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17일 금요일

'인베이션', 지루하진 않지만 싱거운 스릴러

절대로 잠을 자선 안된다. 잠을 자는 사이 바이러스가 퍼지기 때문이다.

절대로 감정을 드러내선 안된다. 감염된 사람들은 감정이 없기 때문에 감염자들을 속이기 위해서는 감정이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인베이션(The Invasion)'은 대충 이런 줄거리의 영화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내용이라고?

그럴 지도 모른다.

50년대 SF소설 'The Body Snatchers'를 기초로 한 영화는 '인베이션' 말고 여러 편 더 있다. 비슷한 줄거리의 영화가 '인베이션' 하나가 아니란 것이다. 왠지 모르게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인 것처럼 느껴진다면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본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전에 나온 영화를 본 기억이 없지만 '우주에서 무언가가 지구로 떨어져 인간을 감염시킨다'는 줄거리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영화들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기억나지 않을 뿐이지 이전에 만들어진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영화를 본 건지 확실치 않다.

확실한 것들만 얘기하기로 하자.

'인베이션'의 주인공은 니콜 키드맨이다. 이젠 나이가 있기 때문에 조금 늦은 감이 들긴 하지만 본드걸에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다.



아니나 다를까, '미스터 본드'도 나온다.



'미스터 본드'가 전부가 아니다. '카지노 로얄'에서 CIA 에이전트, 펠릭스 라이터로 나왔던 제프리 라이트(Jeffrey Wright)도 나온다.



'카지노 로얄'에서의 다니엘 크레이그와 제프리 라이트다. '인베이션'에서도 친한 사이로 나온다. 제임스 본드와 펠릭스 라이터로 나왔던 배우들이 007 시리즈 이외의 다른 영화에서 나란히 나온 적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 확인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007 조크'는 여기까지가 아니다. '인베이션'에서 니콜 키드맨의 아들, 올리버로 나온 아역배우의 이름이 걸작이다.

잭슨 본드(Jackson Bond).

진짜 '미스터 본드'까지 떴다.



출연배우들을 대충 훑어봤으니 영화로 돌아가보자.

아무래도 영화 자체는 배우들만큼 흥미진진하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루하게 만들진 않는다. 스페이스 셔틀이 추락하면서 정체불명의 외계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감염시킨다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줄거리지만 따분하진 않다. 니콜 키드맨, 다니엘 크레이그와 같은 낯익은 배우들이 나오는데다 스토리 진행도 스피디한 덕분이다.

하지만, 서스펜스나 스릴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다. 영화 쟝르는 SF/호러가 되겠지만 서스펜스가 매우 부족하다.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할 뻔자이기 때문에 서스펜스나 스릴 같은 걸 찾아보기 힘들다. 뭐가 어떻게 될지 빤히 보이다보니 아슬아슬할 것도 없고 쇼킹할 것도 없다.

이렇다보니 영화가 약간 맹탕으로 보이기도 한다. 바로 코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밀려드는 잠을 뿌리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베이션'에선 그다지 힘들지 않아 보인다.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라, 잠을 자지 말라는 등 조건은 힘들고 요란해보이지만 영화에선 그게 얼마나 힘든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니콜 키드맨이 잠을 뿌리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밀려오는 잠을 뿌리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나올 게 뻔하다는 걸 다 알고있는데 이걸 보고 '힘들구나'라고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감염된 사람들의 추격을 피하는 장면에선 왠지 모르게 좀비영화가 떠올랐다. '인베이션'은 좀비와는 상관없는 영화지만 무표정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자동차 위에 덥치는 장면은 영락없이 좀비영화처럼 보인다. 저들이 좀비는 아니지만 좀비영화에서 좀비들이 하던 짓(?)과 비슷해보인다.



이 영화와는 상관없지만 좀비 얘기가 나오니 이 노래가 생각난다.



뭐니뭐니해도 '인베이션'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마지막 부분이다. 클라이맥스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것까진 넘어간다지만 마지막 결말이 너무 허술하다. 좀 더 자세하게 나오길 기대했는데 그냥 건너뛰더니 상황종료라고 한다. 그리곤, 곧바로 끝나버린다. 마지막 결말부분을 이것보단 재미있게 만들 수 있었을텐데 너무 허무하게 끝내버린다. 영화가 약간 맹탕이고 빤히 들여다보이는 스토리라는 것까진 넘어갈 수 있지만 뭔가에 쫓기듯 급하게 끝내버린 듯한 마지막 부분은 실망스럽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여러 가지 해프닝이 많았던 걸 감안하면 이 정도라도 되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인베이션'은 볼만한 영화다. 새로울 건 하나도 없고 싱거운 것도 사실이지만 니콜 키드맨, 다니엘 크레이그와 같은 유명 배우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영화 자체도 지루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보기에 나쁘진 않다.

사실, 이 영화는 영화 자체보단 출연배우들의 인기에 기대려고 한 영화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카지노 로얄 패밀리'가 모인 것도 우연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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