들 아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무작정 막가도 괜찮다는 건 아니다. 액션영화가 지나치게 나가면 공상과학이나 판타지 영화처럼 돼버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만화처럼 돼버린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건 줄거리가 허술하냐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액션이 전부인 영화라도 줄거리가 어처구니 없을만큼 심하게 나가면 김이 그자리에서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영화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범죄, 수사, 첩보, 밀리터리 소설들은 리얼리즘이 필요하다. 범죄/수사 소설인데 갑자기 범인이 뱀파이어인 걸로 드러나면 김이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첩보/밀리터리 소설인데 미국에서 핵폭탄이 터지고 국방장관, CIA 국장 등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 전부 죽거나 배신자인 걸로 밝혀진다면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줄거리가 흥미진진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까지 나가면 곤란하단 것이다.

톰 클랜시의 <공포의 총합>이나 로버트 러들럼의 <스코피오 일루션>이 약간 심하게 나간 스파이 소설에 속한다. 포스트 9-11인 요샌 미국서 핵폭탄 테러가 발생한다는 게 더이상 판타지가 아닐지 모르지만, 여전히 현실적이지 않은 재앙이란 생각이 든다. CIA 국장, 국무부 장관, 국방장관 등이 전부 테러조직에 포섭됐거나 그들에 의해 암살당하는 줄거리 역시 만만치 않다. '거기까지 침투했다'는 게 충격적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황당해 보인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저렇게까지 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기까지 침투했다, 핵폭탄이 터졌다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고 그런 전제하에서 진행되는 줄거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면 아무 문제 없겠지만 그게 안되면 곤란해진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소설들에는 '너무 심했다'는 리뷰가 따라붙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 스파이와 소설에 나오는 스파이는 천지차이', '007은 없다'고 한다. 다 아는 얘기다. MI-6란 이름 자체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 정보부를 MI-6라고 하는 건 한국의 국정원을 중앙 정보부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정도는 오케이다. 문제는 소설과 영화에 나오는 스파이들이 하나 같이 미남이고 멋진 자동차에 미녀들을 끼고 다닌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사실 괜찮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 정도의 '구라'는 괜찮다고 본다.

TV 시리즈 'Alias'는 나름대로 볼만했지만 '스토리가 좀 더 리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최근개봉한 <다이하드 4>도 NYPD의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큰 '스케일'이 분위기를 망친 케이스다. 아무리 '액션이 첫 째, 줄거리는 나중'인 영화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줄거리 자체가 아예 눈에 띄지 않는 건 아니다. <다이하드 4>의 모든 걸 지금처럼 그대로 내버려두는 대신 황당한 싸이버 테러 얘기를 빼고 그저 평범한 경찰 이야기로 바꾼다면 지금보다 나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천상 줄거리는 그리 중요치 않은 영화니까 불필요하게 신경에 거슬리는 것만 없애면 좋겠다는 거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나온다: 대체 무엇을 가지고 '리얼하다'고 하는 걸까.

액션영화에서 말이 안되는 액션씬이 나오는 걸 가지고 뭐라 할 수 없다. 사실 난 총알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많이 눈감아 주는 편이다. 너무 심하면 욕나오지만. 이러한 터무니 없는 액션씬은 아무리 리얼한 액션영화라고 해도 나오게 돼있다. 때로는 이런 것들이 영화를 유치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아주 심하지 않은 이상은 너그럽게 봐줘야 한다.

문제는 줄거리다. 줄거리가 아무리 중요치 않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짜임새 있는 줄거리 진행이 필요없다는 거지 닥치는대로 아무거나 말도 안되는 황당한 수준의 줄거리를 붙여놔도 된다는 건 아니다. 우지근찌근 와장창 하는 걸로 때우고 줄거리는 형식적인 거라 해도 '이건 진짜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황당한 줄거리는 곤란하다. 액션영화 팬이더라도 형사, 스파이, 밀리터리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토리가 리얼한 것을 좋아한다. 줄거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액션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런 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짜임새가 있고 재미가 있더라도 스토리가 지나치게 말이 안되는 것처럼 느껴지면 소설에 빠져들지 못한다. 책은 재미있게 읽을지 몰라도 만족도가 높지 않을 것이다.

수퍼액션 히어로와 '인간 액션 히어로'는 구분해야 한다. 아무리 뻔한 영화더라도 각자 어울리는 그럴싸해보이는 스토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럴 듯한 스토리에 빠져들도록 만드는 게 1차목표인데 너무 심하게 나가버리면 사람들이 흥미를 잃어버린다. '구라 액션'보다 '구라 스토리'가 더 치명적이다.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