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18일 토요일

영화는 되지만 게임은 안되는 것

2007년 11월 3D 애니메이션 'Beowulf'가 미국서 개봉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NC-17 버전 얘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극장서 개봉하는 일반용은 PG-13이지만 남녀 캐릭터의 정면 누드(Full Frontal Nude)가 나오는 NC-17 버전도 계획했었다고 한다. Full Frontal Nude에는 성기노출도 포함된다. 'Beowulf'는 3D 디지털 캐릭터들이 나오는 영화니까 부담없이(?) 보여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미국의 영화 레이팅에서 NC-17은 R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것으로, 17세 이하는 부모 또는 성인 보호자와 동행해도 입장이 허락되지 않는다. R등급은 '보호자'가 있을 경우 17세 이하도 입장이 허용되지만 NC-17는 예외가 없는 것. R등급은 보호자와 동행하면 17세 이하도 볼 수 있으므로 조건부 연소자 관람불가지만 NC-17은 '완전 성인용'인 것이다.

NC-17 버전 'Beowulf'도 미국의 영화 심의기관 MPAA의 반대로 없었던 얘기가 됐다고 한다. 실제 배우들의 노출연기보다 3D 디지털 캐릭터의 노출이 더 야하게 보이는 재미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어찌됐든 영화에선 성기노출 얘기를 꺼내 볼 수라도 있었지만 비디오게임에선 비키니만 입어도 난리가 나는 게 공정하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대표적인 게 테크모의 'DoA: Xtreme Beach Volleyball'이다. 이 게임은 테크모의 격투게임 'Dead or Alive' 시리즈에 나온 여자 캐릭터들에게 비키니를 입혀놓고 비치 발리볼을 하도록 바꿔놓은 게 전부인 게임이다. 일부 게이머들이 올누드 합성사진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지만 게임 자체엔 누드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 벗어봤자 비키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M등급을 받았다.

미국 비디오게임 레이팅에서 M(Mature)등급은 영화에서의 R과 같다. 17세 이하가 M등급 게임을 구입하려면 부모나 성인 보호자와 동행해야만 가능하다. 나이가 어려보이는 손님이 M등급 게임을 혼자 구입하려고 하면 점원은 신분증을 요구하도록 돼있다. 신분증이 없다고 하거나 17세 이하인 것으로 확인되면 그에게 게임을 팔지 않는다. 만약, 게임을 팔았다가 적발되면 난리 난다.

M보다 하나 높은 건 AO(Adults Only)다. AO는 영화의 NC-17과 마찬가지로 17세 이하는 무조건 구입할 수 없는 완전 성인용이다. AO등급을 받은 게임은 어지간한 게임매장이나 마트에서 취급하지 않고 있으며, PS3, XB360 등의 콘솔용 게임으론 아예 나오지 않는다. 내가 오래전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콘솔 메이커들이(예: 소니) AO등급 게임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 그렇다면 영화와 게임 모두 거의 똑같은 레이팅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에선 NC-17 타령을 해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게임에서 성기노출씬이 나온다고 하면 사람 잡아죽일 듯이 달려드는 인간들 투성이다. 힐러리 클린턴도 여기에 포함된다. 항상 이런 식이다. 미국의 게임 메이커들이 투덜거리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영화와 게임이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영화에만 관대하고 게임은 안된다고 하는 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 영화에서도 성기노출씬이 나온다. 미국에선 보수적이라 아직은 보기 드물지만 유럽에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한다. 때문에 일부 미국배우들은 성기노출씬을 '유러피언 누드씬'이라고도 하더라. 아직까지 미국에선 성기노출씬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싶으면 NC-17을 받는다. '드리머즈(Dreamers)'가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엔 남성 성기노출도 여배우들의 가슴노출씬처럼 R등급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판이다. 남성 성기노출에 점점 관대해지는 것이다. 여배우들의 가슴노출만큼 남자배우들의 성기노출이 별 것 아닌 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런데, 비디오게임에선 비키니만 입고 나와도 야하다고 난리가 난다. 실사도 아니고 3D 캐릭터인데 야하다는 것이다. 3D 캐릭터가 비키니를 입은 게 성인용 콘텐트란 얘기인데, 도대체 동의할 수가 없다.

얼마 전 터졌던 'GTA: San Andreas'의 핫커피 사건도 마찬가지다. 섹스 미니게임을 넣은 게 전부였는데 이것 때문에 발칵 뒤집어졌다는 게 넌센스처럼 보였단 것이다. 말이 섹스 미니게임일 뿐이지 노출수위를 따지면 아무 것도 아니다. R등급 영화에서 보던 것 정도밖에 안된다. 남녀 캐릭터가 섹스포즈를 하고있고 여자 캐릭터는 가슴 정도 드러난 게 전부다. 이 정도 섹스씬은 R등급 영화에선 흔해빠졌다. 그런데도 난리가 났다. 힐러리 클린턴까지 나와서 핏대를 올렸다.

아니, 17세 이상 게이머들이 이 정도도 소화 못시킬 정도로 보인단 말인가?



'GTA: San Andreas'는 M(17세 이상)등급을 받았으니 영화로 치면 R등급을 받은 것과 다름없는데, R등급 영화에선 섹스씬이 나와도 괜찮지만 M등급 게임에선 안된다는 게 말이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R등급이나 M등급이나 둘 다 17세 이상인 건 똑같은데 영화는 되고 게임은 안되는 이유가 뭐냔 말이다.

비디오게임이 어린이들에게 노출되기 쉽다는 건 일리있는 말이다. 하지만, 비디오게임만 노출되기 쉽다는 건 좀 이해하기 힘들다. 게임에도 영화처럼 레이팅이 있으니 관리하기 나름인 것 아니냔 말이다. 그게 귀찮다는 것인가? 그게 귀찮으니까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게임 레이팅이 있든 없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것인가?

영화와 비디오게임 차별은 여기서부터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게임도 레이팅이 있고 게임매장들도 신분증 확인하면서 법대로 하려고 해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한 부모들이 오히려 신경질을 내는 걸 수차례 봤다. 아이가 달라고 하면 그냥 주면 되는 거지 신분증 내놔라, 부모 데려와라 하는 게 무슨 짓이냐고 되레 열을 내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이런 부모들은 게임 레이팅이 어찌됐든 상관 안하고 M등급 게임들도 그냥 사준다.

만약 이렇게 해서 탈이 났다면? 미성년자에게 부적합한 게임을 부모들이 사주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면? 게임 레이팅도 분명히 있고, 게임매장 점원들이 이에 대해 설명을 해줬는데도 부모가 이런 경고를 무시하고 그냥 사준 바람에 일이 터졌다면 이게 누구 책임이냔 말이다. 이게 M등급 게임을 만든 회사의 잘못인지, 게임매장의 잘못인지, 아니면 무지한 부모의 책임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비디오게임 시장이 성인층을 상대한지 1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게임은 무조건 어린이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한심할 뿐이다. 플레이스테이션1 시절부터 어린이용 게임이 줄어들고 성인 눈높이에 맞춘 게임들만 쏟아져나와 '어린이들이 할만한 게임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는데 말이다. 미국 리서치 회사가 '게임에 돈을 가장 많이 쓰는 평균 나이'를 조사한 결과 29세로 나왔다는 건 알아도 모르는 거겠지?

게임시장이 영화와 견줄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게이머들이 어린이에서 성인층으로 옮겨간 덕분이란 것 정도는 이해하고 성인용 콘텐츠 - 높은 폭력수위 뿐만 아니라 노출도 포함한 - 가 늘어나는 걸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데 왜 이게 이렇게도 힘든지 모르겠다. 대체 언제까지 '영화는 되고 게임은 안된다'는 억지가 이어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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